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같은 손길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살아가면서 큰돈 들이지 않아도 사람 마음을 기분 좋게 하는 손길이 있다. 그런 소식을 들으면 흐뭇한 마음이 되는데, 그런 것은 특별히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곳, 자연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자연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않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흠 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바라볼 때는 일매진 갈매 빛깔이 호기심을 끌지만 막상 그 안에 안겨보면 전혀 딴판이다. 파묘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가 하면, 인위적인 절개 지가 보이기도 한다.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들도 건강하지 않고 병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건 지구라 해서 다르지 않다. 인공위성에서 찍어서 전송한 자신을 보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푸른 별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지구환경은 극도로 오염되고 있고 나라간 인종간의 갈등은 끝일 새가 없다. 더구나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부터는 모든 것이 폐쇄되고 일상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언제나 아름다운 색깔로 채색된 것이 아니다. 공기를 같이 마시고 살아가는 구성원들도 실망을 안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 때문에 소박한 일상이 상처를 받고 실망을 준다.
한 달포 전, 어느 아파트를 들어섰다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어떤 메모지를 발견했다. ‘무슨 메모지? 하고 읽어보니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제발 화단의 꽃나무 좀 뽑아가지 마세요. 몇 푼 아치나 된다고.”
처음에는 그걸 보고서 멋쩍게 웃었다. 그러다가 내 얼굴은 이내 굳어졌다. ‘맞아 주변에는 자기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형태를 꾸짖는 말로 여겨졌던 것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자기 위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익을 좇으며 살면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 절차를 무시하고 편법과 불법을 예사로 자행하며 산다. 그런 복마 장에는 유명인사도 항상 빠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공정과 정직을 내세우나 속내는 졸부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이권이 있는 곳에는 기회를 놓칠 새라 숟가락 얹기에 바쁘다.
최근 들어 내가 사는 소도시에 아파트 광풍이 불어 닥쳤다. 그러다보니 이곳저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외지인들이 입도선매(立稻先賣)를 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실수요자도 아니면서 투기목적의 투기를 하고 있다. 십중팔구 차액을 노린 범법행위이다.
이런 사람들이 돈을 버는 졸부의 세상이 되다보니 가치관은 흔들리고 투기판이 되어 버렸다. 언어는 그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는 법. 그러다보니 전에는 생소하던 말, ‘돈 많이 버세요’,‘대박나세요’라는 천박한 말이 판을 치고 있다.
가치관도 돈이면 다된다는 생각이고, 시류에 편승한 갑자기 생겨난 졸부들이 외제차 타고 골프장 드나들며 거드름을 피우는 세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래서 정직하게 사는 서민들은 절망한다.
예전에 건설현장에서 일한 사람의 뼈아픈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집을 보수하는 업체의 인부로 참여하여 일을 하다 용변이 급해서 실내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니 주인여자가 가로막더란다. 보아하니 몸에 패물을 잔뜩 치장을 하고 있으나 촌부의 행색을 역력했는데, 매정하게 내치더란다.
그리고 또 다른 집에서는 일을 하다가 목이 말라 물 한 대접을 요구하니 턱으로 마당 잔디밭에 설치된 수도꼭지를 가리키더란다. 그것이나 마시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 말을 하며 왜 ‘지존파’가 그렇게 잔혹한 짓을 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 했다. 그만큼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지존파가 돈 많아 보이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노리고 한 짓을 빗대어 말한 것이었다.
그런 것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우선 갈등구조가 심각하다. 가진 자와 못가진자가 갈라치기가 되고 있다.
거기다가 사기꾼과 투기꾼. 그리고 기회만 주어지면 성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한 잠재적 우범자들이 수두룩하다. 사이코페스, 폭력성향의 인간들도 많다.
그런데도 사회가 이 정도나마 유지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실증이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특별히 그 점을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세상은 비뚤어진 가치관, 막되 먹은 인간들이 모인 곳에서는 정신이 올바로 박힌 사람은 살아가기 힘들다. 날로 오염된 환경에서 숨 쉬기 조차 어려운데, 가치관이 전도된 인간들이 날로 늘어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인 중에 노인 일자리를 얻어 공원관리를 하는 분이 있다. 그분이 전한 말에 의하면 공원 곳곳에는 일부러 놓고 간 쓰레기가 지천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구석에 쑤셔 박아놓고 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의식개혁이 이루어지려면 앞으로도 한참 걸려야 함을 말해준다. 그런 사람들만 차고 넘쳐난다면 앞날은 암담할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세상에는 정신이 올바르고 착한 사람들이 있어 그런 위선과 타락을 방지하고 오염된 환경을 정화시켜주지 않는가 한다. 예컨대 이런 사람들이다.
내가 사는 이웃 고을에는 해마다 연말이면 동사무소 옆 화단에 돈을 수천 만 원씩 놓고 간 사람이 있다. 그 안에 동전까지 들어 있는 걸 보면 일 년 내내 모아서 전해준 것이 분명하다. 동사무소에서는 신분을 파악하면 알 수 있겠지만 일부러 밝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분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런 선행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펼쳐진다. 어느 할머니가 화단 가꾸기를 하는데, 그렇게 지성으로 할 수가 없다. 자기가 손수 꽃모종을 사서 호미를 들고 화단에 나와 흙 속에 묻혀 산다. 무슨 보수를 받거나 대가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봉사활동이다. 주변에 이런 분들이 있어 그나마 혼탁한 사회가 어느 정도 정화 되고 유지 되지 않는가 한다.
어제는 집을 나섰다가 동네 마트로 나가는 길목 화단에 수선화와 핀지, 오색의 백일홍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 옆을 걷자니 펼쳐진 꽃길이 마냥 반겨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빛과 소금 같이 숨어서 베푸는 손길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드러나지 않게 숨어서 소리 소문 없이 봉사하는 손길이 각박한 세상을 살맛나나게 하지 않는가 한다.
이분들이 외제차 몰고 삐까뻔적, 위화감 조성하면서 인당 수 십 만대 나가는 맛 집 드나드는 인간들 보다 얼마나 값있는 삶을 사는 것인가. 요즘 들어 부동산 광풍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2020)
첫댓글 법이 없고 도덕만 권장되는 사회라면 아마 무질서와 무법 천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양심이 고갈된 세태에 소수나마 선한 사람들이 있어 숨이 통한다싶습니다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자들, 뻔뻔한 자들 ,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선 개차반인 자들이 짛펀한 현실에 신경이 곤두서고 피로가 앃여 가지만 그래도 꽃도둑과 책도둑은 잡지 않는다는 옛말이 생각나서 장미 묘목 뽑혀간 자리를 내려다보며 그저 웃었네요
빛과 소금이 되어주는 천사들을 존경하며...
우리사회는 의외로 못된 인간들이 더 많이 모여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권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범비고, 자기보다 가난하다고 생각하면 무시하고 깔보고 언제라도 못된 짓을 할 각오가 된 사람들이 넘쳐나지 않는가 합니다.
그나마 그런중에서도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그런것에 물들지 않는 물렴의 자세를 견지한 사람들이 빛과 소금처럼 작용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하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인 듯합니다. 의인 열명만 있었더라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지 않았겠지요. 일련의 인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자기 욕심을 부려왔던 인류를 향한 신의 심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반성과 돌이킴이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여수는 지금 아파트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청약만 해도 프레이럼이 붙는다고 여기저기 청약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지어놓은 아파트는 서울들 외지인이 투기목적으로 사들인다는 말이 들립니다. 이상과열현상이 분명한것 같습니다.
여수가 주목받는 도시인가 보긴 하네요. 언듯보면 사람들이 모인다는 건 좋은 일 같은데, 그게 투기로 이어지니 볼성사납겠어요..
그렇습니다. 여수 웅천일대는 아파트 건설붐이 일어 타워크레인이 7,8개나 솟아 있습니다.
저도 길가에 있는 작은 텃밭에 꽃을 많이 심었는데 올해는 너무 많이 케 갔어요 속이 많이 상했어요.
저는 꽃을 좋아해서 조그마한 텃밭을 구입해서 곷과 푸성귀만 심었어요. 소금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모래알 같은 도둑도 있어요. 견물생심이라도 이성을 가져야하는데, 많이 아싑습니다.
사람이 모여사는 공동체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하는데 그렇지 않는 사람이 많은것 같습니다. 어찌 가져갈 것이 없어서 화단에 삼어놓은 꽃을 캐가다니 한심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