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은 흐름이요 그 흐름을 타는 자가 보살이다
부처님께서 연기를 보는 자가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을 보는 자가 연기를 본다 하셨다.
연기는 인연연기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지고 저것이 사라지므로 이것이 사라진다
가장 단순한 논리지만 일체법이 서로 유기적 관계속에
생성되고 펼쳐지는 모습을 말한다. 부모님이 계시므로
해 내가 있다.부모님께서 나를 사바에 보내주신 연유로부모님의 지중함을 알아 효심을 발해야 할 것이다
물이 있으므로 내가 있다.
물은 내 생명의 바탕이라 할 때 더구나 마실 맑은 물은
하루도 없으면 못사니 물이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물이 있다.물이 있어 유구한 역사속에 우리
중생들이 마시고 쓰고 농사용,공업용 등 도처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는데 우리 인간이 그 소중한 물을
오염시켜 이제 지구촌에는 인간이 마실 물이 극히
적다는 관련 학자들의 말이다.청정한 마음의 중생이
청정한 물과 국토를 유지해 길이길이 보존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고등동물인 인간이 지구 황폐화의
선두를 달리는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연기는 흐름이요,그 흐름을 타는 자가 보살이다
흐름에는 '맑음과 지속'이 요구된다.
'일체의 현상과 변화'가 연기다. 그 연기법이 부처님법
이다.부처님 법이 법신이다.연기의 작용에 법신이라는
부처님 이치와 뜻이 작용하니 연기를 보는 자가 부처님을 본다는 것이다. 남을 폭행하면 교도소 가듯,우리 지구촌 중생이 지구를 더럽히는 패악질로 환경지옥의
교도소를 머문 자리에서 맞이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으니..... 자각이 대각이다. 자신을 알고 밖을 아니
안팎을 관조해 하나임을 아니 깨달음이요,나와 남이
공히 행복과 자유를 마음껏 누릴수 있는 해탈이
되는 것이다.
'흐름'은 호흡이요 생명이다.
중생이 내 자식의 생명이 천하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것을 알면서도 전쟁을 하든 영업을 하든
생산 수익을 노리든 남의 자식 생명을 경시한다면
중생중에서도 가장 비루한 중생이 되는 것이다.
강변을 서성이는 아침을 이어 지는 해에 어쩔줄 모르며
부처님 국토가 쉴 수도 마실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했음에 고통은 깊어만 가고 있다. 독자는 '그러면 너는
환경 보살로 무엇을 했느냐?' 할 것이다. 나는 철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될수록 재사용을 한다. 궁상맞다고 하는데 일회용 도시락,일회용 커피잔이 관광지 도처에 버려지고 결국 산더미같이 쌓인 비닐이 저녁마다 태워지는 모습에 경악을 금할 길 없다. 그 오염된 물과 공기가 자신의 자식과 손자녀들의 코와 입으로 들어 간다 할 때 앞으로 지구역사가 백년을 못갈 것이라는 관련 학자들의 경고는 허언이 아닌 것임을 알겠다.
청정한 국토가 부처님 국토요,정토다.
그 부처님 국토에 사는 자를 불자라 하고 중생이라
한다. 다시말해 부처님 서원은 중새들의 건강,그것이
시작이자 끝이다. 맛있고 깨끗한 것을 먹이고 싶은 것이 부처님 마음이요,청정 국토에서 마음껏 호흡하며
뛰놀게 하는 것이 보살의 소원이다. 우리는 그 불보살님 서원에 답해야 한다. 내가 사바를 누린다함은
그에 상응한 절대적 책임이 부과되는 것이다.
부처님 은혜를 갚는다? 내가 살다간 찌꺼기 흔적을
안남기니 '공'이라 한다. 색즉시공-내 삶은 바람처럼
지내되 오염의 흔적을 남겨서는 안된다.
강변을 서성이다
중생을 아끼고 보듬는 자를 부처님이라 하고 불자라
한다. 서성임은 안타까움이요,부처님의 최고 가치가
'건강한 심신의 중생 행복'이다. 중생이 행복하지
않으면 부처님은 우신다. 대자대비라 한다. 소비도
좋고 경제도 좋다.지속기능의 지구촌 선순환을 위해
우리 모두는 잘 안다,어찌 해야 할 것인가를. 그러나
실천이 궁색하니 문제다. 우리가 백년 살다 가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새벽 4시가 지나면 대전
음식물 찌꺼기 부산물을 실은 차가 여러대 금동
폐기장으로 굉음을 내며 달리는 모습을 매일 본다.
자기 먹은 자리 그 말미를 깨끗이 하니 보살이요
먹은 자리가 잔반과 오염으로 지져분 하니 중생이다
뜨는 해와 지는 해
해가 대일여래 부처님이다.
맞이한 아침이 축복이고, 지는 노을이 축복이 되기
위해 약사여래불의 서원을 담아 부처님의 연기법을
숙지해 '흐름과 생명'의 숭고한 가르침의 실천궁행하는
대승보살이 될 것을 다짐한다. 나의 반쪽 배우자,나의 전부인 자녀들, 그들의 소중한 생명건강을 지켜줄 책무가 나와 우리에게 있음을 각성해야 한다.
해가 지면 놀던 새도 자기집을 찾아가 하루밤의 안온함을 꿈꾸듯, '나와 가족'이라는 절대 명제는 바로 '내 생각과 내 불심 기도'에 달렸음을 되뇌이며 이 신새벽에 또 끄적이며 하나의 공해를 더한다.
불기 2566.3.31 04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