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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신년휘호
휘호 小石 심현삼. 휘호를 쓴 심현삼 전 동덕여대 교수는 서울대 회화과 출신으로 이후 Brooklyn Museum of Art(뉴욕) 등에서 수학했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 운영위원(89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98년)을 역임했다. 서양화가로 출발했지만 서예에도 조예가 깊어 최근에는 『사자성어 100선』을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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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희망의 사자성어 ‘和而不同’] 다름을 인정하는 調和
조화는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孔子는 『論語』 「子路」편에서, “君子는 和而不同하고 小人은 同而不和하다”라고 했다. 곧 군자들의 사귐은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만 그렇다고 義理를 굽혀서까지 모든 견해에 ‘같게 되기’를 구하지는 않는 데 반해, 소인배들의 사귐은 利害가 같다면 의리를 굽혀서까지 ‘같게 되기’를 구하지만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는 못하다고 한 것이다. ‘和’의 논리와 ‘同’의 논리를 군자와 소인의 사귐에 빗대어서 잘 드러낸 말이다.
송나라 유학자인 朱熹는 『論語集註』에서, ‘和’를 ‘어그러지고 비뚤어진 마음이 없는 것(無乖戾之心)’으로, 그리고 ‘同’을 ‘아첨하고 비교하는 뜻이 있는 것(有阿比之意)’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실학자 丁若鏞은 『論語古今註』에서, 『左傳』「昭公二十年」조에 나오는 晏子의 말을 인용해 이 ‘和’와 ‘同’의 의미를 풀이했다. 『左傳』에 보이는 안자의 말은 이런 내용이다. 국에 비유하면, ‘和’는 물과 불 및 각종 음식 재료와 조미료가 적당하게 어우러져 맛을 내는 것이라면, ‘同’은 물에다 물을 타듯이 똑같은 재료들만으로 국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음악에 비유하면, ‘和’는 서로 다른 여러 음률이 화음을 이루는 것이라면, ‘同’은 단 하나의 음률만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이 안자의 생각을 다시 풀이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곧 ‘和’가 ‘다른 것들의 조화’라면, ‘同’은 ‘다름이 없는 같음’이라는 말이다. 주희의 풀이가 ‘和’와 ‘同’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잘 보여준다면, 정약용이 인정한 안자의 풀이는 ‘和’와 ‘同’에 대한 논리적인 근원적 통찰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和’의 논리는 여럿의 다양성을 인정해 그 여럿의 ‘어울리기’, 곧 自他의 공존을 강조한다. 반면에 ‘同’의 논리는 여럿의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 그 여럿의 ‘같게 되기’, 곧 他者의 自己化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和’의 논리와 ‘同’의 논리가 행복하게 결합된 ‘和而同’하고 ‘同而和’하는 경우는 어떤가. 이러한 경우는 있을 수도 없지만, 이러한 주장은 기실 ‘同’의 논리의 치장이기 쉽다.
지난해는 참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不和가 많은 한 해였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소중한 것이 ‘다름을 인정하는 조화’가 아닌가 한다. 정치의 경우, 정치는 모름지기 플러스(덧셈) 정치를 해야지 마이너스(뺄셈) 정치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강자와 약자, 사회적 강자와 약자에게 뿐만 아니라 남북문제에도 두루 해당되는 일이기도 하다.
윤재민 고려대·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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