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수산교에서
올해 수능을 이틀 앞둔 십일월 셋째 화요일이다. 국가적 대사인 수능은 지진이나 코로나로 예외적 경우가 있긴 했으나 매년 십일월 셋째 목요일 시행했다. 작년에 나는 현직으로 정년을 앞둔 즈음이라 고사 감독을 면제받아 수능일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지난해 수능일은 거제 저구항에서 뜨는 연안 여객선을 타고 대매물도와 소매물도를 답사하는 교직을 마감한 소풍을 다녀왔다.
일 년 전 작년 일이 엊그제처럼 생생한 추억으로 남은 아침나절 집에서 미적대며 보냈다. 어제 다녀온 장유 대청계곡과 용제봉 누리길 산행기를 ‘만추(晩秋) 만보(漫步)’라는 제목으로 탈고했다. 내가 교직 말년을 생활권과 먼 거제에서 보내며 현지인보다 자주 거제섬 바닷가를 누비고 산자락을 올랐더랬다. 해금강 트레킹과 망산에서 바라본 쪽빛 바다는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주중 화요일 아침나절은 집에서 느긋하게 지내다가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현관을 나섰다. 행선지는 들녘이나 강둑을 거닐려고 동정동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를 탔다. 명곡교차로와 도계동을 거쳐올 때 샛노란 은행잎은 도심 거리의 만추를 장식했다.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를 지나니 미니버스는 병원을 찾았거나 생필품을 마련한 승객이 꽉 차 빈자리가 없었다.
주남삼거리를 지나니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을 염려해 주남저수지의 탐방로를 폐쇄한다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예년은 겨울이 오는 길목 주남저수지에 일찍 베이스캠프를 차린 철새들을 구경하기도 했는데 올해는 발길을 멈추고 되돌아가야 할 듯했다. 집을 나서면서 정한 목적지는 주남저수지가 아닌 수산다리 근처 강둑이라 마을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가술을 지나갔다.
추수를 끝낸 들녘은 뒷그루로 심을 당근 농사 비닐하우스를 세우는 농부의 손길이 분주했다. 예전에는 비닐하우스에 수박을 키웠으나 근년에 작목 변화가 와 당근 농사가 대세였다. 겨우내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운 당근은 내년 봄부터 초여름에 뽑아내고 다시 벼농사를 지었다. 드넓은 들녘 일부 구역에는 사철 비닐하우스로 연중 풋고추와 토마토 농사로 농한기가 없는 농촌이었다.
마을버스가 제1 수산교를 지날 때 내렸다. 가드레일을 넘어 강둑으로 나가니 파란 하늘에 미세먼지 없는 대기는 쾌청했다. 강 건너 밀양 수산의 높은 아파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창원 시민들의 식수원이 되는 강변 여과수 취수정이 있는 드넓은 둔치는 물억새를 비롯한 수풀이 우거져 밀림을 연상하게 했다. 강변에 흔하게 군락을 이룬 느릅나무와 팽나무들은 노랗게 단풍이 들었다.
제1 수산교에서 본포를 향해 길고 긴 강둑을 따라 개설된 4대강 사업 자전거 길을 걸었다. 강 건너는 밀양 초동면 곡강마을이었고 그 뒤는 종남산으로 이어질 덕대산이 우뚝했다. 건너편 강둑은 코스모스 연가길로 알려진 반월 습지 생태공원이었다. 김해 한림으로 뚫리는 신설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넓은 들녘 너머로 백월산이 솟았고 마금산 산등선은 천마산으로 이어졌다.
상옥정을 앞둔 둔치에는 이삭이 팬 물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서로의 몸을 비비며 야위진 줄기로 겨울을 날 채비를 했다. 본포 생태공원에는 추워진 날씨에도 자동차를 몰아와 텐트를 치고 숙영하는 이들이 더러 보였다. 창녕함안보를 거쳐온 검푸른 강물을 벼랑을 휘감아 수산 방향으로 유장하게 흘러갔다. 본포 취수장의 수변 생태 보도교를 따라 북면의 수변공원으로 건너갔다.
북면 수변공원에도 시든 물억새 군락은 여전했다. 신천과 청도천 샛강이 합류해 강폭이 넓어진 건너편은 부곡 학포 수변공원과 마주했다. 북면 수변공원에서 강둑으로 오르니 온천장으로 이어진 넓은 들판이 펼쳐졌고 그 너머 아스라이 천주산에서 작대산으로 이어진 산세가 아득했다. 강변의 바깥신천에서 찻길을 따라 마금산 온천까지 냅다 걸었더니 오후 햇살은 아직 남아 있었다. 22.11.15
첫댓글 맨 아래 그림은 앉아서 담았구나
멋진 그림이오.
가을이 점점 깊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