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0일 이라면 권원장님과 젊은 벗님 내들이 카페 "포' 에서 실연주로 실내악적 밤을 무르 익히던 그런 날이었지요. 후사담으로 들은 바로는 가히 넉넉하고 훈훈한 음악의 밤이었다고 합디다. 임영진 방장님의 자세한 전언을 부가하면, 실내온도는 20도 전후였고, 조명은 동석한 귀부인들의 자태가 실제보다 좀더 아름답게 보일 정도로 그런 아련한 조도로 비추고 있었다합디다.
우리들의 클라리넷 연주는 긴장속에서도 좋았지만, 약간 술기운에 젖어드니 노근 노근한 손놀림에 음악은 두리 두둥실 뜨고, 아득히 내릴 때는 도리 동글 해지면서 몸을 감싸고 들더 랍니다.
맛과 멋 둘을 두고 굳이 하나만 선택하라면 저는 분명 맛을 선택할 수준 쯤에 들것이고, 12/10 일 그날도 그랬던 것이, 음악회냐 대구찜이냐를 두고 고민하다 저는 찜을 향한 걸음을 걸었답니다.
광복동으로 걸어가며, 맛에 홀려 멋의 벗을 배신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많이 아팠습니다, 뒤로 고백이지만.
조리 행위로서 찐다는 일은, 우리나라 만의 방식은 아닌 것이 중국에도 홋빵이 있고 만두가 있음을 보면 명백한 일입니다. TV에서 본 동남아시아의 음식 기행에서도 얼핏 찜틀 같은 것을 보았다는 기억도 있습니다.
무쇠 솥에 구멍이 송송 난 자배기란 옹기를 올려 놓고, 그 이음새로 빙둘려 밀가루 반죽으로 막아, 옹기 아래 솥에다 물부어 불때면서 증기를 올려 시루떡이란 찜떡을 만들지 않습니까.
대구찜도, 설마 이런 자배기 옹기를 쓰기야 하겠습니까만, 그 방식은 꼭 같을 것으로 이해됩니다.
일반 솥이 아닌 양은 통솥이라도 좋으나, 산대에 얼개가 걸린 얼개미 ( 일명 산대미 )는 반드시 솥바닥 물위에 걸어둔 상태로 쩌먹을 음식을 올려 물이 끓도록 쎈불 하고, 그 뒤로도 2-30분은 중불이나 약불로 수증기를 올려야 맛있는 찜이 되는 것입니다.
그날 음악회를 배신 했던 저의 모임은 중학교 동기들의 송년 모임과 겸했으며, 여생도를 빼고도 부산에서 거주하는 남생도만으로도 20여명이 모두 거제 섬놈들이었습니다. 금년들어 어획량이 갑자기 늘어나서 금고기 값을 면한 덕분에, 순히 고향 산으로 중대구 두마리가 배송 되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찜을 위한 대구 신세라면, 그 대구 팔자는 괜찮은 놈에 속할 것입니다.
대구 살맛을 말하라면 싱겁게 무미하고 연한 것이 쫄깃 거립니다. 찜 양념에 약간 졸여 주면 간이 밴 싱거움과 싱겁게 짠 살맛을 혀로 살살 굴려가며, 씹는 듯 마는듯 넘기는 맛이란 가히 멋을 배반할만한 구석도 있답니다. 대구애를 꾹꾹 눌러 짖이기며, 고추장을 약간 섞거나, 아니면 순수한 된장으로 버물려, 콩나물이나 미나리도 절삭여 배추김치 쪽쪽 찢어 사이 사이 넣어가는 건건이 양념을 바닥에 한불 깔고, 그위에 뼈채로 대구살이나, 대구곤을 자불 자불 놓고 또 한번 건건이 덮고, 뽈떼기, 머릿통은 적당히 칼집내어 펴고, 사이 사이 건건이 또 넣고 또 건건히 덮어 수증기로 찌는 것이 갯가 찜요리 랍니다.
설마 우리가 찜쫌 쪄달라고 부탁해둔, 국제시장 골목집의 적당히 나이먹은 아짐씨가, 대구 찜이라고는 한번도 쪄본 일이 없는 청맹과니 현대판 쑥맹이고 순수 육지종인줄 우리는 몰랐답니다. 건건이 양념이사 자갈치 총무가 만들어 주었건만, 산대미 얼개도 없이 맹숭하게 불만 때니 그게 어디 익습니까, 타기만 하지요. 타는 냄새가 야릇해서 물붓고 익혔노라고 수상하고 어색한 자랑만 합디다.
한바탕 검으 튀튀한 음식에 우리 모두는 기절 초풍으로 붉으락 푸르락, 찜은 찜인데 어중간 마른 메기 물찜만도 못하다느니, 해쌓다가 시장을 반찬으로 배는 넉끈히 불렸습니다. 몸을 한 30도 뒤로 제쳐, 권커니 잣커니 소주 일배 부일배도 했답니다.
여섯점 반쯤 김해 공항에 도착했다던, 제주도에서 고기팔다 잠시 와서 찜먹고, 익일 새벽을 도모해서 다시 고기팔러 간다는 총무는 입이 거세기로 유명한데.........
뒤늦어 함께 오는 또 한 친구까지도 고기는 보는 쪽쪽 배만 따대는 건어물 사장인데, 몸집도 거구이고 입도 대구 만큼 큰 입으로.........
이 아짐씨 오늘이 제삿날이라고, 이미 먼저 찜쪄 먹은 대부분의 우리는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대구찜 어딨노? / 지들앞에 떡벌린 큰 사발이 그것인데........... 한입 털썩 집어 넣더니 / 아니 이거 뭣꼬? / 뭣이라꼬? 이게 찜이라꼬! / 네미! 대구 된장 곰탕이다!
이리 순정하게 고기 배따거나 고기 팔아먹고 사는 섬사람들 잘 살펴보고 또 살펴볼 일이었습니다. 신종 요리 명명식에 하는 소리도 절창입디다.
대구 된장 곰탕이라니!
그제서야 먼저 찜쪄 먹은 죄 하나로 숨죽인 우리들이나, 우리보다 먼저 이미 한찜 쪄먹고 그 죄 값에 고개 숙인 아짐씨도 함께 박장으로 파안대소, 호방 북새통 떠들석 했답니다.
대구 전쟁이란 책을보며 노르웨이 핀란드의 염장대구 이야기를 나눈 일이 이태전이었지요?
대구찜은 물론, 대구 맑은국, 대구 매운탕, 뽈탕에 알탕이며, 알젖, 장지젖, 대구애 소금구이, 대구살 부치미, 대구살 산적이며, 말린 통대구에 뼈를 뺀 열작하며, 대구 회까지 섭렵하는 우리들 섬놈들이 금년에는, 대구 요리로는 마지막 반열에 드는 대구 된장 곰탕까지 먹게 되었답니다.
권원장님! 내년에 또 연주회가 열리고, 맛과 멋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면, 그때는 분명 멋을 향해 주저 없이 걸어갈 것입니다.
첫댓글 권원장님 연주회는 광주갔다오다 지각 참석했는데 풍각장이 다 되신 권원장님이 좋아보였고 목재비<성악하는>3인의 영영<나훈아>열창도 있었습니다. 악기로 목으로 즐기며 사는 소모임이 예뻤습니다. 대구찜! 대구회도 있지요? 저는 빼드그리하게 말려 초간장에 찍어 먹는 그 맛이 그립습니다.
아참 그 애기도 들었습니다. 을규형 내외도 참석해서 한 푸로 근사하게 만드셨다구요. 대구 삐드그리 삐져 초장에 한입, 아이구 맙소사, 그 맛을 잊지않고 있군요.
대구와 클라리넷...
대구는 입이 커서 투박 왁자지껄 하고, 클라는 입이 작아 예쁘고 소담하고 아름답습니다, 길뫼님의 쎅소는 적당히 쉬고 젖고 매력에 흔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