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정여립 공원에서 기축옥사를 회상하다.
“사람이 때를 모르니 때가 사람을 따를리 없다,
때가 사람을 모르니 사람이 때를 따를 리 없다”
정현종 시인의 시 구절입니다.
이렇듯 모든 것이 때가 맞아야 하는데,
때가 이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어긋나지요.
조선 선비 천여 명이 죽고
동서양당이 서로 죽이고 죽는 싸움판으로 전이한
기축옥사가 일어난 지 어언 430여 년,
그가 태어난 곳, 완주군 상관면 신리 파쏘 봉아래
정여립 공원이 들어섰습니다.
전주 혁신도시에 정여립로와 전주시 인후동에 들어선 정언신로에 이어서
정여립을 기리는 또 하나의 공간이 마련된 것입니다.
역적의 집터를 숯으로 지지고 파서 물을 끌여들여 파쏘를 만들었다는
파쏘, 파쏘 들, 파쏘 모랭이라는 말이
섬찟하기만 했던 정여립이 살았던 집터에서
만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기축옥사> 당시 정여립과 구촌 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온 집안이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된
정언신의 아들 정율은 아버지가 유배 길에 죽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죽은 정율과 친분이 있었던 백사 이항복은 정율을 추모하는 글 한 편을 지어 무덤 속에 넣었습니다.
그 뒤 정율의 아들 정세규가 장성한 후에 묘를 이장하며 만장을 꺼냈는데 거기에
쓰여 진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대저 사람은 본래 잠깐 머무는 것과 같으니, 오래고 빠른 것을 누가 논하랴.
이 세상에 오는 것은 곧 또 돌아감이며 이런 이치를 내 이미 밝게 아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를 위하여 슬퍼하노니, 내 아직 속됨을 면하지 못했네.
하지만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눈물이 쏟아져도 소리 내어 울 수 없네.
베개를 어루만지며 남이 엿볼까 두려워 소리를 삼켜가며 가만히 울고 있네.
어느 누가 잘 드는 칼날로 내 슬픈 마음을 도려내어 주리.”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상상출판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절망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한다는 것이 맞기는 맞는지요?“
2021년 2월 28일. 이월의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