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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7
은혜의 기적 / 이삼규 목사
인생의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 살아가는 삶은 생수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터진 웅덩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합니다. 찰스 스펄젼이 주일 날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템즈 강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 내가 템즈 강의 작은 물고기가 아닐까 ? 내가 이 물을 다 마셔버려서 템즈 강이 다 말라 버리면 어떡하지?' 그때 하나님이 그 작은 물고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마음껏 들여 마셔라, 작은 물고기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애굽이 통치하던 시대의 작은 새앙 쥐가 아닐까 ? 내가 풍년이 들었을 때, 그 곡식을 이 새앙 쥐가 조금씩 먹는데 이거 내가 다 먹어서 이 곡간이 텅텅 비면 어떡하지?' 그때 요셉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껏 먹어라. 이 작은 새앙 쥐야."
문득 '내가 등산하는 한 사람의 등산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의 공기가 너무 좋은데, 내가 호흡하다가 다 마셔 버려서 공기가 고갈되면 어떡하지?' 그때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껏 다 들여 마셔라, 작은 인간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우리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삽니다. 고기가 물 속에 있을 때만이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제 아무리 큰고래나 상어라도 물을 떠나서는 죽은 시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의 물 속에서만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제 아무리 천하장사 삼손이나 능력의 사자 엘리야 같은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실패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만 있으면, 헌신봉사도 할 수 있고, 역경 중에도 순종할 수도 있고, 사탄의 유혹과 시험도 능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맡기면 '나는 말을 못해서 못합니다.' 혹은 '나는 배운 것이 없어서 못합니다.' 혹은 '나는 나이가 많아서 못합니다.'라고 이 핑계 저 핑계 대지만 잘못된 태도입니다. 잘못된 말입니다. 왜 못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도 고백하기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존 칼빈도 '은혜로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이요 의인이 성화 되는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은혜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까?
1.자신의 결핍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결핍을 안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자신의 약점을 안다는 것입니다. 요즘 인기가 있는 서울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님이 쓴 "강점으로 일하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강점이란 자기가 받은 은사 또는 달란트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약점이 있습니다. 전병욱 목사님은 그 약점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절망 속에 울부짖는 한 맺힌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절을 봅시다.
왕하 4:1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이 여인은 남편이 선지생도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신학생이었다는 말입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을 살다가 그만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가끔 일어나는 일이지만 주의 종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가족들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안타까운 일들이 가끔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선지생도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빚만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남편이 죽어 슬퍼할 겨를도 없이 빚쟁이가 찾아와서 두 아들을 종으로 삼겠다고 독촉을 합니다.
이런 현실 앞에 이 여인의 아픔, 사랑하는 이를 예기치 못한 순간에 잃어버린 이 아픔을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그나마 그 남편이 다른 사람이 아닌 일평생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살겠다고 신학도가 되어서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을 왜 일찍 데려 가시는가 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아픔이 이 여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여인을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아픔이었습니다.
그 어려움과 고통 속에 있는 처절한 상황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냉엄한 현실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그 여인에게 하나님은 결코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막다른 골목에서 인간을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의지하고 자기 지식이나 자기 재능, 자기의 건강이나 아름다움이나 젊음을 더 의지하고 있을 때는 하나님은 가만히 지켜만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이 만난 절박한 순간,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 어느 날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날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정면에서 환대하여 맞아주십니다. 홍해는 이스라엘 민족의 막다른 길목입니다. 그 막다른 길목에서 갈라졌습니다. 므리바 반석의 샘물도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 민족이 목마른 때, 대단히 어려운 막다른 골목에서 생수가 솟아져 나왔습니다. 위기가 없으면 기적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적의 기회입니다. 약점이 곧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운의 여인은 자신의 결핍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선생님이었던 엘리사에게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 여인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선지자에게 나아갔다고 하는 것은 그가 바로 은혜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 하나님의 자녀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하지 말고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려움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와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어려운 수식어의 기도를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내 마음 내 사정을 그대로 아뢰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 여인의 한 맺힌 간절한 부르짖음을 보십시오. 엘리사 선생님에게 나와서 간구 하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제 남편이 죽었습니다. 빚쟁이가 독촉을 합니다. 사랑하는 두 아이를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저를 좀 도와주세요. 인도해 주세요. 인생의 어려움을 저로서는 해결할 수 없사오니 해결 좀 해 주세요." 이것이 기도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복잡한 소리를 하는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자기 삶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면 됩니다.
시편 91편 14-15절에,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너를 건져주고 네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너를 높여주고 네가 내게 기도한즉 내가 네게 응답하며 네가 환난을 만나나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7:7절에서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라고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2.있는 바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엘리사는 제일 먼저 '네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선지생도의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이라는 현실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날도 기적을 베푸심에 있어서 많든 적든 우리가 가진 것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 즉 위탁(Commitment)이 있어야 합니다.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께 맡기고 헌신하는 사람에게 기사와 이적을 베푸십니다.
시편 37:5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잠언 16:3에는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그런데 하나님께 맡기거나 의지하지는 않고 하나님의 기적만 바라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옥수수를 튀밥기계에 넣지 않으니, 힘만 들고 시간만 가고 튀밥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고도 남은 기적을 행하실 때도 비록 보잘 것 없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이지만, 그 소년이 예수님의 손에 맡길 때 축사하시고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잘나고 못나고 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하는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밀가루 통의 기적도 그렇습니다. 과부가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씀대로 마지막 한 때 먹고 죽으려고 하던 것이지만, 한 끼니 덜 먹고 죽은 셈치고 두 식구의 생명과 같은 것을 믿고 맡길 때, 기적이 일어나서 그 흉년이 다 지날 때까지 밀가루 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않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교회 생활, 직분 생활도 그렇습니다. 내 능력으로 하기 힘든 어려운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섬길 때 주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 받는 절호의 찬스(Chance)가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이는 병 고쳐 주면 예수 믿고, 안 고쳐 주면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나와 기도해 달라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하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만 짓고 병은 더 안 고쳐질 수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고, '살든지 죽든지 이 몸을 하나님께 맡깁니다'하는 태도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맡기는 일이 없이는 하나님의 기적이 안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물위로 걸었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 시퍼런 바다 물에 목숨걸고 던질 때 걸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가 전국의 고아를 다 모아 놓고 나서 자기의 가진 것이라고는 일 파운드 몇 실링밖에 안 되는 것을 몽땅 하나님께 내어놓고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평생 5만 번도 넘는 기적적인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수천 명의 고아를 먹여 살렸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고 비우면 우리 속에 하나님이 놀라운 능력이 역사가고 생수가 강같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헌신할 때 은혜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3.빈 그릇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받을 축복의 양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만일 축복의 양이 우리 하나님께 달려 있다면 문자 그대로 무한대일 것입니다. 왜 우리가 그릇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빈 그릇을 통해 역사 하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기름 한 병을 가지고 나온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밖에 나가 모든 이웃에게서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만 빌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빌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실 은혜와 축복을 담을 빈 그릇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준비한 만큼 채워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 우리의 꿈이요 비전이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신앙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 누구도 이유 없이 쓸모 없이 부르신 분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표가 보이면 신앙생활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목표가 보이면 빈 그릇을 준비하는 일이 기쁘고, 그 그릇이 채워지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처음에 무슨 영문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금방 엘리사 선지자의 말뜻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과 함께 온 동네방네 다니며 빈 그릇이란 빈 그릇은 몽땅 빌려 왔습니다. 이렇게 빈 그릇을 준비해 오자, 이번에는 방에 들어가서 한 병밖에 없는 기름을 그 그릇들에 가득가득 쏟아 부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그릇마다 기름으로 채워지는데, 병에서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빈 그릇이 없어서 더 이상 기름을 부을 수 없을 때까지 기름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 일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기름 붓는 일이 너무나 기뻤을 것입니다. 왜 그 일이 기뻤을까요? 하나님이 그들 속에 함께 역사 하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그런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에게 나타난 일이 왜 오늘 '우리'라고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믿음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를 막다른 골목에 선 듯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 드리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안다면, 우리에게도 은혜의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잃은 자는 꿈을 잃어버린 자요, 꿈이 없는 자는 의미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들이 왜 신앙생활에서 실패하고, 왜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은 절망할 수밖에 없고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목표를 놓치지 않는 한, 승리와 기쁨이 있습니다.
전도자 디엘 무디는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위대한 복이 결여된 형식적이고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었는가를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무디는 은혜의 기적을 사모하였고 자신을 위하여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쉽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그가 뉴욕 시내의 거리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놀라운 은혜가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그 능력이 너무나도 강하게 임하였기 때문에 그는 압도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무디는 그 은혜가 너무나 강렬하여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손을 들고 소리쳤습니다. "주님, 그만 하소서!"
여인의 손에 들린 기름병은 쉬임 없이 쏟아졌습니다. 빈 그릇이 차는 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여인이 아들에게 말합니다.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말합니다.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이 말과 동시에 기름이 곧 그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왕자와 공주로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릇을 준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극 중에도 큰 비극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자원이 고갈되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자원은 무한대가 아닙니까! 다만 우리들에게 빈 그릇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빈 그릇이 있어도 많이 준비하지 못하고 적게 준비하였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준비해야할 그릇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담는 그릇입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크던 작던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부어주실, 그리고 사용하실 믿음의 그릇이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교회 적으로도 가져야 할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에게 준비된 만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와 우리 태인 시찰을 사랑하셔서 귀한 연합성회를 준비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은혜의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분명히 준비한 만큼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은혜 받을 그릇을 준비하여 가득가득 채워지는 기적을 체험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