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윤득홍(尹得洪)이 졸(卒)하였다.
득홍은 본관이 무안(務安)인데, 해변 고을에서 생장하여 배를 부리기에 익숙했다. 기해년에 왜적이 충청도에 와서 도적질하고, 또 황해도에도 침범하였는데, 그때에 경기 수군 첨절제사(京畿水軍僉節制使)가 되어 쫓아 잡기에 기회를 잃었으므로, 체복사(體覆使)가 군법(軍法)으로 논죄하려 하매, 득홍이 청하기를, ‘다시 한 번 적을 쫓아 미치지 못할 때에는 죽음을 받겠다.’고 한즉, 체복사가 그를 허락한지라, 득홍이 쫓아와 맞붙어 싸워서 10여 명을 죽이고 배 한 척도 잡았는데, 이로 인하여 술과 안팎 옷감과 안장 갖춘 말을 하사하고 곧 우군 첨총제(右軍僉摠制)를 시켰으며, 이듬해에 동지총제(同知摠制)로 올렸고, 계묘년에 전라도 처치사(全羅道處置使)로 나가서 왜적을 잡는데, 옷과 술이며 안장 갖춘 말을 하사하고, 여러 번 승진되어 중추원 사가 되었다가 동지(同知)로 되었는데, 항상 여러 도의 병선(兵船) 및 조운(漕運)의 일을 관장하였다
. 향년 77이며, 시호(諡號)는 양정(襄靖)이니, 일로 인하여 공이 있음이 양(襄)이요, 관후하고 안락하여 곱게 죽음이 정(靖)이다. 아들 윤건관(尹建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