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祭臺, altar, altare) 미사가 봉헌되는 성찬의 식탁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당의 중심.
신자라면 성당에 드나들 때 절을 한다. 그 절이 향하는 장소가 어디일까. 성체가 모셔져있는 감실도 아니고,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도 아니다. 바로 제대다.
「미사경본 총지침서」는 “전통 관습에 따라 제대와 「복음집」에 입을 맞춰 경의를 표현한다”(273항)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주교회의가 교황청의 동의를 얻어 대신 깊은 절로 경의를 표현하고 있다. 성당 건축이 그리스도교 공동체 신비의 표지라면,
제대는 교회의 원천이요 머리이며 중심인 그리스도 신비의 표지이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사실 그리스도의 제단이란 그리스도의 몸의 형상이 아니고무엇이겠느냐”며 “제대는 (그리스도의) 성체를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성체는 제대 위에 계신다”고 말하며 제대의 중요성을 가르치기도 했다.
제대는 제사장이며 동시에 제물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재현되는 ‘주님의 식탁’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성당의 중심인 제대 위에서 십자가의 제사가 성사의 표징을 통해 재현된다”며
“제대는 하느님의 백성이 초대되는 주님의 식탁이기도 하다”고 교회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다.
성찬례가 거행되는 식탁인 제대를 비롯한 감실, 사제석 등이 자리한
성당의 앞부분은 제단(祭壇, presbytery·sanctuary, presbyterium·sanctuarium)이라고 부른다.
제대는 “살아 있는 돌”(1베드 2,4)이자 “모퉁잇돌”(에페 2,20)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래서 「미사경본 총지침서」는 “모든 성당에는 제대가 고정돼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제대는 살아 있는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분명하게 지속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고정된 것만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룩한 거행을 위하여 봉헌된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는 이동제대를 쓸 수 있다.”(298항)
- 가톨릭신문
♪ 가톨릭 성가 244번 - 성모의 성월 ♬
▨ 성모성월의 유래와 의미
5월과
성모를 처음으로 연결시킨 사람은
카스티야(스페인의 중부의 옛 왕국)의 왕 알폰소 10세(1221∼1284).
그는 5월이 주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성모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 풍요로움을 연결,
5월 한달간 특별히 마리아에 기도하자고 권고했다.
이 때부터 5월을 성모의 달로 기념하는 전통이
서방교회 내에 차츰 자리잡기 시작했다.
성모성월이 구체화된 것은 17세기 말.
1677년 피렌체 부근의 도미니코회 수련원에
성모를 특별히 공경하는 단체가 생겨
5월을 성모께 봉헌하는 축제를 마련,
‘성모호칭기도’를 바치고,
마리아에게 장미 화관을 봉헌하는 등 성모 신심을 고취시켰다.
이런 형식의 성모신심 행사는 그 뒤 전 유럽 교회로 펴져 나갔고,
여러 신학자들이 '성모성월’이라는 책을 내놓으면서
이를 정착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성모자, 2020년: 심순화 화백의 최근작으로
코로나19로 어지러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원이 담겼고...
특히 교황 비오 9세가 1854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선포한 후
성모 신심은 절정에 달했으며,
성모성월 행사는 공적으로 거행되기 시작했다.
교회가 성모성월을 제정한 것은
인간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간구하고 있는
성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다.
또 성모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
성모 마리아가 보여준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사랑을 본받기 위해서다.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평생을 하느님의 뜻에 순종했고,
하늘나라에 불려 올라간 성모는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뵙기를 염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의 삶을 두고
“하느님과 깊은 일치와
전 인류의 깊은 일치를 표시하고 이루어주는 표지요 도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헌장 1항)인
교회의 전형(典型)이 된다고 가르친다.
[ 평화신문 - 674 호, 발행일 : 2002-05-05]
>◎ '성모 성월 기도'마리아의 노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