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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7월 12일 토요일
[(녹)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요셉은, 자신은 죽지만 하느님께서 반드시 찾아오셔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이라고 형제들에게 이야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안다고 증언하면, 당신께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그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29-31.33; 50,15-26ㄱ
그 무렵 29 야곱이 아들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선조들 곁으로 간다.
나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다오.
30 그 동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것으로,
아브라함께서 그 밭을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에게서 묘지로 사 두셨다.
31 그곳에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께서 묻히셨고,
그곳에 이사악과 그분의 아내 레베카께서 묻히셨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33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다리를 다시 침상 위로 올린 뒤, 숨을 거두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
50,15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요셉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모든 악을 되갚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아우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분부하셨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네게 악을 저질렀지만,
제발 형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아우님은 그대 아버지의 하느님의 이 종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게.”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듣고 울었다.
18 이어 요셉의 형제들도 직접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
19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20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1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22 이렇게 해서 요셉과 그 아버지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요셉은 백십 년을 살았다.
23 그러면서 요셉은 에프라임에게서 삼 대를 보았다.
므나쎄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태어나 요셉 무릎에 안겼다.
24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25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그러고 나서 26 요셉은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의 종이 되고, 더 나아가 그 두려움을 일으키는 대상의 종이 되지 않도록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하나씩 들어 보이십니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입니다. 제자와 종이 스승과 주인보다 높지 않다는 말씀은, 어려움을 먼저 겪으신 예수님께 제자들의 눈이 향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하여 어려움은 오히려 예수님과 더욱 굳게 일치하게 하고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사도 5,41 참조).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 하신 말씀입니다. 이 문장에서 ‘드러나다’와 ‘알려지다’에는 수동태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비밀로 감추어졌던 복음을 제자들이 명확하고 분명하게 나타나게 하지만 그 선포의 참된 주체는 하느님이십니다. 제자들은 홀로 버려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일하시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떠한 장벽도 전능하신 그분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두려움이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없애지 못한다면 사람이 아닌, 사람 전체를 다스리고 지배하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도록 권고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참새와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로 하느님의 무한한 배려와 보살핌을 제시하십니다. 하느님을 단순히 절대자로 묘사하시지 않고 친밀함과 애정을 나타내는 “너희 아버지”로 표현하시며 “허락 없이는”(10,29)이라는 말씀으로 세상 모든 것이 그분의 주권과 보호 아래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실망하고 낙심하여 두려움에 갇히게 되는 순간마다, 예수님의 논리가 우리 생각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합시다.(김태훈 리푸죠 신부)
우리 각자를 눈여겨 보시고 소중히 여기시는 하느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제 어린 시절, 참새 구이집이 여기저기 있었습니다. 저도 선친 따라 포장마차 갔다가 몇 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맛이 고소하고 담백했습니다. 가는 뼈를 통째로 씹기 때문에 바삭바삭했습니다. 과거 임금의 보양식으로 수라상까지 오를 정도로 맛과 영양가를 겸비한 음식으로 전해집니다.
유다인들도 참새고기를 먹었답니다. 부자와 상류층들은 주로 소나 양, 염소 고기를 즐겨 먹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가끔 기름진 고기 맛을 봐야 했었는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지라, 차선책으로 참새구이를 즐겨 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참새잡이를 업으로 삼는 사람도 생겨났고, 시장에 가면 살아있는 참새가 매매되곤 했습니다.
시장에서 사온 참새는 깃털을 뽑고, 내장을 빼낸 다음, 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불판 위에 얹어 돌려가며 구웠습니다. 가성비가 높다 보니 참새는 당시 서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식재료로 손꼽혔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관세법 관련 고대 비문에서는 식품으로 활용되는 모든 조류들 가운데 참새가 가장 저렴했다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참새의 저렴함에 대해 언급하고 계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태 10, 29)
예수님께서는 세상 하찮은 존재의 대명사로 참새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런 참새 한 마리도 잊지 않으시고 귀히 여기신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 모든 창조물 가운데 으뜸이요, 참새보다 몇 천 만 배 더 소중한 인간 존재를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더 소중히 여기시겠냐는 것입니다.
마무리 말씀 또한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특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천만 탈모인들에게 너무나 위로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 30)
물론 예수님 말씀의 진의가 이미 사하라 사막처럼 폐허가 되어 버린 이마를 무성한 수풀처럼 복원시켜주시겠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각별히 여기시며 눈여겨보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와 일대 백이 아니라, 일대 일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황공스럽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며 다가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친히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며, 나와 매 순간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 속에 사시겠다는 것입니다.
더이상 이 세상엔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사방이 적군으로 둘러 쌓여 있고 아군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도 버려야겠습니다. 놀랍게도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나를 기억하고 계시고, 내 이름을 불러주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 세상 둘도 없이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로 여기고 있으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더이상 흔들리지도 말며, 안심하고 기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인터넷에서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석사, 박사보다 더 높은 학위는 밥사 랍니다. 내가 먼저 따뜻한 밥 한 끼를 사는 마음이 석사, 박사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밥사보다 더 높은 것은 감사라고 하네요. 항상 감사하고 사는 마음은 박사, 밥사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감사보다 더 높은 것은 봉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공자, 맹자, 순자, 노자, 장자를 보다 더 훌륭한 스승은 웃자라고 합니다. 웃으세요. 웃음이 최고의 스승입니다. 하지만 웃자 보다 더 좋은 스승은 함께 먹자!! 함께 살자!! 라고 합니다. 좋은 말은 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으니까 행복해진다고 하는 것처럼요. 오늘은 많이 웃는 날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1970~80년대,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삶이 고단했던 시절, 그 프로그램은 저녁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웃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남철, 남성남 선생님과 같은 희극인들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가난과 피로 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삶의 활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분들의 재치는 철학자 못지않은 통찰이 있었고, 그들의 몸짓은 수사학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한마디 말로, 혹은 어이없는 실수 하나로 사람들에게 “그래, 아직 살 만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알았습니다. 웃음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교리와 신학 그리고 조직과 법으로 배워갈 수 있지만 결국 우리의 신앙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겁니다. 이웃을 보고 미소 지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진리는 높고, 깊은 곳에 있지 않다. 하느님 나라의 진리는 철부지 아이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신앙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처럼, 신앙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모습을 많이 닮았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돈을 받고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유다는 예수님을 율법 학자와 대사제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요셉은 유혹받았지만 이겨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받았지만 이겨내셨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옥에 갇혔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요셉은 굶주린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였습니다. 가족들을 이집트 땅으로 데려와 편히 살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팔아넘겼던 형제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께 이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평화를 빌어 주셨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신앙이란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그 사람’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자기를 버렸든 형제들을 용서했던 것처럼, 나에게 잘못한 이를 기쁜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육신을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자녀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자신을 팔았던 형제들에게 복수하는 대신, 그들의 자녀까지 책임지겠다는 요셉의 말은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품고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요셉의 말은 단지 관대한 말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악을 선으로 바꾸는 삶’의 실천이었습니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도 더 귀하다.” 우리가 때로는 참새보다 작고, 연약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머리카락까지 세어 두신 하느님의 섬세한 사랑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오늘도 부르십니다. 웃고, 감사하고, 봉사하며, 함께 먹고 살아가자고 말입니다. 오늘은 많이 웃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웃으니까 행복해지고, 감사하니까 삶이 빛나며, 함께 먹고 살자고 하니까 공동체가 됩니다. 오늘 하루, “밥사, 감사, 봉사, 웃자, 함께 살자”는 이 다섯 마디가 우리의 믿음 안에서 살아 숨쉬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님처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마태 10,25)
님께서
하시듯
내가
하니
나는
비로소
님의 사람입니다
님께서
믿으시듯
내가
믿으니
나는
비로소
님의 사람입니다
님께서
바라시듯
내가
바라니
나는
비로소
님의 사람입니다
님께서
사랑하시듯
내가
사랑하니
나는
비로소
님의 사람입니다
님께서
살리시듯
내가
살리니
나는
비로소
님의 사람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헤르마고라(Hermagoras)
활동년도 : +1세기?
신분 : 마르코의 제자, 주교, 순교자
지역 : 아퀼레이아(Aquileia)
같은 이름 : 헤르마고라스
성 포르투나토 (Fortunatus)
활동년도 : +1세기?
신분 : 부제, 순교자
지역
같은 이름 : 포르투나또, 포르투나뚜스, 포르투나투스
전승에 의하면 복음사가 성 마르코(Marcus)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교회를 세우기 전에 이미 성 베드로(Petrus) 사도로부터 아퀼레이아의 사도로 파견되었다. 성 마르코는 아퀼레이아 지방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또 수많은 기적을 행함으로써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성 마르코가 이 지방의 목자를 임명할 때 성 헤르마고라를 선택했는데, 그는 성 베드로에 의하여 아퀼레이아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는 헤르마고라의 부제였는데, 주교의 명을 받은 그는 벨루노(Belluno), 코모(Como), 세네다 그리고 인근 지역에서 설교하였다.
네로 황제는 아퀼레이아에 사절단을 보내어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칙서를 발표케 하고 헤르마고라를 체포하여 투옥시켰다. 그런데 한밤중에 신비스런 하늘의 빛이 지하 감옥을 환하게 비추는 기적이 일어나 간수를 감명시켰다. 그러나 그 간수는 감옥 밖으로 달려 나가서 “헤르마고라의 하느님은 위대하다. 와서 이 기적을 보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다녔다. 많은 군중이 몰려 와서 이 광경을 목격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개종하였다. 이 사건으로 박해자는 주교와 부제의 목을 급히 베게 하였고, 헤르마고라와 포르투나투스는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성녀 베로니카(Veronica)
신분 : 신약인물, 부인
활동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베로니까
전승에 의하면 성녀 베로니카는 예수께서 골고타(해골산)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닦아 준 예루살렘의 어느 부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옷으로 성면을 씻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거기에 주님의 모습이 박혀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 여인은 베로니카로 알려졌는데, 라틴어 '베로니카'는 '베라'(vera ; 참, 진실한)와 '이콘'(icon ; 형상, 성화상)의 합성어로 성녀의 이름 자체로 그리스도의 '진실한 형상', '진실한 성화상', '참 모습'이란 뜻이 된다.
이 사건 이후 성녀의 운명은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전설로 전해온다. 그 한 가지 전설에 의하면 그 후 성녀 베로니카는 로마(Roma)로 가서 자신의 이 유품으로 티베리오 황제를 치유했으며, 임종 때에는 이 유물을 교황 클레멘스(Clemens)에게 드리라고 유언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성녀는 루카 복음 19장 1-10절에 언급된 세리 자캐오의 부인으로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가서 남부 프랑스인들의 개종을 위하여 헌신하였다고도 한다.
또 "빌라도의 술책"이란 책에는 그녀가 마태오 복음 9장 20-22절에 언급된 여인으로, 12년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깃을 만짐으로써 치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실인지 자세히 규명할만한 자료는 없는 실정이다.
성 요한 괄베르토(John Gualbert)
활동년도 : 985/995-1073년
신분 : 설립자, 수도원장
지역
같은 이름 : 괄베르토, 괄베르투스, 구알베르또, 구알베르뚜스, 구알베르토, 구알베르투스,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985년 또는 995년에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근처의 비시도미니(Visidomini)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요한 괄베르투스(Joannes Gualbertus, 또는 요한 괄베르토)는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앙이 깊은 집안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라 기사가 되었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형이 파스카 금요일에 살해당하자, 그는 기사로서 형의 죽음에 복수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여겼다. 그러나 정작 살인자와 마주쳤을 때 그가 땅바닥에 십자가 모양으로 팔을 벌리고 엎드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청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을 떠올린 그는 살인자를 용서해 주었다.
이때부터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성 요한은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13년경 산트 미니아토(Sant' Miniato)의 클뤼니(Cluny)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수도원 원장이 성직 매매로 피렌체 주교가 된 사실을 알고 그 수도원을 떠나 교회를 개혁할 수 있는 금욕적인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수도 규칙을 실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성 로무알두스(Romualdus, 6월 19일)가 창립한 카말돌리 연합회에 잠시 머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수도회처럼 은수생활에 치우치지 않고 공주생활과 절충된 수도생활을 하기 위해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고자 결심하였다.
성 요한은 발롬브로사(Vallombrosa)에서 베네딕토 수녀원으로부터 기증받은 부지에 수도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3명의 회원들로 시작된 이 공동체는 후에 산트 미니아토 수도원에서 온 몇 명의 수도자들과 피렌체 지방에서 온 평신도들로 증원되었고, 1056년에 교황 빅토르 2세(Victor II)에 의해 정식 인가를 받았다. 요한은 발롬브로사 연합회를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수도 규칙을 따르면서도 몇 가지 독특한 방법으로 이끌었다. 즉 그의 이상적인 수도생활은 은수생활의 고행과 금욕 그리고 참회의 생활에 공동체 생활을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발롬브로사 연합회의 체제는 철저히 은둔 생활을 하는 수도승과 행정 전반을 관리하는 평수사로 형성되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애덕을 비롯하여, 성직 매매자들에 대한 강경한 태도, 기적, 예언 및 영적 지혜 등이 뛰어나 그의 지도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이 수도회는 주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Toscana)와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에 산재해 있다. 그는 1073년 7월 12일 피렌체 교외 발 디 페사(Val di Pesa)에 있는 파시냐노(Passignano)에서 선종하였고, 1193년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3세(Coelestin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복자 안드레아 (Andrew)
활동년도 : 1459-1462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린(Rinn)
같은 이름 :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안드레아(Andreas)는 인스브루크(Innsbruck) 교외인 린에 살던 어느 농부의 아들인데, 2살 때에 부친이 죽는 바람에 삼촌에게 맡겨져 자랐다. 그러던 중 1462년 7월 12일에 아이가 없어졌다. 그 어머니가 백방으로 찾아 헤맨 끝에 그의 시체가 나무에 매달린 채 발견되었다. 그런데 안드레아는 예리한 칼로 난자당했었다. 결국 이 사건은 어느 유대인이 그리스도인을 증오하여 그리스도인 아이를 살해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주민들은 안드레아의 시신이 발견된 곳을 유덴스탄인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1752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가 그의 공경을 허락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