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수) 아침
하밀
오늘도 아침 일찍 서둘러 호텔 앞에 집합하니
바로 옆이 호수를 낀 넓은 공원이다.
사막에 익숙해지려다 이렇게 물을 만나면 반갑다.
조경한 나무들 사이에서 아침 산책과
운동을 하고 있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모두가 어머님의 품속같은 천산 산맥의 혜택이다.
회왕릉
회교도인 하미왕의 묘와
약간은 엉성한(우리나라의 성황당급?) 이스람식의 사원에서 몸을 푼 뒤....
마귀성
가는 날이 장날(이곳도 큰 명절인지..)이라
좁은 도로에는 좌판들이 빈틈없이 차려져 있다.
민가도 별로 없는 데
어디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쏟아져 나왔는지 궁금하다.
대중 교통이 불편한 이 도시(투루판 포함)에선
당나귀차, 경운기등도 버스의 역할을 한다.
그들 자동차에게는 결코 후진기아가 없는 지
좁은 길에서 서로가 무조건 들이대고 딴청을 피우는 바람에 구경할 시간을 얻어,
차에서 내리지는 못하지만, 이쪽 저쪽 시장 풍경을 살피느라 바빠진다.
위그루족의 장 풍경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다.
끌고 나온 양을 즉석에서 잡고 가죽을 벗겨 잘라 판다.
한바탕 소란 끝에 마귀성 입구를 지나고
옛날에 거대한 바다였다는(동서 80km) 허허허허한 벌판을 한동안 달리니
풍화된 괴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구의 장식물 스러져 가는 당나라때의 경비 초소와 봉화대란다.
모든 구경은 한발이라도 높은 곳이 유리하다.
밀리는 모래를 밟고 오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그 보상은 충분했다.
쉽게 부스러지는 연질의 바위로 인해
곧 산에는 출입금지 시키고 울타리로 막을 듯하다.
비단을 잔뜩 실은 낙타들과,
험난한 여정을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운 대상들이 야영할 때
바람이 바위 틈 사이로 파고 들면 마귀소리가 난다는 야그인데
怪岩들의 비명인지 호통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상들의 불안한 심정이나
바람 소리 만큼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겠다.
나야 1년 12달을 항상 마귀와 지내니까...
마귀가 제 집에 온 듯 무척 어울리고 편안해 보인다.
년초에 추석의 장기간 연휴를 해외여행 가자는 형제들의 주장에
우리는 종가집인데 차례도 안 지내고 무슨 굿판을 벌리냐고 극구 말렸으나
며칠간 심사숙고하시던 어머님이
"80이 넘도록 종가집에 시집와서 단 한번의 제사나 차례를 거른 적이 없었으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조상님들도 한번 이해하여 주지 않겠느냐?
가자! 떠나자!" 며 강력 주장하시는 바람에..
특히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말씀에
아무 토도 달지 못하고 승낙을 했으나
봄철에는 장모님이 수개월의 병치레 끝에 운명하시더니,
여름에는 아내가 백만명당 10여명 발병한다는 괴상한 병에 걸렸는 바,
(마귀의 발생 비율도 그것보다 높겠다!)
망할 놈의 의사가 얼마나 겁을 주던지......
글리백이 어떻고, 수텐이 어떻고...
위 절제수술까지 받다 보니,
우리 내외는 절대 여행 불가라며 포기했다가....
다행으로 수술 경과가 양호해
의사의 허락 하에 다시 실크로드에 합류하기로 했으니,
(그래도 수술실에 끌려가던 마누라가 저렇게 활보하는 것을 보는 행복감에
수술 의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할 양주를 원하는
아내의 뜻에 선뜻 동의 했으렸다..)
자식의 大事는 몸이 아프다며 차일피일 미루더니,
해외여행은 낼름 떠난다는 것에 대해
매우 황당해하는 딸아이의 눈치를 애써 무시하는
정말로 철없는 가족이요, 겁없는 친척이다.
뒤늦게나마 멀리 일산까지 문상 오신 여러분들과,
그리고 아내의 병 경과에 위로와 걱정을 하여 주신 많은 분들에게
부부 공동으로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지붕과 칸막이 없는 세구멍짜리 화장실을 외면하고
모두들 광대한 지평선을 향해 발사한다.
저 쪽에선 여성분들도 일부 동참하셨다...
투르판 버스 이동
이제 또다시 이가 갈릴 6시간 정도의 버스길을 시작했다.
투르판으로 가는 312번 고속도로 옆의
엄청나게 큰 노천 석탄 탄광의 작은 마을인 三道嶺의
허름한 노가다식 점심식사가 의외로 우리 입에 맞는다.
노가다의 입맛은 역시 세계 공통인 듯하다.
기념으로 남길, 도자기로 만든 이빨 빠진 낡고 자그마한
백알잔 4개를 쌔비는 대신 팁으로 10위엔 건네주었다.
고비사막을 지나간다.
(사막은 모래로만 된 땅을 말하며,
고비는 누리끼리한 흙 또는 흙과 조그만 자갈로 된 땅을 말하는데
쓸모없는 땅, 버려진 땅, 죽음의 땅이란 뜻이랍니다)
산위의 건물은 포도 건조실인데 여러 곳에 엄청 많았다. 민가 속의 석유 채굴 탑들이 이채롭다.
강렬한 햇빛과 심한 일교차,
그리고 만년설의 깨끗한 지하수로 인해
하밀과 투루판은 많은 과일들의 산지이고
그중 포도(건포도)의 맛은 세계적이라고..
저녁에는 풀한포기 없는 산악지대를 통과하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화염산 줄기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장마철 한번이면 사라져 버릴 흙산들이
건조한 기후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래도 이 산맥이 수맥을 막아 그 밑으로 강이 흐르고
투루판이라는 도시가 생긴 것이란다..
오후 내내 달렸지만 어제와 달리
야생 낙타 보호 구역이라든지,
포도 건조장,
천산 산맥의 바로 밑을 달리는 바람에 마주치는 많은 雪山등
구경 거리가 많아 덜 피곤했다.
투르판 호텔 도착
저녁식사에 이곳 특산물이라는 와인(6천원)을 아니 맛 볼수 있겠는가?
동행인들은 우리식구의 엄청난 주량에 인간도 아니라는 듯 멸시하지만
나로서는 그 느끼한 중국 음식을
백알 없이 먹느니 차라리 인간임을 포기하겠다.
이젠 슬슬 여행에 적응이 되는지 야간의 호텔이 답답해
달빛만 비치는 컴컴한 길을 10여분 정도 걸어나간 야시장에서
카메라용 건전지를 구입(15개 구입했는데 하나도 쓸 수 없었다)하고
수박과 포도, 기타 팩소주용 양꼬치 몇점을 추가했다.
초원에서 양떼를 몰고 밤에 별자리를 쫓았을
순박한 위그루 양치기 소년이
자본주의의 행동대장으로 변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