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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살리는 일인데, 그만 두라고요?" | ||||||||||||||||||||||||||||||
베이비박스 지킴이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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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가 한국에 처음 설치된 것은 2009년 12월, 장애인 공동체 가정인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를 통해서다. 버려지는 아이들을 일정기간 보호해주고자 생긴 베이비박스는 설치된 지 얼마 안 돼서부터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장치다’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 등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 특히 지난해 8월 입양특례법이 제정되면서 입양은 한 달에 200건에서 2건으로 줄어든 반면,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는 3년 동안 20배가 급증함에 따라 논란이 가중됐다. 수많은 비난과 논란에도 ' 해야만 하는 일'을 감당하고 있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의 주사랑공동체교회를 찾았다. 교회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장애아이들을 돕는 봉사자들로 북적댔다 이 목사를 따라간 방 안에는 아들 은만이가 누워있었다. 이 목사는 은만이의 목에 뚫린 관에 음식을 넣어주면서 장애인 사역 이야기부터 지금까지의 삶들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은만이를 통해 시작된 장애인 사역 이 목사에게는 27살 된 아들이 하나 있다. '은혜가 충만하다'고 해서 이름이 ‘은만’이다. 은만이는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인파선염종양으로 입원을 했다. 병이 악화되어 급성종양이 되면서 오랜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은만이 침대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자연스럽게 사역이 시작됐어요. 은만이 병실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나중에는 로비에서 예배를 인도했어요. 병들어 시름하는 환우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어요.” 예배 가운데 부어주신 은혜는 놀라웠다. 복음이 전해졌고 회개와 구원의 역사가 이뤄졌다. 이 목사도 은혜에 감동을 받아 병실마다 다니면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기적들을 이뤄주셨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가 눈을 떴고, 뇌종양으로 1주일밖에 살 수 없다던 아이가 기적적으로 낫게 됐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게 이러한 사명감을 주셨구나!’를 알게 됐어요. 아픈 이들을 위해서 더욱 기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러다 상희를 만나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것은 기도 이상의 것임을 알게 됐어요.” 병원에서 만난 4살 상희는 전신마비를 앓고 있었다. 80대 할머니가 그 아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이 목사에게 손녀딸을 봐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자기는 나이가 들어서 돌볼 여력이 없고, 아이 엄마는 정신지체 2급이라서 도저히 아이를 보살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봐주면 예수를 믿겠다고 말했다. “부탁은 간곡했지만 상희를 돌보기에는 제 아들의 상황이 너무 심각했어요. 누워 있는 아들의 목에 매일 호스를 갈아 끼워줘야 했거든요. 그런데 아이를 봐주면 예수 믿겠다는 말에 안 된다는 얘기를 못 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께 복음을 전하고, 상희를 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이후 상희는 이 목사의 집에서 믿음으로 양육됐다. 전신마비도 치료돼서 지금은 혼자서 일어서고 밥 먹는 것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 목사는 손녀를 통한 할머니의 구원 계획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영혼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구나란 생각에 새로운 사역이 시작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가 1997년쯤이었다. 상희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 목사를 찾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8살 된 아이인데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병원에서 한쪽 눈이 없는 아이가 태어났다’ ‘뇌가 없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얼마 못 살 것 같다’ 다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였다. 병원에서는 이 목사에게 이들을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고 이 목사는 그들을 모두 집으로 데리고 와서 정성껏 돌보기 시작했다. “무뇌아였던 한나는 지금도 잊지 못해요. 병원에서 얼마 살지 못하니까 사는 동안만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한나는 6년을 살다가 천국에 갔어요. 밥 먹이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렸고 16~18시간을 울어댔죠. 그 아이와 함께하면서 마음이 아주 아프면서도 정도 많이 들었어요. 한나를 보내야 했을 때 예쁜 딸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고백과 함께, 아이들에 대한 헌신을 결단했어요.” 그 이후 이 목사 부부는 부모가 버린 장애 아이들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모두 12명을 입양했고, 3명은 법적 후견인으로, 4명은 위탁을 받아 키우고 있다. 그렇게 19명이 주사랑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2009년 12월 시작된 '베이비박스' 이 목사는 2007년 어느 날 새벽을 잊지 못한다. 굴비 상자에 버려진 아이를 가슴에 품으면서 시체를 품는다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저체온증으로 아이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아이를 보면서 앞으로 아이들의 시체가 발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공포감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의 필요성을 느꼈죠. 나무상자, 냉장고, 인큐베이터 등 뭐가 좋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체코에 베이비박스란 것이 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됐어요. 기자를 통해 수소문해서 체코에 메일을 보냈는데 좀처럼 답이 오지 않아 애를 태웠죠.” 한 달에 한 번 여섯 번의 메일을 보냈지만, 답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계속 버려졌고, 전철역과 화장실 등에서 아이들이 죽은 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다. 빨리 베이비박스를 만들면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목사는 철공을 하는 성도에게 부탁해 부랴부랴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다. 교회의 좌측 벽면을 뚫어 실내로 이어지게 했고, 내부는 온도조절이 가능하게끔 했다. 알람 벨도 부착해 아기가 놓여지면 바로 알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12월에 베이비박스가 처음 선보였다.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후에 기도했어요. 이 안에 단 한 명의 아이도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고요. 아이들이 제발 버려지지 않게 해 주시기를. 만약에 베이비박스가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만 이 문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했어요.” 이후 몇 곳의 언론에 기사화 되면서 베이비박스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이비박스는 잠잠했다. 이 목사로서는 다행이었다. 그러던 다음 해 3월 처음 벨이 울렸다. “벨이 울려서 나가보니 진짜로 아이가 있었어요. 처음 아이가 들어온 것을 보고, 제 아내와 전도사 내외 모두가 충격을 받았어요. 1~2분 동안을 아무 말도 않고 울기만 했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이 아이를 베이비박스까지 안전하게 보내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이 아이가 좋은 부모를 만나게 되고, 버리고 간 부모도 예수 믿게 되기를 기도드렸어요.” 배꼽을 보니 집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실로 배꼽을 묶어 놨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이후 한 달에 한 두 명 많게는 세 명의 아이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오기도 했다. 탯줄을 자르지 않고 온 아이도 있었고, 탯줄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감염이 된 아이도 있었다. 거의 다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인 듯했다. 그러다 지난해 8월부터 아이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올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엄마들이 남긴 편지를 보니까 입양특례법 때문에 보낼 곳이 없어서 이 곳에 보낸다는 내용이 많았어요. 그래서 입양특례법을 찾아보니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목숨 걸고 싸워야 할 법 ‘입양특례법’ 지난해 8월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입양 시 출생신고와 가정법원 허가, 일주일간의 입양숙려제를 의무화하는 법이다. 될 수 있으면 친부모가 양육할 수 있게 하고, 친부모 정보를 기록으로 남겨 입양아동이 성인이 되었을 때 친부모를 찾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 목사는 입양특례법의 문제점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 관계자들은 이 법이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법이라고 말해요. 하지만 이 법은 미혼모들의 피눈물을 빼는 법이에요. 미혼모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10대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입양특례법은 친부를 찾아서 호적에 올려야지 입양신청이 가능하게 되어 있어요.”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출생기록이 호적에 남는 것도 미혼모들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다. 입양 시에 기록이 말소된다지만, 현재 입양 대기 중인 3,700여 명의 아이들이 모두 입양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 목사는 법이 발효된 이후 인터넷을 통한 불법입양이 성행하고 있고, 입양이 인신매매로 악용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낙태도 증가했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생산된 사후 피임약의 80%가 청소년들에게 팔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 법으로는 미혼모도, 아이들도 보호받을 길이 없어요. 법을 재개정해서 이들을 살려야 해요. 지금 한국사회는 사회적 여론, 제도적, 법적 장치를 봤을 때 미혼모가 떳떳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조성돼 있지 않아요.” 미혼모와 아이들을 위한 법 개정을 호소하고 있는 이 목사는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이 일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아이들이 내몰리고 죽을 수밖에 없다며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했다. 지난 4월에만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가 22명, 입양특례법 도입 이후를 다 합하면 130여 명에 이른다. 베이박스가 2009년에 처음 설치된 이후 지금까지 203명이 들어왔으니 비율을 따지면 입양특례법의 영향이 막대하다. 이처럼 입양특례법 제정 이후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가 늘어나면서 '영유아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베이박스에 버려진 아이 중에는 태어나자마자 한두 시간 만에 오는 아이도 있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알몸으로 오는 아이도 있어요. 제주도, 부산, 여수에서 온 아이들도 있어요. 이렇게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보육시설로 갈 때까지 돌봐 주는 것이 저희가 하는 일인데, 이를 유기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봐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면 이 목사는 먼저 파출소에 신고 한다. 그러면 구청에서 나와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검사한 다음에 장애 아동은 보호시설로, 건강한 아이들은 임시보호소로 갔다가 보육원으로 보낸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이기에 입양기관에 가지 못하고 바로 보육시설로 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빌미로 관악구청은 베이비박스가 불법인데다 영유아 유기를 집중시킨다면서 베이비박스 철거를 촉구하고 있다. “관악구청은 교회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하고 있어요. 불법이라면 정부가 합법화해서 각 지역에 하나씩 세우면 되지 않을까요?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본질 외에 다른 것으로 호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죽어가는 사람 구해서 119에 전화 거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 않나요? 먼저 본 사람이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이 목사는 입양특례법 재개정의 조속한 시행과 아울러 베이비박스 폐쇄 압박이 아닌 영유아 유기에 대한 특별대책기구 설치와 미혼모 가정 지원을 위한 사회간접자본시설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그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중요한 사역을 하나 하고 있는데 바로 친모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베이비박스의 벨이 울리면 사모는 아이를 받으러 가고, 이 목사는 교회 밖으로 나가 친모를 만난다. 그는 친모랑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주님을 소개한다. “아이 때문에 친모가 예수 믿게 되는 일이 많아요. 2년 전에 전도한 친모가 있는데, 지금 교회 열심히 다니고 있다면서 일평생 기도하는 엄마가 되겠다는 전화를 얼마 전에 받았어요.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굉장히 큰 사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장애인의 행복을 위한 무장애건물 준비 “근래 들어서 저희 공동체에 관한 국외 방송이 계속 나가고 있어요, 얼마전 호주에서도 다큐 방송을 찍어갔고, 6월에부터 9월까지는 미국에서 저희 사역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돼요. 국내에서는 아무리 소리 질러도 잘 안 되니까 국외를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까 전 기도할 뿐이에요.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일을 시행하시고 일을 이루시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왜곡과 비난으로 이 목사를 힘들게 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이 일에 함께하고 계심을 확신하고 있다. “베이비박스가 영유아 유기를 조장한다고 하지만 저희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구청에서도 자꾸만 베이비박스를 철거하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죽는 걸 알면서 그럴 수는 없어요. 대안이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대안이 없이는 절대로 안 돼요. 눈물 흘리고 고통받고 있는 미혼모들의 상황이 알려지고 이들을 위한 법이 속히 만들어지고 시행됐으면 좋겠어요.” 이 목사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알몸으로 놓여 있던 아이를 보면서, 베이비박스 만든 일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베이비박스가 없었다면 그 아이는 시체로 발견됐을 터. 양수가 묻은 채로, 탯줄이 잘리지 않은 채로, 여러 모습으로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되는 아이들을 보면 이 목사는 눈물부터 쏟아진다. 혹시나 벨 소리를 못 듣고 아이를 방치할 까 싶어 아내와 함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 밤잠 설쳐가며 애를 쓰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비난하는 일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이 목사는 자신이 베이비박스를 만들도록 인도하신 것도, 이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며 마음과 몸을 추스린다. 무엇보다 그에게 허락하신 19명의 자녀를 위해서도 더욱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 아이들의 마음속을 주님께서 통치하셨으면 해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매일 밤마다 기도해요. 제가 아무리 잘해줘도 주님으로 인한 기쁨만은 못할 테니까요.” 근래에는 아이들이 시설로 가기 전에 머물 수 있는 임 보호소를 겸한 무장애건물 건축을 준비 중이다. 장애인들이 아무런 불편함 없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 교회를 세우고 장애인을 위한 어린이집, 치료센터, 재활센터, 카페 같은 사회적 기업은 물론,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대안학교를 만들 계획이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에게 행복을 찾아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니까 주님을 알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졌으면 해요. 저희로서는 어마어마한 건축예산이 채워질까 염려되는 마음도 있지만 기도하면서 이뤄가기 위해 노력하고있어요.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시고 반드시 성취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31살에 예수를 믿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고난을 통해서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음을 고백했다. 그러고 보면 사역의 처음엔 은만이가 있었다. 그는 은만이의 장애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서 그것이 주님의 축복임을 깨달은 것이다. “예수 안의 고난과 밖의 고난은 달라요. 부족한 자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게 하신 것이 가장 감사해요. 제가 주의 복음을 위해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줬으면 해요. 가만히 있지 말고 태어날 생명을 보호하고 가정을 살리는 일에 적극 동참하고 알리는 일에 나섰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는 한국교회에 대한 부탁도 더했다. 버려지는 아이들 부모의 대부분은 10대들. 이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성 문제가 심각해요. 특히 10대의 성 문제는 브레이크 없는 차와도 같아요. 책임감과 의무감이 전혀 없죠. 이런 상황에서 교계가 성교육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성은 결혼할 때까지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며.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면 자신과 하나님 앞에 죄짓는 것임을 10대들에게 분명히 알려야 해요.” 덧붙여 이 목사는 모든 책임이 10대들 탓은 아니라고 했다. 이혼으로 인해 10대들이 대부분 내몰리고 있다며, 이혼을 막기 위한 교육과 상담이 교회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또 하나, 6월 8일에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생명대행진’에 많이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 프로라이프연합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생명존중 의식을 확산시키고 생명사랑의 문화를 이룩하고자 마련된 자리. 이 목사는 많은 크리스천이 참석해 생명의 소중함을 함께 알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또 포털사이트에서 베이비박스의 확산과 합법화를 위한 백만 명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면서, 많은 이들이 서명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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