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록(征蠻錄)은 경상도 관찰사의 영리이던 효사재 이탁영(李擢英, 1541~1610)이 쓴 일기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야만스러운 왜적(倭賊)을 정벌했다는 뜻을 갖는 기록물이다. 그의 직책 ‘영리(營吏)’란 이방 · 형방과 같은 부류의 관리로서 양반이 아닌 중인(中人)의 신분이다.
이탁영은 1541년 1월 10일 의성현 북부면 지곡리(현재의 의성군 의성읍 충효로 20)에서 아버지 이연년과 어머니 김씨 부인 사이에서 5대 독자로 출생했다.
이탁영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51세의 나이에 종군하여 경상도 관찰사 김수(金晬)의 막하에서 참모로 활동하면서 의병모집, 군량조달, 전략수립 등의 군무를 맡았다. 관찰사를 수행하면서 각 지방의 전황보고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직무를 맡은 정보차지(情報次知)의 직위에 있던 그가 엮어 남긴 이 자료는 매우 구체적이다.
왜란 초기에는 김수의 진영에서 모병과 군량조달, 정보수집 및 분석, 계초 작성 등의 업무를 맡아 공을 세웠다. 관찰사 김수가 삼남지방의 근왕병을 일으킬 때 그 방책을 건의했고 수원지방까지 진격했다.
김수가 조정에 소환된 이후에는 주로 초유사 김성일의 막하에서 참모로 일했다. 1593년에는 김성일에게 여러 가지 전술을 건의하여 의병군이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부터 왜란이 평정된 1598년까지 7년간 종군하면서 틈틈이 정황을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했는데 내용을 보면 왜란 발발 1개월 전인 1592년 3월 9일부터 1599년 11월까지 기록했다. 정리 후에 이를 나라에 아뢰니 선조 임금이 ‘정만록(征蠻錄)’이라 이름 지어주었다.
정만록의 가치는 구체적인 상황묘사와 풍부한 참고자료에 있다. 정만록은 일기에 해당하는 건권(乾卷)과 자료집에 해당하는 곤권(坤卷)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권(제1권)은 표지 뒷면에 임진왜란 당시 참전한 여러 관리들의 좌목(座目)을, 다음에 ‘임진변생후일록’이라는 제목 아래에 그날그날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적고 있다. 1592년은 ‘임진변생후일록’이라는 제목하에 날마다 기록했고, 1593년에서 1598년까지는 매년 매월 중요사건 위주로 적었다.
곤권(제2권)에는 이탁영이 경상도 관찰사 영내에서 근무하면서 접한 교서, 장계, 통문, 첩보, 치보, 격문이 실려 있다. 이들 각종 공문서는 실록이나 다른 역사서에서 보기 힘든 자료이다.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시작된 날로부터 시작하여 그해 연말까지는 약 10일간 기록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거의 완전하게 적었다.
그의 일기에는 1592년 6월의 용인전투 현지상황과 그의 경험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 예를 들면 그는 말에서 떨어지고 진흙탕에 빠지면서 정신없이 도망치는 자신과 다른 조선군 병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수만 명의 조선 육군이 불과 1,500명 정도의 일본군에 패하여 도주할 때의 상황인데 조선 육군 구성원의 대다수가 급조된 농민이라고는 해도 당시 조선 육군의 전략과 전술, 지휘체계의 취약성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탁영은 편모를 봉양하고 있었는데 전란 중에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걱정하는 마음을 그의 일기 곳곳에서 읽을 수 있으며, 당시 백성들이 겪은 참담한 상황 또한 잘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