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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30212 주일오전예배/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
성경 | 누가복음 17:11-19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누가복음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녹취자료 |
오늘 예배를 통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는 가장 행복한 신앙생활의 시작이 되는 축복된 기회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의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복음’과 ‘전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최우선으로 두어야 하는 기도제목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6:33절에서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복음 누리고 복음 증인된다면 하나님은 내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에서 크게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시오,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예수가 그리스도되심을 나타내셨어요. 두 번째는 제자화입니다. 전도자는 어떤 태도와 삶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것인가 하는 부분을 성경에서 계속 강조하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복음과 전도라는 눈으로 성경을 보지 않는다면 틀리게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착하게 살아라, 정직하게 선을 베풀면서 살아라 등의 이러한 윤리 도덕적인 기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겁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무엇이라고요? 우리가 복음을 누리고, 증인되는 것이 인생의 참 목적이 되도록 성경을 통해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이요, 절대 계획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약속했는데 우리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데 관심이 없어요. 어려운 게 아닌데, 우리는 전도에 관심 갖지 않아요. 이 곳에 마음과 정성과 시간을 바쳐야 하는데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마태복음 11:28-29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죠. 주님앞에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서 하셨던 말씀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에 힘을 얻으리니 이는 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우리는 전도를 생각만 해도 힘들고, 어렵고, 귀찮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전도를 뭐라고 표현하죠?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누리고 복음 증인되는 것 만큼 쉽고 가벼운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것은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것에 우리가 방향을 맞추면 감당할 힘을 하나님이 주시고, 감격과 기쁨도 주시고, 칭찬과 상급도 주세요. 복음안에 모든 축복을 누리는 비밀을 담아두시고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 많은 성도들이 전도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힘들게 생각해요. 이것이 착각 중의 착각이요,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우리가 전도 속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누리는 최고, 최선의 방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생하라고 전도 명령을 주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가장 중요한 직분이 바로 전도자의 직분인 것입니다. 어떤 분이 선교사로 파송 받으시면서 울어요. 왜? 세상 좋은 것을 버리고 간다고... 그건 착각 중의 착각이에요. 하나님의 최고 축복을 누리러 가는 현장을 이렇게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성도들도 예수 믿는 것을 뭐라고 생각하죠?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것을 예수 믿는 거라고 생각하게 사단이 우리에게 사기친 겁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목적은 전도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하면 교회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해요. 맞는 것 같지만 틀린 겁니다.
그동안의 메시지를 정리해보면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셨어요. 길을 잃은 양처럼 고통받는 영혼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세상 가운데 복음 없어서 망하고 실패하는 자들을 향하신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청지기의 비유를 하셨어요. 청지기가 비로소 주님의 소원이 복음 전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 죽은 자의 소원입니다. 예수 안 믿고 죽으면 어디에 가죠? 저 영혼이 이 땅에서 지옥같이 살다가 지옥 가겠구나!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남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해야 할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복음 전하기 위해, 생명을 건져 구원하기 위해서! 지난주 메시지에 나왔던 제목이 믿음을 더 하소서 인데, 사실 핵심은 뒤부분에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체험하고 그 믿음을 내가 가지고서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되면 나같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고 이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인지 너무 감격하여서 뭐한다고요? 무익한 종이 최선을 다하고 난 후에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도하고 난 이후에도 더 할수 있었는데 이것밖에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죠. 사실 모든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전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전도, 전도, 복음 증거를 말씀하는 것인가. 그 안에 하나님의 모든 소원과 축복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결단해야합니다. 그동안 전도에 관심없이 살아왔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멸망가운데서 건져 구원하여주신 그 은혜가 감사하고, 또 세상이 어디에 빠져있나요? 이 멸망 속에 빠져있는 그들을 보면서 오늘 내 마음속에 이 전도의 열정을 허라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가 나와야합니다.
1.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명이 예수를 만나..
예수님이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로 지나가는데 이 때에 한 무리의 문둔병자들이 예수님 앞에 찾아나오죠. 멀리서서 예수님 앞에 긍휼을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세기 3장아래 놓여있는 저주받은 인간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질병이 바로 나병입니다. 문둔병입니다. 일단 제사장이 나병환자로 판정을 내리면 그 순간 자기의 정들었던 고향과 집을 떠나야합니다. 그리고 부정을 퍼뜨렸기 때문에 입을 열고 얼구을 가리면서 소리지르며 사람앞을 지나가야합니다.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 왜요? 부정을 퍼뜨리는 자들이거든요. 나병환자가 만진 그릇이 질그릇이면 깨뜨려야합니다. 나무그릇은 불태워야합니다. 쇠그릇이면 그을려야합니다. 나병환자가 앉았던 자리, 입었던 옷, 신었던 신발 거기에 만약 일반사람이 손을 데면 그 사람도 하루종일 부정해요. 옷은 다 빨아야해요. 부저을 퍼뜨리는. 그리고 사람들있는 곳에서 살 수 없어요. 죽어도 장례식을 못치뤄요. 그리고 나병균이 뭐하죠. 신경조직을 마비시켜서 통증을 못느껴요. 추워서 불을 쬐는데 이 불이 손가락을 다 태워도 아프지 않아요. 통증이 없어요. 지금도 나환자들은 특수한 신발을 신깁니다. 발바닥에 큰 돌맹이가 들어있어도 감각이 없어요. 그래서 귀가 날아가고 코가 날아가도 입술이 찢어져도 감각이 없어요. 나병환자가 걸리고 싶어서 걸린 사람 있나요?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 자기가 원한 것도 아닌데 나병환자가 된 것이에요.
우리가 창세기3장 아래 놓여서 멸망상태에 망할 운명에 빠진 것 자체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 태어났는데 뭐한 겁니까. 멸망 속에 빠진 겁니다. 성경은 우리가 왜 멸망속에 빠진 것인가를 설명하면서 로마서5:14은 말합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한 사람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서 모든 사람이 뭐했다고요? 창세기 3장 멸망상태로 다 빠진 거예요. 이걸 우리는 신학적으로 대표원리라고 표현합니다. 인류의 대표로 아담이 범죄했기 때문에. 1910.08.29. 일본의 데라우치 마사타케라는 사람과 조선을 대표해서 이완용 두사람이 조약에다가 도장을 찍었어요. 한일합방. 그날 우리는 국권을 다 빼앗긴거죠. 이완용이가 도장을 찍을 때 강원도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찍힌 줄도 몰라요. 그런데도 뭐가 된거죠? 일본에 식민지 백성이 되고 만거에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 아담 한 사람의 결과로 우리 모든 사람이 뭐가 되졌다고요? 죄인 된 것이에요. 두번째는 유전의 원리입니다. 아담,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서 이것이 유전된 것이에요. 제가 성이 정 가입니다. 아버지의 성이 뭘까요? 정 가이지요. 우리할아버지? 정 가입니다. 증조할아버지? 성은? 정 가입니다. 왜? 정 가 집안에 태어났으니까. 누가 흑인이 되고 싶어서 흑인이 되어졌나요. 아이의 아버지가 흑인이에요. 그럼 흑인이에요. 이게 유전의 법칙들입니다. 바로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난 자들은 이유 없이 모든 사람이 망할 운명 속에 빠진 거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성경에 나병 환자에 대해서 많이 기록되어 나옵니다. 레위기서에 보면 13장에 보면 쭉 기록되어 나오는데, 왜 하나님이 그 나병을 허락하신 건가? 뭘 설명하기 위해서? 창세기 3장의 망할 운명에 빠진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질병 중에 하나거든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원래는 우리가 어떻게 지음을 받았나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에덴의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지음 받았던 우리 인간이 사단에 속고,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뭐가 된 거죠? 몽땅 다 망할 운명 속에 빠진 것이에요. 원치 않아도 내게 뭐가 찾아오죠? 영적 문제가, 정신 문제가, 육신 문제가, 후대 문제가 죽어서도 어디에 가죠? 지옥에 가는 망할 운명 속에 우리가 빠졌다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죄성에 지배를 받아서 우리는 죄로 인하여서 형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죄의 결과로 악한 죄성의 지배를 받아서 우리가 남을 미워하고, 죽이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거짓말 시켜서 거짓 증언하고.. 마가복음 7장 23절 보면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 로마서 1장 28절을 보면 ‘또한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모든 죄악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망가진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 우리가 만들어 진겁니다.
사단이 이걸 또 이용을 하죠. 인간이 가진 사악한 죄성을 충동질하여서 범죄, 타락하게 만들고 거짓해서 믿게 만들고, 우상 종교 섬기게 만들고, 도둑도 귀신에 사로잡혀서 멸망 상태 속으로 끌려가도록 만든 것이에요. 나환자처럼 인간 속이 다 파괴되어져서 부정을 퍼뜨리는 죄인만 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죠. 감각이 없어요. 심각한 죄의식 자체도 없어요. 인간이기를 포기한만큼 죄를 범하고서도 뻔뻔스러워요. 푸틴 보세요. 수십만명을 죽이고서도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가지고.. 북한의 김정은도 동일하죠. 요즘에 전세사기범들을 내가 보면서 이야, 사람이 저렇게 악할 수가 있냐.. 또 펀드사기 해가지고 수조원씩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제 피해를 주는 이런 자들.. 그것도 양호한 편이에요. 인신매매 해가지고 창녀로 팔아먹기도 하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사람을 납치해서 뭐하냐 하면 장기를 끄집어내서 장기 밀매를 해요.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악할 수가 있는 것인가? 다 뭐 때문에 온 것이죠? 창세기 3장 결과로.. 영적으로 무감각한 나병상태에서 오는 모습들이에요.
2. 소리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나환자들은 누군가를 통해서 예수님 소식을 들었어요. 비록 사람 앞에는 갈수 없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나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어요. 나환자의 소원이 무엇일까요? 나병이 낫고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나환자의 죽어도 소원은 무엇일까요? 나병이 낫는 것이에요. 어느 날 이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것이에요. 그들의 마음속에 소망이 생겼어요. ‘예수님만 믿으면 나을 수 있겠구나‘ 이것이 복음이에요. 왜 절에 올라가서 108배를 하고 간구하고 엎드릴까요? 부처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자기 문제 치유받고 싶어하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두 가지만 말 한다고 설명 했죠? 하나는 복음입니다. 예수가 해답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문제 해결함을 받는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 복음 깨달은 자들은 나처럼 똑같이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이 복음을 증거 하라는 것, 그것이 증인이에요. 성경은 이 두 가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기 3장에 왜 빠졌나요? 그들이 선택한 것인가요? 여러분 북한에 태어난 것 자체가 망할 운명입니다. 누가 북한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요? 그곳에서 태어나다보니 빠져있는 것입니다. 아프카니스탄 여자들을 보면 참 불쌍해요. 여자들을 학교를 안 보내요. 왜요? 태어나다 보니까 어디에 태어난 것이죠? 그 무슬림 나라에 태어난 것이에요. 이번에 튀르키예에 지진이 난 모습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어요. 하필 지진이 그곳에 나서 거의 20만명이 매몰되어 있다고 해요. 하필 거기에 태어나서. 일부러 태어났나요? 태어나다 보니 그 속에 태어난 것이에요. 나병환자로 태어난 것은 자기 선택사항이 아니에요. 부모 탓도 아니에요.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될까요? 예수가 해답이다. 예수님 만나면 된다. 이 분들에게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예수만 믿으면 해방 받는 것이다’라고요.
제가 파키스탄 현장을 갈 때마다 그 나라에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해요.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나병환자 이야기,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 이야기, 38년 된 병자 이야기 등을 서두에 많이 던져요. 바로 그분들이 누구 만났죠? 예수 만나서 치유함을 받았잖아요. 당신 문제의 해답이 예수라고 전합니다. 그들에게 정말 복음이 필요한 그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당신 문제의 해답이 누구다? 그리스도만이 해답이시다고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향하여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를 지르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모습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아무 자격이 없는 나환자와 같은 몸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의 길 자체가 없어요. 죄 문제 해결 할 자체도, 사단의 문제를 해결 할 힘 자체도,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어요. 그래서 누가 이 땅에 오셨나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완성하시고 그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됩니다. 나환자의 심령으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건져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원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문제가지고 오셨나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세요. 팔복의 첫째 복이 무엇이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뭐하면 됩니까? 나병환자 같이 정말 주의 긍휼하심을 바라보면서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지 아니하시면 나는 살 길이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정의 문제를 가지고 오셨나요? 이 자세로 주님 앞에 엎드리세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누가요? 나병환자들이 이것을 구한 것이에요. 두 번째 복이 무엇인가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요. 복음 없이 놓치고 살았던 모든 삶들을 애통히 여기면서 ‘주님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이 언약을 잡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은 나환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육신의 병을 낫는 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에 내 신분 자체가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 신분, 그 이름으로 기도 할 때마다 응답받는 그 신분, 내 배경이 천국 보좌가 되어지는 그 축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내 인생의 저주, 재앙, 실패는 바로 그 순간에 이미 법적으로 다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 앞에 모든 흑암이 결박 당하게 되어지는 이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바울이 깨달은 것이에요. 그래서 에베소서 1장 3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라..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우리를 불러 주셨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오늘 이 자리에 왜 부르셨나요? 바로 이 체험을 하고 하나님의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케 하기 위하여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이 갖고 나온 문제 누가 해결할까요? 문둥병자들이 누구를 만났죠? 예수님 만난 바로 그 순간 끝났어요. 여러분들에게 뭐 할 수 있는 시간이 될까요? 오늘 예배를 통해서 그분 만나는 시간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분만 만나면 여러분 인생의 문제는 사실 끝나는 겁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 하였느냐? 예수님 만난 나환자 열 명에게 치유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레위 13장에 있는 규례대로 너희는 가서 제사장에게 너의 몸을 보여라. 나병을 판독하는 것도 제사장이요, 치유 받은 증거를 확정해 주는 것도 제사장입니다. 이것을 확인받기 위해서 가다 보니까 이제 이 몸이 다 나은 것이 느껴져요. 그중에 한 사람 사마리아인이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면서 감격해서 예수님 앞에 나와서 엎드려 절하며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리죠. 그때 예수님께서 아주 섭섭한 마음으로 아니 열 명이 다 낫지 아니 하였느냐? 그 아홉 명은 어디 갔냐? 어떻게 너만 왔냐? 누구보고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나는 그 한 명에 속하는 건가? 아니면 감사도 모르는 그 아홉 명에 속하는 것인가?
영적 의미로 감사하지 않은 아홉 명은 유대인을 상징을 하고요, 한 명 사마리아인은 이방인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유대인을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이방인을 통해서 세계복음화를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 지금도 누구를 찾고 있죠?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 되는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축복하시고 이 미션을 맡겨주시는 겁니다. 지난주 메시지에 보면 최선을 다하고 난 이후에도 무익한 종이 더 할 수 있었는데 이것밖에 하지 못했다는 그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감사와 감격들이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그 해답을 오늘 본문에서 주는 거예요. 누구? 아홉 명은 그 마음이 없어요.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것에 대한 이 감사와 감격을 가진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뭐 하는 거죠? 쓰임 받게 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감격 속에 있어야 할까요? 영적으로 문둥이가 되어서 완전히 망가지고 망할 운명 속에 빠져있던 나 같은 죄인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 구원받은 것에 대한 이 감사와 감격들이.. 이게 우리 속에 살아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 속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감사와 찬양이 있습니까? 왜 나의 신앙생활은 냉랭한가요? 왜 하나님 말씀이 주어졌는데 내가 순종하지 않는 것인가요? 왜 그렇게 헌금에 인색해지는 것인가요? 왜 난 전도에 관심이 없는 것인가요? 여러분에게 무엇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죠?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 이것이 다 식었어. 이것이 너무 약해요.
정말 우리가 이 나환자처럼 이 감격이 정말 내게 있다 그러면 내 속에 영원히 멸망 받을 나 같은 죄인이 건져 구원함 받은 것에 대한 이 감격이 내 속에 넘쳐나게 된다면 우리가 뭐 할까요? 얼마든지 주님 앞에 내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 37절 이하에 보면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 앞에 옥합을 들고 찾아 나와서 예수님 발에 그 옥합을 깨뜨려서 향유를 붓고 눈물로 그 앞에서 주님 앞에 고백하며 머리털로 그 예수님의 발을 닦는 장면들이 나와요. 바리새인이 책망을 합니다. 왜 허비하느냐고. 예수님 말씀하셨어요. 이 여인은 자기가 사함 받은 죄 사함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혹자는 주석에 보면 그 여인이 누군가 했을 때 막달라 마리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었나요? 너무 집안이 힘들고 어려워서 창녀로 팔려갔어요. 그러다 못 견디고 일곱 귀신 들려서 완전히 폐인 된 여인입니다. 그 여인이 누구를 만났죠? 예수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귀신이 떠나가고 온전케 되었을 때 이 마리아가 가졌던 그 감격 견딜 수 없는 그 감격이 주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을 깨트리게 되는... 이게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구원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감격이 넘치지 아니한다면 신앙생활 결국은 사실 껍데기로 우리가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네 속에 그 구원의 감격이 있는가? 멸망상태 속에서 영원히 멸망당할 나 같은 죄인이 구원 받음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내게 있는 것인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고 누가요? 진정으로 내가 죄사함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들이 이것이 헌신의 밑바탕이 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말씀 묵상하며 찬양의 묵상을 여러분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예배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 정말 이 구원의 감격이 넘쳐서 내 인생이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예배 드리고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한번 찬양하며 묵상해 보세요. 내 마음속에 넘치는 감격들이 내 속에 찾아오게 되지는 겁니다.
그리고는 뭐가 깨달아지는 것인가 하면, 나 자신이 죄인됨이 깨달아져요. 저희들의 어린 시절에는 문짝에 창호지를 발랐던 분들이 많았거든요. 거기다가 문도 작아요. 난방을 위해가지고 문 하나만을 달아놓고, 이제 시골집에 가면은 거기에 들어가서 장난 친다고 손에 침을 묻혀서 뚫으면은 구멍이 나거든요. 그러면 그 속에 햇빛이 쫘악 비쳐요. 그러면 방에 뭐가 보이죠? 먼지가 자욱 한 것이 보이는 것이에요. 안 보일때는 그냥 숨쉬는 건데, 그것을 보는 순간에 숨이 콱 막혀요. 이 문제 속에 내가 있었구나.. 뭐가 깨달아지는 줄 압니까?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께 은혜를 받게 되면은 내가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깨달아지게 되어져요. 아.. 죽을 죄인이, 망할 죄인인 내가 구원을 받았구나.. 누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그물을 바다 깊은 곳에 던졌을 때에 그물이 찢어질만큼 고기가 잡혔죠.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을 합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언제 여러분들이 진짜 죄인됨이 깨달아질까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졌을 때에 추하고 못난 나같은 죄인이 어쩌다가 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인가 하는 이 감사와 감격이 찾아오는 것이에요.
우리가 예배를 왜 강조할까요? 말씀의 묵상을 왜 강조할까요? 기도를 왜 강조할까요? 찬양을 왜 강조할까요? 이 속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은 나를 이 속에, 이 은혜 속에 들어가도록 나를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잘 안되시는 분들은, 주님이 이 방법을 주셨어요. 왜요? 사실 제자들이 이것이 안됬거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집중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을 주시면서 그리고는 예루살렘에 모여서 기도하기를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죠. 뭐했죠? 집중해서 기도한 것이에요. 그 장소에 뭐가 임헀죠?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되면서 바로 이 체험을 하게 만들어 주신 것이에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그분의 사랑을.. 여러분들이 이 속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음성을 들려줍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이것에 여러분들이 다 무너집니다. 단순한 예배가 아니고 여러분들에게 이 시간을 갖도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체험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그 인생의 삶을 온전히 드리는 삶으로 바꿔지게 되어져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 나환자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을 말씀하셨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에 구원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예수 생명을 얻은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구원을 얻었다는 이 말씀 속에는 구원에 담긴 모든 축복을 이미 네가 누리게 되었다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 비밀을 깨달은 자에게 함께 하시고 임마누엘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만들어서 오직, 유일성, 재창조의 축복 속에서 이 증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신 약속이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요? 하나님, 정말 하나님의 최고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약속인 이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야 되겠는데, 하나님..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정말 제자들이 이를 가슴에 언약을 잡고 기도하면서 이 속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나 또한 이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이 삶속에서 정말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지는 귀한 삶을 살아가도록 내 인생을 주관하여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가 영적으로 다 문둥이였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죄악 가운데에 출생하여서 망할 운명 속에 우리는 빠져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하셨나요?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저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나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었던 문둥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그들을 치유하여 주셨던 것처럼.. 이시간 저희들이 진솔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저희 마음의 소원을 들어 응답하여 주옵시고, 정말 주님을 만나는 축복된 시간 되기까지 저희 마음과 생각을 붙드셔서 이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나님이 간섭하여 주옵시고, 이제는 내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것인지 이 비밀을 깨닫고 이 복음 한가지가 없어서 망해가고 있는 현장, 문둥이처럼 운명에 잡혀있는 현장 속에 이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증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 감사와 감격을 우리들에게 허락하여 주셔서 우리가 남은 생애 자체가 이 복음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되게 만들어 주시며, 임직할 수 있는 모든 중직이 되도록 저들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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