댓거리 일요장터
십일월 둘째 일요일이다. 한밤중 잠을 깨 미국 심리학자 피터 홀린스가 쓴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를 읽었다. ‘남들보다 내성적인 사람들을 위한 심리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서 그는 타고난 성향은 어찌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패턴을 이해하면 외부 변화가 가져다주는 것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추켜세웠다.
간밤부터 새벽까지 메마른 대지를 적셔준 비가 살짝 내렸다. 지나간 가을 들머리 내습한 태풍 이후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오래도록 지속되는데 강수량이 미미해 해갈에는 미치지 못할 듯했다. 나를 포함해 주변 지기 텃밭의 시들던 푸성귀들이 이번에 내린 비로 싱그러워지길 바랐다. 입동 절기가 지났고 소설을 앞두었으니 비가 그치고 나면 기온이 뚝 떨어질 것이라 한다.
어둠이 걷히기 전 이른 아침 현관을 나서 한 곳에 둘러 올 장터로 향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버스 정류소로 향하니 길바닥에 밤새 내린 비로 함께 떨어진 은행나무 단풍잎이 수북했더랬다. 내가 사는 동네 가로수인 메타스퀘어와 함께 은행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 앞으로 한동안 단풍이 물든 가로수는 낙엽이 지면서 겨울의 길목을 안내해 주지 싶다.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 오일장과 함께 특정 요일에 서는 장터가 있다. 오일장이야 날짜별로 순환하며 돌아오는 장터이지만 요일에 서는 장은 다른 의미를 부여할 만했다. 규모가 제법 되는 아파트단지의 농협마트에서는 수요일과 토요일에 농산물을 중심으로 알뜰 장터가 열려 주민들의 호응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터와 달리 일요일 새벽부터 아침나절 반짝 서는 장터로 나섰다.
근동에서 3일과 8일에 서는 진해 경화장은 널리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이번 달 둘째 일요일이 13일인데 경화장과 겹친 다른 장터로 향했다. 경남대학 앞에서 가까운 해안의 이면 도로에 일요일이면 새벽부터 아침나절만 반짝 장터가 서는데 일명 ‘댓거리 일요장터’다. 신마산 주택지나 아파트 주민들이 즐겨 찾는 장터인데 나는 지난 초여름 멀리서도 한번 찾아간 적 있었다.
밤밭고개로 오르는 들머리 합포만이 바라보이는 아파트에 내 초등학교 친구가 산다. 이 친구는 평일이면 마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창녕으로 오가며 직원을 몇 거느린 회사를 운영해 주말에만 틈을 내는 현역이다. 일요일 아침이면 아내와 함께 댓거리 장터로 내려와 시장을 봐가면서 친구만의 시간을 즐긴다고 들은 바 있다. 대방동에 사는 고향의 같은 동네 친구와 마주 앉는다고 했다.
나는 집 앞에서 101번 버스로 시내를 관통해 신마산 댓거리로 나가 장터를 빙글 둘러봤다. 지난여름에는 옥수수를 한 다발 샀었는데 이번에는 생선을 사 갈 생각이었다. 장터 들머리에는 근교 농업에서 키워온 여러 가지 푸성귀들이 펼쳐져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철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석류 송이도 보였다. 제철을 맞은 굴과 신선도가 좋아 보이는 갈치나 장어도 펼쳐져 있었다.
농협 점포 길가에 한 가족이 나서 파는 수제 어묵이 인기가 있어 줄을 서야 해도 나도 그 대열에서 팔아주었다. 이후 내가 사고자 했던 조기와 동태를 사고 길목을 빠져나오다 대추가 보여 한 봉지 사면서 시장은 다 봤다. 이제는 장터에서 만나려는 초등학교 친구의 신마산 시장 단골 식당을 찾아갔더니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전화를 넣으니 근처 가까이 있으니 거기서 보자고 했다.
친구의 단골집은 고향마을 이웃집 여동생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밑반찬으로 나온 파래무침과 비지찌개에 이어 생굴과 호래기가 안주로 나왔다. 친구는 곡차를 택하고 나는 맑은 술을 잔에 채워 비웠다. 그새 장터를 구경하던 친구 아내가 들어서고 자주 본다는 대방동 사는 친구도 합류했다. 아침이기에 우리는 잔은 천천히 비워도 시원한 동태찌개까지 곁들이니 삼정승도 부럽지 않았다. 22.11.13
첫댓글 벌써 생굴이 나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