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전철역 외 1편
홍사성
우르르, 전동차가 들어오자
지하철 역사는 갑자기 온몸을 움칠거렸다
난감해하는 야구모자 앞에서
미처 할 말 못 한 그녀가
왈칵,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은 저 아래 발밑에서부터 올라와
작은 어깨를 흔들다가
긴 머리채를 출렁이다가
자정을 넘긴 혜화동 전철역을 가득 채웠다
아직 어제의 시간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은
왜 그녀가 우는지 몰랐다
무심한 전동차는 먼 천둥소리를 내며
야구모자와 함께 떠나갔다
한참을 더 울먹거리던 그녀는
슬픔을 가로질러 막차가 들어오자
잠시 뒤, 보이지 않았다
한 편의 흑백영화를 본 겨울밤이었다
맷집
- 종쟁이 원광식의 말
무릇 종이란 맷집 좋은 게 최고여
아무리 미끈하고 덩치가 커두
쉽게 깨지면
깊고 좋은 소리 한번 못 내고
폐기처분되는 벱이거든
그러니께 요는,
당목(撞木)을 얼마나 잘 받아내게 하느냐
이게 제일 중요하다 이 말씸이지
종쟁이두 매한가지여
맷집 좋은 놈이라야 어떤 일이락두
겁 안 내고
해낼 수 있는 거여
내 말 우뗘,
이치가 그럴듯하다 싶으면 잔재주보다
맷집을 키워야 혀,
이제 알아들었어?
홍사성
-2007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내년에 사는 법』, 『고마운 아침』, 『터널을 지나며』 등
-제55회 한국시인협회상
-『불교평론』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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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의 즐거움
혜화동 전철역 외 1편 / 홍사성
열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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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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