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53주기를 그냥 넘길 수 없어 이 시집을 읽었다. 시인의 감정에 강한 동지애를 느끼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대선이 끝난 뒤 진행되는 시대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전태일 정신조차 위태롭다.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지만, 지금의 변화가 바람직한지? 어느덧 나도 보수적인 존재가 되었는가? 이 시대에 전태일 정신은 무엇인가?
표성배 시집 『당신이 전태일입니다』(도서출판 b). 2023년 10월 24일 간행.
가장 따스한 집
표성배
어둠의 무리를 뚫고 주춧돌이 하나하나 놓이고 기둥이 하나둘 세워지고 드디어 대들보가 올랐다 백 년 이백 년 무너지지 않는 집이 될 것이라 환호했지만 김칫국을 너무 일찍 마셨다 환호성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주춧돌이 내려앉고 대들보가 흔들렸다 조합 간부 할 사람이 없어― 집회에 나오라면 다들 꽁무니부터 빼 카톡 아이면 전달도 잘 안 돼 유인물을 나눠주면 바로 쓰레기통이야! 연대투쟁은 지랄― 노예 같은 삶을 강요했던 사용자와 국가 권력에 맞서 피로 세운 집 그 집을 지키기 위해 다시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어디서 오는가 거친 동료의 손을 잡아본다 너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저 사악한 무리의 귓속말을 떨쳐버리는 것 대문이 굳게 닫힌 집에는 따뜻한 밥이란 없다 수많은 전태일이 만들고 지키고자 했던 노동조합 그 집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