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6.火. 장맛비
06월24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비 이름은 장맛비입니다. 높아지던 습도 때문에 끕끕하고 찐득하던 기운이 사라지고 더럽거나 더 불쾌한 공기 중의 먼지들이 비에 쓸려 내려가니 개운한 공기와 맑은 풍경들이 비록 잿빛 하늘아래지만 다시 청춘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도 발생해서 이동하는 경로나 형태에 따라 수십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눈에 잘 보이는 비도 내리는 시기와 형태나 양에 따라 이름이 그에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더 많습니다. 대체로 장맛비는 긴 기간 동안 많이 오는 것이 특징이지만 장맛비에다 국지성, 혹은 게릴라성 호우라는 용어가 달라붙으면 이것은 피해가 우려되는 상당히 심각한 비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란 대개 비를 잔뜩 머금은 비구름대가 좁고 길게 드리워져있을 때 특정지역에 한정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비가 내릴까요?
상공으로부터 낙하하는 모든 물의 형태를 강수降水라고 합니다. 따라서 강수에는 비, 눈, 우박 등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강수를 알려면 물의 순환을 알아야하고, 물의 순환을 알려면 수증기를 이해하고 있어야합니다. 우선 수증기水蒸氣란 기체상태의 물로서 무색, 무취, 투명의 기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대기 중의 수증기는 대부분이 해수면으로부터 증발된 것으로 대기의 순환과 함께 이동하며, 지구 복사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하여 지구를 보온하고 지구상의 생명체를 유지시킵니다. 대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수증기의 부피는 약 4%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적은 양의 수증기가 지표와 대기사이를 순환하면서 열을 운반하고, 생명체에 물을 공급합니다. 물의 순환은 지표로부터 시작합니다. 순환하는 물의 대부분은 해수면으로부터 증발하고, 육지에서는 일부분만이 증발합니다. 증발된 물은 대기의 운동에 의해 운반되어 강수降水의 형태로 일부분이 육지로, 대부분이 직접 바다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육지로 돌아온 강수 중 1/3가량인 37000Km³가 유수의 형태로 지표면과 지중을 통해 바다로 흘러들어옵니다. 그래서 물의 순환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증발-운반-응결-강수-증발’의 방식으로 순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나 눈이 내리는 강수현상降水現像을 설명하는 이론으로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만 대표적인 빙정설氷晶說을 잠깐 알아보기로 하는데, 이렇게 복잡한 설을 소개하는 이유는 수증기가 물의 순환에서 왜 중요한지를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기온이 0°C 이하인 구름 속에 빙정氷晶과 과냉각 물방울이 공존할 때, 구름 속의 수증기압이 물방울에 대해서 불포화이고 빙정에 대해서 과포화이면, 물방울은 증발하여 수증기를 공급하고 이 때 공급된 수증기는 빙정에 달라붙어 빙정이 더욱 커지게 되어 결국은 낙하합니다. 그런데 낙하던 빙정이 따뜻한 기층을 통과하며 녹으면 비가 되고 녹지 않으면 눈이 된다는 설說입니다.
이상과 같이 대기 중의 물의 순환을 알아보았는데, ‘증발-운반-응결-강수-증발’로 끊임없이 운행되는 물의 순환을 보면서 무언가 아하! 하는 점을 느끼지는 않았나요? 혹시 우리들은 여기에서 자연自然의 윤회輪廻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불교의 윤회사상은 업業을 매개로 하고 있는데 비해 자연의 윤회인 물의 순환은 수증기水蒸氣를 매개로 하고 있다면 보살님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보살님들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해탈解脫이나 업業, 그리고 윤회사상輪廻思想은 불교만의 브랜드인 고유 사상이 아니라 이미 인도철학에 나타나있는 일반적인 사상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윤회사상輪廻思想과 업業은 기득권자들이 국가 통치統治와 권력유지를 위한 복속服屬 개념으로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1500년경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정착한 이후 고대 베다Veda 사상을 계승하여 신봉하기 시작한 고대종교인 바라문교婆羅門敎에서는 이미 기원전 1000년경이 되자 계급제도인 카스트제도가 확립되었습니다. 카스트Caste 제도란 브라만-크샤트리아-수드라-바이샤 네 단계로 사람의 신분과 직업을 나누는 계급제도를 말합니다. 신분과 직업을 근본적으로 구분하여 제사를 받드는 승려계급과 왕족, 무사의 통치계급, 상인과 서민계급, 그리고 천민계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인도종교에 의하면 인도에서는 그 사람이 태어나기 전의 생애에서 올바르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이생에 낮은 계급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윤회와 업이라는 사상으로 설명했지요. 브라만 교리에 의하면 내가 지금 낮은 신분으로 있는 것은 부모를 잘못 만나서가 아니라 지난 생에서 착한 일을 덜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생의 모든 것은 자신이 전생에 지은 업에 따른 것이니, 자기의 신분이 낮은 것에 대해서 남의 탓을 하거나 불평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민계급인 바이샤로 태어난 사람이 더 나은 신분으로 살고 싶으면 현생의 삶에서는 불가능하고 다음 삶에서나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삶에서 더 나은 신분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열심히 한다면 가능한 일이 됩니다. 그러니까 바이샤로 태어난 사람은 바이샤로서의 일을 불평불만 없이 충실하게 하는 것이 다음 삶에서 더 나은 신분으로 태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업業과 윤회사상輪廻思想이 기득권을 장악한 권력자들에 의해서 교묘한 통치술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인도철학 또는 고대 종교인 바라문교에 대항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종교가 바로 불교와 자이나교였습니다. 고행주의와 무소유·불살생을 표방하는 자이나교와 무아無我와 연기緣起와 평등平等을 주장하는 불교는 기성 사상이나 종교에 비해 보다 자유롭고 진취적인 내용을 품고 있었지만 바라문교가 더욱 집대성되는 힌두교로 변화·발전을 하면서 아쉽게도 인도에서 변방종교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런데 불교의 윤회사상이 육도윤회六道輪廻로 구체화되면서 각자 지은 업業에 따라 천상-인간-수라-축생-아귀-지옥을 돌아다니면서 윤회전생을 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이렇게 불교 윤회사상이 구체화된 육도윤회가 교리 상으로 설명하다보니까 그렇다는 말인지 정말 그렇다는 것인지는 알도리가 없지만 이러한 육도윤회는 자칫하면 바라문교의 카스트처럼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억압할 수도 있는 종교적 권위를 위한 복속술服屬術로 사용될 가능성을 생각하기에 따라 회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종교에 숨어있는 권위와 강압의 비종교적인 부분을 스스로 골라내어 종교적으로 순화시키고 교리 상 구체적 내용들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올바르게 종교를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생각을 합니다. 종교를 위해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나 생명들을 위해 존재하는 종교가 우리가 말하는 진실한 본래 의미대로의 종교일 것입니다. 아참, 자연의 윤회인 물의 순환에서 윤회의 매개媒介가 되고 있는 수증기水蒸氣는 지표에서 증발할 때 순수한 물만 남게 되어 언제나 수증기는 맑고, 투명하고, 깨끗한 것인데 반해 윤회사상인 육도윤회의 매개媒介가 되고 있는 업業은 언제나 무겁고 어두운 찌꺼기만 남아 있어서 어떤 종류의 업이 남아있더라도 육도윤회를 멈출 수가 없게 됩니다. 업의 완전한 소멸, 곧 업의 근원이자 사성제에 대한 무지인 무명無明의 소멸이야말로 열반에 이르는 깨달음의 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의 윤회인 물의 순환에 비해 육도윤회라는 윤회방식은 현실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순수한 아름다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방법입니다. 아쉽게도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렇습니다.
새벽에 집에 들어온 아들아이가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오후2시 비행기 편이라니까 적어도 정오인 12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비가 내리는 날씨를 감안해서 아침10시30분경에는 집에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어쨌든 장맛비가 내리는 아침 모처럼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앉아 삼계탕으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서울보살님은 기분이 매우 좋은지 평소보다 활기찬 동작으로 마냥 싱글벙글이었습니다. 오전11시가 되어서야 집에서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우려했던 것보다는 올림픽도로 지체는 쉽게 풀렸으나 쏟아지는 장맛비가 아슴한 베일처럼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인천공항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빗발의 길이와 강도가 더 세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비상등을 켠 채 앞차를 따라가면서 70Km로 정도로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예정보다는 조금 늦게 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도착했지만 일단 상해로 가는데다 수하물로 부치는 짐이 없으니 시간은 여유가 있다고 아들아이가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3층 출국장까지 차를 몰아 아들아이를 내려주었습니다. “아빠, 상해에서 계약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갔다가 아마 금요일 정도 다시 서울로 일단 돌아올 것 같아요.”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차량 지체가 좀 심하게 되었습니다. 차량 지체라니까 사실 짜증나는 시간이려니 합니다만 앞차 꽁무니만 슬슬 따라가면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소설의 줄거리를 구체화해보거나 나만의 생각을 즐기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알짜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 시간들을 즐기다보면 뭐~ 그런대로 좋은 시간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무거운 차체를 싣고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는 모두 검정색이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말과 행위를 통해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 지고 다니는 업業처럼 그렇게 모조리 검정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