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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음모는 메이지유신부터이지만 봉건시대에서 시작한 공작과 음모는 반복되되었고 그 기술은 타의 추종을
넘어선다 국가가 근대화되면서 몇가지 규칙이 있다
일정한 패턴 버릇은 다음과 같다 역사를 반영하기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0000년 0월 0일에 일어난 사건이 일어난다면
동일한 다음년 0000년 0월0일에 사건이 일어나고 세계언론이나 일본국내의 머리속 기억에서 희석되어버린다
일본의 불편한사건이 일어난다면 다음해 과거의 사건을 상회하는 사건이 재발한다
일반적인 재난 거대한 테러가 나타나고 기괴한 사건이거나 가능한 비용이 들이지않고 세상을 시끄러운 이야기면
더좋아한다
인재와 동시에 지진해일 태풍대형화재가 현대기술을 이용한다면 그리어렵지않고
과거의 음모를 암시함으로써 상대방을 도발한다 상대방이 도발을 받아들인다면 더욱더 쉬운일이다 정면으로 공격할 구실이기때문이다
역사불리한 사건을 지우는데 여념이 없다
역사는 반복이라고 말한다 일본언론에서는자주 다루는글이다 실제로 역사는 일부 인간에 의해서 반복되어가고 있다
그것도 날짜까지 충실하게 주술행위이고 유명인의 탄생은 계획도어있다 일본인의
일본의 테러모략을 해명하는 쉬운방법은 역으로 테러인의 입장에서 배후가되었다고 생각하고 음모계획을 수립하는것이다
포인트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1테러는 의 목적은
큰신체적 정신적 타격을 주는데 있다 테러범죄를 숨기고 이간계질으로 실시한다
2 완전범죄이고 증거를 남기지않는다 관계자만이 이해랄수있는 메시지를 테러의 요소에 포함한다
일본의 모략기술은 여러가지이고 다음에 천천희 설명하겟지만
세상은 놀랄만큼의 많은 음모가 존재하다 세계전쟁의 비밀처럼
그러나 과학이 발달한 요즘에도 이렇게 반사회적인 모략과 음모가 성공하며 사회를 지배하는것인가?
인간은 단순하고 동물이기때문이다 왜 일본의 사기가 발각돼지않는가? 인간은 동물이고
두뇌판단으로 축적된 경험이 없기때문에 경험정보가 없기때문에 회로가 멈춰버리기때문이다
그만큼 인간의 정보회로는 단순하고 일본사회의 무서움을 이해할수 없기때문이다
과학적인 이론과 법칙은 존재하지않는다 그러나 필연적인특징을 찾아보면편하다
온고지신이라는말이 있듯이 사건은 단순하게봐서는 안되고 크게봐야한ㄴ다 사건의 본질을 이해할수 있기때문이다
현재의 사건은 과거의 진실을 이해해야지 이해가 가능하다 특히 일본의 음모는 일본이 생각하는 정책 전략음모를 분석하고
과거의 일본을 대입해야지 이해할수 있다 역사관이 중요하다
일본의 테러전술의 특징은 바로 시뮬레이션에 있다 기업의 경영에 비유하면 손익분기점이다
전쟁에서 이기는가 지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장기적이고 누가 이득을 보는가가 음모를 이해할수있다는내용이다
음모의 특징중에 중요한점은 500년전의 계획까지 있다 그러므로 조직의 내부자는 미래의 후계자를 교육을 해야하고
음모를 성공확신시켜야한다 한편 상대방에게 절대 간파당하지않도록 우연을 가장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정교한 말장난이나 암시등 정교한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다
한국의 모략은 아주중요하고 내부의 항쟁을 내분을 조장하는듯 수많은 간첩들과 세뇌가 필요한작업기고
한국의 불행은 일본의 행복감을 복돋기위한 의도된 테러행위이다
일본의 해외 전술중에서 닌자의 육성은 아주중요하다 즉 혼혈인의 장려와 해외유명인을 양육해서
일본인으로 키워내고 해외에 수출까지한다 해외의 모략작전에 좋은인재가 된다
교육이 중요하고 교육과 영상을 통해서 과장과 날조가 가능하다
일본의 테러는 한국공격은 계속되고 있지만
김영삼시대때부터 시작하겟다
성수대교 붕괴부터 시작하겟다 성수대교는 1994년10월 21일 붕괴했다
일본의 테러는 날짜가 중요하다는 말을 기억하고 봐야한다
왜 그날 다리가 붕괴되었을까? 바로이날 역사가 움직였다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에 대한 큰합의를 본날이다
카터전대통령과 김일성 그리고 한국대통령 김영삼은 남북정상회담을 실시했고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갑자기 김일성은 사망했다 성수대교는 이날사건의 퍼레이드이다
김일성사망이후 김정일이 뒤를 잊고 10월18일 미핵문제합의에 도달했다 조인식은 10월21일결정
그날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북한이 미국과 한국과 우호관계가 가질때 한반도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상실되고 조선의 통일은 일본으로는
악몽이기때문이다
성수대교사건의 붕괴원인은 부실공사라고 알려져있지만 날조일것이고
성수대교 와 한국삼풍 백화점의 설계가 일본인이 했고 더나아가서는 한국지하철방화사건또한 일본이
계획했다고 본다
성수대교사건이 왜모략인가는 또 팔라우 다리의 붕괴에서 볼수있다
위키백과을 성명을보면 허위내용을 과장하고 문장화해서 기정사실화하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앞으로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다면 인터넷정보가 정식 역사자료가 되것이고
이사건에 대한 한국은 반론을 제기하지않았고 돈의 힘에서 진다
팔라우 다리의 붕괴와 한국의 성수대교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글을 보며 역으로 생각해보면
교량이나 다리가 갑자기 붕괴하는것은 상식적으로 힘들다 서서희 부식하면서 강풍이나 폭풍의 날에
붕괴하는것이 자연이치이고 평소의 날씨에 갑자기 붕괴하는것은 이상하다
성수대교의 시공자인 동아건설과 팔라우 대교붕괴의 건설회사는 동일회사가 아니지만
누군가 허위로 정보를 조작해서 올리고있고 그걸 믿고있다 일본이 한국건설회사와 경쟁을 했고 한국의 건설회사에
밀린 공사안건도 많았다 그것만봐도 일본의 모략의 동기는 충분하다
무너진다리를 만든것이 한국이라는 캠패인은 일본인에게는 충분한 즐거움이고
인터넷상에서는 한국건설업계를 비항하는 글은 수도없이 많고 재생산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론조작과
한국때리기 여론구축에동원되고 있다
팔라우는 한국과 1995년 3월 22일 정식 수교를 맺었다. 주요인사 교류로는 1995년 9월 대사 이장춘이 독립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였고, 1996년 5월과 1997년 6월에 대통령 나카무라가 비공식으로 방한하였다. 2002년 2월에는 대통령 토미 레멘게사우가 한국을 방문하여 대통령 김대중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1995년 3월 대통령 특사 김정원이 팔라우를 방문하여 수교의정서에 서명하였다. 1997년 1월 의원 김도언이 나카무라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였고, 1997년 5월 대사 이장춘이 무상공여 차량 1대를 인도하였다. 1998년 7월 대사 박동순이 미크로네시아 게임 개막식 참석 및 차량 1대를 인도하였다. 팔라우의 한국 교민수는 120여 명으로 규모는 적으나 팔라우 내에서 활발한 교민사회로 평가받고 있다. 팔라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강제징용 및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와 숨진 한국인을 위한 위령비가 K-B 다리 밑에 건립되어 있다. 1999년 대한(對韓) 수출은 6만 달러, 수입은 249만 6000달러이다
-. 한인들의 진출 현황
o 인원 : 120여명(규모는 적으나 팔라우내에서 활발한 Community로 평가받음)
o 현지 투자법인
- Socio Micronesia Inc. (토목회사, 사장 이찬우, 괌거주) ← 여기 주목,
- Hanpa Industrial Development Co.
(건축 및 건자재회사, 사장 하순섭, 현지 거주)
o 참고사항 : 2차대전중에 경제징용 및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와 숨진 한국인을 위한 위령비가 KB다리밑에 건립
o 주요 건설 실적
- 중앙산업(69-73년) : 팔라우의 정화조, 상수도, 고등학교, 마이크로네시아
- 유원건설(87-89년) : Pelelieu, Angaur 등 2개주의 상수도공사 시행
- 쌍용건설(89-92년) : 팔라우 국립병원 신축 공사 시행
o 건설 수주 실적
- 대우건설(99년부터 진행중) : Palau Compact Road(Babeldao섬 순환도로) 건설
2. 그렇다면, 성수대교를 지은 기업이 Koror-Babeldaob Bridge(이하 KB 다리)를 건설하였는가?
성수대교는 1977년 4월에 '동아건설' 에서 시공하였다. (관련자료;http://cafe.naver.com/safe77.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9)
그러나 KB 다리의 시공사는
-설계: Alfred A. Yee and Associates (미국) , Dyckerhoff & Widmann AG (독일)
-시공: Dyckerhoff & Widmann AG
-청부: Socio Construction Co. (팔라우 과거 : 미국)으로
여기서 심각한 날조가 발각,
동아건설은 팔라우와 어떤 관계가 있지??????????????????????
그러므로 위에서 말하고 있는 일본측은 아마 대우건설이 99년부터 3년간 시행한 Palau Compact Road 건설(8000만불 상당)을 왜곡하여 선전한 것임에 틀림없다. (참고로 KB 다리는 96년 붕괴)
3. Socio Micronesia Inc.는 한국기업인가?
거짓말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또다른 주장은 Socio Micronesia Inc.가 한국의 기업이고, 또 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했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socio는 현지 투자법인, 그렇다고 해도 CEO가 한국계 사람이라고 해서, 그 기업이 한국기업이라고 주장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토요타에 아무리 외국자본이 참여하고 또 CEO가 외국인으로 바뀐다 할지라도 아무도 토요타가 일본기업이라는 것이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앞의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또한 다리 건설 당시에는 CEO가 한국인이었다는 증거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이 기업이 현재 팔라우에 소속된 기업임은 부정할 수 없다.(동아건설은 아님이 위에서 판명,)
4. Koror-Babeldaob Bridge는 부실공사때문에 무너졌는가?
A spectacular collapse: Koror-Babeldaob (Palau) balanced cantilever prestressed, post-tensioned bridge
Brian McDonald, Vijay Saraf and Bernard Ross
The 385.6 m (1265 ft) long, 18-year old, Koror-Babeldaob bridge (KB bridge) collapsed abruptly and catastrophically on September 26, 1996. The failure occurred during benign weather and loading conditions, less than three years after two independent teams of bridge engineers had evaluated the bridge and declared it safe, and less than three months after completion of a strengthening programme to correct a significant midspan sag that was continuing to worsen. The present paper** describes findings of an on-site inspection and structural analyses performed to assess long-term behaviour of the bridge, the increment of internal forces and deflections produced by the 1995 bridge retrofit repair, and principal factors that contributed to the collapse. Results of this investigation confirmed, both qualitatively and analytically, that the most probable cause of the KB bridge collapse was damage engendered by removal of the original concrete roadway surface.
→ KB Bridge 붕괴의 원인은 초기의 건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잘못된 補修 공사에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대충 내용을 살펴보면, K-B브릿지의 완공시점(77년)에서 붕괴시점(96년)까지의 편향도의 증가로 인해 그것을 수정하기 위한 도로 재포장 공사직후 붕괴했다. 근 20년간 안전진단상에서도 문제가 된것은 deflection이었다. 보강공사라는 것이 건축 자재를 보강하는 것이 아닌 구조자체에 대한 보강이라는 것이다.
즉 부실공사가 원인이 아니라 다리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군요. 참고로 이 논문은 라히프찌히 연례 토목 공학 보고서중의 하나로서 PDF파일로 아래에 올려 놓았습니다.
pdf파일은 조작이 안되니까 올립니다
4. KB다리 아래의 한국인 노동자 위령비는 무엇인가?
일본인들의 또다른 주장은 KB 다리 아래에 한국인 노동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으므로, 이 다리를 한국인이 건설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 위령비는 팔라우다리의 붕괴와는 상관없이 2차세계대전중에 한국인 징용자와 위안부의 죽음을 애도해 설립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리 건설중이 아니고 90년대에 한 참 지나서 유동량이 많은 KB다리근처에 지어진 것인데 이를 두고 다리붕괴의 책임이 전적으로 한국측에 있다고 우기는 일본인들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사실, Koror섬은 일제 식민지 시절당시 한국인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강제징용을 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아픈 상처를 지닌 곳에 세워진 것이건만, 이마져도 일본인들이 다리를 재시공하면서 파괴해 버립니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5. 시공식의 태극기는 무엇인가?
일본인들의 또다른 왜곡은 시공식장에 태극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리를 한국기업이 건설하였다고 주장한다.
허나 다음 사진을 보자.
태극기와 동시에 성조기와 외국기가 하나 더 보인다.
(그리고 또 보자)
개도국 지원 1위는 덴마크............... 일본은 최하위 (빈국에 대한 실지 공헌도) |
[연합뉴스 2005-08-30 ] |
(워싱턴 AP=연합뉴스) 금전적 지원뿐만 아니라 무역, 환경, 이민 등 여러 정책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선진국 가운데 빈국 지원에 가장 후한 나라는 덴마크라고 민간단체인 '세계개발센터'가 29일 밝혔다. 세계개발센터가 각국의 빈국 지원정책과 실적을 종합해 산정한 '개발지원지수'에 따르면 덴마크 이외에 네덜란드, 스웨덴, 호주,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 최대의 개발원조 공여국인 미국은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지원액 등 다른 분야에서는 뒤처져 12위에 머물렀다. 최하위는 일본으로 평가됐다. 이 지수는 선진 21개국의 빈국 지원정책을 평가해 긍정적인 정책에는 가산점을 부여하고 부정적인 정책에는 감점을 가하는 방법으로 산정된다. 예를 들어 '기초적 지원' 항목에서는 납세자들의 자선단체 기부금 가운데 일부는 '옥스팜'이나 '케어'와 같은 국제구호기관에 지원된다는 가정 아래 이 같은 기부금에 대해 세액공제를 해주는 정부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부여하며 빈국에 현금지원을 하면서도 이 금액을 해당국 상품이나 서비스 구매에 사용토록 제한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점수를 깎는다.
이 지수는 빈국에 대한 지원의 양적, 질적 측면 이외에 이들 국가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한 개방성, 투자정책, 이민, 환경, 안보정책, 신기술 전파 지원정책 등 다양한 정책적 요인들이 고려된다. 각 항목별 평균을 5.0으로 했을 때 미국은 '지원' 항목에서 1.9로 가장 낮게 평가된 반면 '무역' 항목에서는 7.2로 최고점을 받았다. 일본은 자국 어업에 대한 과도한 보조금 지급과 막대한 양의 열대 지방 목재 수입, 국제수역에서의 어자원 남획에 미온적인 태도 등으로 인해 특히 환경분야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개발지원지수' 작성 책임자인 데이비드 루드먼은 "1위를 차지한 덴마크조차도 7개 정책 항목 가운데 4개 항목에서는 평균 점수에 머물렀다"면서 "전세계적으로 번영을 확산시키기 위해 모든 국가들은 더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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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는지?
일본은 어디가 선심적 ODA를 베풀어 다리를 지원??
결국, 과도한 ODA를 빌미로 팔라우에서 막대한 목재등을 수입하고 남획을 하는등
자국의 이득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러한 현상은 아래 기사로도 알 수 있다
(인용문)
최근 터키가 국제원조를 요청한 경전철 공급사업에 스페인과 일본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그 예다.
경전철 사업과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우 국제원조 지원국가의 기업이 사업권을 따내는 것이 관례화되고 있다. 스페인은 2억달러 규모의 원조자금을 앞세워 자국기업의 경전철 사업권 수주를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은 이에 맞서 이자율이 낮은 엔화 지원을 앞세워 맞불을 놓고 있다.
우리나라도 서아시아는 물론 동유럽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스페인과 일본의 원조 물량 공세에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아름답다~~!! 팔라우 자연,
팔라우를 발견한 최초의 유럽인은 1543년의 스페인인 루이 로페즈 드 빌라로보스로 스페인은 1686년 섬에 대한 소유권을 제기했으나 발전이나 식민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 그후 미국-스페인의 전쟁으로 허약해진 스페인은 팔라우를 독일에 팔았고 독일은 1899년 통제권을 획득해 서양에서 전래된 질병으로 주민의 감소를 방지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는데 이는 코코넛농장의 노예등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일본은 팔라우를 1914년부터 2차 대전 종료까지 점령했다. 이 기간은 팔라우의 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한 시기로 일본어의 방언이 섬에 전래됐으며 마을 족장은 일본 식민지 통치자에 의해 영향력을 상실한다.독일이 팔라우인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질병감소에 힘쓰듯 전시체제와 수탈을 위해 코로르가 도로 포장과 전기와 파이프를 통한 물의 공급등이 이뤄진다 수 천명의 일본인, 한국인, 오키나와인 노동자가 이주했으며 전통을 계승하던 패턴은 자신의 땅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산산이 파괴됐다.
1930년대 후반 일본은 팔라우를 세상과 단절시키고 섬들을 통해서 군사 요새화에 노력을 집중한다. 2차 대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팔라우에 위치한 일본의 군사시설은 연합군의 공격목표가 됐으며 펠렐리우와 앙가우르 섬에서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으며, 그야말로 팔라우는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만다
일본은 과거에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이토록 아름다운 팔라우에 여기 저기 동굴을 뚫어 경관을 망치고 그 곳에는
아직도 일본측으로 부터 끌려간 강제징용자와 위안부가 죽어나간 기념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디 이것 뿐인가?
팔라우에서 고래잡이
돈 줄 쥔 일본, 마음대로 고래사냥 나서나
[오마이뉴스 2006-06-21 23:06:16] 일본은 1990년대 후반부터 공공연하게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아시아 등지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경제원조를 제공하는 대신 이들을 회의에 끌어들여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어왔다. 이렇게 매수한 나라만 20여개국에 이른다. 이번 회의에는 캄보디아와 마샬군도, 말리, 감비아, 토고 등이 처음으로 참가해 일본 편을 들었다. 이번 회의 개최국인 세인트키츠네비스와 앤티가바부다, 나우루, 팔라우,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스, 수리남, 투발루 등 이름조차 생소하고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몽골이나 말리처럼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국가도 고래잡이에는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최근에도 일본 정부 대표는 회의에서 일본 측 의견을 지지하는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늘리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국제회의장을 돈으로 더럽히는 파렴치한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
정말로 팔라우에 사과하고 사죄해야
하는 것은 야마토 자신인 것이다
첫째 K-B브리지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pre-stressed concret box girder cantilever 이다.
즉 그 당시 검증이 덜된 공법을 이용한 다리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설계자가 alfred A. yee이라는 이라는 이름을 보고 한국인이라고 단정하지만 그가 동양인인건 맞다. 그리고 그는 American Society of Civil Engineers 과 American Concrete Institute 의 명예 회원일 정도로 미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즉 일본인들이 함부로 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