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 (2) 杜 甫
건원 중에 동곡현 곁방살이에서 지은 노래 일곱 수 (2)
長鑱長鑱白木柄, (장참장참백목병) -가래장치로 파고 또 파네, 수족같은 내 아들 관에 넣어 장사 지냈네,
我生托子以為命. (아생탁자이위명) -나는 천륜에 따라 자식을 낳아 길렀거늘 이게 웬일이란 말이냐.
黃精無苗山雪盛, (황정무묘산설성) -어린정기는 싹틔운 것도 없고 산에는 차디찬 눈만이 수북한데,
短衣數挽不掩脛. (단의수만불엄경) -짧은 옷 몇 가지 입힌 壽衣는 종아리조차 가리지 못 하였네.
此時與子空歸來, (차시여자공귀래) -지금 자식을 앞서 보내고 혼자만 산에서 되돌아 내려오니,
男呻女吟四壁靜. (남신여음사벽정) -식구들은 슬픔으로 신음 소리만 낼뿐 방안사람들 아무 말 못하네.
嗚呼二歌兮歌始放, (오호이가혜가시방) -오호~ 두 번째 부르는 노래여~ 슬피 부르는 맏아들의 노래여.
鄰里為我色惆悵. (인리위아색추창) -동네 이웃들도 이런 나를 위해 슬픈 기색으로 함께 해 주었네.
托-[동사] (물체를) 받치다. 고이다. 받쳐 들다. 他两手托腮陷入了沉思; 그는 양손으로 뺨을 고이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挽-[동사] (팔을 굽혀서) 걸다. 끼다. 她胳膊上挽着个坤包出门了;그녀는 핸드백을 팔에 걸고 문을 나섰다.
掩-가릴 엄. [동사] 가리다. 숨기다. 遮掩 덮어 가리다. 瑕不掩瑜 결점이 장점을 가릴 수 없다.
脛-[정강이 경] ㉠정강이 ㉡정강이뼈 ㉢종아리 ㉣보행(步行) ㉤걸음
<註>
長鑱-긴 자루가 달린 가래장치
白-[명사] 장례. 장사(葬事). 红白事-혼사(婚事)와 장례.
木-[명사] 관재. 널. 棺木-관. 널.
柄-[명사] (기물의) 손잡이. 자루. 刀柄 칼자루. 즉, 수족이라는 뜻을 隱喩한 詩語.
黃精-어린것의 精氣. 黃-(어린 아이, 아이, 幼兒), 精-精氣.
此時-이때. 지금.
與-미리, 앞서
惆悵-실망, 낙담하는 모양. 슬퍼하는 모양
<解說>
이 詩도 지난 첫째 수와 같이 詩經의 風을 본떠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 悲風이고 賦다. 따라서 1句와 7句는
노래로서 푸는 게 마땅한 것이고. 다만 3句만이 隱喩로 되었기 때문에 解說을 부친다.
3句-아직 장가도 보내지 못해 후손이 없이 고생만 하다 죽으니, 부모는 쌓인 한(恨)이 많다는 뜻임.
<關聯資料 出處>
乾元二年(759),杜甫四十八岁。七月,他自华州弃官流寓秦州(今甘肃天水),十月,转赴同谷(今甘肃成县),在那里住了约一个月,这是他生活最为困窘的时期。一家人因饥饿病倒床上,只能挖掘土芋来充肠。在饥寒交迫的日子里,诗人以七古体裁,写了《同谷七歌》,描绘流离颠沛的生涯,抒发老病穷愁的感喟,大有“长歌当哭”的意味。此为第七首,是组诗中最精彩的篇章。-구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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這首七言組詩真實而形象地記錄了詩人一家困居同谷時艱苦卓絕的生活。描寫了一家人慘不忍睹的遭遇和骨肉分離的巨大哀痛。 (王朝網絡 wangchao.net.cn)
<參考>
賦-중국 고대 문체로 한위육조(漢魏六朝) 시대에 성행되었고, 운문과 산문의 혼합 형식으로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읊는 것을 말한다.
첫댓글 동곡7수는 진주에서 성도로 가기 전에 동곡이라는 곳에 잠시 있을때 지은 시로,
이때의 생활은 진주에서보다 더 안좋았다고 합니다
첫수에서는 자신에 대한 비참함을, 2수에서는 먹을것이 없어 호미들고 산을 헤매지만
빈손으로 돌아오는 애닲음을, 이후의 시에서는 아우와 누이에 대한 정을 담아 가는것 같습니다.
2수는 집주인에게 호미를 빌려서 토란을 캐러갔으나 눈밭속에서 정강이가 드러나는 헐옷을 입은채
토란을 찾았으나 빈손으로 호미만 들고 돌아오는 과정을 그렸는데, 이때의 호미는 가족의 생사와
관련된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子라는 경칭을 사용한걸로.....
안녕하셨습니까? 어젠 좋은 시 올리셨던군요,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의 '乾元'에 대한 설명은 어찌해야 하는지도 해답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마저 알려주셔야 . . . .
현종때가 개원이고 숙종때가 건원 아닌가 합니다, 건원 2년이면 759년인데, 동곡에 머무른 시기와 일치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런데요?
당 숙종(唐肅宗) 왕의 공식 명칭-명덕대성대선효황제(明德大聖大宣孝皇帝) 이름-이형(李亨)
지덕(至德)-756년 ~ 758년, 건원(乾元)-758년 ~ 760년, 상원(上元) 760년 ~ 762년 756년 ~ 762년.
연호는 위 3가지를 썼는데, 乾元은 758년~760년 3년간 입니다.
동곡에서 지낸 기간이 겨우 1개월인데, 어째 설명이 납득하기가 힘드네요
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 ...건원 중(759년 숙종 )에 동곡현에 머물면서 7수를 지어 노래하다..
진주에 머물면서 진주잡시를 지은것도 건원2년이고, 동곡의 노래를 지은것도 건원2년(11월-12월)이후 성도로 간것도 같은 해인 건원 2년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乾元'의 풀이를 그렇게 한다고 했을 때에. 제목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으로 설명하실려는지. . .
막연하게 '7수를 지어 노래하다' 무엇을 노래 한 것' 정작 있어야 할 것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납득하기 어려운 제목이 아닌가 합니다. 구만 하세요,
두보가 동곡으로 간것은 어떤 사람이 초청을 해서인데, 막상 동곡에 도착해 보니 그 사람한테 별 도움을 받지 못해
잠시였지만 생활이 매우 곤궁했습니다.동곡7수는 그러한 생활상의 어려움과 아우,누이에 대한 회한,숙종에 대한 실망감,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망등을 담고 있는데, 특징으로는 7수 모두 제7구에 공히 兮자를 삽입시켜서 8자를 만들었는데,
兮는 초사에서 운률을 맞추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 글자로서, 비탄스러운 심정을 그야말로 노래로서 풀어보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1400여수에 이르는 전체 두보시에서 이와같은 형식의 시는 동곡 7수가 거의 유일하지 않나 합니다.
黃精는 약초로 쓰이는 죽대이고, 판본에 따라 黃獨 으로 된것도 있는데 황독은 黃藥子로서 토란류의 식물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는 바가 일천하지만, 공부하는 의미에서 답글을 다는 것이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