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감독 |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 발표시기 |
독특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영국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가 각본까지 직접 쓰고 연출한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1989년)는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합작해서 만든 영화다. 이 영화를 처음 보면서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라스트신은 충격이었다. '영화를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당시만 해도 스토리보다 상황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런 영화는 우리 현실에 도저히 적용될 수 없는 실험 영화 같았다. 그러나 엽기와 컬트가 유행하는 지금의 우리 영화 현실을 보면서 이제는 우리도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식욕과 성욕의 교묘한 대비를 통한 주제 전달이 독특하고, 강렬한 색채와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으로 유명하다. 회화를 전공한 미술학도 출신인 그리너웨이 감독은 1982년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The Draughtsman's Contract)〉으로 데뷔했다. 그의 이전 영화들은 모두 미국에서 흥행에 실패했지만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상대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비평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영화 (8 1/2 Women)〉(1999년), 〈필로우 북(The Pillow Book)〉(1996년) 등이 개봉되고 비디오로도 나왔으나 그다지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역시 비디오로 출시되었으나 파격적인 노출 장면이 너무 많이 잘려서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 정도다.
그리너웨이 감독은 작품의 탄생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섹스, 음식, 욕망, 폭력 등의 관계를 소비 선도형인 현대 사회의 연관 속에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이 작품에서는 입속에 물건을 넣는다는 것이 모두 은유로 되어 있다. 우리는 오는 것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식으로만 입안 가득히 뭔가를 넣고 있다. 모든 것이 '입에서 항문으로'라는 것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은 현대지만 17세기 초의 잔혹하고 폭력적인 분위기도 포함되어 있다. 권력과 탐욕의 사악함이 묘사된 암흑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먹는다'는 행위가 많이 나온다. 계속 먹어치우면서 먹는다는 행위가 확대되어 먹고 싶지 않은 것까지 먹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마지막에는 인육을 먹는다는 행위까지 나오는 것이다. 라스트는 엄청난 소비문명의 일을, 함부로 소비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짓인가를 생각해보고 싶어서 삽입한 것이다."
또한 그는 독특한 화면 색채 디자인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의도적으로 일곱 가지 무지개 색깔을 사용해 무대 세트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주차장 색은 청색, 레스토랑은 빨간색, 주방은 녹색, 화장실은 흰색, 병원은 황색, 서재는 자주색 등으로 만든 것이다. 모두 대조적인 짜임새로 통일되어 각각의 색깔이 인간의 잠재된 감정과 연결돼 있다. 청색 주차장은 매우 차가운 분위기이고, 빨간 레스토랑은 위험한 유혹과 뜨거운 정열에 가득 차 있으며, 녹색 주방은 편안하고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들게 하는 등 색깔이 장소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도둑을 연기한 마이클 감본, 그의 아내를 연기한 헬렌 미렌, 아내의 애인을 연기한 앨런 하워드는 영국에서 이름난 셰익스피어 극단의 배우다. 세트와 의상은 프랑스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P. Gaultier)의 작품이고, 총 제작비는 100만 파운드라고 한다. 이 영화는 유럽의 테이블 페인팅(식탁을 둘러싸고 있는 그림)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런 그림은 '최후의 만찬'에서 파생한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나 형식은 할리우드 스타일과는 아주 상반된다. 모든 장면이 거의 세트에서 진행된 이 작품은 조명이나 색채, 그리고 카메라 움직임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내용보다는 형식에 더 집착한 영화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한 내러티브 속에 담아낸 인간의 본능이나 사회에 대한 간접적인 풍자는 재미있다.
스토리의 기본적인 갈등구조는 한 여자(조지나)와 두 남자(남편과 애인)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다. 그렇게만 본다면 통속적인 연애물 같지만, 영화는 그런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삼각관계의 기본 갈등을 축으로 하면서도 거기에 또 다른 남자(요리사)를 통해 스토리를 엽기적으로 몰아가고 성욕과 식욕, 소유욕의 관계를 탐구한다. 어떻게 보면 권력에 관한 영화 같기도 하다. 항상 무지막지하고 파시스트적인 남편에게 종속된 아내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가 남편의 손에 죽자 또 다른 남자(요리사)의 도움을 받아 남편과의 종속 관계를 뒤집어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동안 자신을 속박한 남편에게 총을 겨누고 굴복시켜버린다. 결과적으로 연약한 아내는 다른 남자의 희생을 통해 권위적인 남편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라스트신이다. 조지나가 죽은 자기 애인을 바비큐처럼 요리하여 식당 안으로 행진해 들어와서 남편 앞에 놓고 강제로 먹이는 장면은 시청각적으로 아주 잘 묘사된 명장면이다. 이 장면은 시나리오상으로는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양식화된 구도와 카메라 움직임, 그리고 편곡된 클래식 음악 등으로 묘사한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다.
이정국 집필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7년에는 청룡영화제에서 '올해의 흥행상'을 수상한 영화 「편지」로 멜로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출생 | 1942년 4월 5일 |
---|---|
수상 | 1988년 칸국제영화제 최우수 예술공헌상(Best Artistic Contribution)(<차례로 익사시키기>), 2014년 영국영화아카데미 영국영화공로상(Outstanding British Contribution to Cinema) |
데뷔 | 장편영화 <폴스>(The Falls, 영국, 1980) |
미술에 조예가 깊은 피터 그리너웨이는 매우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을 견지한 감독이다. 그는 장편영화로 데뷔하기 이전에 숱한 단편 실험영화들을 만들면서 영화 매체를 마스터했다. 그는 1980년대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The Draughtsman’s Contract, 1982), <차례로 익사시키기>(Drowning by Numbers, 1988) 및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1989) 등을 만들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생애와 이력
영국의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는 1942년 4월 5일 웨일스의 뉴포트(Newport)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교사였고, 아버지는 조류학자였다. 그리너웨이의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공습을 피해 고향을 떠나 에섹스(Essex)에 정착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런던 북동부의 포레스트스쿨(Forest School)에서 공부한 그리너웨이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62년 월트햄스토미술대학(Walthamstow College of Art)에 진학하여 회화를 전공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회화를 공부한 그리너웨이는 특히 플랑드르 미술에 조예가 깊었는데, 훗날 렘브란트(Rembrandt)를 비롯한 네덜란드 화가들에 대한 영상물을 제작하는 등 그의 영화들에 회화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영국영화연구소(BFI)의 지원을 받아서 여러 편의 단편영화들을 만들었다. <친애하는 전화기>(Dear Phone, 1976), <버티컬 피처 리메이크>(Vertical Features Remake, 1978), 그리고 <에이치(H)를 통한 산책>(A Walk Through H, 1978) 같은 단편영화들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었지만 리얼리즘을 지양하고 인위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만의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에이치(H)를 통한 산책>은 익명의 화자가 지도에 나온 H자를 따라서 낯선 여행을 한다는 내용인데, 후일 <털시 루퍼> 시리즈의 모태가 되었다.
그리너웨이는 1980년에 폭력사건의 희생자 92명에 대한 방대한 전기적 자료들로 이루어진 첫 번째 장편영화 <폴스>(The Falls)을 연출했다. 희생자들의 성(姓)이 모두 폴(Fall)이라는 글자로 시작한다는 점이 이채로운 작품이었다. 이후 그리너웨이는 정력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The Draughtsman’s Contract, 1982), <동물원>(A Zed & Two Noughts, 1985), <건축가의 배>(The Belly of an Architect, 1987), <차례로 익사시키기>(Drowning by Numbers, 1988) 및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 1989) 등이 이때 제작되었다.
씨시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모녀가 차례차례 남편들을 익사시켜 살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차례로 익사시키기>는 100이라는 숫자를 모티브로 하여 인간의 부도덕성과 자연의 불가항력적 힘을 대비시키고 있는 난해한 영화다. 독특한 비주얼과 블랙유머로 사랑을 받은 이 영화에서 그리너웨이는 영화 안에 1부터 100까지의 숫자를 심어 놓아 시선의 혼란을 유도하였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88년 칸국제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에서 최우수 예술공헌상(Best Artistic Contribution)을 수상했다.
한편 특이한 시각적 스타일과 가치전복적인 주제의식의 정점은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호의호식하며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 도적떼를 묘사하고 있는 이 영화는 대처(Thatcher) 집권기에 야기된 물질주의 및 탐욕에 대한 정치적 우화(寓話)로 풀이되었다. 그리너웨이와 친분이 깊은 연기파 배우 마이클 갬본(Michael Gambon)이 후안무치한 두목 역을 맡아 열연했다. <차례로 익사시키기>와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역시 사샤 비에르니가 촬영하고, 마이클 나이먼이 음악을 맡았다. 그리너웨이는 이 작품들의 잇단 성공으로 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영화비평가 앤드루 새리스(Andrew Sarris)가 편저한 『세인트 제임스 영화감독 사전』(THE ST. JAMES FILM DIRECTOR ENCYCLOPEDIA)에서 사울 프램프턴(Saul Frampton)과 롭 에델만(Rob Edelman)은 그리너웨이의 영화들이 “아주 다양하게 죽음, 즉 죽음과 풍경, 죽음과 동물, 죽음과 건축, 죽음과 섹스, 그리고 죽음과 음식(카니발리즘)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들을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드는 요소는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나 렘브란트의 작품을 실제세계 안에서 보는 것 같은 화려한 이미지들”이라고 평가했다. 오늘날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다. 옹호자들은 그의 비전과 지적인 엄격함이 그가 만든 작품들이 위대한 영화임을 입증한다고 지지하는 반면, 비판자들은 매체에 대한 집착이 아이디어를 위한 수단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DAUM 백과사전
부인이 남편에게 이 말을 하면서 내놓은 것은 애인의 사체를 요리한 것이다.
성불구이면서 온갖 억압을 일삼는 저질 폭력배, 자신의 애인을 잔인하게 죽인 남편에게
아내가 복수를 위해 만든 최후의 만찬이다. 실제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프랑스혁명을 빗대어 만든 영화라고 하니 나름 이해도 된다. 세상에는 참 갖가지 영화가 다 있다.
조금은 난해하고 영화적인 재미는 다소 부족했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