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순 동지의 의문사에 대한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합니다!"
박태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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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번호 : 박04-4
수신 :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참조 :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 사무국장, 특별조사과장
발신 : 박태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날짜 : 2001. 5. 15
제목 :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보내는 공개질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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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문사 진실 규명을 위한 귀 위원회의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2. 본 대책위에서는 귀 위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박태순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에 있어 진정요지와 진정의 근본취지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우려점이 나타나고 있기에 다음 사항을 질의하오니 오는 5월 19일까지 이에 대한 공식 답변을 바랍니다.
하나. 사인과 관련하여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놓고 나머지 의문점들은 이 결론에 부합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확인할 수 없음을 이유로 결론을 내려는 것은 아닌가
둘. 대책위에서 제기하고 있는 의문점들에 대한 추가조사는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 반영할 의지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권한이 없는 것인가?
셋. 현재 진상규명위의 조사성과가 고착상태에 있기 때문에 본 박태순 사건을 진상규명위의 활동 결과를 내놓기 위한 생각으로 조기종결에 포함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 위 질의를 하기까지의 주요 판단 근거 -
*기관사의 진술이 세차례나 번복되었으나 자의적으로 자신의 귀책사유를 면하려는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만이 진실인양 채택되는 이유는?
*수영기계에서의 회식과 관련하여 여러사람의 진술을 받았지만(아버님의 진술포함) 가장 구체적으로 기억한다는 이유로 김기환의 진술만 채택되는 이유는?(김기환의 진술이
사고사로 연관짓기에 가장수월한 이유는 아닌가)
10년전의 정황을 자세하게 기억하는 것이 (그것도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차라리 더 부정확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위원회에서는 시대적 상황을 예로 들어 조직사건의 조작 및 기관에서의 지속적인 추적의 개연성이 작다고 하는데, 백철우, 이창연 등의 사례와 가야전기, 필립기계 취업시 상황, 박태순이 참여했던 수원 노동운동조직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찰등을 보면 기무사나 기타 기관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기무사나 기타 기관의 개입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가?
또한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기관에서의 추적과 미행에 의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타살을 은폐하려는 것은 노태우 정권의 속성상 당연하다고 판단되며 그로인한 소지품의 유기를 음주에 의한 망실로만 조사하는 이유는?
3. 본 대책위는 그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견결한 진실규명의지를 추호도 의심한 바
없으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진상규명활동을 도와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4. 그러나 귀 위원회가 6개월 조사기간이 만료되기도 전에, 민간대책위에서 제기하는 다양한 의문점에 대한 확인작업 조차 없이, 서둘러 조사종결 하거나 진정의 취지에 배치되는 소극적인 조사에 그친다면 이는 이땅의 민주화와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박태순을 두 번 죽이는 행위이며, 다른 의문사 진상규명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될 것을 우려하며, 우리 박태순대책위원회로서는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5. 다시 한번 귀 위원회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첨부 : 1. 대책위가 제기하는 박태순 의문사와 관련한 의문점 및 조사요구사항 1부
2. 서명인 명부1부. 끝.
"박태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위원장 이해학
"박태순 동지의 의문점은 반드시 풀려야 합니다!"
첨부 1.
대책위가 제기하는 박태순 의문사와 관련한 의문점 및 조사요구사항
1. 당시 박태순 및 박태순이 속해있던 조직에 대한 기무사 및 기타 기관의 사찰 사실과 사찰 담당자와 책임자를 찾아내 조사하고, 박태순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전과정을 밝혀라.
1). '92년 6월 가야전기 근무 당시 두 번에 걸쳐 기관에서 나온 사람이 박태순을 찾았는데, 이것은 기무사(혹은 안기부, 경찰 등)에서 박태순을 추적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들이 누군지, 사찰의 내용과 사찰상황을 조사해야 한다.
2). 참고인 하태영의 진술에 의하면 '92년 8월15일 박태순과의 약속에서 박태순이 늦게 온 이유를 물었을 때 "미행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을 따돌리느라 2시간 걸렸다!"고 했고, 그 자리에 있었던 윤보승외 1명의 친구도 들었다는데, 미행한 이들은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박태순을 미행했는가?
3). '92년 3월쯤 박태순이 평동소재의 필립기계(선반기술을 배우기 위해 다님)에서 근무할 당시에도 다닌 지 얼마 안돼 박태순을 찾는 사람이 있어서 주위의 동료들과 위험성을 염려해 직장을 그만두게 하였는데 그들은 누구며, 왜 사찰을 했는가?
4). 친구 이창연이 방위병 근무 당시 중대장이 "네 친구 한명이 잡혔다더라"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으며, 또한 이창연이 제대후에도 중대장을 만나 이 사실을 확인한 결과 기무사 반장이라고 진술했다고 하는데, 여기의 기무사 반장은 누구이며, 잡혔다는 친구 한명은 누구인가?
5). 친구 이창연이 방위병 근무 당시 내무반에 있던 이창연의 소지품을 기무사요원이 수시로 뒤졌으며, 이것은 당시 행정병을 통해서 알 수가 있고, 또한 소지품 속 명함의 사람에게 연락을 해 이창연과는 어떤관계인가를 물었다고 했는데, 이들은 누구이며, 사찰상황을 밝혀야 한다.
6). '91년도 8월 경에 박태순이 속해 있던 조직에서 안성 소재의 고삼저수지에 M.T를 갔을 때, 경찰 복장을 한 사람이 와서 이곳에서 도둑이 들어 조사한다면서 M.T 참가자들의 주소.이름 들을 적어 갔고, 당시 신원진술시 백철우는 후배 이동윤의 인적사항을 말했는데, 9-10월경 실제의 이동윤에게 신원을 확인하는 전화가 온 후, 그해 11월에 후배 백철우가 기무사에 의해 연행되었고, 또한 이것을 계기로 동료 정훈록이 근무하던 금호전기에서 신원이 밝혀 졌는데, 이들은 누구이며, 이것은 박태순이 속해 있던 조직이 계속해서 감시를 받았다는 것으로 조직사찰의 내용을 밝혀야 한다.
7). 후배 백철우가 '92년 11월 기무사요원에 의해 잡혔을 때 박태순에 대해 물었는데, 이들은 누구이며, 이것은 기무사에 의한 분명한 민간인 사찰로서 사찰사실과 내용을 밝혀야 한다.
8). 당시 후배 백철우와 박태순은 거의 동일한 상황이었는데, 후배 백철우가 기무사에 의해서 연행 된 것으로 볼 때 조직활동 및 노동운동 활동이 훨씬 많았던 선배인 박태순에 대한 사찰 및 연행계획을 밝혀야 한다.
9) 선배 조직원이었던 유덕화의 진술에 의하면 '92년 봄 국회의원 선거 당시 소재지의 동사무소에서 유덕화의 주민등록사진을 떼어 갔으며, 이후 수원남부경찰서의 문형사를 만나 사진의 소재를 물었을 때, 자신들이 떼간 것이 아니고 아마도 김낙중 사건과 관련하여 수사를 하고있던 안기부에서 조사차 떼간 것 같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이 당시 박태순에 대한 사찰상황을 조사해야 한다. 또한 선배 유덕화의 주민등록 사진을 떼어간 이들은 누구이고, 무엇 때문인지 조사해야 한다.
2. 박태순의 평상시 행동하는 동선과 관련한 의문점을 밝혀야 한다.
1) 사고가 일어난 시흥역은 박태순이 평상시 행동하는 동선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는데 이때 미행 및 추적상황을 밝혀야 한다.
2) 박태순이 평상시 하차하던 석수역에서 박태순이 내리기 위해서는 서울행 수원발 열차가 진행하는 방향의 앞쪽에서 하차해야지 갈 수가 있다. 하지만 박태순이 사망한 시흥역의 위치는 정반대이고, 더구나 역 플랫폼에서도 훨신 떨어진 곳에서 사망하였는데 이것은 아무리 박태순이 술이 만취되었다 하더라도 이해 할 수 가 없는 부분이다. 이것은 박태순의 사망에 기관에서 개입되었다는 정황증거가 아닌가?
3) 박태순이 환승하는 구로역의 경우 수원행을 타기위해서 내려오는 곳이 앞쪽에 위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박태순이 만취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박태순이 내려야 할 방향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갔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 할 수가 없다.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4) 시흥역 관계자에게 만취자의 행위에 대해서 물었을 때, 시흥역 관계자는 만취자가 내려서 구토할 경우는 여러 가지로 있는데, 가운데 쯤에 내린 경우는 바로 앞쪽의 난간에서 구토를 하거나 내린 자리에서 바로하며, 맨끝쪽에서 내린 사람의 경우도 플랫폼 끝에서 구토를 하지 플랫폼 바깥까지 가서 구토를 하는 경우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박태순의 사망과 관련해 제3의 인물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3. 시흥역 상황과 관련한 의문점
1) 10일과 11일에 있었던 열차사고 재연을 통해 기관사가 야간에 200m 전방의 사람을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고 직전에야 사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가 있었다. 이것은 열차사고의 보고서 자체가 신빙성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기관사 진술에 의하면 -기관사가 사고가 난 직후(92.8.29. 21시55분) 당시 시흥역 부역장인 금원섭에게 사고 원인은 사고 당사자가 갑자기 무단횡단하여 사고가 났다고 진술하였고 사고 지점도 17.1km라고 진술하였음(시흥역 사고 기록 보고서)
- 그러나 92.9.3 기관사가 작성한 철도청 자체 보고서에는 사고 지점이 17.2km(고상홈 바로 및 일반홈 끝부분)이고 사고 당사자가 술이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고 번복됨
- 그리고 경찰/검찰진술에서는 사고 지점이 17.1km이고 사고 당사자가 갑자기 뛰어들었다고 진술함
또한 술이 만취해 사고가 났으면 시흥역 관계자, 경찰, 검안의 등을 통하여 술을 먹고 사고가 났을거라는 진술이나 보고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점은 전혀 없는 상황임. 따라서 기관사의 진술은 믿을 수가 없고 철도청 자체 보고서는 기관사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쓰는 철도사고 보고서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판단되며, 오히려 최초에 기관사가 부역자어인 금원섭과 경찰/검찰에서 한 진술에 신빙성을 두어야 할 것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2) 시흥역에 보관되어 있는 열차사고 보고서들 또한 한결같이 사고 열차가 200m 전방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600m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열차사고를 처리하는 기관사와 역무원들의 의례적인 사고처리 행태가 아닌가?
3) 열차사고 재연실험을 통해서 기관사는 사고당시 박태순외의 다른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이것은 당시 박태순이 기관원에 쫒기고 있을 경우에도 기관사는 그들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4) 시흥역의 상황을 보면 기관원들이 숨거나, 도망을 가더라도 알 수 없는 곳이 너무나 많은데(사고지점 바로옆의 안내판, 북동쪽 30m 정도의 철문, 당시 주변에 있던 나무 등) 이것은 박태순이 당시 쫒기거나, 타살의 경우 가장 은폐하기 좋은 장소는 아닌가?
5) 사고현장에 출동한 사복 형사에 대한 의문점
시흥역 보관 사고보고서에는 사고후 시흥역에서 시흥파출소에 22:05분에 신고 후 22:15분에 경찰 및 형사2명이 도착했다고 되어있음. 그러나 남부경찰서 보고서에는 사고 접수 시간이 22:20분으로 되어있음. 따라서 남부서 형사보다 먼저 온 2명의 형사는 누구이며 어디소속인지 명확히 확인되어야함.
6) 박태순의 소지품(안경, 집 열쇠, 캐쉬카드, 가방 등)의 행방은?
7) '92년 의문사 중의 하나인 문승필의 경우에서도 열차사고에 의한 두부파열이고, 또한 소지품이 전혀 발견되지 안았고, 신원조회에서도 똑같이 불발되었으며, 17일만에 쪽지가 나와서 겨우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느데 이것은 기관의 개입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4. 변사자의 상태에 대한 의혹
1) 열차 사고 후 시신이 튕겨져 나가는 것은 일반적인 사실인데, 박태순의 경우 바로 철로옆에 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SBS방송국에서 실험한 결과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결과이며 철도청 근무자들도 철도 사고 유형에서는 볼 수 없는 경우라고 한다.
2) 팔부분에 있는 멍자국으로 보이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 때문인가?
3) 사진속에 있는 시계의 행방은?
4) 사고현장 사진에 의하면 선로옆 콘크리트 바닥에 혈흔이 있는데 시신의 최초 발견장소에서 떨어진 장소에 혈흔이 자욱하게 고여 있는 이유?
따라서 시신의 위치와 사진속에 있는 팔에 있는 멍 자국을 놓고 볼 때 박태순은 기관원들에게 잡혀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수갑이 채워진채 도망하다 철로변에 넘어져 머리를 다치고 기차의 충격에 의해 시신이 앞쪽으로 굴러 갔으며 사고직후 쫓아왔던 기관원들이 소지품 및 수갑을 가지고 사라졌을 가능성이 농후함.
5. 지문조회에 대한 의혹
-지문조회 담당자인 이영옥은 실수라고 하나, 실수라고 인정하기에는 지문이 너무나 선명하였고 지문 가치번호가 다 확인된 상태, 그리고 전과기록이 있는 박태순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고의성이 농후함.
박태순의 전과지문을 일지 지문만 찍었다고 하나 일지지문만 찍었어도 전과자 지문엔 지문가치번호가 다 올라가 있어 전과자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사항임.(조사위원회 박 조사관도 일지 지문만 찍었어도 지문가치번호가 다 기록된다고 하였음)
6. '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공안정국의 초입에 발생한 실종사건으로 의문사의 전형적인 사례인 열차사고로 위장된 공권력에 의한 사망사건이 아닌가?
첨부 2.
박태순 의문사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서명
우리는 고 박태순 동지의 의문사에 대한 진실이 조속히 밝혀지기를 기대하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최 선봉에 서서 그 역할을 수행하여 줄 것을 간절히 촉구합니다
2001. 5. 15
서명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