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한 건 그가 이탈리아 방면 사령관으로 임명되고 나서부터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프랑스 본토 사람이 아니며, 원래는 이탈리아 땅이었던 지중해의 섬 코르시카 출신이다.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지만 엄연히 식민지 출신의 시골뜨기에 불과했던 그에게 출세란 생각처럼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다 혁명정부의 요직에 있었던 유력자 바라스의 옛 애인 조제핀과 결혼해주는 조건으로 이탈리아 방면 총사령관 자리에 덜컥하고 앉게 된다.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였지만 사실 그걸 문제 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말이 총사령관이지 당시 프랑스의 이탈리아 방면군이라는 집단은 기본적인 보급과 무기 지급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던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요 당나라 군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단번에 이 부대를 유럽 최정예로 탈바꿈 시킨다. ‘큰 물’을 만나자 그간 잠들어 있던 군사천재의 능력이 단번에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당시 겨우 20대 후반의 나이였고, 전쟁경험도 일천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곧장 북이탈리아로 진격한다. 칸느, 니스, 산레모, 제노바 등 리비에라 해안선을 따라 순식간에 이탈리아로 넘어온 프랑스군은 단숨에 피에몬테와 밀라노 일대를 장악하고 숨돌릴 틈도 없이 베네치아로 몰려와 천년 역사의 위대한 해상공화국을 단숨에 멸망시킨다. 베네치아에 도착한 나폴레옹은 산 마르코 광장의 카페 플로리안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즐겼다고 한다. 원래부터 그는 유명한 커피 홀릭이었고, 파리의 저 유명한 카페 프로코프의 골수 단골로도 소문이 자자했다.
(아직도 카페 프로코프에 전시되어 있는 나폴레옹의 사관 모자)
나폴레옹은 전장에서도 부하들에게 커피를 적극 권하곤 했는데, 집중력을 키워주고 사기를 북돋는 음료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폴레옹이 즐겨마시던 커피는 사실 치커리(Chicory)였다. 커피가 워낙에 비쌌기 때문에 당시 파리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그 대용품으로 치커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나폴레옹이 수려한 경관으로 유명한 산 마르코 광장 한 켠에서 최고급 아라비카 원두를 사용한 베네치아식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 그 감동이 얼마나 대단했을지는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못내 이 커피에 감동한 덕분일까. 나폴레옹은 군인이 아니라 차라리 문필가의 어조로 산 마르코에 대한 장엄하고 찬란한 헌사 하나를 남긴다. “산 마르코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살롱이며, 그 지붕이 될 자격은 오직 이 하늘 밖에 없다”라고.
(푸치니 <토스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오페라 <토스카>는 나폴레옹의 2차 이탈리아 침공을 역사적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극이다.)
이렇게 커피를 극진히 사랑했던 천재 군인 나폴레옹도 결국에는 실각하고 만다.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러시아 연합군에 패배해 남대서양의 외딴 섬 세인트헬레나로 유폐된 것이다. 나폴레옹은 극소수의 수행원들과 함께 이 섬 중앙에 있는 롱우드라는 저택에서 6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후덥지근한 열대기후와 문명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척박한 환경, 게다가 무례하고 오만한 영국 총독 허드슨 로의 행패까지 이어진 그의 유배생활은 참혹했다. 그래도 나폴레옹은 끝까지 자존감과 위엄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수행원들에게 구술 기록을 시켜 방대한 양의 회상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덕분에 우리는 한때 유럽를 지배했던 위대한 황제의 세계관과 역사관, 인생역정과 생생한 전쟁경험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했던 세인트 헬레나지만 단 하나 나폴레옹을 만족시킨 것이 있었으니 바로 커피였다. 세인트 헬레나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품종인 부르봉 커피가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부르봉(Bourbon)은 아라비카 커피의 한 갈래로, 프랑스가 한참 식민지 경영에 골몰하던 시절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인근의 작은 섬 부르봉에 커피 나무를 심고는 전략적으로 커피재배를 시도하면서 탄생한 커피열매다. 주로 고산지대에서 잘 자라고, 생두는 크기가 작지만 알이 둥글고 속이 알차게 여물어 있다. 개량종이 아니라 3백 여년 전에 탄생한 단일종이어서 환경 적응력이나 병충해에 대한 저항력은 극히 떨어진다. 결국 다른데 옮겨 심을 수도 없고, 옮겨놓으면 금방 변종이 돼 오리지널 특유의 화사한 풍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결국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세인트 헬레나 섬만이 지금까지도 부르봉 커피의 원형을 유지한 채 이 커피의 성지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 대륙 서안에서 거의 2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이곳은 지금도 공항이 없고, 교통편이라고 해봐야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월 2회 정도 왔다 갔다 하는 연락선이 전부다. 인구는 6천명 내외 밖에 되지 않아 여러모로 절해의 고도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생산된 세인트 헬레나 커피는 커피 체리를 100% 사람의 손으로 한알 한알 골라서 수확한다. 연간 수확량도 200kg 정도로 매우 적고, 최고급품은 영국 왕실에서 입도선매 방식으로 싹 쓸어가기 때문에 시중에서 맛보기는 대단히 힘들고, 또 매우 비싸다. 화사하고 달콤하면서도 아련한 향취가 깊은 여운을 주는 세인트 헬레나 커피는 파나마의 게이샤, 인도네시아의 코피루왁과 함께 세계 3대 희귀 커피로도 불린다.
엘베섬에서 극적으로 탈출 해 재집권에 성공했던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에서도 또 한번의 기적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키작은 영웅에게 운명의 여신은 조금 가혹한 결말을 선사했다. 그는 이 섬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채 뜨거운 태양이 숨막히듯 내리쬐는 절해의 고도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폴레옹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에는 거친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전쟁터에 있느라 고급 커피를 우아하게 즐길 여유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권좌에서 내려와 완전히 몰락한 다음에는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커피를 맛볼 기회가 생겼다. 인생은 이처럼 아이러니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 최고의 커피를 마시며 가장 쓸쓸한 최후를 보냈을 거인을 추억하며 세인트 헬레나 커피의 섬세하고 델리킷한 아로마에 흠뻑 취해보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