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협동조합
3~4년 전부터 중고등학생들 수학을 가르치면서 교육협동조합을 구상해 왔다. 그러던 중 올 초 금천구에서 일하는 지역활동가들과 뜻을 모아 지난 4월 초 나눔학원을 개원했다. 작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었지만 아직은 시행령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은 학원으로 등록을 하되 올 12월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에 맞춰 교육협동조합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그렇다면 교육협동조합이란 무엇일까? 한국에 법적으로 승인된 교육협동조합은 없다. 협동조합을 추진하면서 관계기관에 문의했지만 하지 말라는 쓴소리만 들었다. 따라서 참고할만한 사례가 많지 않다. 아래에서는 그동안 나눔학원을 준비.운영하면서 느꼈던 점을 중심으로 시론적인 차원에서 제시해 보겠다.
첫째는 교육적 측면으로, 지식정보화 사회에 맞는 양질의 맞춤형 교육과 지역밀착형 대면교육을 지향했으면 한다.
사회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 시스템이나 사교육 시장은 여전히 적지 않은 학생들을 한 공간에 밀어 넣고 교사가 다중의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표준형 공부를 시킨다. 여기에 입시경쟁까지 결합되어 학교 교육이나 사교육 시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금천구를 예로 들면 유능한 학생들은 외부로 유출되고 중위권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본인에게 필요한 1:1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금천구의 교육 현실은 전국적인 차원에서도 열악한 형편이지만 다른 지역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을 것은 없다. 엄청난 자원을 쏟아 붓고 있지만 구멍 뚫린 바가지처럼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교육으로 아까운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나눔학원은 지난 2개월 동안 1:1 교육을 지향했다. 연산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사고력 위주의 수학을 진행했다. 나눔학원에서는 초중등학생들에게 수능이나 고3 모의고사 문제 중 경우의수나 수열과 같이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이 생각하는 힘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를 풀게 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차분히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환경만 조성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 수준의 경우의수나 수열 등의 문제를 푼다. 이것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요즘 세대가 기성세대에 비해 똑똑하고 어려서부터 많은 것을 보고 자랐다. 또한 수능 문제 중 일부는 특별한 기술보다는 사고력을 중시하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수능이나 고등교육이 변화하는 속도에 비해 학교현장이나 사교육 시장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지난 5월 중간고사가 끝나고 30명 정도의 학생들을 면담해 보았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을 재미있어 했고 학원을 편하게 생각했다. 바로 바로 물어 볼 수 있는 교사가 있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수학실력 향상이나 학생들의 반응에 비해 학교 성적이 많이 오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사고력 위주의 수업을 유지해 줄 것을 희망했다. 학원을 개원한 지 두달 정도밖에 안된 점을 고려하면 당장의 학교 성적에 미친 영향은 적어도 근원적인 수학적 잠재력이라는 관점에서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양질의 강사가 1;1 맞춤형 교육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학교나 사교육시장은 너무 인원이 많거나 영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1:1 교육을 제공하기 어렵다. 실제로 학원을 운영해 보니 1:1를 교육을 하면서 수익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인터넷이나 화상 강의 등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경험해 보면 인터넷 강의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천차만별의 학업 수준에 맞는 신속한 대응, 정서적 소통 문제, 집.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는 편안한 공부 공간의 필요성 등이 그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교육의 질과 함께 지역 밀착형 대면교육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1:1 수업은 현실 불가능한 모델인가? 필자는 다음의 몇가지 측면에서 1:1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2000년대 초반 극심한 저출산으로 학생수는 급격히 줄고 있다. ‘2012∼2020년 중장기 교원수급 전망 세미나’에 따르면 초등학생은 2011년 312만명에서 2012년 293만명으로 떨어지고 2013년 286만명, 2015년 279만, 2017년 278만명으로 줄어든 후 2020년에는 259만명으로 2011년에 비해 16.9%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381만명인 중고생도 2013년 359만명, 2015년 324만명, 2007년 290만여명으로 줄어들다가 2020년에는 264만4천여명으로 2011년보다 무려 30% 감소할것으로 내다 봤다.
학생 숫자와 함께 진학률도 줄어 들 것이다. 개인과외나 학원경험을 종합해 볼 때 대학진학 열풍이 이전 같지 않다.
반면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고학력자들의 숫자는 급속히 늘어난다. 0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상용직 베이비 붐 세대 189만명 중 공공행정 10.2%, 교육서비스 12.1%에 달한다. 대략 42만명 정도의 대졸자들이 향후 10년간 순차적으로 퇴직한다는 의미이다. 09년 교육통계 분석자료집에 따르면 08년 4년제 대학 졸업생 중 약 10% 정도가 학원강사로 취업하여 대졸자들의 취업 분야 중 사교육 시장이 1위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지식정보화 사회에 걸맞는 1:1 맞춤형 교육을 위한 인적 자원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 시스템이다.
1:1 맞춤형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시스템의 설계는 향후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향후 한국경제는 장기 저성장체제로 이동할 것이다. 한국경제가 장기 저성장체제로 이동한다면 그 동안 고성장 버블 국면에서 과도하게 팽창하던 여러 분야들이 공공적 또는 협동적 방식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주택.교육.의료 등의 분야가 대표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0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40대의 월 가처분 소득은 310만원으로 여타 세대에 비해 높다. 반면 흑자율은 18.5%로 가장 낮다. 가처분 소득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흑자율이 가장 낮은 이유는 소비의 21%를 차지하는 교육비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 분야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격리시켜 공공적.협동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분야는 주택.교육.의료.금융.농산물 등이다. 이 중 주택은 1인 가구 급증에 따른 공공임대주택의 활성화가 대안일 것이다. 농산물과 관련된 기존의 협동조합은 공공급식의 확대, 농산물 가격의 구조적인 상승기를 맞아 도시농업 등과 연계하여 새로운 차원에서 발전할 수 있다. 각종 의료 생협 또한 발전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경우 사채 시장에 의한 무제한적인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필자는 장기 저성장체제에 맞는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재편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는 커다란 맥락안에서 교육협동조합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가장 선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회구조적인 개혁이다. 재벌.특권층 위주의 경제구조를 청산하고 새로운 경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힘을 조직하여 이를 통해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필자는 정치적 힘을 조직하여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작업과 함께 재벌.특권층에 의한 무자비한 시장 약탈을 완충하는 밑으로부터의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협동조합이다. 진보적인 역량이 과도하게 상층 또는 특정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협동조합 운동은 더 많은 관심과 역량이 투여되어야 한다.
사교육 시장에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사교육 시장에서 돈을 벌어 이를 다른 곳에 쓰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정말 중요한 곳은 일선 교육현장이다.
필자는 지난 2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나눔학원을 지켰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과 학부형들을 만났다. 그리고 양질의 교육, 정서적인 소통에 목말라 있는 학생들과 학부형들을 만났다. 도대체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싶게 사람들의 요구와 관심이 높았다. 내가 수학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육현장이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학문을 탐구하는 요람이 되고 수학을 둘러 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서비스와 서비스를 주고 받는 상거래가 아니라 정서적 교감과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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