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호(1893~1890) & 밀레(1814~1875), 밀레보다 40년 연하인 고호의 진정한 스승은 밀레였다.
20대 후반부터 밀레의 오염되지 않은 작품에 녹아들었고 때묻지 않고 경건한 농부들의 모습이 좋아서 농부를
눈치보지 않고 주저없이 그린다.
네덜란드에서 잊은 적이 없던 노동의 신성함을 밀레의 화풍을 빌어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호는 밀레를 따라 그리지 않는다.
고호의 그림으로 들어가면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
고호의 정오의 휴식은 선배 밀레의 정오의 쉼과 닮은꼴이면서도 사뭇 다르다.
나 역시 어릴적 논밭에서 일하면서 볏단 보릿단에 누워 쉬곤 했던 기억이 있다.
벼의 몸체와 내 살의 신체가 닿으면서 달콤한 휴식을 가졌던 그 때
정오의 해는 내 몸에 닿았고 햇살에 익은 내 살은 검붉은 색을 띄었다.
햇살을 머금은 세월의 흔적
그 세월 속에 농부는 아버지였고 어머니셨다.
벼의 노오란 낱알을 보시며 환한 웃음짓던 아버지
힘듬이나 고단함의 흔적은 두터운 손과 밭이랑 같이 굵은 이마의 주름살 밖에 드러나지 않으셨다.
전설의 훈장을 찬 듯한 그분의 환한 얼굴이 밀밭 정오의 휴식에 깃든 밀레와 고호의 그림에 스며있다.
밀레와 고호는 별로 알아주지 않고 사회적 대접을 받지 못한 농부들을 화면의 중심에 놓고 설파한다.
추수 기간에는 농부의 하루 일과가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계속될 수 있었으며, 식사 시간과 한낮의 태양을 피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건초 더미 그늘에 누워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밀단이 그들의 포즈를 비추고, 낫 한 쌍, 밀단 한 쌍, 추수 후 넓은 터에 원통형으로 쌓아두는 곡식단 한 쌍 , 신발 한 쌍, 멀리 있는 소 한쌍은 모두 한가족, 함께 먹고 나누고 일하는 동료애라는 주제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