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코에 꽃대가 올라왔어요
최 화 웅
꽃은 우주다. 우주의 시공간은 존재하는 이 세상 모든 시간과 거리를 압축한다. 거리란 공간을 점하는 크기를 말하고 시간은 상상 속에서 세상을 품는다. 꽃대 끝에 달린 꽃망울은 알아차림의 떨림으로 변화를 향해 향기를 날리고 그 떨림은 끝없는 깨달음의 울림으로 창공을 향해 외친다. 그 울림의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은 자각한 인간이다. 자각은 그 자체로 이미 빛나는 하나의 성취다. 햇볕이 귀한 집에서는 화초를 제대로 기르기 어렵다. 특히 동쪽으로 기운 동남향집은 아침나절 햇볕이 잠깐 들었다 이내 나가버린다. 한겨울이면 집 안에서 빨래말리기와 화초 기르기가 어렵고 햇볕으로 집안을 데우기란 더욱 아쉽다. 나는 언제부턴가 햇볕이 잘 드는 쪽으로 화분을 옮겨주는 일에 부지런을 뜬다. 서가에 강한 햇살이 직접 닿지 않도록 커튼으로 가리는 일도 성가시다. 뿌리식물의 화분을 자주 옮기는 것이 흔들려서 생육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매일같이 옮겨주기가 조심스럽고 때로는 꺼림칙하다. 그러나 장식용 토기 화분에 담긴 두 뿌리의 가랑코에는 지난해 세밑부터 튼실한 꽃대가 올라와 꽃망울이 곧 터질 것처럼 벼르고 있다. 옥빛 유리화분에 담긴 가랑코에는 새해 들어 꽃망울을 키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화분을 옮겨주는 일이 단조로운 생활에 변화를 일으킨다. 장식용 촛대처럼 여남은 개의 노란색 꽃대대 위의 꽃망울 하루가 다르게 자라 곧 터질 듯 부풀었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전 꽃망울을 지켜보는 마음은 뛰는 가슴으로 설레고 집안분위기는 화사하기만하다. 우리 집 가랑코에는 이웃에 사는 딸아이가 지난해 어버이날에 선물한 화분이다. 그동안 이사와 잇단 입원의 북새통에서도 죽지 않고 용케 한 가족으로 살아왔다. 12월생인 나는 성탄절이 가까워오면 빨간 포인세티아와 하얀 시크라멘과 더불어 ‘Christmas Kalanchoe’라는 이름을 가진 가랑코에 화분을 들여놓고 겨울을 함께 지낸다. 가랑코에는 돌나무과에 속하는 열대 다육식물로 비가 자주 오지 않는 건조한 기후대의 열대가 자생지다. 다육식물은 줄기와 잎이 두텁고 커서 평소 수분을 많이 품는다. 비가 올 때면 몸속에 수분을 충분히 비축했다가 건조한 시기를 대비하며 견디는 체질이다. 물은 열흘에 한 번쯤 주고 물을 줄 때는 잎과 꽃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한다. 가랑코에는 건조한 환경에 잘 견디지만 물을 싫어하지는 않는 까다로운 성격이다. 꽃이 만발한 채 우리 집에 들어온 가랑코에는 오랫동안 꽃을 피워 식탁과 책상, 거실의 교자상 위를 옮겨 다니며 집안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꽃이 지고부터는 무관심 속에 한 세월을 홀로 보낸다. 무더운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미세먼지와 강추위가 숨바꼭질을 하는 겨울 동안 미처 살피지 못한 틈에 꽃대를 올려 탐스러운 꽃망울을 키우면서부터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물리학에서 시간과 계절이란 시계로 읽을 수 있는 사건과 사건의 간격이고 공간은 자가 읽어내는 두 지점의 거리를 말한다.
가랑코에는 잊지 않고 물을 주며 보살피는 아내의 정성과 잠깐 들렀다 나가는 귀한 햇볕이 키워낸 우리 집의 생명체다. ‘인기, 설레임’ 이라는 꽃말에 ‘너를 지킨다.’와 ‘행복을 전해준다.’는 꽃말까지 가진 가랑코에는 깊어가는 연인들의 사랑을 엿보게 한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사랑하는 연인이나 아직 편하지 않은 관계에서 좀 더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기를 원한다면 가랑코에 화분을 프러포즈 선물에 끼우면 좋을 것이라고 권한다. 우리 부부는 딸아이가 보낸 가랑코에를 보면서 결혼 10년 만에 어렵게 체외임신에 성공한 산모와 태아의 건강은 물론 순산을 위해 기도하며 새 생명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난해 6월 21일 외손녀 유나가 태어난 뒤로는 가랑코에의 꽃망울을 지켜보면서 꽃처럼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라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을 모은다. 가랑코에의 잎은 넓고 두툼하여 오일을 몇 차례 두껍게 바르고 덧칠한 유화 캔버스처럼 윤기를 머금는다. 잎은 한 개의 줄기 마디에 두 장의 잎이 마주보고 자란다. 줄기 끝에 꽃대를 키워낸 가랑코에는 가을이 끝날 무렵부터 춘사월에 이르는 동안 십자 모양의 작은 꽃이 무리지어 핀다. 그 꽃들이 집안을 온통 싱그러운 꽃 대궐로 치장한다. 가랑코에는 홑꽃과 ‘칼란디바’라 부르는 겹꽃을 피운다. 홑꽃은 작은 종이나 등불을 닮아 단아한 모습으로 깔끔한 자태를 뽐내고 겹꽃은 보기에 화려하며 풍성하다.
꽃은 줄기 위 꼭대기에 꽃대가 나와 우산 모양으로 자라서 꽃송이를 만든다. 꽃이 피면 오랫동안 이어져서 2~3개월은 넉넉하게 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가랑코에를 흔히 불로초(不老草)라고도 부르는가보다. 가랑코에는 줄기나 잎의 꺾꽂이(삽목)로 쉽게 번식하고 수경재배로 뿌리를 내린 뒤 옮겨심기도 한다. 가랑코에는 밤이면 이산화탄소를 먹고 대신 산소를 살려 실내 공기 정화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일찍이 가랑코에를 에코플란트로 선정한 바 있다. 가랑코에의 자생지 마다가스카르(Madagascar)는 열대 아프리카의 남동해안 앞바다의 인도양 남서부에 자리한 섬나라다. 마다가스카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으로 한반도의 두 배반이 넘는 땅이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로 지배당하며 원주민들은 커피 농사에 내몰렸다. 마다가스카르는 생떽쥐페리의『어린 왕자』에 나오는 굵은 줄기에 파마를 한 머리를 인 나무 바오밥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곳이다. 마다가스카르는 6천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과 인도가 갈라지면서 생긴 섬이다. 수천 년이나 서식하여 ‘생명의 나무’로 불리는 바오밥나무는 모두 8종으로 그 중 6종이 마다가스카스에 서식하고 남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 각각 한 종씩 살면서 이를 보는 사람들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최근 CNN에서는 바오밥나무가 잇따라 말라죽어간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전한 바 있다. 어느 틈에 겨울이 한고비를 넘기고 입춘을 앞둔 계절에 가랑코에 꽃망울이 화려한 꽃을 피우려는 듯 몸을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