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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사화(揆園史話)
漫 說 (만 설)
天其運乎, 地其處乎, 日月其爭於所乎. 孰主張是, 孰維綱是. 孰居天地之內, 恒推以行是. 意者, 其有機氣之不得已耶. 其運轉而不能自止耶. 觀! 夫大界列宿, 초초燦爛明朗, 其光自何, 其大幾何. 觀乎千인之岡而行人如豆, 望乎百里之海(而)歸帆似葉, 仰乎九萬里之遙而星辰如燭, 其大幾何, 其光何幾. 황! 地天之隔, 非但九萬者里耶! 人行于市而肩尻摩, 車轉于通衢則其곡搏. 星辰麗于穹蒼, 則昭昭耿耿, 齊齊整整, 井然有序, 罔或有侵. 孰引是, 孰主張是. 日遠於星, 月近於星耶. 抑! 亦星居乎最遠耶. 日月之大, 較於列宿, 何如. 洪爐之火, 隔丈而燎之, 則不過微溫; 滿車之氷, 距尋而當之, 則只感微凉. 日月之氣, 來自九萬里而凉熱逼人, 其熱幾何, 其寒凡幾.
漫說
하늘이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땅이 멎어 있는 것인가, 해와 달이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누가 이를 주재하여 펼치고, 누가 이를 붙잡아 다스리며, 어느 누가 하늘과 땅에 머물며 항상 이를 밀어서 움직이게 하는가. 생각건대 그 곳에는 바탕이 되는 기운이 있어 마지못해 그리되는 것인가, 그 움직이고 구르는 것은 스스로 멈추지 못해서 그렇게 되는 것인가.
이 넓은 세계에 늘어서 있는 별자리를 바라보노라면 멀디멀고도 찬란하게 밝으니, 그 빛은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그 크기는 얼마만한 것인가. 천 길 높은 산마루에서 살펴보노라면 지나다니는 사람은 마치 콩알만하고, 백리의 바닷길을 바라보노라면 돌아오는 돛단배가 마치 잎사귀 같은데, 9만리의 아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늘어선 별들은 마치 촛불과도 같으니, 그 크기는 얼마만한 것이며, 그 밝기는 얼마만한 것인가. 항차 땅과 하늘과의 간격이 단지 9만리 만 될 것인가.
사람들이 저자거리를 지나다니자면 어깨와 꽁무니가 맞닿이게 되고, 수레가 번화한 네거리를 지나가노라면 곧 그 바퀴가 부딪치게 되는데, 늘어선 별들은 높고 푸른 하늘에서 빛을 발하면서 밝디밝게 반짝거리고 가지런히 질서가 있어 행여나 침범하는 일도 없으니, 누가 이를 이끄는 것이며 누가 이를 주재하여 펼치는 것인가. 해는 별보다 멀고 달은 별보다 가까운 것인가, 아니면 별이 가장 멀리 있는 것인가. 해와 달의 크기는 별들과 비교하여 어떠한가. 큰 화로의 불도 열 자 떨어져 불길을 쬐면 단지 따뜻할 뿐이요, 수레에 가득 실은 얼음도 얼마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으면 단지 서늘할 뿐인데, 해와 달의 기운은 9만리의 먼 곳으로부터 오면서도 춥고 더움이 사람을 다그치니, 그 열기는 얼마만한 것이며, 그 냉기는 또한 얼마만한 것인가.
且夫! 山岳之莊雄, 河海之汪洋, 萬象森列, 兆物備載, 岳頂一(卷)
[拳]之石, 谷底一莖之草, 自得其所, 互誇厥美; 糞堆蠢연之蟲, 長渚飄泊之藻, 各安其所, 互弄厥質. 孰撑是而不崩, 孰護是而不決. 孰守是, 孰掩庇是. 意者, 宇宙之內.蒼茫之外, 別有眞神之主宰歟. 東人則曰桓因主神, 漢土之人則曰上帝, 西域之人則曰佛타, 大秦之人則曰天主, 皆以主宇宙.統萬象爲言. 其造物者之爲性也, 隨民而各異耶. 同체而異用耶. 抑! 同一而異觀耶. 同一之元首而, 我曰(王)
[壬]儉, 漢曰帝王, 倭曰命或尊. 諸民之名造翁也, 亦若是而已耶. 飛螢有光, 오木放氣, 시梨之木, 能接枝而致盛, 鳧鷄之屬, 能抱卵而자育. 是, 체質之外, 別有精力耶. 物物之精力, 能相交而致生耶. 宇宙之內.蒼茫之外, 別有精靈, 貫流周包, 推運其體質耶. 漢人之說, 盤古.三皇之開闢創始者, 實耶. 東人之言, 三神之肇判開創者, 眞耶. 余不敢校其善否, 宇宙之內.蒼茫之外, 別有一大精靈, 維綱是, 主張是, 能推運而經營之, 則信矣.
또한 산악의 웅장함과 강과 바다의 광대함 속에는 만 가지의 모습들이 늘어서 있고 억 가지의 사물들이 갖추어 실려 있으며, 산마루의 한줌 돌과 골짜기의 한 뿌리 풀도 스스로 자리하는 곳을 얻어 그 아름다움을 서로 뽐내고, 거름더미에서 꿈틀거리는 벌레와 늘 물가를 떠다니는 풀들도 제각기 자기 자리에 깃들여 그 모양을 서로 희롱하고 있으니, 누가 이를 떠받쳐서 무너지지 않게 하고 있으며, 누가 이를 보호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고 있는가. 누가 이를 지키고 있으며, 누가 이를 감싸안아 돌보고 있는 것인가.
생각건대,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참된 신이 있어 이를 주재하고 있는 것인가. 동방의 사람들은 곧 '환인주신(桓因主神)'이라 하고, 한나라 땅의 사람들은 '상제(上帝)'라 하며, 서역 사람들은 '불타(佛陀)'라 하고, 대진 사람들은 '천주(天主)'라 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바로 우주를 주재하고 만물을 통치함을 말로서 드러낸 것이다. 그 조물주의 성품은 백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것인가, 바탕은 같으면서 드러남만이 다른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온전히 같으나 달리 볼뿐인가. 같은 우두머리를 두고 우리는 '임금'이라 하고, 한나라는 '제왕'이라 하고, 왜는 '명' 혹은 '존'이라 하니, 모든 민족이 조물주를 이름하는 것 또한 그와 같을 따름인가.
날아다니는 반딧불에도 빛이 있고, 썩은 나무에서도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감나무 배나무는 가지에 접을 붙이면 능히 과실이 무성해 지고, 오리나 닭 등은 알을 품어 능히 새끼를 낳아 기른다. 이것은 몸의 바탕 외에 따로 응결된 힘이 있어서 그러한가. 그러한 사물과 사물들의 응결된 힘이 서로 교접하여 능히 생명을 낳게 되는 것인가.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정령(精靈)이 있어서 일관되게 흐르고 두루 감싸안으며 그 몸의 바탕을 밀어 움직이게 하는 것이겠는가. 한나라 사람의 말에는 반고(盤古)와 삼황(三皇)1)이 세상을 처음으로 연 창시자라 하는데, 이것이 진실인가. 동방 사람의 말에는 삼신(三神)이 세상을 처음으로 가른 창조자라 하는 데, 이것이 진실인가. 내가 감히 그 옳고 그름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따로 한 큰 정령(精靈)이있어서, 이 세상을 잡아 유지하고 이 세상을 주재하여 펼치며 능히 밀어 움직여서 이 세상을 이끌어 나간다고 한다면 곧 믿을 만한 것이 될 것이리다.
人生則체溫而動, 靈能慧明; 人[事]
(死)則(驅)
[軀]殼厥(今)
[冷], 骨肉梗固, 腐爛而散滅, 不數年而膚肉不留, 不百年而骨骸莫存. 天地之氣, 聚而爲物.爲質, 散則復爲空.爲氣歟. 靈性發於氣質, [氣質]散亡則靈性亦隨而滅歟. 抑! 天地靈秀之性, 鍾而爲靈, 貞明之氣, 聚而爲體, 체沒而靈自不滅耶. 靈旣不(沒)
[滅]則返朝于天耶, 悠悠然, 縱遊乎六合耶, 抑! 如佛氏之說, 時墮輪回之苦, 重疊而爲人耶. 觀! 夫蟲蠶卵者, 能知其爲母蛾所産耶. 卵化爲충, 연연然索餌而走動, 能知其[從爲]
(爲從)卵而出者耶. 충旣成長, 造繭脫毛而爲용, 暗眠於其中, 使人觀之, 거거然樂矣. 雖然,渠能知其方夢而覺夏충之爲용耶. 용旣수滿, 則脫殼爲蛾, 穿繭而出, 翩翩然飛(飛)
舞於林월, 渠能知其自용而變化者耶. 使人高脫乎其外, 歷觀變化之迹, 則其序瞭然, 曾無毫末之疑. 使蛾自量, 則是個未知從來底一生涯也, 寧知其四變之序耶. 使造翁超脫乎塵外, 達觀乎人生變化之迹, 則是亦若是而已耶.
사람이 살아 있으면 곧 몸은 따뜻하며 움직이게 되고 영혼은 능히 총명하고 밝지만, 사람이 죽으면 곧 몸덩이는 싸늘해져 뼈는 굳어지고 육체는 썩어 문드러져 흩어 없어지게 되니,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피부나 육체는 남아 있지 않고, 백년이 못 되어서 뼈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모이면 사물의 바탕이 되고, 흩어지면 다시금 공허로운 기운이 되는 것인가. 영혼의 본질은 기운이 모습을 갖춘 다음에 그 곳으로부터 생겨나며, 그 기운의 모습이 흩어져 없어지면 영혼의 본질 또한 그에 따라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하늘과 땅의 신령스럽고도 빼어난 본질이 모여 영혼이 되고, 곧고도 밝은 기운이 뭉쳐 몸이 되는 것이니, 몸은 사라지더라도 영혼은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게 영혼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곧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인가, 유유히 천지 사방을 떠돈다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부처의 말처럼 운명에 따라 윤회의 괴로움에 떨어져 거듭되게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인가.
살펴보건대, 무릇 한낱 벌레인 누에의 알이 어미인 나비가 낳음으로 해서 자신이 생겨난 것임을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알이 부화하여 벌레가 되어 꿈틀거리며 먹이를 찾으러 쫓아다니면서 그 자신이 알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벌레가 자라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그 속에서 깊이 잠드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라면서도 즐거워하는데, 그 자신이 곧 잠을 잘 것이라는 것을 어찌 능히 알 것이며, 여름날의 벌레가 그 자신이 곧 고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고치가 잠에서 깨어나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어 고치를 뚫고 나와 숲속을 훨훨 날아다니는데, 그 자신이 고치에서 변화하였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사람은 멀찌감치 벗어나 그 밖에 있으면서 변화하는 자취를 낱낱이 보게 되니 그 순서가 분명하여 아무런 의심도 없다. 나비는 스스로를 헤아린다 하더라도 한 생애를 다하도록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도 알지를 못하니, 네번이나 변하는 그 순서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조물주는 세상의 바깥에 벗어나 있으면서 사람의 삶이 변화하는 자취를 멀리서 두루 바라보면 그 또한 이와 같을 따름이 아니겠는가.
范縝有言曰: 「形者神之質, 神者形之用也. 神之於形, 猶利之於刀. 未聞, 刀沒而利尙存. 豈容形亡而神在哉!」 是說眞耶. 儒曰「魂升而魄降」, 佛曰「靈魂不滅」, 而涅槃.地獄.輪回.解脫之說, 最繁. 乃檀儉則曰: 「功完而朝天, [歸神鄕.」 又曰: 「扶萬善, 滅萬惡, 性通功完乃朝天.」]2)
佛說可耶, 儒說不소耶, [桓]
(檀)儉之訓眞耶. 抑! 范縝神滅之論, 乃發前人所未發者耶. [人何由生], 人何由死. 人生自何, 人死歸何. 生是寄也[而]死乃歸耶. 生乃起也[而]死則落耶. 生也有涯而死則無涯耶. 抑! 亦死而後始有, 無限眞善之境耶. 摩利之塹城壇, 則經四千載而健存, 漠南之長城, 歷二千餘歲而猶崇墉屹屹, 慶州之瞻星臺, 過千數百年而尙巍巍然特立. 然(特立然)
則, 人之所肩擔手磨, 規矩繩墨之者, 能閱累千載而不滅, 獨, 肩擔手磨, 規矩而繩墨(之)[之]
之人生, 則與腐血오肉, 盡消永滅於黃沙腐土之中, 不曾精靈之有留耶.
범신(范縝)이 한 말에 이르기를 「모습은 정신의 바탕이요 정신은 모습의 활용이다. 모습에 있어서 정신은 마치 칼에 있어서 날과도 같은 것이니, 칼이 없어지고 나서도 날이 남아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어찌 모습이 없어지고 나서도 정신이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이 말이 참된 것인가. 유가에서는 「혼(魂)은 오르고 백(魄)은 내린다」 하였고, 불가에서는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하여 열반·지옥·윤회·해탈 등의 말이 가장 많으며, 단군 임금은 이르기를 「맡은 바를 완전히 이루면 하늘에 올라 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였으며, 또한 「모든 착한 것을 북돋우고 모든 악한 것을 소멸시키며, 본성에 통하고 맡은 바를 완전히 이루면 하늘에 오르게 된다」 하였다. 불가의 말이 맞는가, 유가의 말이 충실한 것인가, 단군 임금의 교훈이 진실된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범진의 '정신 소멸론'이 앞선 사람들이 아직까지 밝히지 못한 새로운 것을 드러낸 것이란 말인가.
사람은 어찌하여 생겨나는 것이며, 사람은 어찌하여 죽는 것인가. 사람은 어디서부터 생겨나는 것이며,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돌아가는 것인가. 삶이란 잠시 의지하는 것이요, 죽음이 곧 본질로 돌아가는 것인가. 삶이 바로 본질을 깨워 일으키는 것이고, 죽음은 곧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인가. 삶이란 것에는 끝이 있지만, 죽음에는 곧 끝이 없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역시 죽고 나서야 비로소 무한한 참된 선의 경계가 있게 되는 것인가.
마리의 참성단은 4천년이 지났지만 굳건히 남아 있고, 사막 남쪽의 만리장성은 2천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높은 담으로 쭈삣쭈삣하게 서 있으며, 경주의 첨성대는 1천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높다랗게 우뚝 솟아 있다. 그러한 즉, 사람이 어깨로 지고 손으로 갈며 먹줄을 퉁긴 것은 능히 수천 년이 지나고도 없어지지 않았는데, 유독 그것을 어깨로 지고 손으로 갈며 먹줄을 퉁겼던 사람의 생은 부패한 피와 썩은 살과 함께 모두 사라져서 누른 모래와 썩은 흙 사이로 영원히 없어져 버렸으니, 일찍이 정령(精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宇宙之內.蒼茫之外, 旣有一大精靈, 미滿而推運之. 則人之生也, 非但血肉骨骸之, 從氣質中受者也, 更有精神魂魄之, 自精靈而稟者也. 余於儒.佛及檀儉之說, 雖不遑其辨證, 而人生自有不滅之靈, 扶善滅惡, 通性完功, 則身固有死, 而英靈不泯, 能朝天而入神鄕, 則可信矣.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이미 하나의 큰 정령이 있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밀어 움직이는데, 곧 사람의 삶이란 것은 비단 피와 살과 뼈를 그 기운의 바탕에 따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 다시 정신과 혼백을 정령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나는 유가나 불가 및 단군 임금의 말에 대해 비록 증명할 만한 겨를이 없으나, 사람의 삶에는 없어지지 않는 영(靈)이 있어서 착함을 북돋우고 악함을 소멸시키며 본성에 통하고 맡은 바를 온전히 하면, 곧 신체는 굳어져 죽는다 하더라도 영령(英靈)은 없어지지 않고 능히 하늘에 올라 신의 고향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믿을 만하다고 여겨진다.
昔者永郞, 恨人生之無幾, 慕先聖之化神, 乃棄其率, 入向彌山中, 修道行, 年九十有영兒之色, 鷺羽之冠, 鐵竹之杖, 逍遙于湖山. 神女寶德, 歎부유之殘命, 惜朝露之易消, 乃求師學道, 抱琴以歌, 音若靈소之玉簫, 貌若秋水之芙蓉. 是固, 仙之達者也. 若夫, 齊.景公, 泣牛山之落日; 秦皇, 嘆東南之雲氣; 漢武, 有悔於汾水之秋風; 阮籍, 乃哭於窮道, 落日蒼蒼者, 是人生之悲處耶. 秦皇而無死, 則東南之雲氣, 竟得無驗耶. 漢武而遇仙, 則建章柏(粱)
[樑], 終免黃塵耶. 阮籍而寄生於虞舜之世, 則擊石부石, 率百獸以舞耶. 人之說生者, 是惑耶. 惡死者, 是弱(衰)
[喪]而不知歸者耶. 方其夢而不知夢者耶. 余與人, 皆夢耶. (人之死者)[人之死者]
人之說死者, 信可悔, 其始之기生耶. 此世則苦海也[而], 人之生也是墜落於苦海者耶. 兒出胎門則便哭, 眞有愁於人世而然耶.
예전에 영랑(永郞)이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고 앞선 성인들이 신이 되었음을 사모하다가 그 식솔을 버리고 향미산(向彌山)에 들어가 도를 닦더니, 나이 아흔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얼굴 색을 하고서 백로의 깃으로 만든 관에 철죽(鐵竹) 지팡이를 짚고 호수와 산을 거닐었다. 신녀(神女) 보덕(寶德)이 하루살이의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한탄하며 아침 이슬이 쉽게 사라지는 것을 애석해 하더니, 이에 스승을 찾아가 도를 배우고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는 마치 영묘한 하늘의 옥퉁소 같았고 그 모습은 마치 가을 연못의 연꽃과도 같았다. 이러한 것이 진실로 신선에 이른 것이라 할 것이다.
또한 제나라의 경공(景公)은 우산(牛山)에 떨어지는 해를 보고 눈물을 흘렸으며, 진나라의 시황제는 동남의 구름 기운을 보고 한탄하였으며, 한나라의 무제는 분수(汾水)의 가을 바람결에 후회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완적(阮籍)은 갈 길은 어려워지는데 해는 기울어 어둑어둑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하니, 이것이 인생의 슬픔이 아니겠는가. 진시황에게 죽음이 없었더라도 동남에서 피어난 구름의 기운에 결국에는 그 영험스러움이 없었을 것인가. 한무제가 신선을 만났더라도 새로운 문장(文章)을 만들어 내었던 백량대(柏梁臺)3)가 결국에 가서는 누런 먼지로 변함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완적이 순임금의 태평세대에 더불어 살았더라면 옥쟁반을 두드리며 온갖 짐승을 거느리고 춤을 추었겠는가.
사람으로서 삶을 좋아하는 것은 삶에 미혹되어서이며,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돌아 갈 곳을 몰라서인가. 한참 꿈을 꾸면서도 꿈인 줄을 모르는 것인가.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사람의 죽음이란 살아 있음을 참으로 한스러워 하다가, 죽음으로서 비로소 참된 삶이 된다는 말인가. 이 세상은 고통의 바다이며 사람의 삶이란 것이 바로 고통의 바다에 추락한 것이라는 말인가. 어린아이가 뱃속을 나서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는 것은 진실로 세상에 대해 근심이 있어서 그러한 것인가.
觀! 夫市朝, 宏樓層疊, 士女繁鬧, 肥馬大道, 長嘶花朝. 觀! 夫北邙, 古墳衰敗, 촉루荒落, 寒鴉古木, 悲鳴秋風. 前何是熱, 後何是冷耶. 人之生也, 竟若是而已耶. 雲捲而山空, 潮落而海虛, 日月落, 星辰蔽而天地居然(瞑)
[冥]閉, 人之死也, 竟若是而已耶. 觀乎! 窮부飢男뇌女, 屋漏而창裂, 료浸조, 雪打戶, 破衣襤褸, 頭蓬面垢, 何樂之樂, 何生之生! 人生而難得公侯豪傑之勢, 高人烈士之趣, 寒규衣, 飢呼食, 견견役役而終一生, 寧投海而死者可耶. 觀乎蜂蟻! 將者.卒者.守者.戰者.役者.産者, 雄雄(窺窺)
[雍雍], 來來去去, 運花搬(密)
[蜜], 探腐捨死, 勞勞役役, 勤勤孜孜. 意者, 微物亦有, 久遠之大計耶. 抑! 旣有生則, 必求其存而不能自止者耶. 人之於生也, 亦若是而已耶. 世如苦海, 夭者爲福而壽者爲禍, 夭而無寃易, 壽而作善難, 人可赴海而死, 以(端)
[短]其壽者善耶. 抑! 亦忍痛耐苦, 長其生而積其善, 以入于涅(盤)
[槃]者, 爲最善耶.
저자거리를 살펴보노라면 거대한 누각은 층층이 겹쳐져 있고, 선비와 계집들은 북적북적 시끄러우며, 살찐 말은 큰길가에서 꽃이 피는 아침에 길게 울음을 운다. 그러다 북망산천을 바라보노라면 옛 무덤들은 허물어 쓰러지고 해골은 버려져 흩날려 있으며, 을씨년스러운 까마귀는 고목 위에서 가을 바람에 슬피 울고 있다. 이곳은 어찌 이리도 활기차며 저곳은 어찌 저리도 을씨년스러운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이와 같을 따름인가. 구름이 걷히면 산은 텅 비게 되고, 조수가 밀려가면 바다는 허전해지며, 해와 달이 떨어지고 늘어선 별들이 가려지면 천지는 꼼짝없이 어둠으로 닫혀지게 되니,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결국에는 이와 같을 따름인가.
가릴 것도 변변찮은 굶주린 남녀를 보노라면, 새는 집에 창은 찢어지고, 장마에는 부엌이 물로 잠기고 눈발은 집안으로 휘몰아치며, 남루하게 떨어진 옷에다 흐트러진 머리와 때가 낀 얼굴을 하고 있으니, 즐거움이 무슨 즐거움일 것이며 삶이 무슨 삶이겠는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다 공후(公侯)나 호걸(豪傑)의 권세와 고인(高人)과 열사(烈士)의 풍취를 어렵게 얻게 되는데, 추우면 옷을 입고 주리면 밥을 먹으며 전전긍긍 한 평생을 마치게 되느니, 차라리 바다에 뛰어들어 죽어 버리는 것이 낳지 않겠는가.
벌과 개미를 보라! 앞선 놈과 따르는 놈, 지키는 놈과 싸우는 놈, 일하는 놈과 새끼 낳는 놈들이 사이좋게 윙윙거리며 왔다 갔다 하면서 꽃의 꿀을 따 옮기고 죽어 버려진 것을 찾아 모으며 한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 생각건대 미물에게도 먼 앞날을 생각하는 큰 계획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주어진 삶이니 오로지 그 생존만을 갈구하여 스스로 그치지를 못할 뿐인가.
사람이 삶에 대한 것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인가. 세상이 마치 고통의 바다와 같다면 요절하는 자는 복이 되고 장수하는 자는 재앙이 되며, 요절하면 억울한 것이 없기 쉽고 장수하면 착함을 이루기 어려운 것이 되니, 사람마다 모두 바다로 달려나가 죽음으로서 생명을 단축하는 게 옳은 일이라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역시 고통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그 삶을 늘이고 선을 쌓아 이로 열반에 드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가.
余于人之生死, 不敢妄斷而, 宇宙之內.蒼茫之外, 儼存者主宰, 欲扶眞養善, 滅惡消凶, 以率萬物而生人也, 則信矣. 人之於生也, 樂道安分, 忍辛耐苦, 勤孜而毋敢怨, 則善矣; 存性養志, 行善而不怠, 使得俯仰而無愧, 則雖死而無(感)
[餘], 亦足矣. 余, 於是乎, 歎聖訓之無소, 而知震域之壽祿, 能致其久遠也.
내가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감히 망령되게 단언하지는 못하나,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분이 세상을 주재하며, 진실을 북돋우고 선을 기르며 흉악함을 소멸시키고자 하면서 만물을 통솔하고 사람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곧 믿을 만한 것일 것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도리를 좋아하고 분수를 지키며 괴로움과 고통을 참고 견디어 힘써 일하면서 함부로 원망을 하지 않는다면 곧 착하다 할 것이며, 품성을 보존하고 뜻을 기르며 착한 일을 행함에 태만하지 않아서 하늘을 우르러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기에 비록 죽는다 하여도 여한이 없다면 역시 족할 것이다. 내가 그러한 까닭에 우리 성인들의 가르침이 없어지고 드물어진 것은 한탄스럽지만, 우리 진역(震域)의 장수와 복록은 능히 오래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莊子》曰: 「天道運而無所積, 故萬物成. 帝道運而無所積, 故天下歸. 聖道運而無所積, 故海內服.」 此三者, 皆藉物之性而無所牽滯也. 夫帝王之德, 以天地爲宗, 以道德爲主, 以率萬民.順萬事爲用. 昔者, 神市氏旣開創萬始, 垂範萬類, 體天道而導物性. 及夫檀儉之世, 而(後)
[復]建都立國, 分邦設牧, 純誠抱一, 以則天範, 秉天心以及于人心, 扶萬善, 滅萬惡. 於是, 萬民以化, 天下以靖, 及其功完, 則竟朝天而入
神鄕. 昭格陟降, 子懷我民, 聖澤神律, 洽被萬世, 의歟盛哉! 夫婁承統, 益修德政, 廣采賢能, 啓學而廣敎, 聲聞大彰. 嘉勒續位, 能繼父祖之道, 西린失德, 仗善征惡, 威被天下, 兆民慕化. 於是, 振振神孫, 繩繩繼位, 歷千二百載而, 國無弑逆簒奪之變, 民無魚肉塡充之禍. 定南夷, 平알견兪, 討夏征殷, 建侯于禹域; 逐앙肅, 平阿叱, 縱有앙骨之肆毒, 乃竟服乎帝德, 細民有犯, 卒化於神韻, 震域萬年之鴻基, 旣原於此也.
《장자》에 이르기를 「하늘의 도는 운행될 뿐 쌓이는 바가 없는 까닭에 만물이 다스려지게 되는 것이고, 제왕의 도는 운행될 뿐 쌓이는 바가 없는 까닭에 천하가 돌아와 의지하게 되는 것이며, 성인의 도는 운행될 뿐 쌓이는 바가 없는 까닭에 나라 안이 모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라 하였으니, 이 세 가지는 모두 사물의 본 모습에 의지하는 까닭에 막히는 바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무릇 제왕의 덕은 천지를 근본으로 삼고 도덕을 으뜸으로 삼으며, 만민을 통솔하고 만사를 바르게 하는 것을 그 쓰임으로 삼는다.
예전에 신시씨가 세계를 열고 만물을 비롯하게 하여 모든 무리에게 본보기를 드리우고, 하늘의 도를 체득하여 사물의 본 모습을 계도하였다. 단군 임금의 시대에 이르러 다시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고 지방을 나누어 제후를 두니, 순수한 정성은 하나로 뭉쳐 곧 하늘 모범이 되었으며, 천심을 잡아 지켜 이로써 민심에 미치게 하고, 모든 선을 북돋우고 모든 악을 없앴다. 모든 백성이 이로써 교화되고 천하가 이로써 편안히 다스려 지니, 그 맡은 바를 다함에 이르러 마침내 하늘에 올라 신의 고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밝디밝게 하늘을 오르내리며 우리의 백성들을 아들과 같이 품으니 성인의 은택과 신인의 법도는 만세에 미치게 되는지라, 오호라 그 융성함이여!
부루가 그 전통을 이어서 더욱 덕스러운 정치를 닦으며, 어질고 능력 있는 이를 널리 가려뽑아 학문을 계도하고 널리 가르치니 명성이 자자하였다. 가륵이 임금의 자리를 이어 능히 부왕과 조부의 도를 계승하였는데, 서방의 하나라가 덕을 잃음에 좋은 것은 권장하고 나쁜 것은 정벌하여 없애니, 그 위세가 천하에 미치고 만백성이 모두 그 교화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쟁쟁한 신인의 후손들이 1천2백년을 면면히 그 보위를 이어가니, 나라에는 임금을 시해하고 보위를 찬탈하는 변고가 없었으며, 백성에게는 무참히 짓밟히는 재난이 없었다. 남이를 다스리고 설유를 평정하였으며, 하나라를 토벌하고 은나라를 정벌한 뒤에 제후를 중원 땅에 두었다. 또한 앙숙을 쫓아내고 아질을 평정하였으며, 비록 앙골의 방자한 해독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제왕의 덕에 복종하였으며, 가난한 백성이 죄를 저지르기는 하였으나 마침내 신인의 운치에 교화되고 말았으니, 진역(震域)의 1만년에 이르는 커다란 기초가 이미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方外之人, 名之以君子國, 言其俗則曰「衣冠帶劒, 好讓不爭.」 郭璞贊之則曰: 「有東方氣仁國, 有君子.薰華, 雅好禮讓, 禮委論理.」 胥餘避周, 則慕化歸依, 安(捿)
[棲]一枝, 綿延千年, 遺裔尙繁.《王制》則記曰: 「仁而好生, 萬物저地而出.」 仲尼歎其道之不行, 則欲乘부浮海而居九夷, 以君子所居爲說. 許愼作《說文》則曰: 「唯東夷人人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以孔子之乘부欲去, 謂有以. 東方朔著《神異(徑)
[經]》, 則以「恭坐而不相犯, 相譽而不相毁, 見人有患, 投死救之.」 名曰「善人」. 此則言, 能仁而復能勇, 能恭而復能烈, 敬美而不妄言. 具眞人之美德, 兼剛柔之良能也. 余, 於是乎, 誇爲東夷之人也.
바깥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군자의 나라'라 이름하고, 그 풍속을 일컬어 「의복에 관을 쓰고 검을 차고 다녔으며, 양보를 좋아하고 서로 싸우지 않는다」 하였다. 곽박은 찬탄하여 이르기를 「동방에 기운이 어진 나라에는 군자가 있고 훈화(薰華)가 있으니, 우아하면서도 예절과 사양함을 좋아하고 예의로서 이치를 논한다」 하였다. 서여(胥餘)는 주나라를 피해 물러나와 임금의 교화를 사모하여 귀의하고 나라의 한쪽 편에 편안히 머무르니, 면면히 1천년 동안을 그 후예들이 항상 번창하였다.
《왕제(王制)》에 기록되어 이르기를 「어질고도 기르기를 좋아하니 만물이 그 땅에 뿌리를 두고서 나온다」 하였으며, 중니는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한탄하여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의 땅에 머물고 싶다 하였으니, 이는 군자가 거처하는 곳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허신이《설문(說文)》에서 말하기를 「오직 동이만이 큰 것을 좇으니 대인이다. 동이의 풍속은 어질며 어진 자는 장수를 누리니 '군자의 나라'·'불사의 나라'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 하였으니, 이로서 '공자가 뗏목을 타고 가고 싶어하다'라는 말이 있게 된 것이다. 동방삭이《신이경(神異經)》을 지으며 「공손히 앉아 서로를 거스러지 않고 서로 칭찬할 뿐 서로를 헐뜯지 않으며,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보면 목숨을 바쳐 이를 구해 준다」는 것을 일컬어 '선인(善人)'이라 이름하였다. 이는 곧 어질고도 또한 용감하며, 공손하고도 또한 굳세며, 아름다움을 공경하면서도 망령된 말은 하지 않으며, 참된 사람으로서의 미덕을 모두 갖추고, 강인함과 유순함의 좋은 점을 두루 겸비하였음을 말한다. 내가 이러한 까닭에 동이인이 됨을 자랑하는 것이다.
《尙書·堯典》曰: 「分命羲仲, 宅우夷, 曰暘谷.」 <禹貢>曰: 「海(垈)
[岱]惟靑州, 우夷旣략.」 則是, 東人之占(居)
[據]於
海(垈)
[岱]之間也. 冀州有皮服之島夷, 則是, 東人自渤海西北諸島, 遷居冀州近海之地也. 揚州有卉服之島夷, 則是, 東人自揚州以東諸島, 徙居乎江淮之間也. 更有, 作牧之萊夷, 商빈珠.纖縞之淮夷, 則是, 又東人之相地審勢, 應便營生之一端也. 上古, 人心素樸, 雖異族隣處, 非非常之際, 則必各守其業, 不甚相侵而互觀其勢, 若强弱懸殊而治亂相反, 則必生征戰之端. 此, [屹]達遣兵빈.岐, 勿理建侯殷地也. 余, 於是乎, 歎上古我先民之武勇也.
《상서》의 <요전(堯典)>에 이르기를 「따로 희중(羲仲)에게 명하여 우이(우夷)의 땅에 머물며 다스리게 하니, 그 곳이 바로 양곡(暘谷)이다」라 하였으며, <우공(禹貢)>에 이르기를 「해대(海岱)는 바로 청주(靑州)인데, 우이(우夷)가 이미 그 곳을 다스렸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곧 동방의 사람들이 해대 사이의 땅을 차지하여 살았다는 것이다. 기주(冀州)에는 가죽 옷을 입은 도이(島夷)4)가 있었는데, 이는 곧 동방의 사람들이 발해 서북의 뭇 섬으로부터 기주 바닷가의 땅으로 옮겨가서 거처한 것을 말한다. 양주(揚州)에는 풀 옷을 입은 도이(島夷)가 있었는데, 이는 곧 동방의 사람들이 양주 동쪽의 뭇 섬으로부터 강회 사이의 땅으로 옮겨가 거처한 것을 말한다. 또한 목축을 하는 래이(萊夷)와 진주나 비단 명주 등을 거래하는 회이(淮夷)가 있었는데, 이는 또한 동방의 사람들이 양편 지역의 형세를 살펴 가며 편한 곳을 따라 삶을 꾸려 가던 한 모습이다.
상고 시대에는 인심이 소박하여 비록 다른 종족이 이웃하여 있어도 비상시가 아니면 반드시 자기들의 생업을 지키며 서로 침범하지 않고 서로 그 형세를 보고 있다가, 만약 힘의 균형이 두드러지게 차이나거나 정치가 어지러워 반목하게 되면 곧 반드시 전쟁을 일으키는 실마리가 되었다. 이것은 바로 흘달 임금이 군사를 빈·기로 보내고, 물리 임금이 은나라 땅에 제후를 세운 것 등이다. 내가 이러한 까닭에 상고 시대 우리 선민들의 용맹스러운 무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幸無偏, 技不專, 故天下之物, 無獨享其安而專擅其威者也. 何以知其然耶. 夫! 瓜.牙者, 虎.豹之幸也, 而牛.鹿之不幸也, 頭角者, 牛.鹿之幸也, 而虎.豹之禍也. 묘.유之捷, 一(枝)
[技]也, 而鼠.雀之迅, 亦一(枝)
[技]也. 鷹.준之擊, 固所難避, 而密林深竇, 可藏鳥.鼠. 鴻(雁)
[안].鳧鴨, 旣無銳瓜利嘴, 則或高飛遠翔以避수敵, 或迅飛淵潛, 圖脫刑禍. 관.鶴之嘴, (特)
[恃]長誇銳, 則蛇藏穴, 추沒泥, 蟹入孔, 蛤掩甲. 此, 乃鷹.준.관.鶴之屬, 各有一(枝)
[技]一幸(也), 而鳥.鼠.안.鴨.蛇.추.蟹.蛤之類, 亦各有一(枝)
[技]一幸[也]. 且夫, 蛇鈍於回轉, 則蛙.鼠之幸也, 豺.狼無攀木之能, 則猿후之幸也. 斷而能生, 則구蛭之幸也, 全身毒毛, 則夏
(충)
[蟲]之幸也. 及若蜂헐之有석, 蟾서之吐液, 龜鼈之縮首, (설)[설]
석척之脆尾, 皆於探餌防敵, 禦侮逃命, 莫不爲一(枝)
[技]一幸也. 於是焉, 以虎豹之强而, 不免轉逐之勞.飢渴之苦, 牛鹿之柔而, 亦得保殖之幸.眠흘之樂. 其他, (猫)
[묘].유.鷹.준.관.鶴之屬之爲强, 鼠.雀.鴻.(雁)
[안].鳧.鴨之屬之爲弱, 罔或不然. 天下豈有, 不勞之功.無難之安耶.
행운은 치우침이 없고 재주는 독점되지 않는 까닭에 천하의 만물 가운데 홀로 편안함을 누리고 그 위세로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하는 것은 없다. 어찌 그러함을 아는가. 무릇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은 범이나 표범에게는 다행한 것이 되지만 소와 사슴에게는 불행한 것이며, 머리의 뿔은 소나 사슴에게는 다행이지만 범이나 표범에게는 화근이 된다. 고양이나 족제비의 날랜 사냥 솜씨가 하나의 재주라면, 쥐나 참새의 민첩함 또한 하나의 재주이다. 매와 송골매의 공격은 물론 피하기가 어렵지만, 우거진 수풀이나 깊은 구멍은 새와 쥐를 숨겨 주곤 한다.
기러기와 오리는 본디 날카로운 발톱이나 예리한 부리는 없으나, 혹은 높이 날갯짓하며 멀리 날아올라 적을 피하고, 혹은 재빨리 날거나 연못 속에 잠기어 화를 벗어나곤 한다. 황새와 학의 부리가 길고도 날카로움을 자랑한다면, 뱀은 굴에 숨고, 지렁이는 진흙 속에 잠기며, 게는 구멍으로 들어가고, 조개는 갑옷으로 가린다. 이는 곧 매·송골매·황새·학 등의 무리에게 각기 한 가지의 재주가 있음이 행운이듯이, 새·쥐·기러기·오리·뱀·지렁이·게·조개 등의 종류에게도 역시 각기 한 가지의 재주가 있어 행운인 것이다.
또한 뱀이 몸을 갑자기 돌리는 것에 둔한 것은 곧 개구리나 쥐에게는 행운이요, 승냥이나 이리에게 나무를 타는 능력이 없음은 원숭이에게 행운이 된다. 끊어지고도 능히 살 수 있는 것은 지렁이와 거머리의 행운이요, 온몸에 독이 있는 털을 지닌 것은 여름 벌레의 행운이다. 벌과 전갈이 침을 쏘고 두꺼비가 액을 토하는 것과, 거북이와 자라의 움츠린 머리와 도마뱀의 무른 꼬리 등은 모두 먹이를 찾아다니면서 적의 해꾸지를 막고 도망하여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니, 한 가지의 재주가 곧 한 가지의 행운이 되지 않음이 없다. 그러하기에 범과 표범이 강하기는 하지만 구르고 쫓는 수고와 주리고 목마른 고통을 면치 못하며, 소와 사슴은 연약하지만 생명을 보존하여 번식하는 행운과 잠자고 먹는 즐거움을 얻은 것이다. 그 밖에 고양이·족제비·매·송골매·황새·학 등의 강한 무리와 쥐·참새·기러기·오리 등의 약한 무리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니, 하늘 아래 어찌 수고하지 않고 얻는 공로와 어려움이 없는 안락이 있을 수 있겠는가!
嘗聞, 天竺有獅子者, 爲四足獸中獨步, 一切生類, 聞其吼則震驚, 魚沒深淵, 獸藏窟穴, 飛禽墜落, 莫不逃竄, 盖百獸之王也. 若[使][師]
(獅)子, 添翼付기, 大小如意, 則必飛食鳥.走食獸.水呑魚.穴呑鼠雀, 跨水陸.通上下而不遺蠢物, 天下復有, 保生之類耶. 雖然, 造翁之意, 自無偏벽, 寧有盡驅一世之生類, 獨充貪獅, 堅欲之惡理耶. 是以, 海容寸銖之魚, 山有指小之雀, 樹息飮露之蟬, 泥藏無目之구, 연연微충, 亦同[浴]皇天之洪恩. 然則, 世間豈有, 각權專富之家, 獨覇專强之國耶. 故諺曰「未有不亡之國, 曾無不敗之家.」 余, 於是乎, 知民物之不可無危難, 而覺家國之興亡不得免번覆無常也. 然則, 安可以眠前榮枯, 二三其心也哉!
듣건대 천축에는 '사자'라는 놈이 있어 네발 달린 짐승 중에 독보적이라 하는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그 울부짖는 소리만 듣고도 두려워 놀라서, 고기는 깊은 연못 속으로 잠기고, 들짐승은 굴 속으로 숨어 버리며, 날짐승은 놀라 떨어지는 등 도망하여 숨지 않는 것이 없으니, 무릇 뭇 짐승의 왕이라 하였다. 만약 사자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비늘을 붙여 주며 몸을 줄였다 늘였다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한다면, 날아다니며 새를 잡아먹고, 뛰어다니면서 짐승을 잡아먹으며, 물에서는 고기를 삼키고, 구멍에 들어가 쥐와 참새를 삼키는 등 물과 뭍을 깔고 앉아 상하를 통하며 반드시 움직이는 물건이라고는 남기지 않을 것이니, 하늘 아래 목숨을 보존하는 생물이 또 다시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조물주의 뜻에는 본디 편벽됨이 없는데, 어찌 한 세상의 생물을 모두 몰아 사자의 탐욕스런 욕심만 채워 주는 나쁜 이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바다는 한치의 작은 물고기도 받아들이고, 산에는 손가락 만한 작은 참새도 있으며, 나무에는 이슬을 먹고사는 매미가 서식하고, 진흙 속에는 눈이 없는 지렁이가 숨어 있으니, 꿈틀거리는 하잘것없는 벌레 또한 하늘의 큰 은혜를 같이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에 어찌 권세를 도거리하고 부귀를 독점하는 집안과, 패권을 차지하여 외곬으로 강하기만 한 나라가 있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속담에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고, 패하지 않는 집안은 없다' 하였으니, 내가 그리하여 백성과 사물에게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가정과 나라의 흥망이 되풀이되어 무상함을 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까닭에 어찌 눈앞의 영고성쇠에 마음이 흔들리겠는가!
天人之際, 覆育之化, 大矣, 未遑長說. 地人之際, 載安之德, 厚矣, 其陶冶感薰之功, 甚巨. 是以國相都. 民擇里, 未嘗敢忽. 夫相都.擇里者, 欲其選地理風氣之適善也. 盖定都占居, 固不可忽也. 至如闔國全族之於地理風氣, 其休戚之係甚重, 此不敢少忽也.
하늘은 사람에게 있어 감싸 기르는 조화가 위대함에 장황하게 말하지는 못할 바이다. 땅은 사람에게 있어 실어 편안케하는 공덕이 두터우니, 인재를 기르고 교화에 물들게 하는 공적은 실로 크다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 도읍을 선택하고 백성들이 동리를 고르는 것을 감히 소흘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릇 도읍을 택하고 동리를 고른다는 것은 땅의 이치와 바람의 기운이 적합하고 좋은 곳을 고르고자 하는 것이니, 대저 도읍을 정하고 살 곳을 결정하는 것은 진실로 소흘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온 나라와 온 가족과 같은 경우에는 땅의 이치와 바람의 기운에 따라 기쁨과 근심의 연루됨이 매우 심하니, 이를 감히 가벼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夫, 天之於物, 不能無厚薄, 卽其地而觀之, 則兆物莫不同浴仁天之恩. 分其地而言(則之)
[之, 則]兆物之得地之, 肥瘠寒煖, 高下활陋, 莫不有(若)
[差]. 是以物異南北, 人殊東西, 其盛衰榮枯, 茂殘繁沒之勢, 不可以人力而左右之也. 何以知其然耶. 夫, 耽羅之橘, 北渡則爲枳; 于山之桃, 越海則實矮; 湖南之竹.嶺南之시, 植之[北關]
(關北), 于而不成; 咸興之梨.咸從之栗, 移之于漢山而味변. 且夫, 城上之蕨, 葉掩屋첨; 架上之鼠, 체高於牛背; 蓬生麻中而不扶自直, 葛出松田而直聳千尋. 至如渡淮之橘, 周原之菫(茶)
[도], 莫不如是. 此皆, 物之因於得地之肥瘠.寒煖.高下.활협之適與不適.幸與不幸, 而其稟得也各殊也.
무릇 하늘이 사물에 대해서는 두텁고 엷음이 없을 수 없으나, 땅을 살펴보면 곧 억조 만물 가운데 어진 하늘의 은혜를 입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땅을 나누어 말하자면 곧 만물이 얻어 가지는 땅에는 비옥하고 메마르고, 춥고 따뜻하며, 높고 낮고, 광활하고 좁음의 차이가 있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물은 남북으로 다르고, 사람은 동서로 틀리니, 그 영고성쇠(榮古盛衰)와 무잔번몰(茂殘繁沒)의 형세는 인력으로 좌지우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그리됨을 아는가. 대저 탐라 땅의 귤이 북으로 건너가면 탱자가 되고, 우산(于山)의 복숭아가 바다를 건너오면 열매가 작아지며, 호남의 대나무와 영남의 감나무는 관북 지방에 심으면 휘어지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함흥의 배와 함종의 밤을 한산(漢山)으로 옮겨 심으면 맛이 변한다. 또한 성벽 위의 고사리는 그 잎이 집의 처마를 덮고, 시렁 위의 쥐는 그 몸이 소 등 보다 높게 있으며, 쑥이 삼밭 속에서 자라면 북돋우지 않아도 스스로 곧게 올라가고, 칡이 소나무 밭에서 나면 천길을 솟아오른다. 도회(渡淮)의 귤과 주원(周原)의 바곳이나 씀바귀도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모든 것은 사물이 얻어 가지는 땅의 비옥하고 메마르며, 춥고 따뜻하며, 높고 낮으며, 광활하고 좁은 것 등이 그 사물에 적합한지 아니한지 혹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등에 연유하는 것이기에 그 얻어지는 바탕이 각기 틀리게 되는 것이다.
昔者, 루진之地, 勁寒而不宜五穀, 民皆帶劒佩弓, 幷事遊獵, 其民之生也, 艱險儉嗇, 추健勁悍, 長於武風而不(閑)
[閒]文事. 藍侯之地, 廣(活)
[활]平蕪, 幷施耕牧, 兼習戎事, 其民, 兼剛柔, 幷文武, 恒爲東國進攻之前驅. 靑丘之地, 風氣溫美, 五穀豊登, 民皆, 衣輕暖而食肥美, (頗)有冠帶衣履, 天下之槪, 而卒溺於華靡之弊. 且夫, 雍州之地, 土厚水深, 山岳추莊, 襟抱固密, 風氣勁려. 則秦人居之, 其俗悍然, 有招八州而朝同列之氣. 迫近戎狄, 修習戰備, 競事射獵, 高(尙)
[上]氣力, 於是猛將悍卒, 輩出[乎]其間. 乃延敵列國, 追亡逐北, 因利乘(使)
[便], 宰割天下. 終至始皇之世, 振長策而馭宇內, 呑二周而亡諸侯, 制六合而鞭笞天下. 南郡百越, 北逐匈奴, 胡人(敢不)
[不敢]南下而牧, 馬士不敢彎弓而報怨.
옛날 속진(루진)의 땅은 매우 추워 오곡을 심기에 적당치 않아서 백성들이 모두 칼을 차고 활을 메고 어울려 일하며 사냥을 하니, 그 백성의 생활은 힘들고 어려운 속에서도 검소하며, 거칠고도 매우 굳세어 무사의 기풍이 빼어났으나 학문을 닦는 일은 소흘히 하였다. 남후(藍侯)의 땅은 광활하고 너른 벌판으로 경작과 목축을 아울러 베풀고 무술도 함께 익히니, 그 백성들은 굳셈과 부드러움을 겸비하고 문무를 아울러 갖추게 되어, 우리나라가 공격하여 나아갈 때는 항상 선구가 되었다. 청구(靑丘)의 땅은 바람의 기운이 온화하여 오곡이 풍성하니, 그 백성들은 모두 가볍고도 따뜻한 옷을 입고,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갓을 쓰고 띠를 두르고, 옷을 갖춰 입고 신을 갖춰 신는 등 자못 천하의 풍치가 있었으나, 마침내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의 폐단에 빠졌다.
또한 옹주(雍州)5)의 땅은 흙이 두텁고 물이 깊으며, 산악은 거칠고 장엄함에 속속들이 울창하고 바람 기운 또한 매우 사납다. 그러기에 진나라 사람들이 그 곳에 거처하면서 풍속이 굳세어졌으며, 여덟 주(州)의 제후들을 불러들여 같은 반열에서 조문을 받는 기상을 지니게 되었다. 융적(戎狄)과 근접해 있으면서 전쟁에 대비하여 닦고 익히며 활 쏘고 사냥하는 것으로 기력을 높이니, 용맹한 장군과 굳센 군졸이 그 곳에서 배출되게 되었다. 이에 오랜 적들과 여러 나라가 연이어 망하고 북쪽으로 쫓겨가자 그 유리한 틈을 타고 천하를 나누어 다스렸다. 결국에는 진시황의 치세에 이르러 오랜 책략을 떨치며, 천하로 말을 몰아 종주(宗周)와 성주(成周)를 삼키고 제후들을 멸망시키고는 육종(六縱)의 연합을 제압하여 천하를 채찍질하게 되었다. 남으로 백월(百越)6)의 땅에 군(郡)을 설치하고, 북으로는 흉노를 쫓아내니, 오랑캐들은 감히 남쪽으로 내려와 목축하려 하지 않았고, 병사는 감히 활을 당겨 보복하려 하지 못하였다.
班固歎常爲天下之劇, 晦庵推富强之業, 易興以江南之地, 原野底平, 江.漢分瀉, 風氣散漫, 天産豊饒. 於是, 民資川澤山林之饒, 食魚稻果라라蛤之味, 食物常足, 不憂凍餓, 民生無艱, 優(遊)
[游]自足. 則民皆, 자유유生而亡積聚, 信巫鬼而重淫祠, 是以人[皆], 輕현放散, 勇而不勁. 歷觀漢籍, 曾無一人, [民]
(起)於南方而制天下者, 是皆地理風氣之, 所以[能]陶冶感薰, 而人之所不能如何者也. 夫, 南方之濕熱, 北方[燥寒之]
(之燥寒), 太白.崑崙之廣무, 江.河湖澤之渟流, 誰安得以, 변易而遷徙之哉! 余於天人之際, 固不敢長說; 余於地人之際, (限)
[恨]其執定而不能左右之. 夫, 天下不幸之, 莫大於失地利也.
반고(班固)는 천하가 항상 매몰차짐을 한탄하더니, 회암(晦庵)7)이 부강의 기초가 되는 위업을 추진하여 장강 이남의 땅을 변화시키고 부흥시킴에, 낮고도 너른 들판에 장강과 한수가 나누어 넘쳐흐르고, 바람의 기운도 매섭지 않아 천연 산물이 풍부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백성들은 강택과 산림의 풍요를 바탕으로 물고기와 벼며 나무와 풀의 열매와 함께 고둥과 조개 등의 맛깔스러운 것을 먹었으니, 음식과 물자가 항상 풍족하여 춥고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았기에 백성들의 삶은 어려움 없이 한가로이 만족해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두 나태하게 인생을 즐김에, 쌓아 두고 모아 둔 것은 모두 없어지고 무당과 도깨비만 믿으며 부정한 사당만을 중하게 여겼다. 이로서 사람들은 모두 약빠르고 방자하며, 용감하나 굳세지는 못하였다. 한나라 사적에, 남방에서 일어나 천하를 제패한 자가 일찍이 한 명도 없음을 분명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땅의 이치와 바람 기운으로 인해 능히 인재가 길러지고 교화에 물드는 까닭이니,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릇 남방의 습기와 무더위, 북방의 건조와 추위, 태백과 곤륜의 거대함, 장강과 황하 및 호수와 못 등 물줄기의 머무르고 흐름을 그 누가 어찌 바꾸거나 옮길 수 있겠는가! 내가 하늘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감히 길게 말하지 못할 바이며, 내가 땅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단정지어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음은 한스러우나, 무릇 천하의 불행 가운데 지리적인 이득을 잃어버리는 것 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이다.
첫댓글 1945년 말~1946년 1월에 국립중앙도서관 직원이 서울 한 책방에서,
우연히 고서 1권을 발견, 우리역사를 밝힐 중요한 책으로 판단하고 구입 합니다.
김수일씨에게 100원을 주고 구입합니다
당시 소장자: 김수일 ,
구입가격: 100원 (지금 싯가로 100만원수준)
5. 1946.5.25에 국립중앙도서관에 귀중본으로 등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