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 헤르만 헤세 / 박종대 옮김 / 문예출판사
-반짝임과 덧없음에 대하여
나비에 관한 글을 묶은 책이다. 헤세는 나비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어렸을 적에는 나비 채집을 했었다고 전해진다. 초등학교 시절에 여름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헤세가 나비를 빌어서 글을 썼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대변하는 대표 생명체로서 나비를 택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표현이고, 자연은 한결같이 그 자체로 그림이자 언어이며 총천연색 상형문자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과학이 고도로 발달했음에도 자연을 그대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끊임없이 자연과 싸우기만 한다.- 7쪽
자연의 아름다움은 자연을 바라보는 객체의 능력에 비례하여 보이는 것은 아닐까? 자연을 얼마나 이해하는가에 따라 그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이해의 정도는 나이의 많고 적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며 지식의 정도와도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이가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을 방해할 수 있으며, 지식은 자연을 바라보는 창에 어리는 성에와도 같을 것이다. 고지식한 노안에 얼어버린 마음은 자연을 올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또한, 바라보는 자의 자리와 자세에 기인하기도 하겠다. 네 잎 클로버를 보려면 무릎을 구부려야 한다, 서던 알프스의 장관은 마운트 쿡의 아래에서는 즐길 수가 없다, 다가섬과 떨어짐을 알아야 한다. 서로의 거리에 따라 우리는 서로 불편하기도 하고 가슴을 교환하기도 한다. 물에 빠지기도 하고 물을 마시기도 한다. 나비를 쫓아가다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삶을 영위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품 안에서 삶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자연을 제한한다, 내 눈으로 보이는 자연, 내 귀로 들을 수 있는 자연, 내 코로 느낄 수 있는 자연,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자연으로, 자연을 한정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 한다.
고백
우아한 빛이여, 그대 유희에
흔쾌히 푹 빠진 나를 보라.
다른 이들은 목적과 목표가 있으나
나는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나니.
비유는 내게 모든 것을 밝혀주나니,
내 감각을 건드리는 모든 것을,
내가 늘 생생하게 느끼는
무한함과 통일성의 모든 것을.
그런 상형문자를 읽는 것만으로
나는 늘 살아갈 가치를 느끼나니,
영원한 것, 본질적인 것은
내 자신 속에 깃들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작품이 끝나고 엮은이 폴커 미헬스의 글이 나온다. 나비에 대한 설명과 함께 헤세와 나비와의 인연도 함께 설명한다. 나비를 통해서 헤세는 영화롭고 아름다운 한 생명체의 삶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으며, 바람이 불면 사라질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나는 그의 지혜의 글을 읽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나비의 이름이 계속될 때, 그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는 것은 고행의 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녀석을 찾아 눈알을 굴려야 하는 잔재주를 부릴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헤세가 나비를 통해 "반짝임과 덧없음"을 이야기했다면 나의 나만의 나비는 무엇일까?
마음에 남아있는 글 "모래에 써 놓은 것" 전문을 옮겨본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은
한순간의 숨결이자 전율일 뿐,
값지고 황홀한 것은
지속되지 않는 아리따움일 뿐,
구름, 꽃, 비눗방울,
블꽃놀이, 아이들 웃음,
거울을 들여다보는 여자의 시선,
그리고 다른 많은 놀라운 것들이
발견되자마자 덧없이 사라진다.
그저 순간의 지속일 뿐,
그저 한 줄기 향기와 스쳐가는 바람일 뿐,
아, 우리는 그 사실을 슬픔으로 안다.
지속적인 것,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 마음에 그리 귀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서늘한 불꽃을 품은 보석,
묵직한 광채를 내뿜는 금괴,
심지어 셀 수 없는 별까지
우리에게는 멀고 낯설다. 그것들은
우리 덧없는 존재들과 닮지 않았고
우리 미음속 깊이 와닿지 않는다.
그렇다. 정말 우리 마음속 깊이 아름다운 것,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썩어가고
끊임없이 죽음으로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들이다.
지극히 값진 것들은
생성되지마자 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며
흩어지는 음악 소리처럼 그저 스쳐가는 바람이요,
흘러가는 강물이요, 시간에 쫒겨가는 것일 뿐이다,
나직한 슬픔에 휩싸여.
왜냐하면 그것들은 심장이 지속적으로 뛰는 중에도
결코 멈추지 않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리는 울라자마자
벌써 사라지고 흩어진다.
이렇듯 우리의 가슴은 덧없이 지나가는 것에
흘러가는 것에, 살아 있는 것에
형제애를 느끼고 오롯이 마음을 빼앗긴다,
지속적이고 확고한 것이 아닌.
우리는 바위, 별 , 보석 같은
불변의 것엔 곧 싫증을 느낀다.
영구한 변화 속에 휘둘리는
바람 같은 우리 영혼과 비눗방울 영혼에게는,
시간과 혼인하고 항구적이지 않은 우리 존재들에게는,
장미 잎의 이술이,
달콤한 새의 구애가,
떴다 지는 구름이,
반짝거리는 눈송이와 무지개가,
후딱 날아가버린 나비가,
이내 사라지는 미소가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축제가 되거나
고통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닮은 것들을 사랑하고, 바람이
모래 속에 써놓은 것을 이해한다.
(2017.12.3 평상심)
첫댓글 동서양 모두 '모든 것은 변한다' 를 진리로 받아 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 변화 속에는 늙음도 들어 있습니다.
不老에 안달하지 말고 고운 단풍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고보니 나비의 일생에서 가장 화려한 마지막 기간에서야 "나비"라고 불러주는군요.
저 책을 읽으면 평상심님 처럼 느낄 수 있나요?
책은 안읽어봤지만 평상심님은 도인의 경지에 들어가시는 것 아닌가 합니다. 저렇게 자연과 아름다움을 느끼시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구 무슨 말씀을 ....
남섬을 여행하면서 책을 읽다보니 잠시 속세를 떠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지금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평상심 저는 남섬에서 아예 사는데. ㅎㅎㅎ
하여간 독후감 참 좋습니다.
요즘들어 부쩍 저런 하나하나의 모습 자연이든 일상이든 하나하나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느끼려 하려고 합니다.
때 마침 이런 글을 읽으니 참 좋습니다.
@소리와 진동 본의 아니게 실례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