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9,1-6; 에페 5,15-20; 요한 6,51-58
+ 오소서, 성령님
우리가 미사를 거행할 때 독서와 복음은 ‘전례력’이라는 달력을 따라 정해지는데요, 기본적으로 가, 나, 다해 세 개의 연도로 나뉩니다. 가해의 주일에는 주로 마태오복음, 나해에는 마르코, 다해에는 루카 복음의 말씀을 듣는데요, 마르코 복음이 짧기 때문에 나해에는 중간에 5주 동안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이 봉독됩니다.
올해는 나해이기 때문에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을, 지난 7월 28일부터 다음 주일인 8월 25일까지 5주 동안 듣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주까지 3주에 걸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그 의미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신 이유가, 지난주 복음까지는 주로 ‘하느님의 지혜’, ‘계시’, ‘하느님 말씀’이시기 때문이었다면, 이번 주는 ‘성체성사’ 안에서 생명을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 1독서에서 지혜는 일곱 개나 되는 기둥을 깎아 큰 집을 지었는데, 지혜가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시라고 말합니다. 이 지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살펴보라고 하시며, 성령으로 충만해지라고 권고합니다.
엊그제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열아홉 명의 초등학생들이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작년까지는 첫영성체 교리를 여름에 매일, 계절학기처럼 운영했는데, 올해는 6개월 동안 매주, 교리 수업을 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보좌신부님과 수녀님, 선생님들께서 수고를 많이 해주셨는데요, 작년에 첫영성체를 한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제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 때는 여름 내내 매일 교리해서 힘들었는데, 요즘 애들은 쉽게 하네요?” 이제 초등학교 4학년도 ‘나 때는’이라는 말을 쓰네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첫영성체를 했는데요, 저도 여름에 매일 교리 수업을 하면서, 문답으로 정리된 교리를 매일 몇 개씩 외우고, 다 외웠는지 수녀님께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 모시면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이 있는데요, 이에 대한 답은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 모시면,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마침내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됩니다.”입니다. 너무나 귀한 말씀인데, 그때에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것 같아요?
또한 “예수님을 받아 모신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있는데, 답은 “예수님을 받아 모신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입니다.
아직도 외우고 있는 것 같아서 신기하시죠? 실은 제가 배운 첫영성체 교리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갖고 있나 저도 신기한데, 이 책은 버리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잘 배워 놓고도, 첫영성체 하는 날, 성체를 영한 후에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교리 교사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영성체한 다음에 뭐 하는 거냐고. 선생님은 하느님께 소원을 세 가지 빌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세 가지 소원을 빌었습니다. 첫째, 부모님과 가족의 건강, 둘째 친구들을 위해서, 셋째가 남북통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성체를 영하고 나면 세 가지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지치더라고요. 저는 오랫동안 소원을 빌었는데, 혹시 예수님은 제게 바라시는 것이 없으신지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다음부터는 그냥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침묵을 지키다가, 그날 복음 말씀 중 와닿았던 말씀 한 구절을 되뇝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 미사에 참례하신 모든 분들의 지향을 받아들여 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이번 주 강론을 준비하면서, ‘성체’라는 검색어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성체의 기적이 많이 검색되더라고요. 성체가 사람의 살로 변했다는 기적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읽어보니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다른 것이 더 큰 기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주일에 866분이 주일 미사에 참례하셨습니다. 성모승천 대축일에 703분이 미사에 참례하셨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미사에 나오셨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더 큰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무더위에, 바쁜 일도 많으시고 휴가도 가셔야 하는데, 속상한 일도 있으셨는데, 일주일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어떤 분들은 매일, 성당에 오십니다.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영하는 것입니다.
만일 성체께서 예수님의 몸이 아니라면,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성체는 이미 우리 안에서 살로 변해계시고, 나의 살과 피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 성체의 힘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일주일을 살아가고 주님의 자비를 청하며 다시 주님의 제단에 나옵니다.
당신 자신을 모두 내어주신 주님의 몸을 받아 영하며, 우리도 그 힘으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본당 사회복지분과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께 작은 도움을 드리고 있는데, 어떤 어르신께서 매번 받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다시며, 당신보다 더 어려운 분을 위해 써 달라고 후원금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체의 기적이 아닐까요.
저에게 여러분이 기적인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서로가 기적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성체 직전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서로가 기적임을 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주님의 성체를 모시고 가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께 봉성체를 해 드립니다. 열 분 넘게 계실 때도 있고, 엊그제는 여섯 분께 해 드렸습니다. 봉성체의 순서는 참회 예절, 복음 봉독, 주님의 기도, 하느님의 어린양, 영성체, 기도와 강복입니다.
엊그제 봉성체를 다니면서 봉성체 때 읽는 복음 말씀이 새삼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서 머무른다.”
바로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누워서 계신 자매님, 몸이 회복되면 한 번이라도 성당에 나오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 마음은 간절하지만 아무런 말씀을 하실 수 없으신 형제님과 자매님, 입 모양으로, 눈동자로 간절한 염원을 말씀하시는 자매님들과 함께 매번 이 복음 말씀을 듣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한 달을 성체의 힘으로 살아가시고 다음 달에 있을 영성체를 위해 또다시 한 달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을 뵙는 것 또한 제게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병이 위중할 때 병자성사를 받습니다. 병자성사는 영혼과 육신에 회복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임종 전에 받게 되는 마지막 성사가 되기도 합니다.
병자성사 때 역시 오늘의 복음 말씀을 듣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진실하신 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이 말씀을 지키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여러분께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건강을 회복하신 분도 계시고, 세상을 떠나신 분도 계십니다. 언젠가 우리도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성사 안에서 오늘의 복음 말씀을 다시 듣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고, 그래서 가장 큰 희망이 될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 더 이상 다른 희망은 필요하지 않고, 사랑만 남게 될 것입니다.
오늘 봉헌 성가로 부르는 성가 340장이 성체성사의 신비를 잘 요약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 우리 구하고자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희생하여 성부께 드렸네
이같이 큰 사랑이 또다시 있으랴
나 이제 나를 바쳐 망극한 이 은혜 감사하나이다
내 일생 모든 고난, 주 앞에 드리며
이 몸을 희생으로 봉헌하옵나니
거룩히 강복하여 받아들이소서
일생을 착히 살아 거룩한 주의 이름 현양하리이다
https://youtu.be/CoX1b5NGaqU?si=G6jo2qwsy4pnbnBJ
가톨릭 성가 340번, 봉헌 (하이든 작곡)
제가 배운 첫영성체 교리서
제 첫영성체 사진. 신부님 오른쪽으로 두번째가 저입니다 (유일하게 손목시계 착용)
첫댓글 마지막 병자성사 날 저 또한 듣게 될 오늘의 복음말씀.
주님 앞에서 설때, 그 환한 빛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설수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신부님 강론 잘 들었습니다.
어릴적 모습 참 귀한 사진도 잘 봤습니다.
좋은 강론 항상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주님 은총 안에서 복된 하루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