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글러브" 같다는 마님의 전정가위와
"발가락 자른 오공(지네)" 같다는 마당쇠의 전지가위가
나란히 호랑가시나무 아래 앉았습니다.
식물명과 생약명이 같은 석창포 더미를 가운데 두구요.
물이 부족한 우리 도담언덕에서는 포도시 목숨만 유지할 약촙죠.
물길을 죄 지하 배수로로 빼어놓은 불초 마당쇠의 설계야 나쁘지 않았지만
물이 많아야 살아갈 수 있는 석창포로서는 마땅히 지옥입죠.
도담마을 2지구?^^
도담마을 효천지구?
고인돌마을의 나선생의 마당귀에서 아우성인 석창포를
전화를 받고 달려갔네요.
아초에 우리집에서 건너간 이것들이 아조 고기가 물을 만나서
그 댁 깔끔단정한 마님의 화단을 야물게 독차지했더랍니다.
두 수레를 끌어와 다듬는데 쉬어가며 이틀이 걸렸어요.
없을 때는 고프다가도 넘치면 울렁거리는 데가
바로 전원주택이라는 변덕스런 공간이죠.
갤러리 귀퉁이는 네모 건물의 서북쪽 'ㄱ' 자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있고
이 물은 휀스 밑을 꿰어 바깥 길의 수로로 흘러들게 돼 있지요.
이 곳을 조로케 막고 요로케 파서
약재짜리는 잘라내고 싹이 나는 나머지 야구글러브 쪽은 다시 심어주었답니다.
밤새 비가 내리고, 지네발로 걸어가 살펴보았더니 계획 대로 물이 잘 고여 있었습니다.
석창포가 여느 약재처럼 흔히 쓰는 것은 아니지만
맑은 향이 심규를 개통하여 정신과 마음을 안녕케 하는 효능이 뛰어나고
담痰으로 몽매한 것을 열어 정신과 의지를 편하게 하는 실력이 있어서
원지 백복신과 더불어 총명탕이 되고, 건망증, 실면 그리고
'오공(蜈蚣)'처럼 중풍과 경련 치료에서도 요긴하답니다.
기와 맛이 향기롭고 맑아서 소화장애로 흉복이 창만한 것, 코가 막힌 비색,
관상동맥 혈류량 증가, 진해, 평천의 효도 솔찬히 높죠.
우리 나이에, 다른 약재와 함께 이것 용량을 잘 다루면
치매 예방에도 한 힘 보태죠. 이 친군
오래 전 제 광주 압촌동시절의 의원짓으로 서로 잘 아는 사입니다.
장독대 곁에 가득 자란 저것의 위세는 꽤 자랑이었거든요
오늘날 화순 도담 마른 언덕에 홀로 서서
저 석창포 지네발에게 쫌만 짤라달랄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바
이렇게나 많이들 번창하여 옛 벗을 찾아오다니요...
무릇 사람 사이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풀 한 조각일지라도 펄펄 살아서 휘휘 돌아와 일도 없이 반가운데,
이마박 주름에서 무르팍 해진 추억까지 오래 걸어서 이렇게 말입니다.
오래 형동생하며 아꼈던 후배가 엊그제 지 홀로 맘 먹고 세상을 떴습니다.
그와 밤새 통음하고 아침 곰국을 훌훌 넘기던 목이 자꾸 치밀어요.
벗을 만나도 저런 바보같고 무대뽀 같고 실떡벌떡허고 욱헌 차림은
사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홀아비꽃대
직장 따라 산골마을 학교에
혼자 집 떠나와 홀아비 된 두선이는
잠 못 이룬 봄날 새벽
고사리 꺾으러 다녔지요
수풀 양지 무덤가에 할미꽃 반갑고
산모롱이 길섶마다 각시붓꽃 고아도
두 손 내밀어 애기나리
어서 먼저 안아본다는데
두선이 어느 날 홀아비꽃대를 들고
요리보고 조리봐도
꽃 모양 한번 우습다며
"성님! 이 꽃이 뭔 꽃이요?" 아침부터 종일
시린 옆구리를 건드리는 거예요
아, 바보 두선이
너와 세상을 고귀하게 여기고 나와 우리를 값지게 여기며
더러 흉허물 없고 더러는 예절 더욱 발라서 더 어질고 더 착하고 더더 미쁜,
그리하여 함께 쉬고 서로 부추기며 더불어 나누고 한결 빛이 나는
관계의 벗 하나이 목마릅니다.
석창포를 곁집과의 경계를 따라 쭉 아래로 심었습니다.
물은 땅의 기울기를 따라 절로 흐르기 때문에 전원에서는 '자연배수'라 부릅니다.
인위적인 물길을 배수로로 묻고, 어떻게 몬하는 남지기 빗물은
자연스레 낮은 아랫집이 받아 또 배수로를 통해 밖으로 빼고
나머지는 또 자연배수케 하는 물길의 순리 말입니다.
소리 없이 가망가망 봄비가 내립니다.
지난 해 폭우를 보니 사방팔방 산자락의 전원주택들이 아우성입디다만
우리 동산은 여전하고 평화로워 언제 그런 폭우가 있었느냐 싶었네요.
10년 전 이 언덕의 토목을 도와 애써준 내 친구가 고맙습니다.
인생의 여울목에 서서 한 사십년 나를 흘려준 동무 말이에요.
아무도 모를 깊은 계곡 맑은 물길따라 돌과 창포가 만나듯
함께 발을 담근 시원하고 순조로운 생의 벗 한 개 말입니다...
첫댓글 오랫만에 방문하여 석창포동무이야기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항... '동무'에 주목하여 보니 혹 주목님이 규채 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