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의 히메유리(1987, 요나조 노부코) 32.
● 제III부 제4장 조용한 오후의 군인들
환자의 절반은 남부로 이동해 버렸다. 덕분에 하에바루는 텅빈듯이 잠잠해졌다. 병원 관련 사람보다 수비병이 더 많았다. 5월의 어느 오후, 세츠코(節子)와 나는 십여 명의 군인들과 친해졌다. 언제나처럼 어디서 왜 하에바루에 오게 되었는지 우리는 질문을 받았다.
그날 우리는 식사하러 오라는 군인들의 초대를 받았다. 어디서 배급받았는지 식사는 히노마루 도시락이었다. 우리 둘은 군인들과 수다를 떨면서 도시락을 먹었다. 우리의 수다를 듣고 군인들은 때때로 가볍게 웃으며 또 맞장구를 쳐 주기도 했다.
오키나와의 5월은 소나기가 자주 내린다. 그 오후, 태양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가리는 것을 보고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공기는 무겁고 조용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나는 졸음이 몰려왔다. 군인들은 벙커 안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세츠코와 나는 침대 위에 누워 낮잠을 자기로 했다. 세츠코는 바로 잠들었지만, 나는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평소와 달리 주변 분위기가 묘했기 때문이다. 함포는 이미 그치고 있었다. 왜 미리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 함포가 그쳤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군인 중 한 명이 일어나서 벙커 입구로 나와 잠시 무언가를 들을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또 다른 군인이 안쪽에서 나와 그의 곁에 섰다. 두 사람 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벙커 안쪽으로 달려갔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군인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벙커에서 나왔다. 나와 세츠코에게 히노마루 도시락 식사에 초대한 사람이 부대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대장이 신호하자 다른 군인들이 그의 뒤를 따라 벙커 밖으로 나갔다.
세츠코는 아직 자고 있었다. 5분 정도 지나 군인 중 한 명이 돌아왔다. 그는 벙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세츠코와 내가 눈에 띄자 뭔가를 떠올린 것처럼 다시 밖으로 되돌아갔다. 군인은 몽유병자처럼 멍해하는 모습이었다.
"군인 아저씨, 이쪽으로 오세요. 다쳤어요. 목에서 피가 나고 있어요”라고 나는 큰 소리로 외치며 뒤에서 쫓아갔다. 그는 이상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목 뒤를 가리켰다. "아, 목이요?"라고 그는 목의 상처가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상처는 아프지 않다. 괜찮다" 고 하며 그는 떠났다. 나는 벙커로 돌아와 아직 잠들어 있는 세츠코 옆에 누웠다. 하지만 기분 나쁜 고요가 나를 참들지 못하게 했다. 전쟁 소리에 익숙해진 나는 전쟁 소리 없이는 잠들 수 없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어나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두 세 사람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 벙커를 나갔던 군인들이었다. 목에 상처를 입은 군인도 섞여 있었다. 그들의 안색은 창백하고 표정이 뒤틀려 있었다. 마치 지옥을 들여다 본 사람처럼 "적이 오고 있다. 이 눈으로 확실히 보았다" 고 군인 중 한 명이 나에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여기서 50m 정도밖에 안 된다. 바로 거기까지 와 있다.” “쉿, 조용히. 적에게 들린다”고 다른 한 사람이 주의를 주었다. 군인들은 둑 뒤에서 나란히 총을 겨누었다. 드디어 재미있어졌다. 진짜 전쟁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적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에바루에서는 아직 없을 것이다. 누군가 빨리 보고해야 한다. 내가 그걸 하자. 나는 일약 유명해질 것이다. 하에바루의 운명은 내 손 안에 있다. 빨리,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세츠코는 아직 자고 있었다. 이쪽 벙커와 본부 벙커 사이에는 숨을 곳이 하나도 없었다. 빨리 뛰어야 한다. 자, 보고하러 가는 것이다. 적의 총에 맞지 않도록 나는 열심히 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향해 중간에 총을 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본부의 벙커에 도착할 때까지 나를 쫓아오듯 총알이 날아왔다. 나는 하루코(春子)가 맡고 있는 외과 18호로 뛰어 들어갔다. 하루코는 부상병의 침대에 기대어 솔잎 담배를 만들고 있었다.
"하루코 씨" 라고 나는 속삭였다. 하루코는 숨을 내쉬면서 '쉿'하고 제지했다. 그녀는 환자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하루코와 환자들은 적이 근처에 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나 생기가 돌던 이 벙커 내에도 역시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모두 조용히 하고 있었다. 누가 어떻게 적에 대해 알렸을까.
나는 아시미네 선생님을 찾기 위해 벙커 내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선생님에게 적의 내습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시미네 선생님을 찾아냈지만 선생님은 이미 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걱정스러운 얼굴의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하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선생님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드디어 우리는 하에바루 떠나지 않으면 않되게 된 것이다.
해가 지고 나서 나는 아까 그 자리를 향해 본부의 벙커를 나왔다. 세츠코는 아마 아직도 잠들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적이 또 나를 향해 총을 쏘아댈 것인가. 어쩌면 그 벙커는 적의 손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도중에 십여명의 군인을 만났다. 옷을 제대로 입고 네모난 작은 상자를 한 팔에 안고 있었다.
위생병이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저건 인간 폭탄이다. 그들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 ―아, 저것이 우리 제국이 자랑하는 인간 폭탄이었구나. 우리는 모두 인간 폭탄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야마토 영혼의 상징이다. 그들은 쳐들어오는 적의 탱크를 목표로 뛰어들어, 내 몸과 함께 적의 탱크를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묵묵히 조용히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어두워서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세츠코는 아직 자고 있었다. 황혼의 냉기에 몸을 움추려 자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깨워 벙커에서 데리고 나왔다. 우리는 짐을 싸서 한시라도 빨리 하에바루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