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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불가능한 일이 현실이 되기도 해. 항상 그렇지.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은 일은
항상 불가능하다고만 믿고 시도하지 않으려해. 왜냐구? 그 이유는 거창한게 아냐.
그저 사람들이 겁쟁이이기 때문이지. 겁이 나기 때문에, 모든 지 포기한다니까.
나도 솔직히 그래. 경험하지 않은 일은 먼저 겁이 나버려. 그래서 항상 뒷걸음치다가
내가 그 기회를 놓쳐버려. 글쎄, 난 잘 모르겠어. 이게 잘 하는 일인지. 과연 널 위해서
하는 일인지. 혹, 이건 나를 위한 일이 아닌지. 두려워져.
2012년 12월 1일. 하라인 일기 中
00.
한발자국 가까워진 겨울 날씨가 춥다. 설상가상으로 진눈깨비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앞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 경쾌한 캐롤을 들으면서 따뜻한 헤즐넛 커피를
먹고 싶지만. 뭐, 현휘가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난 즐거운 마음으로 여언 1시간 동안
밖에 서있었다.
목이 허전해진 걸 느끼고 목도리를 한번 더 동여맸다.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저쪽에서 사박사박 걸어오는 현휘가 보였다.
멋들어지게 청바지 포켓에 손을 꽂고 점점 다가오는 현휘를,
참 멋지다. 누구 남자친군지 몰라도,
난 내심 자랑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더욱 빳빳히 세우며 다가오는 현휘를 보며
미소 한번. 내 품에 안긴 꽃다발을 한번 세게 품고는 크게 그를 불렀다.
"현휘야!!!!!!!!!!"
그래. 이 때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병신같이 실실 웃기만했지.
행복한 우리 둘에게 이별이란 걸 없다며 확신했던 나에겐 그저, 아침부터 온
불안감은 금세 행복이란 걸로 바껴버렸으니까.
결국 이렇게 될걸, 넌 왜 그렇게 날 행복하게 해줬니?
*
"뭐라고. 현휘야, 나 못 들은 거 같아. 아니 나 못들었어."
나에게 한번도 들려주지 않았던 차가운 목소리로 현휘는
나에게 이별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주었다.
"하라인. 우리 헤어지자고. 지긋지긋해. "
"하지만 현휘야. 우리 3년인데,"
"난 그게 제일 마음에 안 들어. 우리가 3년 동안 지속됐다는 거. 그게 제일 끔찍해."
툭-
내 속에서 꽃다발에 힘없이 떨어진다.
멍하니 서서 눈물만 흘리는 나를 미동없는 눈동자로 바라보다가 나를 지나쳐서
매정하게 가버린다.
난 한참동안 아무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한참 뒤 정신이 든 후에 처음 든 느낌은 무기력함이었다.
난 허리를 숙여 무참하게 짓밟힌 꽃다발을 집어들었다.
그가 일부러 밟고 간, 그를 위해서 준비한 내 마음이 담긴 꽃다발.
그 꽃다발은 결국 그에게 버려진 내 마음 처럼 그에게 무참히 짓밟혀져 있었다.
꽃다발을 품안에 안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려댔다.
이 꽃다발이 내 마음같아서, 이 꽃다발이 그에게 버려진 나같아서.
한참이나, 한참이나, 아주 한참이나 눈이 쌓인 거리위에서 주저앉아 한참이나
울어댔다.
진눈깨비가 함박눈으로 바뀐것도 모르고.
이 끔찍스러운 날이 내 생일인 것을 애써 부정하면서,
이렇게 가버린 그를 잊으려 노력하면서,
다가오는 이별을 내 기억에서 지우면서,
01.
"꿈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요.
어쩌면 제게서 꿈이란 거 지워진 걸 지도 몰라요.
내 꿈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는 거. 그것 뿐이었거든요."
나는 술을 한잔 따르며 중얼거렸다.
몇번씩 고개를 주억거리며 혼잣말을 계속 했을 까.
내 앞에 앉아있던 여자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참 이쁘게도 생겼네,
참 이쁘게도 착하네. 이 여자 똑똑하기도 하여라.
"미안해요.미안합니다.미안해요."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그 여자에게 피식 김빠진 웃음을
지은 후에 난 애써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말했다.
"어쩌면 이게 잘 된 걸지도 몰라요.
난 현휘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었거든."
횡설수설.횡설수설.
이게 뭔 꼴이니. 이게 뭔 꼴이야.
니 앞에 있는 여자 니 원순데, 무슨 밉상이야. 이게 병신아!
"현휘요. 입에 묻히고 먹는 거 좋아해요. 그렇게 먹으면 맛있대나 뭐래나.
그래서 항상 휴지나 손수건 들고 다녀야 해요. 시험기간 때면 맨날 공부시킨다고
항상 데이트 장소가 도서관이었어요. 난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여자가 좋다고 막막
강조하면서 말이에요."
이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었잖아.
이 여자는 다 알고 있을 텐데. 사귄지가 1년이래잖아. 현휘는 1년전부터 다른 여자를
만나왔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 조차 모르겠어?
"당신을 원망하진 않아요.
그냥 잘해줬음 좋겠어요. 그 사람, 이게 내 소원인걸요."
미친년. 착한척, 매일 괜찮은 척. 씩씩한 척. 강한 척.
그러고 나면 항상 뒤에가서 울면서.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나 현휘한테 한번도 사랑한다고 못해줬어요.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 사람."
그리고 끝.
3년간의 짭쪼름한 내 사랑은 끝.
웬수같은 여자를 앞에 두고 횡설수설 늘어놓았던 그에 대한 원망도 이제 끝.
안녕히계세요.
행복하세요.
사랑했습니다.
사랑했습니다.
이제 너 보다 좋은 남자, 멋있는 남자, 똑똑한 남자 만나서
너 보란 듯이, 너 이런 멋진 여자 놓친 거 후회하게 그렇게 살아주겠어.
똑똑히보라구.
하라인의 살아가는 방식을.
진정한 사이코의 방식을.
*
" 그 여자 왜버렸어. 착하더라. 나 보면서 아무 원망도 안 한다고,
그저 행복하라고. 너 많이 사랑해주라고."
"..................."
"후회안해? 그 여자 버리고 나에게 온거.
나 그 여자 보다 몇배는 부족해. "
"후회안해."
"그래.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
좋은 사람 버리고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현휘야."
*
아주 폐인이다.
이런걸 이별후의 부작용이라고 해야하나?
난 현휘와의 이별 뒤에 1년 남은 수능을 위해 공부만을 외쳐대며
책상에 앉기만 하면 공부, 일어서기만 하면 공부를 해댔다.
좋은 현상이다. 이건 부작용이아니라.
그런 데 이 현상의 판단 미스가 있었다. 판단 미스라기 보다는 내 귀차니즘 정도?
"좀 씻고다녀. 공부도 좋은 데, 니 옆에 가기만 하면 쉰 냄새가.
쉬인 냄새가. 쉬~~~~~~인 냄새가. 아우-야들아 코 막어라."
난 입을 삐죽 내밀며 봉순이의 넓적한 이마에 땅콩을 먹였다.
짧은 신음을 내며 이마를 감싸는 봉순이에게 혀를 날름날름 내밀며 생글생글 웃었다.
봉순이는 주저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번쩍 일어나 내 머리 끄댕이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 년 죽어라죽어!! 이 년이 이별을 한번 경험하더니 그새 미친년이 되어 왔어.
글씨."
봉순아. 근데 내 머리 끄댕이 잡고 흔드는 건 좋은데.
그래 좋은데, 안그래도 근질거려서 긁고싶은거 참고있던거 니가 긁어줘서
시원하긴 한데, 근데 봉순아. 니가 잊어먹은 거 하나 있거덩?
"봉순아!!!!!!!! 나 일주일 동안 머리 안 감었잖어."
"꺄악!!!!!!!! 더러더러더러더러더러더러워.덜티해덜티해덜티해."
손을 잽싸게 빼내며 비명을 내지른다. 그리고 무식한 그녀는 두 손을 내 교복에
비벼댔다. 기분이 나쁘다. 기분이 나쁘다. 이런 제길같은 년.
"이년!! 봉순이년!! 당장 손을 떼지 못하겠는가!!"
내 말은 들은 체 만체하고 계속해서 내 와이셔츠에 손을 비벼댄다.
그새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때가 끼었고, 난 씩씩거리며
"한번 맛 좀 봐봐라!!!!!"
그 동안의 체력단련을 기초로 하여 억센 봉순이의 두 손을 힘겹게 땐 후에
그 두 손을 내 머리에 비벼댔다. 그러자 기겁하며 긴 비명을 내지른다.
"꺅!!!!!!!!!!!!! 친구년이 친구년을 죽여요. 죽여요. 친구년이 친구년을 죽이는
몹쓸 친구년이 어느 지구상에 있겄어요!! "
이것은 내 감정 폭발에 플러스 요인이 되어 내 입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난 억세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빠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을.래? 봉순씨?"
[스톱!!스톱이요!! 뭐라구요?]
[좋아한다구요. 아주 많이.]
개자식.
난 그놈에 대한 원망을 봉순이에게 뿜어냈고 황소같은 내 모습에
봉순이는 힘겹게 날 뿌리치고 뒷문으로 꽁무니를 뺀다.
"이년. 이리오지 못할까. 봉순이년!!"
[행복해?]
[엉. 아주 많이. 오늘은 최고로 행복한 날. 따봉이야. 따봉.]
죽여버릴테다. 이 개새끼.
"봉순아. 어디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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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볍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가볍게 보고 웃음 한번 지으셨으면 그게 릴라의
진정한 소설이 아닐까 해요.
첫댓글 여주인공이 깨끗해졌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이 ㅋㅋㅋㅋㅋㅋ 건필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