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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아침은 아이눌이 간단하게 삶은 달걀과 잡곡 시리얼을 해주었다. 하지만 잡곡 시리얼은 내가 봤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눌에게 다음에는 내가 한 번 코리안 스타일로 밥을 해주겠다고, 이건 정말 훌륭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마치 이탈리안 사람들 앞에서 스파게티에 케챱 뿌려 먹는 것과 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성산포항까지 걸어가 우도로 향하는 배편을 살펴보았다. 보니까 가장 가까운 배편까지 7분이 남아 있었고, 다음 배편은 한 시간 뒤에 있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얼른 수속 과정을 거쳐, 배까지 달렸다. 그러면서도 너무 마음이 급하다는 생각에,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아이눌은 느긋하게 달려왔는데, 속으로 나는 복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우리는 무사히 배에 올라, 우도로 향할 수 있었다.
‘사실, 어찌 되어도 좋은 것인데. 내가 너무 쫓기듯 급하게 굴었나.’
늦게나마 그런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배의 최상층 야외 공간으로 올라갔고, 그곳은 갈매기들과 갈매기들에게 밥을 줄 수 있는 새우깡이 있었다. 우리가 막 올라왔을 때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는데, 점차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무수한 인파로 북적였다. 나도 아이눌도, 별로 이런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관광객들이 갈매기에게 밥을 주는 광경을 가만히 구경하다가, 이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배는 우도에 도착했다.
우도에 도착하고 올레길 표시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오늘의 목표는 우도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우도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는데, 그래도 해변가에서 조금 들어가면 제주 특유의 한가한 분위기가 잘 살아있었다.
그렇게 조금 걷고 있다 보니, 아이눌이 물었다.
“There is cafe?”
“No.”
“Let’s find a cafe.”
얼마 안 가 우리는 바닷가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커피를 주문한 뒤 느긋하게 쉴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아이눌이 트럼프 카드를 꺼냈다. 그러고는 내게 혹 트럼프 카드로 할 줄 아는 게임이 없냐고 묻기에,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지피티에게 물어서 아이눌에게 원카드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눌과 원카드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눌은 게임을 정말 느긋하게 했다. 중간중간 패를 내려놓고 풍경을 감상하거나 카페 내부를 구경하기도 하고, 삼각대를 설치해 게임 하는 것을 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혹은 거의 몇분 가량 풍경을 감상하다가 “My turn?”하고 패를 들여다 보기도 했다. 솔직히, 복장 터지는 줄 알았다. 나 또한 아이눌과 여행을 같이하며 그의 시간감과 여행관을 체화하고자 하였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그때마다 속으로 되새겼다.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스승의 뜻대로 하십시오.’
이후 카페를 나와 우도의 올레길을 계속 걸었다. 도중에 대뜸 소를 보기도 하고, 여러 여행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던 것이,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도착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눌은 다르게 생각하는 듯했다.
“I think this is end. What’s your think?”
아이눌은 이게 끝인 것 같다고,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보아도 처음 우리가 우도에 들어섰을 때와는 풍경이 다른 것 같았다. 나는 이곳저곳 둘러보며 올레길을 나타내는 표시를 찾고자 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매표소로 들어갔다. 가장 가까운 배편은 45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매표소에서 기다리며 우리가 정말로 우도를 다 돌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알고 보니 우도에는 선착장이 두 곳이 있었고, 여기는 첫 번째 선착장에서 약 한 시간 떨어진 거리의 또 다른 선착장이었다.
어쨌든, 배가 오자 우리는 배를 타고 우도를 나왔다. 이번에는 3층이 아니라 2층 실내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시 제주도에 도착해서는 마저 길을 나섰다. 이제 우리는 성산일출봉 주위로 형성되어 있는 시가지를 지나고 있었고, 아름다운 풍경도 여럿 보였다. 아이눌은 정말 지치지 않고 영상을 찍었고, 나 또한 그에 동조했다. “Back shot.”, “Side shot. walk with me.”, “Front shot. Faraway more more more.” 때로는 내가 제시를 하기도 했다. 앞에서 찍는 앵글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이에 아이눌은 맞는 말이라고 하며, 그런 샷을 많이 찍었다.
또 그저 멍하니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잘 못 된 길로 걷고 있을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아이눌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표시가 있는 곳에서 다시 걸었다.
한번은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내가 맵을 켜서 길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후회했다. 그 행위로 인해 왔던 길을 돌아가고, 다시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겪게 될 모든 것들을 놓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를 아이눌에게도 이야기했고, 그러자 아이눌은 맞는 말이라고, 여행 중에는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고 했다.
성산일출봉 주위의 시가지를 나오고 나니, 올레길은 해변의 모래사장을 따라 나 있었다. 본래는 그 위에 데크 길이 있었던 것 같았으나, 지금은 인부들이 공사를 하고 있었다.
해변 길을 나와 다시 도로로 가는 길에, 우리는 작은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계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거기 스탬프 있다고, 찍고 가라고 하셨다. 아이눌은 스탬프를 찍었고, 나는 할머니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한라봉을 팔고 계신 것 같았는데, 그 행색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나는 고민하며 가격을 여쭈었고, 할머니는 삼천 원이라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한라봉을 사드릴까 하는 고민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이게 진정 스승님의 뜻일까.’
이내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 한라봉 한 봉지를 사들었다.
이후 길을 걸으면서, 계속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자꾸만 내 마음을 찔러대는 것은, 바로 아이눌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아이눌은 내 여행의 사정을 이해해 주고, 페이를 대신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할머니에게서 한라봉을 사들였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게 느껴졌다.
아이눌은 그 후 한참 있다가 내 팔에 걸려 있는 한라봉을 발견했다.
“Oh, she gave you?”
“…No. I pay it.”
“Oh, good. Maybe we can use that orange some cook.”
이후 별다른 얘기는 오가지 않았다. 정말 이거면 되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아이눌은 내가 돈을 써서 한라봉을 산 것에 대해 구태여 묻지 않았고, 우리는 트래킹을 이어갔다.
이날은 내가 폰으로 숙소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가며 잘 곳을 찾았다. 성산 마리나라는 제법 큰 호텔이었는데, 가격은 6만 원으로 여태까지의 다른 숙소에 비해 제법 싼 편이었다. 아이눌은 내가 숙소에 전화를 걸 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가격은 적절한지, 카드로 결제 가능한지, 주방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주방은 없었다. 우리는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풀었다. 아이눌은 하루 트래킹을 마치고 침대에 눕는 것까지 영상으로 찍었다. 나는 오늘 산 한라봉을 까먹다가, 씻고 쉬었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오늘도 기록을 할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오늘은 기록을 하는 대신, 한번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있어 보고 싶었다. 그러자,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눕혀져 있는 식용유를 세우려는 내가 보였고, 창가로 가 풍경을 내려다보는 나, 한라봉을 까먹는 나 등이 보였다. 순식간에 이 방이 무수한 나로 채워지는 광경을 살펴보며, 또한 나는 그 무수한 나들을 바라보는 나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이러한 나들을 마주한 경험을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상상을 하는 나로 있었다.
그러던 중 아이눌이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그래서 패딩을 입고 엘리베이터로 1층 로비까지 내려가는 와중에, 아이눌이 카운터 직원에게 근처 추천해 줄 만한 식당을 물어보라 했다. 그래서 나는 카운터로 걸어가 맛집을 물어보았는데, 그분은 바로 옆에 흑돼지 오겹살집을 소개해 주셨지만, 나는 조금 더 싼 곳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당황하시며 자기가 여기서 일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눌에게 대화 내용을 설명했고, 아이눌은 그럼 한번 둘러보자고 했다. 내가 아이눌에게 어떤 메뉴를 먹고 싶냐고 물으니, “Anything.”하고 답했다. 그러나 나는 근심이 들었다. 여기는 나름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있었고, 메뉴는 방대했기에, 다시 한번 아이눌에게 정하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묻자, 아이눌이 답했다.
“Just walk, and anyway look’s nice? And there we go.”
그 말을 듣고 나자, 이내 내려놓기로 아이눌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 굶어도 상관없는 것인데, 어찌 되는지 한번 보자.’
아이눌은 대패삼겹살집을 보더니, “Is it Korean barbecue?”하고 물었다. 이에 그렇다고 답하자, 일단 찜해놓고 다른 곳을 더 둘러보자고 했다. 그러다가 횟집을 보고는, 이내 들어가자고 했다. 우리는 횟집에 들어가 줄을 섰고, 아이눌은 잠시 내부를 둘러보다가 이내 “Is here only sashimi?”하고 묻고는, 그렇다고 답하자 이내 아까 그 대패삼겹살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대패삼겹살집으로 돌아왔다. 주문은 내가 했고, 그렇게 반찬과 고기가 나오자, 내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래도 외국인에게 한국의 음식을 선보이는 것이니, 뭔가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나는 짐짓 능숙한 척하며 각종 풀들과 고기를 불판에 올렸고, 우리는 고기를 먹었다. 불이 제법 강했는데, 나는 줄일 생각을 안 하고 계속 구웠다. ‘대패 삼겹살은 빨리빨리 먹는 거지.’ 그러나 정작 아이눌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자, 이내 초조해졌다. 혹시 내가 너무 빠르게 고기를 굽고 있나. 먹는 속도가 너무 빠른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혹시 고기 굽는 속도가 너무 빨랐냐고 물었다. 이에 아이눌은 아니라고 답했지만, 내 마음이 편해지진 않았다.
아이눌은 식사를 마친 후 가만히 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아이눌은 매번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일어나는 대신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나 또한 그 시간을 즐겨야지 하고 가만히 있어 보았지만, 여전히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가게를 나왔을 때, 아이눌이 물었다.
“You want a walk little more?”
이에 나는 그러자고 답했고, 우리는 식당가를 조금 더 걸었다. 그러다 숙소로 돌아와 양치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슬슬 자려 할 때 즈음, 아이눌이 물었다.
“You want a watching good Will hunting?”
이는 전에 트래킹 중 서로 좋아하는 영화를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알게 된 아이눌의 최애 영화였다. 그리고 나 또한 몹시 좋아하는 영화였고, 이를 알고 있었던 아이눌이 같이 보자고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 굿 윌 헌팅을 같이 보게 되었다. 아이눌은 영화에서도 가벼운 농담이나 일상적인 느낌을 잘 살리는 카메라 앵글 등을 몹시 좋아했지만, 나는 영화의 전혀 다른 부분을 보고 있었다. 상처받은 기억을 가지고 새로운 관계를 가져 나가는 것에 잔뜩 움츠러들고, 결국 타인에게까지 상처를 주던 주인공이, 영화 후반부에서야 스스로를 용서하는 서사. 그리고 영화 맨 마지막에는, 오직 스스로의 감동에 따라 또 다른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장면까지. 나는 주인공이 부러웠다. 그리고 나도 이번 여행에서 저런 순간을 겪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