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호남이 없었더라면 나라도 없어졌을 것이다."
(약무호남 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
이순신 장군의 이 유명한 말은,
아마도 호남의 인물들을 염두에 둔 고백이었을 것이다.
백제가 망할 당시 나타났던
세 명의 명장들이 호남의 기개를 오늘날까지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 중의 최 하수는 흑치상지라는 명장이다.
그는 백제 서부인이었고 그의 조상은 백제왕족이었다.
그는 백제 멸망 후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해 200여성을 되찾았으나,
백제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아마도), 당군에 항복하고,
자신이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던 임존성을 자기 손으로 정복해버린다.
그는 당나라에 들어가 실제 말 그대로 동서남북 사해의 외적을 격파하고,
전장에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불후의 명장으로 우뚝 선다.
당나라 고종과 측천무후가 그를 많이 칭찬하고 의지했다.
그는 무용이 절륜했을 뿐만 아니라,
인격까지 매우 고매했던 것으로 사료에 묘사되어 있다.
그가 당에 항복한 백제 군사 200명을 거느리고
돌궐군을 무너뜨린 승전곡은,
아직까지 버금 전사戰史를 용납하지 않는 전설적 대첩이다.
그의 인기와 신망이 높아지자,
측천무후는 부하를 시켜 그에게 누명을 씌우고
감옥에서 자결하게 한다.
그의 나이 61세.
토사구팽이다.
그는 조국을 배신했으므로,
고구려의 을지문덕, 연개소문, 근세조선의 이순신 등의 반열에 들어갈 수 없다.
충절, 특히 하나님 나라의 임금께 대한 충절은, 성경의 관점에서 최고의 가치다.
두번째 인물은, 지수신이라는 백제 명장이다.
이 사람은 흑치상지의 부하로서 흑치상지와 함께 임존성에서 백제부흥운동을 펼치던 인물이다.
흑치상지가 백제를 버리고 당에 항복한 이후에도,
지수신은 임존성을 지켰다.
수십만의 당나라 군대, 신라 군대 앞에서도 그는 끄떡 없었지만,
흑치상지가 당에 항복한 백제군사를 거느리고 손수 임존성을 치자,
임존성은 무너지고, 지수신은 처자까지 버린 채 고구려로 도피하고 말았다.
그 역시 가슴을 아프게 하는 백제의 명장이다.
마지막 인물은 우리가 잘 아는 계백장군이다.
그는 자신의 처자를 죽이고 전장에서 최후까지 버티다 목숨을 버린다.
우리가 이 세 인물의 이야기를 하나의 비유담으로 삼아, 영적으로 해석한다면,
역시 가장 빛나는 인물은 계백장군이다.
샬롬.
2024.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