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를 먹는 방법 / 김혜옥

[황봉학]

소라를 먹는 방법

김혜옥



그녀는 아홉 구멍 속의 민들레
그녀의 몸은 변명이고, 권태고, 시한폭탄이다
겹겹의 홀씨들, 이끼 낀 뇌관
출구는 점점 좁아지고 바람은 자꾸 재촉한다

왜 씨앗을 터트리지 않나요?

누군가 기진한 꽃 한 송이 꺼내려 안간힘을 쓴다
잘 봐, 소라는 껍데기를 깨고 먹는 게 아니라네
그가 날카로운 상징 하나를 구멍 속에 밀어 넣는다
단단한 문장의 껍질 속, 부드러운 은유 한 덩어리
이쑤시개 끝에 붙들려 시 한 편이 송두리째 빠져나왔다

(언어를 붙잡아라, 주제가 따라올 것이다*)

그녀가 마침내 후― 하고 숨을 내쉰다
문장들이 가볍게 허공에 흩어진다
은유가 소리 없이 삶 속으로 파고든다



* 움베르토 에코, 『나는 장미의 이름을 이렇게 썼다』중에서




―《문학사상》2005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