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연(緣) 외 1편 / 김광기
태백산 꼭대기쯤에서 주목(朱木)은 자란다.
살아서 천년을 살고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나무,
높고 깊은 산 속에서 오로지 하늘만 보고 살며
나날이 붉은 노을을 몸속에 재어놓은 주목의
그 붉은 뿌리를 낯선 집 거실에서 만난다.
아직도 살아있는 듯 나무는 매끄럽고 단단하여
집안의 탁자, 의자로 쓰이고 있는데도 범상치 않다.
나무를 깔고 앉아 천년의 가치를 얘기하는
주인장의 넉살은 백년의 꿈조차 채 꾸지 못하는
범부의 삶을 더욱 초라하게 하고 있다.
괜한 삶이 미안하다. 주목을 어루만지기만 한다.
여름도 겨울 같았을 태백산 깊은 숲에서
나무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바람소리 잔잔히 들리고
웅성거림이 잠시 감지되는 듯도 하였지만
그뿐이지, 어찌 그 기운을 알 수 있을까.
천년의 역사 살피며 삶의 연(緣)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도 같지만 천년의 앞은
마음만으로도 도저히 가닿지 못할 꿈같은 길이다.
주목에게 묻지만, 살아서는 하늘만 보던 나무가
생각을 단단하게 굳힌 채 바닥만 보고 있다.
망각(妄覺)
몸 안에 있었던 길들이 지워진다.
안개 속에서 굽이굽이 산비탈을 돌던
스산하고 차가운 상승속도와 낙하속도의 기운,
오르는 길에는 반드시 있던 내리막길을
순간순간 오르고 바로바로 내려오는
환상적이고 곡예 같던 것들, 공명의 메아리로
퍼지는 선현들의 청명한 말씀까지
그리하여 비로소 비어 있는 공간 속에
함부로 사랑했으며 너무 쉽게 지나왔던
것들에 관한 용서라는 말을 새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것을 돕는 듯
지났던 길만큼 쌓였던 무게는 마침내 가벼워지고
그 말조차도 지워지는 것들에 묻히고
가끔씩은 다시 멀쩡하게 다른 생각들이 돋아서
서로 다른 의미들과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마저 지워내지 못했던 것들 함께 삭제되고 나면
자취는 너무도 당연하게 서로 무관해지고
의미를 알 수 없는 흔적들 삭는다.
-계간 [문학 선] 2013년 가을호
창의 나신 외 1편 / 김광기
커튼을 입고 있던 창틀이 환하게 드러났다.
어두침침하던 방에 햇살이 들어서자
모든 기운들이 움찔움찔 돋아나기 시작한다.
미세먼지처럼 폴폴 날아다니는
삶의 기운이 물결 지며 방안을 흔든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신의 몰골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핏줄이 울툭불툭 튀는 기운이 있다.
창틀 구석구석의 샅과 샅,
그 틈새에 핀 곰팡이들로 얼룩져 있기도 하지만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결이 흐르며
생의 음률이 파동치고 있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창은 때때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생동하는 천지세상 율려의 물결을 타고 있다.
소래포구
도시 밀집지역에서 요리조리 모퉁이를 돌아가다 보면
낯설게 문득 드러나는 포구이다.
방금 도시 속에서 이곳으로 들어왔는지
힘겹게 지나왔던 스스로의 길을 의심케 만든다.
바닥부터 다른 곳, 강줄기에 있는 것 같은 포구에서
어선은 거대한 엔진소리를 내며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바다 이곳저곳에서 어부의 팔뚝으로 건져 올린
갖가지의 물고기들이 부두에 쌓인다.
생물들의 팔딱거림과 거친 숨소리의 어부들이
마치 입체영화처럼 생생하게 구경꾼들을 헤치고 있다.
부두 안쪽에서는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생선들을 눈요기하며
슬로우비디오를 찍듯 움직인다.
이곳에서는 절대 빠르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
치이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잰걸음으로는
쌓여있는 생선들을 눈에 담을 수조차 없다.
이런 무리들 속에서 작은 리어카를 요리조리 굴리며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곡예운전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과 한꺼번에 대화를 하는 상인들도 그렇지만
생선을 나르는 그들에게 밀려드는 인파는 익숙한 듯
번잡하고 붐비는 리듬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건너편에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도 이곳에서 보면
단지 하나의 낯선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전 우리도 곡예를 하듯 차를 몰며 떠나온 곳인데도
저쪽의 동네에서는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다.
-계간 [문학과 창작] 201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