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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삶의 자리에서 사건이 생겼을 때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뜻대로 하고 있는가? 진지한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실 때 참으로 귀하게 바라보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코드는 오직 하나님 곧 아버지의 뜻을 맞추는 삶이셨습니다. 천국에 입문 하는 절차까지도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만이 천국에 갈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내 뜻 사이에 맞춰진 퍼즐이 아니라 간격이 벌어져 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내 뜻일까? 하나님의 뜻일까? 사건 사고들 앞에 하나님의 뜻을 내 뜻에 덮어버리고 잘 했다고 뽐내는 모습이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평신도설교자 무디(D. L.Moody)는 말하기를 "기도는 내 필요에 의하여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조종해 맞추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가정에 불치병에 걸린 가족이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불치병에 걸린 가족치료를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은 너무 슬프지만 서로를 위로하며 말하기를 이렇게 죽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라며 체념하고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가 묵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환자를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백방으로 의사를 찾아가고, 좋은 약을 구해서 쓰게하고 좋은 병원을 찾고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렸던 일인가? 이런 질문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감리교 신학자요 설교가인 [레슬리 위더 헤드] 목사는 “하나님의 뜻에는 3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의도적인 하나님의 뜻(Intensive Will) 즉 본래적인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상황적인 하나님의 뜻으로(Circumstance Will)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Ultimate Will)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방금 소개했던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불치병으로 빨리 죽었지만 그동안 생명을 주셔서 가족들과 사는 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본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치병이란 원치 않는 병을 얻어서 투병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 죽게 된 것은 상황적인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온 가족이 하나님께로 나오고 환자도 불치병으로 죽었지만, 그가 고난을 통과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죽음 이후에는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 영생을 얻게 되었기에 이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라고했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귀한 선물을 주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로봇이나 시계와 같이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태엽이 떨어지면 그대로 멈추곤 하는 그런 식의 사람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창2:16 네가 임의로 먹되........ 각종실과는 먹지만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말라 하셨습니다. 자유의지입니다. 즉 선악과를 따서 먹을 수고 있고 안 먹을 수 있는 자유의지가 인간에게 주어진것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는 꼭 창조 때 첫 인간이 따먹은 선악과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고 오는 세대속에서 이 선악과는 모든 상황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로 통해 하나님을 잘 섬길 수도 있고, 반역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고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의지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 즉 “의지”란 결정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배의 키와 같습니다.
바다위에 떠 있는 배는 조정 키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어 앞으로 가든지 좌우로 가게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인격의 3요소가 있지요 지(知識), 정(感情), 의(意志) 이 세 가지가있는데 이 중에 “의”인 “의지”는 마치 배의 키와 같아서 내 의지를 결정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 예를 들어 엄마 나 교회 가기 싫어하면 자기 의지 결정으로 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기다리시는데 교회가야지 순종하면 좋은데 안 가면 자기의지 자기뜻대로 결단 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말하지요 성숙한 그리스도인과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이것에 차이는 그 사람의 의지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좌표가 만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감정은 느낌을 표현할 뿐이기에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의지는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옆 볼 수 있습니다.
의지란 사람의 뼈와 같아서 의지가 약하여 흔들린 사람은 마치 뼈가 없으면 흐물흐물 거리는 것처럼 이리 흔들 저리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임의로 먹되”........ 하나님의 멧세지를 받은 첫 인간 아담은 어떠 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이 있지만 간교한 뱀으로 위장한 사단의 유혹 앞에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의 뜻 말씀을 먼저 받았으면서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잊어버리고 따먹어 괜찮아!!~~~ 사단의 유혹에 흔들렸습니다.
결국 아담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어서 인간에게 죄를 짖도록 악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 2의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습니까?...... 예수님의 자유의지는 철저히 하나님 뜻에 복종하되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당신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셨고 사망에서 영생의 길로 가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우리 예수님 철저하게 하나님 뜻대로 사역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① 요한복음 5: 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이 말씀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물이 동하면 먼저 들어가는 자가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 38된 병자가 못가에 앉았다가 예수님 만나 못에 들어가지도 않고 나음 받은 이적이 나타 난 것입니다. 그런데 병을 고치는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는 올 스톱 입니다.
그래서 청년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며 손가락 질을 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 유명한 말씀을 하셨지요 네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셨으니 나도 일 한다 이말을 듣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려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저들에게 하는 말이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다 하실 수 있지만 철저히 당신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②요6:38-40.....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5장에 이어 6장은 디베랴광야에서 배고파 굶주린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축사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지요 5000명을 배불리 먹이고 도리어 남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속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시는데 배불리 먹었던 무리들이 소문을 듣고 가버나움에 모여든 것입니다. 썩을 양식만을 구하는 저들을 안타까워 하시면서 아들을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을 것이니 이 말씀을 주실 때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말씀 하신 것입니다.
두 절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철저히 당신 삶 전부를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뜻에 고정하여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겟세마네 동산 기도를 아시지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신 예수님은 이 상황에서는 어느 때보다 힘드셨습니다.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할 중대한 기로에서 아버지의 뜻과 당신 자신의 뜻 사이에서 십자가 죽음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그 고통을 피해 가고 싶은 인간적인 고뇌가 담겨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 이런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아버지여 할 수 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가게 하옵소서. " 아마 그 기도를 하실 때 마귀는 좋아서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곧 이어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셨던 것을 우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영어로는 "Thy will be done" 즉 “당신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주기도는 정말 기도의 표본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예수님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늘 부족하기만 합니다. 어제 보다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써 살기를 원한다면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아나로그 카메라 폰 때문에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아나로그 카메라는 목표를 놓고 사진을 잘 찍으려면 두 개의 상(像)을 하나로 맞추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사진이 잘 나오려면 좌(左)에 있는 것과 우(右)에 있는 것의 상(像)이 하나로정확히 맞추었을 때 가장 선명하고 정확한 사진이 찍힙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언제나 힘든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청개구리 요나를 보십시오..... 자기 뜻대로 하다가 음부의 자리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고생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요나는 하나님 뜻보다 자기 뜻대로 했기에 험한 고생을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내 뜻대로 하다가 요나처럼 고통의 쓰라린 경험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러실거예요 “ 자! 바라 네 뜻대로 해 봤지!! 어떠냐 잘 된 것 같니 ~~~ 봐라 이런 모습이다 그러니 이젠!! 내 뜻에 복종하고 살아라 하시며 하나님께 두 손 들고 항복하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내 뜻이 발견된다면 하나님 앞에서 여지없이 자신의 육의 요소를 부서 뜨리고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사41: 8...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렁이라고 그랬습니까? 내 인간의 짧은 식견(識見), 고집, 인간의 의지와 같은 것은 깨져야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앞에 고난과 시련이 올 때 원망이나 불평하지 마십시요!...... 우연이라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요!.......
연단을 통하여 나를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내 뜻을 깨어 부수시는 영적훈련을 받게 할 때 “ 예 ” 하고 받아드려야 합니다.
회개라고 하는 말의 원어는 Metanoia라고 하는데 그 뜻은 마음과 생각을 바꾼다 라는 말입니다. 회개는 내 고집대로 살려고 하는 것을 깨뜨리고 변경시켜서 하나님의 뜻에 동의하는 것(Agree with)입니다.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었습니까?........ 아니면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내 뜻대로 살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진정성으로 고백하지는 않습니까?....... 설교자인 저 자신도 하나님의 뜻 앞에 다시금 무릎을 꿇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자신의 시험 실패담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대학 다닐 때, 전공 시험을 치렀는데, 시험지를 받아보니 논술형 문제 하나였답니다. 열심히 답안을 작성하였는데, 석장을 빼곡히 썼답니다.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혹시 수석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을 정도로 답안을 잘 썼는데, 낙제였습니다. 교수님을 찾아가서 왜 낙제냐고 항의를 했더니, “네가 교수해라!” 하시면서 “시험 문제에 대한 답을 써야지 네가 할 말만 잔뜩 썼지 않았느냐?” 하시며 야단을 치셨답니다.시험지를 받아들었으나 질문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정성이라도 다하자’ 하는 마음으로 아는 것을 다 썼답니다. 그리고 밑줄도 치고 중간 중간에 꽃도 그려 넣고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답안지를 작성하였답니다. 그러나 교수님이 제시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기에 낙제라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과거 자신의 이야기를 말 하면서 목사님은...... ‘우리가 인생을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까? 하며 질문을 던지셨답니다.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열심히 살지만 그렇게 살았다고 합격한 인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적대로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고 목사님이 말씀하셨답니다.
주향성도여러분!! 저는 솔직히 주향교회 20년 목회를 했는데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했는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고백을 하게 됩니다.
다시한번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싶습니다. 아직도 십자가에 죽기를 덜해서 내가 죽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십자가 밑에 더 무릎을 꿇겠습니다라는 고백이 저의 솔직한 영적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듣고 싶습니다.
요 6:38-40.....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