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총재, 부산 구단주 타이틀은 왜 달고 있는가?

[에스티벤과 마라냥]

(부산의 안익수 감독이 성남 차기 감독으로 확정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 논란이 많다. 사진출처 OSEN)

살림살이 다 빼앗긴 부산, '대승적 차원'에서 내주는 것이다?

  요즘 K리그 판도는 온통 교체 칼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에 각각 타이틀을 챙긴 울산과 포항, 서울, 그 외 제주와 경남, 상주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팀들이 2012년 한 해 사이에 감독교체작업에 들어갔다. 공통적으로 상위나 하위스플릿을 막론하고 감독 교체의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성적부진'이 메인이었다. 그만큼 스플릿 제도와 강등이라는 존재가 K리그 팀들에게 미치는 여파가 상상 그 이상이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다. 하지만 부산의 경우는 좀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부산은 올시즌 트로피 하나 들어올린 것은 없지만, 일찌감치 상위스플릿에 합류하였고 없는 자금력으로 '질식수비' 라는 전술까지 꺼내놓으면서 나름 괜찮은 시즌을 보냈다. 그런데 이 부산을 이끌었던 감독과 수석코치가 부산을 떠났다. 올해까지 부산 수석코치였던 김인완은 유상철 감독 후임으로 대전으로 가버렸고, 부산의 수장이었던 안익수 감독은 성남으로 떠났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부산 입장에선 생각지도 못한 스태프 교체로 심하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사실 안익수 감독이 성남 일화(정확하게 말하면 일화 레전드) 출신이었고, 요근래 신태용 체제가 성적 부진에다가 팀 기강 잡기도 실패하는 등 전체적으로 망친 시즌을 보내고 있다보니 성남 프론트측에서 신태용 감독이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에 안익수와 물밑접촉을 했었고, 성남 박규남 단장이 여러가지 이유를 거론하면서 부산 프론트를 직접 설득하는 데 나섰다. 그리고 신태용의 사표가 수리되자마자 머지않아 성남측에서 성남의 새 감독으로 안익수로 확정되었다고 공식발표했다. 안익수 감독이 부산팬들에겐 한 마디 말도 없이 계약기간을 다 채우기도 전에 부산을 등지고 성남으로 훌쩍 가버린 것에 그들은 할 말을 잃은 상태다. 여기서 더 가관인 건 부산 프론트의 반응, 특히나 현재 프로축구연맹 총재이자 부산구단주 자리까지 겸임하고 있는 정몽규의 발언이었다.

"부산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선 K리그가 확실한 토대를 갖춰야 한다. 안익수 감독이 2년간 성남에 무상임대 갔다온다고 생각하라."

  K리그가 확실한 토대를 갖추는 것과 안익수 감독의 성남행이 과연 무슨 연관성이 있는건가? 정말 말도 안되는 논리다. 성남 감독으로 가는 것은 K리그 발전이고, 부산 감독으로 남아있으면 K리그 발전 저해라도 된다는 소리인가? 여기서 그 "대승적 차원" 논리가 나올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이 지금 부산 구단주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이 할 소리인지 내 귀가 의심스러웠다. 팀의 선장과 부선장이 나갔는데, 이런 말이 어떻게 쉽게 나오는 것인지, 신문선 해설위원 표현대로 "프로축구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정몽규 연맹 총재, 부산 구단주 타이틀은 왜 달고 있는가?

(작년에 프로축구연맹 수장이 된 정몽규 총재. 연맹 일만 신경쓰고, 자신의 구단인 부산 일은 언제나 뒷전이다. 사진출처 MK 스포츠)

  여태껏 우리는 정몽규 총재가 프로축구연맹 수장이 된 이후의 이야기만 해왔던 것 때문에 정작 그가 부산 구단주도 겸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외로 많이 모른다. 현재 그는 부산의 모기업인 현대산업개발의 회장직을 맡고 있고, 2000년도부터 현재까지 부산 구단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같은 현대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전북)나 현대중공업(울산)에 비해 자금력 부분에서 현저하게 차이나고 매번 돈이 부족하다 보니까 선수 수혈하는 데 있어 항상 차질을 빚었다. 마치 잉글랜드 프리미엄리그의 에버튼과 비슷한 처지다. 이런 팀을 이끌고 지금은 없어진 리그 컵과 FA컵 결승문턱까지 갔던 황선홍 감독이나, 꾸준히 부산을 상위그룹으로 올려놨던 안익수 감독이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는다. 이렇게 팀은 어렵게 돌아가고 있는데 과연 구단주인 정몽규 총재는 팀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

  가장 어이없던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올시즌 개막 경기였던 수원 대 부산 경기였다. 정몽규 총재는 이 날 자신의 구단인 부산이 수원 원정 왔기에 총재 자격 및 구단주 자격으로 빅버드를 방문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경기 중계 도중에 정몽규 총재가 화면에 잡혔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원 점퍼를 입고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초청받았기에 수원에서 제공해준 것으로 추측되지만, 정몽규 총재는 연맹의 대표이기 전에 부산의 구단주였고, 자신의 팀이 뛰는 경기에서 상대팀 점퍼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참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개막전에서 부산은 수원에게 1대0으로 패배했다.

  정몽규 총재의 이러한 행동이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그 이후 부산이 성남 탄천으로 원정갔을 당시에도 그는 그 경기에서 성남 머플러를 두른 채, 부산의 경기를 보았다. 아무리 중립적 위치에 있는 총재 자리라고 하지만 부산이 아닌 다른 팀을 챙기고 있으니 이를 보는 부산팬들은 상당히 괘씸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정몽규 총재는 아무리 중립적 위치라 하지만, 자신의 팀 경기에서 굳이 상대팀 점퍼를 입었어야만 했나?)

  다시 앞에서 꺼냈던 안익수 감독 이야기로 넘어간다. 부산은 지금 감독과 수석코치를 잃은 상황에 당장 다음시즌을 맞이해야만 하는 처지다. 백기홍 코치의 경우, 부산으로 합류한 지 7~8개월 되지 않았고 목포시청 코치 맡아본 게 전부며, 신의손 코치 또한 감독을 맡기엔 당장 무리다. 황선홍 컬러를 지우고 이제 겨우 안익수 컬러를 입혀놓은 입장에서 안익수를 잃었으니 부산은 다시 새 판을 짜야하는 판국이다. 하지만 부산은 앞에서도 언급했다싶이 매시즌마다 선수영입에 쓸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하다. 정몽규 총재는 연맹직에만 몰두하고 구단 관리를 방치하고 있다. 거기다가 모기업인 현대산업개발의 사정도 좋지 않아서 부산은 농담이 아니라 당장 다음시즌 강등 걱정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런데 자신의 구단을 내팽겨치고 안익수를 성남으로 보낸 것이 대승적 차원이고 K리그 발전이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 이를 누가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정몽규 총재 뿐만 아니라 오늘날 부산을 이지경으로 만든 안병모 단장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부산 단장직으로 앉은 이래에 그가 제대로 한 일이라곤 맥카이를 데려온 것이 유일하다고 할 정도다. 스폰서도 제대로 끌어오지도 못했고, 부산 지역축구팀이라고 인식시키는 데에도 실패했고, 선수 영입도 대부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괜찮았던 감독 영입도 이제 힘들어보일 지경이다(황선홍-안익수 시절은 성공작이라 할 수 있지만, 박성화-에글리 흑역사 또한 존재한다). 팀이 이렇게 어수선하니 빠져나가는 선수들도 적잖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부산의 성적은 불 보듯 뻔하다.

(과거 화려했던 부산의 앞날은 이제 풍잔등화인데, 과연 정몽규 총재를 좋은 리더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안익수 사태로 부산 구단 자유게시판은 불만이 폭주하고 있으며, SNS 상에서 부산 팬들은 그야말로 '화산폭발' 모드다. 이렇게 팬들은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 잠을 못 이루고 있는 판국에, 정몽규 총재는 차기 대한축구협회 회장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구단도 제대로 간수 못하는 사람이 축구협회장 후보로 거론된다는 자체가 나는 참 우습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이쯤하면 정몽규 총재도 이제 그만 '부산의 미래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떠나주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 아닐까? 더이상 그로 인해 부산이 날개 꺾이는 일을 그만봤으면 하고, 제발 부산을 떠나줬으면 한다. 그것이 진정한 K리그 발전에 도움을 주는 길이라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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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수제자™]

저만 이번 사태가 어이없었던게 아니었네요 ... 정몽규 총재의 발언 하나하나가 다 어처구니가 없고, 축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느낌이 너무 강한데 ... 이런 사람이 프로축구연맹 총재이고 한 구단의 구단주라는 점이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근데도 그 어디서도 정몽규 총재를 비판하는 기사가 올라오지 않는다는게 황당하기까지 하네요. 한국축구는 점점 성장하고 있는데 왜 한국축구 수뇌부들은 점점 더 퇴보하는지 ... 좋은 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