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일찍 끝나고 그냥 집으로 가자니 아이들의 조그만 집에서는 벌건 대낮인 이제부터 TV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어서 지하철 약도를 봐가면서 인사동으로 가기로 한다.
올해는 유난히 교육이 많아서 올해 봄부터 서울을 몇차례나 올라 다니니 이제 웬만한 데는 지하철 약도를 봐가면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 집이 서울에 있으니 이렇게 편안하게 서울 교육을 다닐 수가 있지 아이들이 없으면 엄두도 못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넓다란 집에서 승용차로 우아하게 출근하다가 13평 쪼끄만 집에서 나와서 복닥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지하철을 노선을 봐가면서 신경써서 찾아 다니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아이들이 집에 내려와서 넓은 거실에서 평퍼짐하게 늘어 놓고 지내는 것을 처음엔 이해 못해서 잔소리 했는데 이제는 이해를 하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고향 집에서라도 편안하게 지내라는 마음이 든다.
몇번 와본 인사동은 이제 낯이 익어서 어디로 가면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에 왔던 것과는 다르게 크게 신기할 것이 없어졌다. 생활한복 할인점을 가보지만 지난 번 과는 다르게 둘러만 보고 사지는 않는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옷이 좋아보여 많이 샀는데 막상 집에 가서 입으려 하니 크게 쓰일 일이 없었다. 휘휘 휘감을 정도의 원피스드레스는 인사동에서나 멋있지 시골에서 입고 나가기엔 너무 전위적이고, 출근할 때 입을 수도 없고 동네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도 아니었다. 그냥 장롱에다 넣고 한번도 안입고 여름을 지나간 옷도 있다. 그러니 이번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혼자서 식당에 들어 갈 수도 없어서 큰애한테 전화를 하니 자기 퇴근 할 시간에 맞추어 시청역으로 오라고 한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서 천천히 걸어서 안국역이 아닌 종각역으로 가자고 한 것이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걸어도 지하철 역이 나오지 않는다. 서울 오느라고 구두를 편하게 단화를 신어서 망정이지 멋있는 하이힐을 신었으면 벌써 다리를 절뚝 거렸을 것이다. 언젠가 한번 들렸던 중앙일보도 지나고 한참 더 걸으니 동십자각이 나오고 건너편에 세종회관이 보인다. 아! 여기가 대한민국의 심장부이구나? 전경 닭장차가 보여 전경에게 전철역을 물으니 이 아래로 그냥 내려 가라고 하지만 역이름은 모르겠단다. 군대를 와서 전경이 되어 저렇게 데모대나 진압하러 다니는 젊은이들이 안스러웠다.
겨우 전철역을 찾아 지하철 약도를 찾아보니 엉뚱하게도 광화문역이었다. 아이와 통화하고 시청역 8번홈으로 나가서 한참을 기다리니 아이가 나왔다. 저기 보이는 국민은행 서소문동 지점 4층에 저희 회사 간판이 있다고 가리킨다. 아이와 건너편에 있는 베트남 쌀국수집에 들어간다. 아이는 맛있다고 하지만 나는 김치만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람들 식성에 맞춰 김치 한 접시 주면 좋으련만 어디에도 김치는 없어서 서운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아이는 제 산책코스를 가자고 한다.
"엄마, 저기가 그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이야"
덕수궁 돌담길은 우리에게 막연한 향수같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어릴 때 시골 여학생들은 덕수궁 돌담길옆 노란 은행나무길을 남자친구와 함께 걷는 낭만적인 꿈을 한번쯤은 꾸어보았을 것이다. 가을 밤에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딸애와 함게 걷는 것도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딸애가 크니 평소에 아이와 말을 할 새가 없고 아이와 생각이 틀리니 가끔 얘기 한다고 해도 언쟁을 하기 일수였다. 작은 애와 달리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좀 잘하고 욕심도 많고 자기 할일은 확실하게 해서 믿음직하고 어려움이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아이와 말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대학때까지 모든 것이 자기 생각대로 잘 되어 세상을 자신만만하게 살았는데 얼마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부터 영 인생에 대해 회의가 드는가보다.
생각해보면 나는 컴플렉스가 많았다. 넉넉치못한 가정에 좋은 집안도 아닌 이북에서 홀로 피난오셔서 끗발있는 친척도 없고, 장애가 있는 언니가 있고 좋은 대학도 아닌 전문대학을 나왔고,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컴플렉스를 주지 않으려고 많이 애썼다. 가끔 세상 고민이 다 제것인 것처럼 한숨짓는 아이한테 말하곤 한다.
'네가 뭐가 부족하니? 집이 가난하니? 부모가 부족하니? 대학을 못나왔니? 네가 부족한게 하나도 없는데 왜 그리 편하게, 자신있게 살지 못하니?"
그럴 때마다 아이는
' 엄마는 몰라, 엄마랑 세대가 틀려" 하고 톡쏘아 버리곤해서 나를 아프게 했다.
아이는 모처럼 엄마와 둘이 걸으니 좋은 듯 여러가지 말을 한다.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가슴이 아팠다는 이야기, 회사 일이 어렵다는 이야기, 그동안은 열심히 살아왔고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등 그 나이의 젊은애들이 할만한 그런 고민들을 얘기한다. 그러고보니 나도 그런 고민들을 한 것 같다. 더군다나 나는 컴플렉스도 많았다. 대학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을 했는데 막상 취직도 만만치 않았고,공부잘 하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어려가지 조건가운데 하나일 뿐이어서 얼마나 막막했는지 모른다. 아이도 지금 그런 막막한 광야에 홀로 있는 그런 느낌일까?
아이와 같이 걷다보니 시청앞 광장에 이르렀다.
'여기가 월드컵때 모여서 응원하는 그 유명한 광장이니?"
아이가 그렇다고 머리를 끄떡이며 자기들은 그때되면 사람에 치어서 회사에서 퇴근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시청앞 잔다광장에 연인듯한 사람들이 같이 걷기도 하고 앉아서 얘기도 하는 것이 보기 좋다.
"첫사랑의 기억도 없다면 얼마나 사는 것이 삭막하겠니?'
" 엄마도 첫사랑이 있었어?"
" 그럼, 엄마도 첫사랑이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참 아름다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
글쎄 내 첫사랑이 누구인지..........천안에 사는 A일 것도 같고, 미국으로 이민갔다는 O일것도 같다.
"그때는 참 가슴이 아팠는데 지금은 기억만으로도 아름다워, 소중한 추억이고, 내게도 불같이 사랑하던 그런 젊은 때가 있었다는 이야기쟎니?"
아이는 머리를 끄덕인다.
바로 앞에 플라자 호텔이 보인다.
" 엄마랑 아빠랑 저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단다"
결혼식을 하고 서울에 와서 다음날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플라자 호텔에서 잔 것이다. 아이는 신기한 듯이 다시 플라자 호텔을 올려다본다. 앞으로 아이는 플라자 호텔을 볼때마다 부모의 신혼여행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아이는 아빠와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딸은 아빠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아들은 엄마와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우리 아이들도 아빠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아이와 많은 애기를 했다. 세상은 긴 여행길을 가는 것과 같단다. 먼 길을 가다보면 세찬 비바람을 맞을 때도 있고, 힘든 고갯길을 올라 가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아주 경치좋은 물가에 정자에서 편안하게 쉴 때도 있고, 또한 배고플때 착한 사람을 만나서 밥을 얻어 먹을 때도 있고, 반면에 흉악한 도적을 만나서 횡액을 당할 때도 있다. 살아보니 인생은 그냥 사는거더구나, 그냥 나에게 주어진 길을 뚜벅뚜벅 겸손하게 기도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더구나.........
아이와 손을 맞잡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올려다본 가을 밤 하늘엔 그믐달이 가늘은 실눈에 웃음을 가득히 담고 웃고 있었다.
첫댓글 너무 행복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