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는 왜 형성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한계를 알 때, 만들어집니다. 혼자서는 설 수 없고, 서로 연합할 때, 제대로 섬길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낄 때, 가능합니다.
사실 저는 혼자서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혼자서 공부하고, 혼자서 노는 것을 참 잘했습니다. 대학교, 대학원, 유학 가서도 외진 곳에 앉아 책을 보았습니다. 교회 사역을 할 때도 혼자서 했습니다. 기독학교를 섬길 때도 기타를 치면서 혼자 찬양하고, 기도 인도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그런데 지현호 선교사님과 같이하면서 더 많은 사람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학교 때, 저 혼자만 강의하다가 지 선교사님에게 한 번 메시지 요청을 했다가 지속해서 부탁했고요. 그러면서 여러 사람을 강사로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조직 교회에서 섬길 때도, 함께하는 목회자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개척하고 지금도 담임 혼자 설교를 다 하지 않습니다. 함께 하는 분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혼자서 다 할 수 없고, 혼자서 다양하고, 풍성한 메시지를 성도들에게 줄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40일 밤별 때 40여 찬양팀, 40여 설교자, 40여 기도 인도자를 세웠습니다. 120여 명이 함께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하기에 다양한 색깔이 나오고, 노래로 말하면, 화음이 형성됩니다. 그냥 소리를 내면, 각자 초등, 청소년, 청년, 청장년, 장년 자신에게 주신 마음에 따라 메시지를 전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기에 아름다운 화음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귀가 열립니다.
마음이 열립니다.
심령이 열립니다.
우물 안 개구리식 한계에서 벗어납니다. 영적인 균형을 잡게 됩니다.
영적으로 민감하게 됩니다.
자신이 회복됩니다. 가정이 회복됩니다.
교회 공동체가 회복됩니다.
이제 영적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하는 자들을 사랑한다면 함께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아비멜렉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을 보고 뭔가 보았습니다.
함께 언약을 맺자고 먼저 제안합니다.
믿지 않는 자가 믿는 자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두려워하며 네트워크를 청합니다.
나 자신은 누구와 네트워크를 갖자고 해야 할까요?
#창세기 21장 22~34절, #김영한, #아침개인묵상, #성경 하브루타 코칭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언약>
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1) 아비멜렉은 어떻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음을 알았을까요? (22절)
- 아비멜렉은 이미 아브라함의 좋은 믿음에 대해 알았습니다.
-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그랄에 머물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 이런 아비멜렉의 고백처럼 이후 사건에서 실제로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쳤습니다.
The narrative is fully aware of the preceding events, both the near context and the Abraham narrative at large.
First, the identity of Abimelech in 21:22 presupposes 20:1, which introduces the episode of Sarah’s abduction.
That the king is tentative about Abraham’s good faith (v. 22) is the result of the wife-sister deception he suffered by the patriarch (20:8–13). The mention of Abraham’s sojourn (gûr, “stayed,” niv) in Gerar in the conclusion (v. 34) recalls his initial travel to Gerar, “he stayed [gûr] in Gerar” (20:1b). The geographical references at the beginning and end create an envelope construction marking out chaps. 20 and 21. The treaty narrative suits its present context by providing a pause in the plot between the early events of Isaac (21:1–13, 14–21) and the crowning Akedah (sacrifice of Isaac) incident (22:1–19).
Mathews, K. A. (2005). Genesis 11:27–50:26 (Vol. 1B, p. 275).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2)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부탁하였나요? (23절)
- 아브라함, 자신, 자신의 아들, 손자들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맹세하라고 하였습니다.
3) 아브라함은 맹세를 하였는데요(24절).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25절)
-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이 있었습니다.
-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책망하였습니다(25절).
- 아비멜렉은 누가 그리했는지, 그런 일이 있었는지 듣지도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4) 아브라함은 어떻게 아비멜렉을 책망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25절)
- 아브라함은 소돔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 주셨습니다.
- 이제 하나님의 이름만 높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도 그러하였습니다.
- 아브라함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 가며, 축복의 근원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As in the war of the kings (chap. 14), Abraham’s stature is magnified as an international power in the region.
Both chaps. 14 and 21 end with an expression of worship to El Elyon (14:20) and El Olam (21:33), divine names known also to Canaan’s populations.
Abraham’s importance in each case draws attention to his God and the goodwill the patriarch enjoys. Also the formal recognition of Abraham’s well (v. 30) by the indigenous Philistine suggests to the reader proleptically the possession of the land by his descendants.
The portrait of Abraham in this episode therefore contains the pieces that profile the central elements of the blessing, except the all-important heir. There is personal greatness, blessing for others, and land, but without an heir the picture is incomplete. This prepares us for the Akedah, the culminating episode in the Abraham narrative.
Mathews, K. A. (2005). Genesis 11:27–50:26 (Vol. 1B, p. 276).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1) 아브라함은 왜 아비멜렉과 언약을 세웠을까요? (27절)
2) 아브라함은 왜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았나요? (28~29절)
-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우물 판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3) 두 사람이 서로 맹세한 그 땅의 이름은 브엘세바였는데요.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31절)
- 브엘세바의 의미는 ‘언약의 우물’ 혹 ‘일곱의 우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Within the narrative itself the high incidence of repetitions (e.g., two oaths) has led many scholars to propose that two written sources or at least two oral traditions lie behind the present form of the text. This is supported by the double etiology of Beersheba attributed to the passage; the name can mean “well of oath,” as suggested by vv. 23, 24, 31, or “well of seven,” as indicated by vv. 28, 29, 30.
Mathews, K. A. (2005). Genesis 11:27–50:26 (Vol. 1B, p. 276).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1)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운 뒤,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나요? (32절)
-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32절).
-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33절).
2) 아브라함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는데요.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요? (34절)
3) 오늘 말씀 중 받은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