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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사회(Heat Wave). 1995년 미국 시카고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다. 구급차는 모자랐고 병원은 자리가 없어 환자를 거부했으며, 시민들은 갑자기 죽은 이웃들을 목격했다. 폭염은 홍수나 폭설처럼 스펙터클 한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눈에 띄지 않는 노인, 빈곤층, 1인 가구였기 때문이다. 당시 700여 명이 사망했고 "폭염 사회"는 열파 사망의 사회적 참사를 기록한 책이다.
지난 6월 29일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리턴 지역 기온이 49.5도까지 올랐다. 캐나다 <CBC> 방송은 6월 25일부터 이어진 폭염으로 밴쿠버에서만 100명 넘게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밴쿠버는 2010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다.) 사망자 대부분은 노인이나 기저질환이 있는 취약 계층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시작된 2018년 온열 질환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곳은 아니러니하게도 ‘집’이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집에서 죽는 이유는 주거 빈곤, 에너지 빈곤 때문이다. 더군다나 코로나19 상황에서 매년 이어지는 폭염으로 집에 머물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집에 머물라”는 방역 지침은 오히려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 상황이 되었다.
기후 비상 상황, 폭염 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의 고통과 죽음을 외면하는 이른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안’(이하 녹색성장법)이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탄소 중립과 녹색성장이 같이 있는 제목부터 이상한 법안이다.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 때 만든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서 따온 말이다. 4대강 난개발 사업 같은 대규모 토건 사업을 소위 ‘녹색성장’이라며 추진했던 이산화탄소 다배출법이었고 이후 한국은 전 세계적인 ‘기후 악당국’이 되었다.
지난 6월 28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국회 앞에서 "기후위기 외면하는 제2의 녹색성장법 반대한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 기후위기 비상행동)
국민의 힘과 민주당의 법안 협상 과정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 등 시민사회의 제대로 된 ‘기후 정의법’ 논의는 사라지고 엉뚱하게도 ‘제2의 녹색성장법’이 심의되고 있다. 이 기괴한 법안은 기후위기 대응에 가장 중요한 2030년 중장기 감축 목표를 포함하지 않고, 시행령인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다. 탄소 배출 감축의 최소기준도 명시하지 않고, 정권이 바뀌면 바뀔 수 있는 시행령에 설정 목표를 넣겠다는 일종의 꼼수다.
또 이 법안은 기후위기, 폭염 사회 속 죽어가고 있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해결책도 외면하고 있다. 탈 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경제성장에 사로잡혀 그간 탄소 배출을 주도한 기업들이 해결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로 피해 입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과 시민들 그리고 다음 세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전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안에는 기업을 위한 다양한 탄소 경제 지원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만, 기후위기 피해에 따른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조항은 없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제시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책추진과정에서 발생한 기후위기 피해와 손실에 대해 보상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위기의 책임을 지닌 사업주는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와 손실에 대해 보상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는 대안 법안은 거부되었다.
지금의 폭염 등 기후위기 상황은 그동안 거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해 오던 기업과 선진국들의 책임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불의가 판치고 점점 많은 사람이 배척당하며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세계화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대와 가장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공동선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찬미받으소서' 158항) 그리고 이 공동선은 미래 세대와 연결된다. 우리가 받은 지구는 우리 후손들에게도 속하기 때문이다.
지금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안’은 폭염 사회에서 조용히 느리게 죽어가고 있는 가난한 이들과 다음 세대와의 연대를 거부하는 불공정한 법안이다. 국회는 이 녹색성장법을 폐기하고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의 공동선을 지키는 기후 정의법을 다시 제정해야 한다. 여야 막론하고 “정치적 위대함은 어려운 시기에 중요한 기본원칙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며 장기적 공동선을 배려하는 것에서 드러난다”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에 귀 기울일 때다.
'못보는가 안보는가 코로나 속 가난한 사람들을' 퍼포먼스 모습. (사진 제공 = 최예륜)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