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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산업 혁명이 퍼지는 사진 입니다. |
산업 혁명(The Industrial Revolution)
산업 혁명이란 용어는 문영사가인 Arnold Joseph Toynbee의 백부인 Arnold Toynbee가 옥스포드 대학의 Bariol Colleage에서 행한 산업 혁명 강의를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그의 이 강의는 {Lectures of Industrial Revolution}란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이 강의에서 그는 산업 혁명이 노동자들의 생활을 악화시켰다고하여 이것을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산업 혁명이란 용어는 토인비 이전인 1860년대에 칼 마르크스가 그의 저서 {자본론}에서 이미 이 용어를 이미 사용하였으며 최근의 연구는 이 용어가 1820년대에 프랑스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산업 혁명은 정치적으로 부르조아 혁명을 이룬 세력이 경제적으로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정치적인 프랑스 혁명 보다 후대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평가되어진다. 그러나, 이 '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이 시기에 일어난 그렇게 혁명이라 부를 만큼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느냐는 논의가 계속되어 혁명을 인정하지 않는 층은 '근대화(Modern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이 용어에 대한 비판과 검토가 가해지고 있다. 그리고, 시기문제에 있어서도 대략 1760년에서 1840년까지로 보고 있으나 학자에 따라서는 이견을 보여 시작 연대에 대해서는 1770년, 1780년 설이 있으며 끝난 시기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들이 있다. 하지만, 어쨌던 시기적으로 80년에 걸쳐서 일어난 일을 혁명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제기된다고 할 수 있다.
산업 혁명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는 1760년대 이래 자본과 기계의 힘에 의하여 종래의 수공업과 공장제 양식이 혼합된 방식인 Manufacture 단계의 생산 양식을 대규모 공장제 생산양식(Factory system)으로 전환시켜 상품을 대량생산하여 산업 뿐만 아니라 인류의 사회 생활 전반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산업상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시기 문제에 대해서는 그 시작 연대로 먼저, 1760년대를 잡는 경우는 이 시기에 많은 작업 기계들이 발명 된 것을 산업 혁명의 원인으로 보고 이때를 시작기로 잡는 것이다. 다음으로 1770년대를 시작 시기로 보는 경우에는 1774년에 '기계 수출 금지령'이 내린 것을 사회내에서 기계의 적용이 이루어진 반증으로 보고 시작기로 보는 주장과 1776년에 아단 스미스의 {국부론}이 저술되어 이것으로 새 시대가 시작한 것으로 보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1780년대에는 많은 기계들이 특허를 얻은 시기로서 이 시기를 시작년대로 보는 주장도 있다. 이 강의에서는 많은 기계들이 발명된 1760년대를 시작기로 본다.
산업 혁명의 종결 시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1840년대로 보고 있는데 '기계 수출 금지령'을 산업 혁명의 시작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1843년에 기계 수출 자유화 조치가 시행된 것을 정확한 산업 혁명의 종결기로 보고 있다. 즉, 이것은 자신들이 기계로써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다는 반증이므로 산업 혁명의 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산업 혁명의 완성으로 상품과 원료의 수송을 위한 철도 시대가 열렸으며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이, 여자 등의 작업 환경의 개선을 위해 '공장법'이 제정되었다.
영국은 세계에서 최초로 산업화가 자생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원인중에 내적 원인으로는 먼저, 자본이 축적되어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즉, 다른 국가보다 먼저 봉건제가 해체되고 독립 자영농(Yeomenry)과 중소 지주계급(Gentry)등이 등장하여 이들이 자수성가 해서 금욕적인 생활을 함에 따라 자본이 축적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 나가서 중상주의에 성공하여 산업 자본이 형성된 것도 자본 축적의 원인으로 들 수 있는데 해외 진출에 대해서는 당시 영국의 상속법상 장자만이 모든 유산을 상속받음에 따라 차자 이하는 독립 생활을 해야 했고 그럼에 따라 그들은 자연히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자본의 축적과 함께 또 들 수 있는 원인으로는 저렴한 노동력이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영국은 18세기 전반부터 급격한 자연적인 인구의 증가가 있었으며 '농업 혁명(Enclosure Movement)'이 발생하여 자본주의적인 농업이 성행함에 따라 많은 농민들이 농토로부터 추방되어 도시의 산업 예비군화 한 것이 저렴한 노동력 존재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외에도 영국에는 철과 석탄 등의 지하 자원이 풍부했다는 주장과 베이컨의 경헙 철학 이래로 실용적인 학문 연구의 경향이 일반화 되어 있었다는 것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영국 산업 혁명의 외적 원인으로는 영국은 식량을 자급하기 어려우므로 자신들의 산물을 수출하고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함에 따라 일찍부터 양모와 백포(염색하지 않은 모직물) 등의 수출 공업이 발달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산업 혁명 직전에는 모직물 대신 면제품이 수출의 주요 품목으로 성장하였는데 이 수출 과정에서 면제품의 원료인 목화는 아열대 식물임으로 면제품을 위한 원료는 다른 나라(이집트, 미국, 인도)에서 수입하여 이것을 가공하여 수출하거나 가공전의 인도 백포(Calico)를 수입하여 이것을 다시 가공하여 수출하였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수출의 수요를 충당하지 못 하므로 원료 구입 대가로 과거에 모직물을 지급하던 것을 노예를지급하는 것으로 바꾸게 된다. 하지만, 노예 무역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 지자 원면을 수입하여 면제품이 수출의 주종이 되었고 원면 생산국인 인도는 파산하게 된다.
이처럼 모직물 위주의 수출에서 면제품 위주의 수출로 전화되는 과정에서 섬유 공업에서 먼저, 산업 혁명이 일어난다. 그리고, 영국은 외국에 상품 시장과 원료의 공급지 구실을 하는 식미니가 많았던 것을 산업 혁명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즉, 원면을 받아 면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면서 영국의 산업 혁명은 시작되는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계의 발명, 동력의 발명, 소재의 발명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면공업 기계의 발명으로는 먼저, 목화에서 실을 뽑는 기계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데, 먼저, 나타난 것은 천을 짜는 기계로서 John Key에 의해서 Flying Shuttle이라 불리는 직포기가 1733년에 발명 된다. 이 기계는 실이 모자랄 정도로 빨리 실을 뽑았다고 하는데 이 기계의 뒤를 이어섬유 기계의 4대 발명 이라 불리는 기계들이 속속 나타난다. 먼저, J.Hargrevs에 의해서 Jenny 방적기가 1764년에 만들어진다. 이것은 다축방적기로서 과거보다 많은 양의 실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위사 즉, 날실을 뽑는 방적기로서 1769년에 R.Arkwright에 의해 경사 즉, 씨실을 뽑는 수력 방적기가 발명되자 직포기가 감당 하지 못 할 정도의 실이 생산된다. 그리고, 1779년에 Samuel과 Crompton에 의해 Mule방적기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경,위사 모두를 뽑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Edmond Cartwright에 의해 1785년에 제임스 와트의 증기 엔진을 이용한 동력 직기가 만들어지자 실과 천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1810년에는 대량 생산이 이루어져 면제품이 제 1위의 수출 상품으로 발달하였고 이것이 세계를 휩쓸게 된다. 그리고, 이것들과 함께 1793년에 미국에서 E.Whitney에 의해 씨를 뽑는 기계인 씨아가 발명 되어 원면에서 씨를 뽑는 작업이 한결 쉬워지게 된다.
이러한 면공업의 발달은 세계 자본주의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데 원면은 비유럽 지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면공업은 그 자체로써 세계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즉, 아메리카와 인디아 이집트가 원면의 생산국으로 영국에서 건너온 이주자들은 미국의 남부에 대규모의 'Cotton Flantation'을 만들었고 이곳에서는 면화의 수확을 위해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이것을 위해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게 되는데 이것은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가 한 경제 범위에 포함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상품으로서의 면제품은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 멀리는 아시아에까지 침투해감에 따라서 면제품이란 상품은 세계를 하나로 묶어 주는데 이것은 세계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성립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관련 산업들도 발달하는데 면공업의 기계화는 기계의 수요를 증대시켜 기계를 만들기 위해 철공업이 발달하는 것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철공업의 발달은 1820년대에 절정을 이루는데 이것은 나폴레옹 전쟁과 또한 연관이 있다. 즉, 1805년에서 1815년 사이에 영국은 무기 제작에 치중하여 철공업이 발달하는데 이것이 전쟁후에도 남아 기계 공업 발달에 기여하였다. 이와 함께 기계르 돌리기 위한 동력, 즉, 당시로는 석탄 산업이 발달하게 된다. 영국은 석탄이 풍부한 나라로서 이미 16세기부터 석탄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18세기에 이르면 채굴이 쉬운 지상의 석탄 즉, 노천석탄광은 이미 고갈상태에 빠지게 되고 점차 지하 채광이 이루어지게 되고 지하 채광 과정에서 지하수에 대처하기 위해 펌프등이 발달하는데 이것은 동력과 운송 수단의 발달로 이어진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발명의 하나로 산업 혁명을 위한 동력으로써 나타났던 증기 기관의 발명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1769년에 J.Watt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는 스코트랜드 출신으로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수학 교재를 만드는 기술자였는데 광산에서 물을 퍼내기 위해 동력을 이용하는 것을 연구하다가 증기 기관을 발명하게 된다. 그리고, 1781년에는 이것을 더욱 개선하여 최초 발명에서 상하 운동하는 피스톤을 회전하도록 만든다. 이로써 값싼 석탄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석탄의 운송을 위해 많은 운하를 파는데 1790년대는 운하의 붐 시대를 맞게 되고 이러한 문제는 철도가 나타나면서 완전히 해결된다. 철도의 등장은 철공업, 증기 기관의 등장과 함께 운수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1776년에는 최초로 레일이 사용되었고 1806년에는 증기 기관차가 최초로 발명되었으며 최초의 철도는 1830년에 공장지대인 맨체스터와 항구인 리버풀을 잇는 노선이었다. 그러나, 최초의 철도는 속도가 무척 느려 기관차와 말이 경주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해상 운송의 부문에서도 1814년에 최초의증기선이 등장하였다.
그래서, 1840년대에는 산업 혁명이 일단 완성되는데 증기 기관이라는 동력을 이용하여 동력 직기, 수력 방적기라는 작업 기계에 의해 작업이 이루어지고 기계에 의한 기계의 제작도 이루어지게 된다. 이로써, 빅토리아 여왕 정성기의 영국은 'Workshop of The World'라 불리게 된다.
#Modernization이란 용어는 근대화란 의미로 번역이 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부르 조아 혁명에 대응하는 용어로써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사용된다.
#Industrialization은 산업화의 의미로 산업 혁명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에 대신하는 말로써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 하기도 한다.
출처 : http://rose0.kyungpook.ac.kr/~z971554/archiv/modern/intro.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