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 블루스
1950년대 들어와 블루스는 드디어 전기 기타를 이용하게 됩니다. 이를 일렉트릭 블루스(Electric Blues)라고 불릴만큼 새로운 탄생이었습니다.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에 영향을 받은 일렉트릭 블루스는 시카고, 디트로이스, 세인트루이스 등지에서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때 유명세를 떨친 사람이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와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 같은 사람들입니다.
▲ 머디 워터스, <갓 마이 모조 워킹 Got My Mojo Working>
그들은 로버트 존슨의 영향을 받아 슬라이드 일렉기타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B.B 킹(B.B. King) 같은 사람은 슬라이드 기타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일렉트릭 블루스 스타일의 중요한 인물로 꼽힙니다.
또한 머디 워터스와 하울링 울프(Howlin' Wolf) 같은 사람은 "듣기에 불쾌한" 보컬로 유명했습니다. 베이시스트인 윌리 딕슨(Willie Dixon) 역시 시카고에서 매우 유명했습니다.
▲ 하울링 울프, <셰이크 잇 포 미 Shake It For Me>
로큰롤의 탄생
한편 1951년 클리블랜드의 라디오에서는 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디스크자키 앨런 프리드(Alan Freed)가 맡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당시 인기있던 리듬앤블루스 음악들을 방송했습니다.
▲ 1956년 앨런 프리드의 방송, <락 락 락 Rock Rock Rock>
그는 이러한 음악들을 가리켜 블루스 같은 노래에 종종 등장하던 단어인 "로큰롤(Rock`n Roll)"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로큰롤이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로큰롤이란 용어를 구지 풀어서 해석해본다면 댄스, 음악, 성교의 의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큰롤은 곧 하나의 음악 장르로 일컬어지게 됩니다. 1951년에는 최초의 로큰롤이라 불릴만한 곡, <로켓 88 Rocket 88>이 녹음됩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곡의 원작자가 누군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재키 브렌스턴(Jackie Brenston)과 그의 밴드인 델타 켓(Delta Cats)이 만들고 녹음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아이크 터너(Ike Turner)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아이크 터너는 킹스 오브 리듬(Kings of Rhythm)이란 밴드를 이끌고 있었는데, 여기서 색소폰을 불던 사람이 바로 재키 브렌스턴이었습니다.
원래는 아이크 터너와 킹스 오브 리듬이 이 노래를 녹음해야 했지만, 레코드 회사와의 계약 문제 때문에 델타 켓이라는 유령 밴드를 만들고 재키 브렌스턴의 이름으로 내보냈다는 것입니다.
▲ 최초의 로큰롤송으로 불리는 <로켓 88>
어쨌건 이 곡은 전설적인 프로듀서 샘 필립스(Sam Phillips)가 인정했듯이, "최초의 로큰롤곡"으로써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크 터너는 정작 여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아이크 터너, "부기우기를 윤색한 것에 불과하며, 흑인들은 그것을 리듬 앤 블루스라 불렀고 백인들은 로큰롤이라 칭했을 뿐"
이 곡을 들어보면, 기존 블루스나 부기우기 사운드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리듬을 일렉 기타로, 그것도 디스토션(Distortion)이라는 이펙터(기타 본래의 소리와는 달리 일그러지는 소리)를 걸어서 연주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즉, 로큰롤은 새롭게 탄생한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단지 좀 더 격렬해졌고, 단순해지고,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 대한 반향을 좀 더 드러내는, 사랑이나 자동차 같은 젊은이들의 관심사를 노래하는 것이었습니다.
흑인 음악을 받아들인 백인들이 로큰롤(Rock`n Roll)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지칭해 널리 알리게 된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결국 로큰롤은 포크 또는 힐빌리와 가스펠 가창의 결합이다."
리틀 리처드, "템포가 빨라졌을 뿐 리듬 앤 블루스에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앨런 프리드, "로큰롤은 많은 줄기가 있는 음악의 강이다. 리듬앤블루스, 재즈, 랙타임, 카우보이송, 컨트리송... 그 모든것들이 모여 거대한 비트가 되었다."
빌 헤일리
원래 빌 헤일리(Bill Haley)는 그가 이끄는 밴드 더 코멧츠(The Comets)와 함께 힐빌리를 부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음악적인 성과가 좋지 않자, 로큰롤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로켓 88>이 녹음된지 3년 뒤인 1954년, 빌 헤일리와 코멧츠는 <락 어라운드 더 클락 Rock Around The Clock>을 발표합니다.
▲ 빌 헤일리의 <락 어라운드 더 클락>
발표 당시에는 큰 인기가 없었지만, 당시 미국의 백인 청소년들의 실상을 그린 영화 <폭력 교실 Blackboard Jungle>에 사운드트랙으로 쓰이면서 유명해집니다.
그는 백인인데다가 친근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흑인들의 리듬앤블루스처럼 가사가 심하게 노골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백인들은 그의 음악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영화 폭력 교실과 함께 흘러나오는 그의 음악이 백인 청소년들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결국 미국 챠트 1위에 올랐고, 전세계적으로 2200만장이 팔려나가는 대히트를 기록합니다.
이제 로큰롤이라는 음악이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칼 퍼킨스와 로커빌리
한편 칼 퍼킨스(Carl Perkins)는 로커빌리(Rockabilly)의 개척자로 불립니다. 로커빌리란 말그대로 Rock - a - billy, 록과 힐빌리가 합쳐진 것입니다.
당시에는 많은 힐빌리 가수들이 로큰롤의 영역으로 진출했는데, 특히 칼 퍼킨스가 유명했습니다.
그는 1954년 샘 필립스와 선 레코드(Sun Records)사에서 그의 곡들을 내기 시작했으며, 1955년 발표한 <블루 스웨이드 슈즈 Blue Suede Shoes>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유명해집니다.
▲ 칼 퍼긴스의 로커빌리 메들리
훗날 칼 퍼킨스는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쟈니 캐쉬 같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보 디들리
보 디들리(Bo Diddley)는 블루스에서 로큰롤로 넘어가는 중요한 인물 중 한명입니다.
그는 룸바(rumba) 같은 리듬을 이용해 그 만의 비트를 만들어내는데, 훗날 야드버즈, 롤링 스톤즈 등 많은 뮤지션에게 영향을 줍니다.
▲ 보 디들리의 <로드 런너 Road Runner>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네모난 기타를 들고 퍼즈(Fuzz)사운드와 트레몰로(Tremolo) 같은 혁신적인 기타 사운드를 들려주었습니다.
또한 라이브에서 그는 매우 역동적이었고 보컬 스타일도 독특했습니다.
비틀즈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존레논은 미국의 아티스트 중 가장 만나보고 싶은 단 한명을 꼽으라는 질문에 보 디들리를 꼽을만큼 그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리틀 리차드
리틀 리차드 역시 절대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레이 찰스(Ray Charles)와 퀸시 존스(Quincy Jones)를 발굴한 로버트 블랙웰(Robert Blackwell)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1955년 <투티 프루티 Tutti Frutti>를 발표, 빌보드 챠트 17위에 오르며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 리틀 리차드의 <트루 프루티>
이후 <롱 톨 셀리 Long Tall Sally>, <릿 잇 업 Rit It Up> 같은 노래들을 히트시켰습니다.
또한 로큰롤 영화인 1956년 작품 <돈 낙 더 락 Don`t Knock The Rock>과 <더 걸 캔 헬프 잇 The Girl Can`t Help It>에도 출연 하였습니다.
그는 독특한 독특한 헤어 스타일과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으며, 심지어는 무대에서 발을 피아노에 올려놓고 고함을 질러대는 무대매너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역동적인 모습과 음악은 초기 로큰롤의 기초를 닦는데 공헌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그의 음악은 내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음악은 위대하다."
딕 클락, "그는 50년대 이후 모든 로큰롤 연주자들의 모델이다."
뿐만 아니라 비틀즈, 롤링스톤즈, 지미 핸드릭스, 데이빗 보위 같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을만큼, 그가 로큰롤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지미 핸드릭스는 데뷔하기 전에 리틀 리차드의 백밴드로 기타 연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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