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는데 날씨가 정말 좋았다. 드디어 설문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버스를 타고 화성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 앞에 도착해보니 모이기로한 시간보다 1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별로 없고 어디에 있어야하나 고민하던 나는 박물관 입구 왼쪽에 그늘이 있는 벤치로 향했다. 거기에는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왔다는 현이언니가 있었다.
우리는 왜들 이렇게 안오는 거냐면서 한참을 떠들었고 그러는 사이에 하나 둘 아이들이 모였고 화홍문과 화성행궁으로 흩어져서 본격적인 설문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는 화성행궁앞은 오전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날의 설문조사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을 예감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모르는 사람한테 뭔가를 부탁한다는게 나한테는 너무 어렵고 좀 두려운 일어었다.
괜히 처음보는 사람한테 말을 걸었다가 그 사람이 화를 낼 것 같기도 하고 온갖 쓸데없는 걱정이 계속 들었다.
아마 내가 길을 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한테 말을 거는 것이 귀찮고 짜증이 났기 때문에 남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 혼자하는 것도 아니고 나보다 어린 아이들도 하는데 어디 숨어있을 수고 없고 해서 열심히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설문조사지를 내밀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술을 드셨는지 짜증을 내셨던 아저씨 , 화장실이 급하시다던 아주머니, 행궁에서 하는 공연먼저 보고 오시겠다던 아주머니, 처음와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해달라는 거냐던 아저씨.
설문조사를 부탁했을 때 모두가 흔쾌히 받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귀찮으실 만도 한데 그 햇빛아래서 설문조사를 해주셨다.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은 일하러 가신다던 할아버지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손주들 간식벌이하러 다니시면서 매일 행궁앞을 지나가신다고 하셨다. 글씨가 작아 잘 안보이신다는 할아버지께 준형이는 질문 하나하나를 읽어드렸다. 나는 옆에서 할아버지께서 해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웃고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분이 지나가자 준형이가 나한테 마저 읽어드리라고했다.
정말 그 순간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헐'이 아닐까싶다. 내가 당황한것을 눈치채셨는지 할아버지께서는 더 친절히 대답해주셨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꼭 우리 할아버지이신 것 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에 할아버지께서는 행궁앞에 잠깐 앉아서 쉴 수 있는 시원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딱 내가 하고싶은 말이었다. 광장은 그렇게 넓은데 정자는 조그만 분수앞에 있는 것이 다였고 벤치는 너무 더워서 오히려 앉아있다가 쓰러질 것 같았으니까.
감사하게도 그 더운 와중에도 가던길을 멈추고 성심껏 조사에 참여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처럼 나도 누군가가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해온다면 어쩌면 그날의 설문조사지를 든 나처럼, 너무 떨려서 나한테 말을 걸기까지가 너무 힘들었을지 모르는 그사람을 위해서 웃는 얼굴을 보여야겠다.
첫댓글 경험한것 잘~~정리했네..윤선이가 느낀 것들이 많구나~~어떤 활동이든 내가 적극적으로 하다보면 보람도 느끼고 마음가짐도 달라질꺼야~~수고했어^^
윤선아. 우리는 모두 실패를 경험하며 살아가지. 그 실패가 쓰라린 경험만으로 남는다면 사람들은 더 빨리 포기해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희망을 발견하며 살아가기에 잠자고 일어나서 감사하며 하루를 보내게 되는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