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들아 거기서 나아와
성경본문 :계시록 18: 4-10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오늘도 살아 역사 하시며 우리들을 살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의 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두 주간을 통하여 기독교의 역사의 성지인 터키와 그리스를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또한 교회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이번 성지 순례를 통해 부서진 터전들로 남아야 되는 일종의 아이러니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번성하는 문화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아니한 것은 여지없이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사회도 마찬가지이기에 깊은 깨달음과 통찰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본문의 한 구절을 그대로 사용하여 내 백성들아 거기서 나아와 라 정하여 함께 깨닫고 은혜를 구하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교회라는 의미로 사용된 문자를 보면 '쉬나고게' 혹은 '에클레시아'를 사용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의미를 볼 때 "하나님이 불러내어 구별한 거룩한 백성"을 혹은 "부름 받은 거룩한 무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깊은 뜻이 곧 성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갈 거룩한 무리라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저희 가운데서 나아와 따로 있고 부정한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벧전1:16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 육체적인 삶을 기준으로 삼는 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나 오늘날이나 범죄 상승이 현저하게 드러나는 원인은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됨을 볼 수 있습니다.
1. 삶의 여유성의 추구 - 가진 자들의 더욱 심한 욕심의 상승입니다.
2. 각종 쾌락 추구 - 오락의 발달과 지나친 보급- 고대 터키와 그리스의 목욕탕 문화
3. 성의 개방과 난립 - 성 개방의 일반화- 신전에서의 선정적 사건
이런 이들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성경에서도 일반 역사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보게 됩니다.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과 주후 79년 8월 어느 날 밤 비스비어스 화산의 갑작스러운 폭발로 인하여 남방 12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던 10만 인구와 4대문과 12초소의 성곽을 자랑하던 폼페이의 생매장은 그 표본이 될 수 있습니다.
노아 홍수와 방주,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천사의 권고는 당시 그들에게 내 백성들아 거기서 나아와라는 경고임이 분명합니다.
둘째: 지나친 탐욕의 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요한1서 2:16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하였습니다.
안목의 정욕은 탐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 하와가 선악과를 보았을 때 - 보암직했고 먹음직했고 지혜롭게 할 만 해 보였습니다.
2. 다윗이 밧세바를 보았을 때 -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하였습니다.
3. 보올의 아들 발람 발락의 물질을 봄 - 이스라엘의 저주하라는 유혹을 받음
4. 게하시 나아만 장군의 선물을 보았을 때 - 문둥병이 발생하였다.
5. 소돔 고모라의 멸망시 롯의 부인 - 미련으로 인하여 소금 기둥이 되었다.
6. 가룟 유다 예수님을 판 자 -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 한 자
탐욕은 모든 것을 얻고자 하나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주님은 서도들을 향하여 그 탐욕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내 삶의 유지와 주님 앞에서 봉사하며 이웃을 돌보는 사명에서 일탈된 것이 탐욕의 생활입니다. 탐욕의 생활에서 벗어서남으로써 멸망의 자리에서 나아와 은혜와 축복의 자리에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지나친 자랑과 명예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인간들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로 이것은 생존 경쟁을 능가하는 치열함을 나타냅니다.
1. 사울왕은 자기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2.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헌금으로 명예를 얻으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3. 예수님의 제자들도 누가 크냐를 노중(路中)에 논쟁하였습니다. 주님은 이에 대하여 막9:35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의 섬기는 자가 되어야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명예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성도들이 누릴 진정한 참 소망의 참 영광은 이 땅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 나라에 있음을 재인식하고 존귀와 영광과 모든 것은 주님께로 돌리고 멸시와 고통의 십자가는 내가 지겠다는 각오와 심정으로 지나친 자랑과 명예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계시록 17-18장은 바벨론 멸망에 관한 내용입니다. 거기에는 멸망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적으로 역사상에서 바벨론의 흥망사를 말하는 동시에 장차 일어날 세계 역사의 종말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의 멸망은 세상의 종말과 심판을 의미합니다.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 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하였으니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의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크게 주의할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내 백성들아 거기서 나아와 하는 말씀을 현실 도피적 사안으로 받아 들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또 분리주의적인 교만에 빠져서도 안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저들은 사단의 자식들이라는 식의 교만에도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내 백성들아 거기서 나아와라 함은 우리 삶의 죄악 중에서 나아와 경건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모두가 죄악의 멸망 가운데서 나아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