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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꾸는 사회 선생님이 되고 싶다
-어느 비주류 교사의 고백-
skc22(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교육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
아이들은 나를 무서워했다. 첫해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으로 다가갔다가 철저하게 배신을 당한 뒤로, 그리고 무능한 교사라는 낙인이 찍힌 뒤로 나는 무서운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학교 조직에서 인정받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야간자율학습과 보충 수업 단 한명의 열외 없다. 알겠나? 이상" 학기 초부터 그렇게 시작을 하면 편했다. 그래서 경력이 쌓이면서 인사배정이 이루어지면 고3담임, 학생부, 교무부 등에서 서로 가져가려는 존재가 되면서 자기 만족에 빠져 있었다. 만족했다. 그러면서 경력을 쌓은 다음에 장학사 시험을 보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신규 교사때부터 나는 주변의 선배교사들로부터 유능한 교사가 되는 법에 대해서 학습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여유를 주지 마라. 그러는 순간 끝이다. 강력하게 나가라"
그러나 학교 생활을 하면서 몇 가지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주류 교사의 삶을 포기하였다. 첫째는 수능 시험을 본 뒤 제자가 자살을 했다.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리고 또다른 제자는 여름방학 보충 수업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무단횡단을 하다가 버스에 치어 즉사하였다. 그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나는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기 이전에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고민해야만 했다. 두 번째는 졸업한 학생들이 찾아와서 열등감과 열패감에 빠진 채로, 반수와 삼수를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한 교사의 삶이었지만, 아이들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고, 그들의 삶에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경쟁 구조 속에서 경쟁력으로 갖추어 살아남을 것을 말했지만, 그들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실패한 교사였다. 세 번째는 선배교사들의 비굴한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회식을 할 때에는 "학교가 이래서는 안된다. 교장 교감 선생님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며 격분을 하며 뒷담화를 내뱉던 그들이, 정작 직원 회의때는 교장 교감의 편이 된다. 내가 본 대부분의 선배교사들은 비굴하거나 침묵했다.
어느날 전교조 조합원이던 한 여선생님이 나한테 충고를 하였다. "선생님, 왜 이렇게 애들을 때려요?" 나는 내가 아이들을 잡지 않으면 학교가 무너진다고 생각해서 앞장서서 생활지도를 했을 뿐이었고, 선생님들도 다 나를 지지해준다고 생각했는데, 그 선생님은 내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그때 나는 충격을 받았고, 나의 생활지도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좋은교사운동 모임을 운영하고 나가면서 생활지도와 학급운영을 연구하면서 기독교사의 정체성과 체벌이 맞지 않는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체벌을 내려 놓았다. 체벌을 하지 않는 교사가 되었다는 소문이 들자, 선배들이 "왜 우리만 때리고 후배들은 안때리세요? 억울해요. 공포의 물빠따, 다시 사용해주세요"
아무튼 공포의 물빠따는 버렸고, 물선생이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송인수 선생님이 어느 날 보자고 했다. 마침 대학원도 다니고 하니 휴직을 하고 좋은교사운동에서 근무를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지만, 퇴직을 하는 분도 계시는데, 그까짓 휴직쯤이야하는 맘으로 휴직을 단행하였다.
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휴직을 결심했다. 3년간 좋은교사운동에서 정책실장으로 열심히 활동을 했다. 월간 좋은교사 특집도 쓰고, 깨미동 활동도 하고, 송인수 선생님과 토론도 하고, 보도자료도 썼다. 그렇게 3년간 활동을 하면서 나는 학교 안에서 머무른 채 교육을 바라봤던 나의 시각이 얼마나 협소했는가를 느끼게 되었고, 나의 교육적 깊이가 얼마나 없었던 것이가를 반성하게 되었다. 좋은교사운동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적지 않은 자극과 도전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박사학위 논문도 받게 되었고, 한국교육학회 우수박사학위논문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을 지내다가 학교로 복직을 하였다. 생긴 지 얼마되지 않은 학교라서 빨리 명문을 만들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엄청 공부를 많이 시킨다는 이야기는 익히 듣고 갔다. 학교 위치도 상당히 외져 있었다. 첫 직원회의때 나는 교감선생님이 일방적인 통보를 하는 것을 들었다. 오후 보충 한시간 하던 것을 두시간 하려고 하니 따라주기 바라고, 이로 인해서 1교시를 8시 40분에서 8시 10분으로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나는 복직을 한 첫날, 손을 들고 이 사안이 교직원 협의를 거친 것이냐고 물었다. 교감은 앞으로 협의를 하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리고 학교운영위원회에 출마를 하였다. 아는 선생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학운위에 출마 여부를 고민했지만, 학운위가 아니고서는 학교에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겠다고 생각하여 출마를 했다. 연설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설문을 미리 작성하여 나갔다. 대부분 부장 선배 교사들은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도로 마무리하였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A4 1장 반 분량의 내용을 이야기했다. 이후 1등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아침 7시 40분 등교, 8시 10분 1교시 시작, 오후 2시간 보충, 심화반 가동, 야간자율학습 10시 진행을 보면서 나는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교사들의 설문지를 통해 학사일정 변경을 논의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교장은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학운위원은 그 어떤 설문을 돌릴 수 없다고 했다. 결재를 맡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문제로 교장실에서 3-4시간씩 토론을 했다. 그 다음날에도 찾아갔다. 힘이 없는 나로서는 질기게 찾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교장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직원회의때 발언조차도 미리 결재를 맡고 하라는 식이었다. 심지어는 등사실에서 유인물을 만들 때도 부장의 결재를 맡아서 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봉쇄작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저는 설문을 돌릴테니, 징계를 때려주십시오. 법적으로 이 문제를 가지고 누구의 판단이 옳은지 받아봐야겠지요."하면서 설문을 메신저로 뿌렸다.
직원회의때 발언을 하기 시작하면 부장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유인물을 찢고 나갔고, 교감은 회의가 끝났다면서 교사들로 하여금 업무를 보라고 했다. 한 선배교사가 나에게 "빨갱이"라는 비판을 면전에서 하였다.
그렇게 힘든 3월 어느날 송인수 선생님께서 메일을 보내 주었다. 메일의 내용은 휴직기간 3년간 수고했다는 격려의 메일이었다. 점심 시간에 그 메일을 읽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위로가 되었고 서글펐다.
교원위원이 최소한의 의견 수렴 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민원을 제기했지만 교육청 답변은 교장에게 유리한 형태로 제시되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전 교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고, 마이크를 빼앗겨도 계속 발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식의 파행이 2달 이상 지속되었다. 그러한 상황이 관리자들도 부담이 되었는지, 우선 1학기는 진행이 되었으니깐 당장 바꿀 수는 없고, 논의를 통해서 2학기에 변경을 시도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2학기에 야간자율학습 한 달에 한번씩 없는 날을 만들었고, 보충 수업 시수를 줄였으며, 등교시간을 10분 정도 늦추었다.
학생부에 있으면서 나는 매일 교문지도를 서게 되었는데, 아침마다 늘 고욕이었다. 밤 10시에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12시까지 학원에서 있다가 오는 아이들로서는 7시 40분 등교가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학교가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등교 시간도 적지 않게 소요된다. 그런 아이들이 지각을 하면 운동장을 몇 바뀌씩 오리걸음으로 돌아야 한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이들을 벌을 주는 상황이 되면, 가볍게 몸을 풀게 하다가 들여보냈다.
학생부에서 동아리 활동과 학교 축제, 학생회 활동을 맡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서비스 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학생부에서 왕창 깨지는 아이들이 있으면 나라도 다독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학생부 교사로서 아이들을 때리거나 무섭게 하지 않은 점이 있었지만, 학교 축제, 학생회, 동아리, 학생회 캠프 등을 열심히 준비했더니 학생부장님도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이후 교칙 적용도 느슨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예: 여학생 스타킹 색깔 등).
학교에서는 연구 수업을 했다. 직소모형과 TGT 모형을 결합한 수업이었는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교장선생님도 수업에 대해서 극찬을 하시면서 내년에 전교사들 앞에서 시범 수업을 처음에 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언을 하셨다.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려고 했다. 문제풀이식 이상의 수업에 대해서 우리 교사들이 고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올해 휴직을 하지 않았으면 3월 연구 수업을 전교사가 보는 앞에서 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들의 수업 연구회를 만들었다. 사토마나부 교사의 책도 함께 읽으면서 토론도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교사들이 지쳐있었다. 방학 때도 보충에 이은 자율학습이 진행되었다. 고3은 방학 기간을 단축하면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심화반에 학습클리닉을 만들어 영어 수학 선생님은 하루에 7-8시간 수업을 하기도 하였다.
송인수 선생님께서는 진작부터 내년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4월 경에 하였다. 복직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다시 나오는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답답한 학교 구조를 바꾸려면 사회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그래서 흔쾌히 수락했지만, 아내가 반대를 많이 했다. 3년간 좋은교사운동에서 활동을 하면서 퇴근이 늦었고, 방학도 없는 삶에, 경제적인 손해도 있다는 것을 아내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설득 끝에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예상대로 휴직이 쉽지는 않았다. 법과 시행령이 만들어졌지만, 민간단체 고용휴직은 처음 시행되는 것이다보니 실무 장학사는 어렵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교과부에서도 교육청의 관할이라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육청에 정식 질의를 넣었다. 동시에 교과부에 민원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묵묵부답이었다. 2월 마지막 주가 되어서 교육청에서 대책회의를 가졌고, 휴직을 허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연락을 받았다.
사무실 생활에 이제 적응하는 단계이지만, 지금 나는 행복하다. 다만, "선생님께서 우리를 가르쳐주셨으면 좋겠어요"라며 나를 붙잡았던 그 아이들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나라도 있어서 교장 교감 선생님을 견제했는데, 나마저 없으면 학교가 더욱 일방적으로 흐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동료교사들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사실 학교가 행복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공부를 하고, 교육운동을 시작하면서 느낀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문제의식 없이 살면 되는데, 교육운동 이후 하나 하나가 마음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차마 침묵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바꿀 힘은 없고...
나는 나처럼 행복하지 않은 교사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콘텐츠 없이 오로지 명문대학에 아이들을 많이 보내서 명문 고등학교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교육을 망치는 그런 교장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인권과 감수성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런 교사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수업이 지겹고, 학교에 오는 것이 죽도록 싫은 그런 아이들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는 그런 아이들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특목고를 대비하기 위해서 밤 11시와 12시까지 학원에 있다가 오는 그런 현실이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입시로 인해 자살하는 제자가 나와서는 안된다. 자신이 간 대학이 명문대학이 아니라면서 열등감을 가지며 기를 못펴고 사는 그런 제자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그러한 고통과 불행의 교육을 끝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단체라는 생각을 한다. 이 교육운동을 앞장서고 있는 분들이 윤지희 대표님과 송인수 대표님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봤던 나는 그 세월의 힘에서 이 운동의 진정성과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운동의 끈을 이어 갈 1.5세대라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이곳에서 배우고, 위로함을 얻는다.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있었던 그 상처를 씻는다. 그리고 나로 인해서 상처를 받은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 위로와 충전의 공간이 내게 주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교육현장과 연구와 운동이 결합된 이곳은 바로 사회를 바꾸기를 희망하는 어느 사회과 교사의 또다른 교실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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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나라 공교육에 님과 같은 선생님이 50%만 되어도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써주신 글... 동감하는 맘으로 읽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아이들이 정말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1등을 못해도, 명문대학을 못 나와도, 또 다른 방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기회를 줄 수 있는 선생님들이 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사명감갖고 좋은일에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으시는 선생님께 무한한 지지를 보냅니다. 짝짝짝...
감동입니다. 하지만 학부모로서 학교현장에 선생님같은 분이 계시는 편이 지금은 더 필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의 운동방향을 업그레이드 시켜줄 분이란 믿음이 가네요. 고맙습니다. 힘내시구요~~!
와~~ 진정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입니다...선생님....이런 마음으로 늘 우리의 아이들을 바라봐 주세요...
선생님의 글을 읽고서야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어떤 문제로 부딪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혹 그거 아세요? 중앙부처 공무원 중에서도 교육부 공무원이 가장 권위적이라는 거... 일 때문에 여러 부처 공무원들을 접하게 되는데 유독 교육부 공무원들만 상대방(특히 젊은 사람일 경우)을 학생 취급하더군요. 학교 현장에서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기본권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선 큰 수확이란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 힘내세요!!
선생님께서 몸으로 실천하시는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요, 저도 같이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생각과 행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말 공감이 많이 갑니다. 바꾸기는 해야 하는데 힘은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현장에서 참 고민됩니다.
저도 지금 휴직 중인데... 내년에 복직합니다. 선생님처럼 끝까지 용감하게 싸우며 아이들편에서 사랑하며 살아갈 용기가 많이 부족합니다. 선생님의 바램처럼,,, 우리 모두의 바램처럼 가르침과 배움이 기쁨이 되는 그날이 속히 오리라 확신합니다. 솔직한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해주시니 너무 반갑습니다. 저도 좋은교사 회원입니다.
선생님 같은 생각을 가진 교사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전교조, 좋은교사 운동 등 힘을 모아 교육 현실을 깨뜨려 나가야 하겠지요.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을 송두리채 바꿀 방법이 무엇일까요?
명문대 많이 보내는 학교 보다도 행복한 학교가 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