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지금 한국사회는 요지경이다. 마치 동화책을 읽는 듯하다. 기운 센 놈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약육강식의 세상 말이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란 적자생존(適者生存)과 통하는 말로 인간은 같은 종끼리 서로를 착취하고 약자를 잡아먹는다. 그것이 좋은 말로 경제(經濟)라는 것인데 그 경제적인 힘은 사회 구성원 중 10%가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에 있어서 권력은 0.1%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머지 90%나 900%는 그들이 먹다 남은 뼈다귀를 아귀다툼하며 냄새나 맡으며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하게도 한국사회에서는 특별히 재벌(財閥)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그들이 정치와 경제를 떡 반죽을 주무르듯 주무르고 있으니 이것이 크나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문제를 깊이 드려다 보면 사실상 모든 것을 가진 재벌이라는 0.1%가 어떻게 하면 서민들을 더더욱 착취할까 정치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매일 고민하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잘못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우리사회는 그것을 자연의 섭리라 얘기하고 면죄부를 주고 있는 인상이 짙어 보인다. 만약 생존이 문제인 자연에서 그런 짓을 당연한 듯 일삼았다가는 그 종은 이미 자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 자연을 보호하지 못할 거라면 자신들의 추잡한 모습을 자연의 섭리로 포장하는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너무나도 뻔뻔스런 인간 말종 들의 군상(群像)’
입도 크게 하지 말고 입술에 침도 바르지 말고 아무런 핑계나 이유 따위며 어떠한 단서도 달지 말고 나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라고 한마디를 고백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없는가?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인이라면 그렇게 진실로 묻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만약 양심에 털을 제거하고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정치적 생명이 끝날 거라는 공포심 때문인지 정치인들은 발악을 할지언정 그 말을 발설(發說)하지 못한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왜 나만 그래야 하지? 라는 억울함을 토로한다. 그럴 것이다. 함께 저지른 일인데, 변명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핑계를 얼마든지 들이대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잘 안다. 무엇을 아느냐? 국민들은 금세 다 잊을 거야, 분명 또 내게 표를 줄 거야, 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정치인의 그 못된 버르장머리를 우리 국민들이 방기(放棄)한 탓으로 그리 된 것이다.
사소한 실수에 대해 사과하면 없던 죄까지 뒤집어 씌워 매장시켰다. 큰 죄를 짓고도 '나 몰라라' 버티면 금의환향할 수 있었던 게 우리나라 정치 역사였다. 지금도 경제지표는 곤두박질치고 있는데 '괜찮다, 좋다, 성공하고 있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비핵화 하겠다는 확답을 받은 적도 없으면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천명했다"며 북한에 대해 온갖 지원방안을 모색하기도 하고 있다. 그럭저럭 그러다보면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고 말 텐데 그렇다는 말이다.
한심할 일이다. 정직하게 땅을 믿고 하늘만을 믿고 사는 인민의 마음으로 바라볼 때 억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여 눈물이 난다는 말이다. 아니 이 썩어 문드러질 세상이다. 콱 난리라도 나버리지 않나? 그런 마음이다.
우리 주변을 들여다보면 솔직히 말해서 꼭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거짓말은 어디서나 유용하다. 야밤 한적한 공터의 승용차 안에서 노모랑 함께 있었다거나, 불법대출은 아내가 했다거나, 윤리강령에 위배되는 거액의 주식 투자는 남편이 한 일이라고 억울해 하면 얼렁뚱땅 잘도 넘어간다.
그러한 거짓말은 카멜레온의 변색처럼 생존에 필수적 능력이기도 하지만 부를 축적하는 재능이자 출세의 지름길이며 권력의 핵심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꽃처럼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이 대학입시학원을 통하여 온갖 눈치놀음을 배우고 있다. 남보다 한발 앞서야 한다는 적자생존의 싸움터에서 싸우고 있다. 인성을 길러야 하는 광장이 생선 썩은 냄새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언제부터 딱히 그랬는지는 모르나 우리 사회는 타인에 대해서는 혹독하면서도 내 편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다.
인간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기죽지 말라며 눈감아주는 데 급급하다. 내 가족, 내 사람이 성공하면 찬사를 보내지만, 과오에 대한 개인의 책임은 가르치지 않았다. 그 결과를 따져보니 잘못이 발각되면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뿐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소위 내로남불의 세상이라고 한탄만 하고 있다. 거기다가 인권(人權)이라는 모호한 개념이 도깨비처럼 나타나 비집고 들어서면서 잘못과 죄에 대한 경각심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사기를 쳐도, 횡령을 해도, 추행을 해도, 도둑질을 하거나 살인을 해도 그런 적 없다 발뺌하고, 남을 탓 하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만사가 다 해결이 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재이다.
그런 대한민국의 정치·언론·기업·교육·문화·역사와 사직당국과 군경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쌓여온 과오들을 하나도 바로잡지 못한 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우리나라는 그렇게 차근차근 날이 갈수록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북극의 빙하가 무너지듯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이제라도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본부터 다시 배우고 다시 가르쳐야 한다. 누구나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만 자유와 선택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사과하고 반성해도 이미 저지른 과오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용서는 책임진 뒤에 올 수도 있는 행운일 뿐, 잘못을 시인했다고 주어지는 포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대학이 직업 사관학교가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서 상아탑이 인격도야의 탑임을 증명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머지않아 대한민국은 무신론자의 천국이 되고 말 것이다.
요즘 대학이 굴러가는 양태를 보면 직업사관학교화 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대기업의 ‘반도체 분야 인재확보’ 방안을 두고 야기된 논란이 뜨겁기에 말하는 것이다. 기업이 세계에 유례가 없는 맞춤형 계약학과를 특정 대학에 세우는데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지적이 그것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서울대·고려대·카이스트 등과 4년 전액 장학금에 100% 취업을 보장하는 반도체 계약학과 개설을 협의 중이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 기업들의 반도체 인재확보를 적극 독려한다는 방침이다.
들리는 바로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조만간 범정부 차원에서 발표할 ‘비메모리 반도체 집중 육성 방안’에 대기업의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반도체학과(학부) 신설에 관한 정부 지원방안을 포함시킬 것이라고 지난 달 28일 밝혔다.
정부가 반도체 인재확보에 매달리는 것은 당장 한국 수출 전선에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친 올 1분기 반도체 분야 영업이익은 5조원 규모로 전분기(12조원)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라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라면서 “대기업이 반도체학과를 운영하면 정부는 해당 기업과 5:5 매칭 펀딩을 통해 신기술 확보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학과를 운영하는 기업이 기술개발을 원하면 정부와 절반씩 연구비를 부담해 대학 연구기관에 맡기게 될 것”이라면서 “기업이 원치 않는 지방대는 또 다른 지원 방안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먼저 나선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반도체 분야 교수와 학회에서 워낙 강하게 요구했고 정부도 수출 실적이 걱정되자 앞장섰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언 발에 오줌 싸기라는 속담을 우리는 잘 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졸속행정이라고 할 것이다. 앞으로 닥쳐올 세상을 누가 알리오. 허나 인재란 인재는 모두 다 의대로 가더니 이제는 반도체로 간다는 것이 아닌가.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기술자만 양성하려고 혈안이 되지 말고 인간을 만드는 대학 나라의 간성(干城)을 만드는 대학을 만들어서 양심적이고 진실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 정치인 중에서 나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라고 양심을 선언하는 큰 인물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