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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주종장(鑄鐘匠) 사인(思印)이 만든 종으로 포항 보경사서운암동종(보물 11-1), 문경 김룡사동종(보물 11-2), 홍천 수타사동종(보물 11-3), 안성 청룡사동종(보물 11-4), 서울 화계사동종(보물 11-5), 양산 통도사동종(보물 11-6), 의왕 청계사동종(보물 11-7), 강화동종(보물 11-8) 등 모두 8구가 2000년 2월 15일 보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이 중 강화 동종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1호로 지정되었고 나머지 7구는 2000년에 지정되었다.
사인은 신라시대 이래 사원에서 세습되던 승장(僧匠)의 맥을 이은 마지막 승려이다. 경상도와 충청도, 경기도 지역에서 활동했으며 전라도 지역의 김애립과 쌍벽을 이룬 승장이었다고 한다. 신라 종의 전통적인 제조기법을 재현하고 독창성을 가미하여 만든 그의 작품 8구는 각각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보경사 서운암동종(1667년 제작)은 종의 몸통[鐘身]에 보살상이나 명문이 아닌 석가모니의 진언(眞言)을 새긴 것이 특징이며, 김룡사동종(1670년 제작)과 수타사동종(1670년 제작)은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독특하다. 통도사동종(1686년 제작)은 몸통에 팔괘를 문양으로 새기고 유곽 안에 한 개의 돌기[乳頭]만 새겼다. 청룡사동종(1674년 제작)은 가장 전통적인 신라 범종의 형태를 갖추고 있고, 강화 동종(1711년 제작)은 가장 전통적인 조선의 종 모습을 갖추고 있다. 화계사동종(1683년 제작), 청계사동종(1701년 제작), 강화동종(1711년 제작)은 종을 매다는 종뉴 부분에 두 마리 용을 조각하였다.
이들 작품들은 사인(思印)이 20대 후반에서 70대에 걸쳐 만든 종으로, 5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의 작품세계의 변화 과정을 확연히 보여준다. 자연에 대한 창조적인 시각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불교 공예미(工藝美)를 표출시킨 명품(名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사람의 작품이 모두 보물로 지정된 예는 처음이다. |
1. 포항 보경사서운암동종(浦項 寶鏡寺瑞雲庵銅鍾)-보물 제11-1호
경북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중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비록 크기는 작지만 사인비구의 초기 제작기법을 살펴 볼 수 있다.
( 보경사 경내 전각 안에 따로 보관되어 있어 일반인들은 볼 수가 없다)
다른 사인비구동종과 달리 용뉴 대신 종을 매달기 위한 둥근 고리가 있다.
어깨 부분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40개의 연꽃잎을 세워 두어 넓은 띠를 형성하고 있다
5개의 유두를 가진 사각형 모양의 유곽이 4곳에 있고, 유곽과 유곽 사이에
부처님의 말씀인 '진언'을 문양화 하고 있다.
2. 문경 김룡사동종(聞慶 金龍寺銅鍾)- 보물 제11-2호
김룡사동종은 현재 경북 김천 직지사박물관(直指寺博物館))에 있다.
사인비구가 만든 동종 중 이와 같은 당좌의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은
같은 해에 만들어진 수타사동종과 김룡사동종 둘 뿐이다.
문경 김룡사동종이 먼저 만들어졌다.
3. 홍천 수타사동종(洪川壽陀寺銅鍾)- 보물 제11-3호
康熙 9年 庚戌 五月(顯宗 11년 1670), 청동 / 총 높이 110.0cm, 종신 높이 83.0cm,
음통 높이 21.0cm, 당좌 연화 지름 11.0cm / 종입 지름 74.0cm, 종입 두께 8.5cm
주종장 ; 사인 · 태행 · 도겸 · 담행 · 기생 · 기임
수타사 종은 사인비구(思印比丘)스님이 김룡사종을 만들고 3개월이 지난 뒤에 제작한 종이다.
현재 종가에 걸려 있는 이 종은 김룡사 종과 형태가 같지만 높이와 입지름은 10cm 가량 크다.
종신의 문양은 김룡사 종의 상대, 연곽, 보살상, 하대 문양의 지문판을 그대로 사용했는지
무늬와 크기가 동일하다. (홍천 수타사와 문경 김용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다만 당좌는 커진 종크기에 맞추어 다시 도안했는지 문양이 커지고 원 안의 연꽃잎 수가 8엽으로 늘어났으며,
원 밖의 장식은 잎사귀 3개가 결합되어 마치 불꽃이 일어나는 것처럼 좀더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천판은 반구형으로 둥글고,
상대는 범자인 산스크리트어 34자와 「六字大明眞言」으로 된 1개를 합친 35군으로 형성되고,
하대는 용과 연꽃, 보상화문양을 혼용한 지문판을 사용하였다.
명문은 종체의 시주와 별도로 용두의 시주를 분리하여 따로 명기하고 있다.
이는 용두를 따로 제작하여 별도로 종체에 융착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명문에는 종 제작에 참가한 인적사항이 명기되어 있다.
康熙 9年 庚戌 五月日」 原讓道洪川郡」 孔雀山水墮寺鑄鐘記文」.....중략....」
鑄鐘畵員 比丘 思仁, 太行, 道兼, 淡行, 起生, 起林」 龍頭施主 持殿, 學俊」 강희 9년은 顯宗 11년 (1670)이고,
강원도 홍천군 동면에 있는 공작산 수타사의 주종에 관한 경위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단용의 머리는 크고, 입을 크게 벌려 큰 윗이빨과 혀가 돌출되어 있고,
사나운 용의 놀란 표정은 생동감을 주고 있다. 이와 비슷한 용의 형상은 강화동종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음통은 용신과 용꼬리로 나선형으로 감았는데, 이와 같은 양식은 양산 통도사 대종(1686년),
안성 청룡사종(1674년), 봉은사 강희 21년명 종(1682) 등에서 볼 수 있다.
유곽은 상대에서 분리하였고, 유곽대는 等幅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에 반융기형 유두와
3중엽으로 된 9판의 연화유좌를 갖고 있다.
4구의 보살입상은 구름위에서 연화를 들고 불공을 드리는 모습이다.
유곽대의 문양과 보살상은 김룡사(1670), 안성 청룡사종(1674년)과 동일하다
문경 김룡사동종(보물 제11-2호)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독특하게 표현하여 완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만 김룡사는 원 안의 연꽃잎 수가 6엽인데 수타사의 것은 8엽으로 늘어났으며,
원 밖의 장식은 잎사귀 3개가 결합되어 마치 불꽃이 일어나는 것처럼 좀더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하대 문양은 용과 연꽃, 보상화문양을 혼용한 지문판을 사용하였다.
김룡사 종의 경우 5번 반 정도 지문판이 돌아갔지만 수타사 종은 6번 온전하게 사용하였다.
4. 안성 청룡사동종(安城靑龍寺銅鍾)- 보물 제11-4호
신라범종의 전통성을 따른 청룡사동종은 종루의 종으로 만든 것이다.
조선조 숙종 원년인 1674년에 제작한 청룡사동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가 색다르다.
이러한 범종의 제작기법은 17세기 중반에 정통 승장계 장인들이 주로 쓰던 기법으로 전한다.
사인비구가 30대 때에 만든 것으로 전하는 청룡사 사인비구주성동종은, 지준, 태행, 도겸, 담연,
청윤과 함께 만든 통일신라 때부터 전해지는 범종계열이다.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에는 대나무 모양으로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새겨져 있다.
용뉴에 새겨진 용은 네 개의 발로 종을 붙들고 있는 형상이며, 이마와 볼에는 뿔이 나 있다.
얼핏 보아 험상궂은 듯 하면서도,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용뉴에 보이는
조각 하나만으로도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보이는 것이 사인비구의 동종이다.

어깨띠
어느 절이나 범종은 있게 마련이다. 그 종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것은 그 종소리를 듣고 지옥에 있는 영혼들이, 지옥에서 나올 수가 있다는 것이다.
청룔사의 종에는 '파옥지진언(破獄地眞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지옥을 깨뜨릴 수 있는 범종의 소리,
그 소리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진다.

▲ 보살과 위폐
종의 몸통에는 보살과 위폐가 각 4기씩 새겨져 있다
유곽 사이 위폐 안에는 <宗面磬石 王道 隆 惠日長明 法周沙界>라는 글씨를 각각 새겼는데,
서울 화계사 동종에도 같은 문구가 양각되어 있다.

5. 서울 화계사동종(서울華溪寺銅鍾)- 보물 제11-5호
종신(鐘身)은 어깨에서 곡선을 그리며 둥그스름하게 내려오다 종복(鐘腹) 부분에서 종구(鐘口)에
이르기까지 수직선을 이루며 내려온다. 이처럼 종구 부분이 오므라들지 않고 수직선을 보이는 것은
중국 원(元) 동종의 특징으로, 조선시대에서 17세기 이후에 보편화된 형식이었다.
정상부는 음통(音筒) 없이 종을 매다는 고리 부분인 용뉴(龍鈕)만 표현되었는데,
천판(天板) 위에 당당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된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하였다.
이를 쌍룡뉴(雙龍鈕)라고 한다.
사인비구가 만든 종들 가운데 이와 같은 모습을 한 첫 번째 작품으로
그가 종을 주조하는 데에 있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 아래에는 유곽(遊廓) 4좌가 있는데, 각각 사각형이며 6엽(葉)의 연화좌를 마련하고
여기에 유두(乳頭) 9개씩을 배치하였다. 유곽 사이에는 위패(位牌) 4좌를 새기고 그 안에
'宗面磬石', '王道 隆', '惠日長明', '法周沙界'라는 글씨를 각각 새겼는데,
안성 청룡사동종에도 이와 똑같은 글씨가 있다.
종신 표면에는 보살상 등 그 밖의 다른 문양 장식은 없고, 명문을 양각으로 새겨 넣었을 뿐이다.
명문은 전부 200자 가까이 되며 동종의 제작 시기, 봉안 사찰, 무게 등과 더불어
동종 제작에 참여했던 시주자와 장인(匠人)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6. 양산 통도사동종(梁山通度寺銅鍾)-보물 제11-6호
경남 양산의 통도사는 법보 해인사, 승보 송광사와 함께 '불보(佛寶)'로,
三寶寺刹의 하나이다. 이곳에도 사인비구의 손길이 미쳤다.
일반적으로 사각형의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를 두는데, 통도사동종은
중앙에 단 한 개의 유두만 배치했다. 사인비구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통도사동종은 유일하게 종의 표면에 팔괘 문양을 새겼다.
종이 크기 때문에 형태미가 뛰어나고, 하대에는 회화성이 넘쳐난다.
삼막사 종(1625년) 이후 승장僧匠들이 만든 종에서 梵字로 된 상대,
연꽃가지를 든 보살상, 용무늬 원패 등이 보수성을 띠며 일괄되게 사용되었다.
7. 의왕 청계사동종(義王淸溪寺銅鍾)- 보물 제11-7호
경기도 의왕 청계사의 동종은 높이 115㎝, 입지름 71㎝, 무게 700근이나 나가는 큰 종이다.
종의 허리에는 중국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두 줄의 굵은 가로선이 둘러져 있어,
사인비구가 '중국종'의 양식을 받아들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두 줄의 가로선은 강화동종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화계사동종, 강화동종과 마찬가지로 쌍룡뉴이다.
청계사 동종에도 보살상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 보살상의 표정까지도 완벽하게 표현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쇠붙이에 표정까지 그려낼 수가 있었을까?
8. 강화동종(江華銅鍾) -보물 제11-8호
강화역사관 소장. 강화동종은 다른 사인비구 동종 중 가장 먼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63년에 보물 제11호였던 것이, 1999년에 나머지 7구의 일괄 조사 후 2000년에 모두 보물로
지정되면서 보물 제11-8호 '강화동종'으로 다시 분류된 것이다. 원래는 가장 먼저 발견된
종이었는데, 만들어진 순서에 맞춰 번호가 지정되다 보니 막내가 되었다.
높이는 198㎝, 입지름은 138㎝로 조선시대 후기의 동종으로는 큰 편에 속한다.
강화동종은 조선시대 숙종 37년(1711), 강화유수 윤지완(尹趾完)이 주조한 것을 그 후에 부임한
민진원(閔鎭遠)이 정족산성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동종이라고 기록에 남아있어,
이 때 주조를 책임지고 담당한 사람이 사인비구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 종은 전통적인 '고려종'의 양식이 퇴화하고, 조선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대표적인 예다.
쌍룡뉴를 갖추고 있으며,
용통(甬筒: 종의 음향을 조절하는 음관) 이 없는 것이 독특하다.
상대에는 범자무늬가 아닌 연당초 무늬를 장식하였고 그 아래의 네 방향으로
유곽을 배치 하였으며, 유곽 내부에 별 모양으로 도식화된 납작한 연꽃봉오리를 장식한 것은
사인이 만든 범종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강화동종은 밭침만 있고 유두가 생략되었다.
그러나 이 종에서는 사인이 만든 범종에서 볼 수 있는,
연곽 사이마다 배치되는 연꽃을 든 보살 입상의 표현이 전혀 없는 점이 흥미롭다.
사인을 마지막으로 승려 장인은 점차 사라졌고, 18세기부터는
주로 사장들이 지역적
으로 세분화 되면서 꾸준히 종을 주조하게 된다.
하대의 연당초 무늬
-알아둡시다-
● 고종 3년(1866년) 병인양요 때 침입한 프랑스군이 강화동종을 약탈하여 가려고 하였으나
무거워서 배에 싣지 못해 갑곶리의 토끼다리 근처에 놓고 돌아갔다고 한다.
● 강화산성 남문 동쪽의 종각에 있었고, 강화산성의 사대문을 열고 닫을 때 이 종을 사용했다.
김상용순의비 자리로 옮겼던 것을 1977년 강화중요국방유적복원정화사업으로
고려궁지의 강화부종각으로 옮겼다.
● 3.1절, 광복절, 제야에 33번씩 타종하던 것을 1995년1월에 몸통부분에 균열이 생기고,
치마부분이 떨어지자 타종이 중단 되었고, 1999년 12월에 강화동종과 모양과 크기가 같은 종을
강화부종각에 만들어 놓고, 강화동종은 강화역사관으로 옮겼다.
♣ 사인비구주성동종(思印比丘鑄成銅鍾)이란?
'사인(思印)'이라는 승명(僧名)을 가진 비구(比丘)가,
주성(鑄成: 녹인 쇠붙이를 거푸집에 부어 물건을 만듦, 주조鑄造와 같은 뜻)한 동종(銅鐘)이란 뜻
사인에 의하여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동종들이 '사인 비구 주성 동종'이다.
한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문득 오래전에 수타사에서 보았던 사인비구의 동종이 떠올랐습니다. 당좌무늬가 색달랐던 그 종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지요.
내친김에 사인비구가 만든 8구의 동종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어찌하여 그의 작품이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는지를 살펴보았지요.
아직 사인비구의 동종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여기에 소개합니다.
그저 종으로만 알아왔는데...깊이가 있는 정보 감사합니다. 思印이란 호?가 좋습니다. 생각도장? 멋진데요.
종이야 함부로 칠 수가 없으니 그 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지만, 쇠에다가 그려 넣은 문양 하나하나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군요. 감사합니다.
사찰에 가도 범종이나 동종을 무심히 지나쳤는데 참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좋은 정보 만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의 키가 부쩍 커지는 기분~감솨합니다!! 이민혜님은 여걸이어요~내 혼자 느끼는 게 아닐 터임다...그런 분은 댓글을 붙여주어요.
과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심더. 사이비구의 작품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마음에 조사했습니다.
종에 새겨진 각종 문양을 보고 있노라면, 그 종을 만든 장인의 예술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