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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 16 유아 학살 2: 17 예언 2: 18 라헬의 애곡
마 2: 16 유아 학살 -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
1]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속다'는 뜻의 '에네파이크'(*)는 단순히 '속다'는 뜻 이상의 의미로서 '희롱(조롱)한다'라는 강렬한 뉘앙스(nuance)를 담고 있다(Calvin).
박사들이 자기에게로 오지 않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헤롯은 박사들의 태도를 기만(欺瞞) 이상인 자신을 희롱한 사실로 여겼을 것이다.
박사들이 자신의 교활한 음모를 꿰뚫어 보고 몰래 달아남으로 자기를 앉아서 '바보처럼' 기다리게 했다는 생각이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헤롯을(1절) 못 견디게 했을 것이다.
2] 심히 노하여
'노하다'는 뜻의 헬라어 '뒤모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분노하였다는 뜻으로서 당시 헤롯의 활화산같이 꿇어 오르는 극렬한 분노를 예감케 해준다.
3] 사람을 보내어
헤롯의 명령이 실행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사이는 약 8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베들레헴은 조그마한 소도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4]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그 지경에'는 베들레헴뿐 아니라 베들레헴 근교의 한적한 오두막까지를 포함한다(Meyer).
5]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헤롯은 자기가 찾는 아이의 나이를 정확히 몰랐다. 장차 유대인의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를 살해하기 위해 '2살 이하의 사내아이'로 한정시켰다.
여기서 '두 살부터'는 '별이 나타난 때'(7절)에 근거하고 있다.
Ⓐ 아이를 완전히 제거하고자 충분한 여유를 둔 것이다.
Ⓑ 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근 2년 동안이나 걸려 도착했다.
Ⓒ 박사들의 귀국 후 2년 만에 살해했다 등이 있는데 분명하지 않다.
'2살 이하'란 말이 갓 태어난 신생아까지를 포함한다는 것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회의적이다. 대신 15개월에서 20개월까지로(A.T. Robertson) 보기도 하며 좀 더 넓게 6개월에서 20개월 사이까지로 보기도 한다. (D.A. Carson)
당시의 분노에 찬 상황으로 보아 후자의 견해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당시 살해된 유아의 수효에 대해 대단히 많았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학자도(Alford) 있고 심지어 14,000명 정도로 추산(calculation)하는 전승도 있다. 베들레헴이 조그마한 도시요 당시 주민이 1,2천명 정도였다는 점을 들어 단지 수십 명 안팎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Farrar, Carr).
헤롯의 이러한 잔인한 살상은 '유대인의 왕'에 대한 영적 무지의 결과이다. 예수의 도래는 로마 정복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죄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키 위해 오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헤롯은 살인마의 탈을 또 한 번 쓰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 요세푸스는 다루지 않고 있어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마크로비우스(Macrobius)의 저서 '축제'(Saturaalia)에 보면 아구스도(Augustus) 황제가 '헤롯의 명령으로 시리아 지역의 두 살 이하 아이들이 살해당할 때 그 속에 헤롯 자신의 아이도 포함되었다.' 하면서 '차라리 그의 아들이 되기보다 돼지가 되는 편이 낫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권능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헤롯의 손에서 예수를 거뜬히 건져내셨고, 세상의 왕들이 꾸미고 있는 음모에 대해서 가소로이 비웃고 계셨을 것이다.
* 시 2: 1-6 –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 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마 2: 17 예언 -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
마태복음에 예레미야라는 이름이 세 번 나온다.(16: 14. 27: 9) 그 밖에는 신약성경 어느 곳에도 나오지 않는다.
예언이란 그 누구나가 어떤 사건에 대하여 미리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써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에게 전파하는 일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선지들의 예언적 기반은 성경에 나타난 대로 그들의 신관에 있으며 그 신관에 수반되는 신앙에서 그 예언의 역사는 성장해 왔다.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 선지자라는 명칭을 갖지 않고서도 예언자적 역할을 한 자들이 있다. (아브라함과 족장들, 모세) 사무엘에 이르러 예언의 사역은 한 층 더 명확해졌다.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위대한 예언 사역이 통일국가시대부터 남북조 시대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성경을 기록한 위대한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가 왕정 시대였다.
성경의 예언은 인간이 자아도취에서 발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으로 선포하게 되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감은 예언자의 개성이나 인격이 자유롭게 반영되도록 조절한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예언과 하나님의 계시를 분리하고 구약의 예언은 단순히 인간들의 발언인데 선지들이 정의감에서 자기들이 살던 시대상을 책망하고 해석하는 의미에서 발언한 것이지 어떤 미래나 장래에 대한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언은 그 성취성을 제외한다면 죽은 설화가 되고 말 것이다. 예언의 미래성은 그 성취에서 그 정확성이 입증된다.
마 2: 18 라헬의 애곡 -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 졌느니라. )
1]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예레미야가 이 예언을 선포한 시기(여호야김 통치 초기)를 고려해 볼 때(렘 30:1-33:26) 주전 586년에 멸망한 유다와 베냐민의 포로 장면을 의미한다.
* 렘 31: 15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 도다.
라헬은 야곱의 아내이자, 요셉과 베냐민의 모친으로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대인의 전형적인 어머니로 묘사되어 있다.
라마(Ramah)는 베냐민 지파 성읍으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 가까우며 벧엘로 가는 도중에 위치하는 곳이다.
* 수 18: 25 – 기브온과 라마와 브에롯과
바로 이 부근에 라헬의 무덤이 있는 셀사(Zelzah)가 있었다.
* 삼상 10: 2 -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2]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유수를 라헬이 그녀의 무덤 속에서 포로가 된 자손들의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통곡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 렘 40: 1-2 – 1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이 구절은 옛날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가나안에 정착할 당시 라마에서 에브라다(베들레헴)로 가는 도중에 자식이 없어 슬퍼했었던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로 죽은 사실을 포로 됨에 비유하여 예레미야가 시적(詩的)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마태가 베들레헴 유아 학살 사건에다 관련시킨 것이다.
* 창 35: 19-20 –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3]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태가 여기에서 바벨론 포로 장면을 연결시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두 사건들의 초점은 베들레헴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어미들(라헬)이 흘리는 '눈물'에 맞춰져 있다.
바벨론 유수 때에는 다윗의 혈통에서 이어지던 왕권이 물러나고 이방의 속박으로 인하여 흘리던 탄식의 '눈물'이, 또 다른 이방인(헤롯은 에돔인)의 학정으로 살해된 베들레헴(다윗성이라고 불리우는, 삼상 16:1) 아이들이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곧 그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의 후손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림으로 오랜 포로 생활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언약해 주신 새 언약(26: 28. 렘 31: 31-34)이 온 이스라엘에 선포될 것이기 때문이다.
* 마 26: 28 -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렘 31: 31-34 –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방법을 동원하여 그의 일을 이루신다. 그는 꿈을 사용하여 비상 연락을 하셨다.1장에도 요셉이 마리아와 절교하려고 생각할 때, 그가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2: 12에서는 동방 박사들에게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13절에서는 요셉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피난하라고 하였고, 19절에는 헤롯이 죽은 후 꿈에 나타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였다. 22절에는 요셉 가족이 나사렛 동네에 거주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런 비상 연락의 방책뿐 아니라 요셉 가족의 도피 생활을 위하여 동방 박사들을 통하여 황금을 선물 받게 하셨다.
세상의 모든 보화가 다 하나님의 것이다. 또한 주께서는 법적 부친인 요셉으로 하여금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위한 보호자 역할을 하게 하셨다. 악인들은 악한 일을 계획하나 하나님은 자기 종들과 백성들을 보호하고 위태할 때 피할 길을 주신다.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전까지는 그러하다. 그의 뜻을 이룬 후에는 죽음도, 순교도 가능하지만, 성취하기 전에는 결코 헛된 삶, 헛된 죽음이 성도에게는 없다.
하나님의 섭리를 무력화(無力化)시킬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그는 그의 계획을 다 이루시는 주권자이시다.
참새 한 마리라도 그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하거나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모든 일을 의탁하며, 그가 이루실 일을 바라면서 참고 기다리자.
8절에서 헤롯이 박사들에게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한 말은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헤롯은 자기 아들들의 왕위를 위태하게 하는 자를 죽이려는 악한 계획을 숨겼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을 파하셨을 때 그는 베들레헴 부근의 2살 이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큰 악을 저지름으로 그의 사악함을 드러내었다.
인간은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사악한 존재이다. 이것은 일종의 시기심이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것도 바로 이 죄 때문이었다. 시기심은 남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나타나며, 미워하는 마음은 곧 살인의 죄이다.
* 요일 3: 14-15 –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세상은 죽이고 죽는 무서운 죄악의 도시지만,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사랑의 특성들을 서술하기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한다'(고전 13: 4-5)고 하였다.
우리 속에 시기와 미움 대신에 이런 참된 사랑이 있는가? 이것이 없이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영적 지도자도 아니다. 영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4] 그리스도의 탄생을 방해한 무리들 ( 마 2: 16-18 )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분명히 온 인류가 경하하는 기쁜 일이다. 그러나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높음이 있으면 낮음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마땅히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배척하고 방해한 무리들이 있었다.
(1) 사탄의 방해
① 사탄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방해한다.
하나님에게 반기를 들다 쫓겨난 사탄은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도록 조장하는 악한 존재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켜 영원한 형벌의 심판을 받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 사탄은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믿는 성도들까지도 미혹하여 믿음을 저버리게 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애를 쓰고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 딤전 2: 4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사탄은 반대로 한 사람도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사탄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방해하며, 오늘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닌다.
* 벧전 5: 8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② 메시야 예언의 성취를 두려워한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메시야 예언은 창 3: 15의 말씀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서 '너'는 사탄을 말하고 '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가 사탄에 의해 '발꿈치가 상하게' 되지만 후에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탄은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할 그리스도의 탄생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나심을 방해하였고 하수인들을 시켜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2) 헤롯 왕의 방해
① 그는 유대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기의 통치 기반이 약화될까 우려하였다.
유대의 분봉왕 헤롯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임금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심기가 불편하였다. 그것은 새로운 정치적인 경쟁자가 생겼다는 불안감과 자기의 권세와 권위에 어떤 훼손이 생기지 않나 하는 염려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군사를 풀어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였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는 이처럼 오시자마자 박해와 고난을 받으셨다. 왜냐하면 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악은 선을 미워하고 증오한다. 착하고 약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 곳이 이 세상이다.
죄인은 의인을 미워한다.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핍박과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 예수님도 헤롯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그러므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결국 그들의 손에 잡혀 죽으셨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미워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빛을 미워하는 어둠의 자녀이며 선을 증오하는 악한 사람들이다.
② 그는 자신의 악행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드러날까 두려워하였다.
헤롯은 권모술수와 불의와 피흘림을 통하여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마음이 편할 수 없다. 그 죄를 끄집어내어 하나님께 간절히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숨기고 있는 한 그는 항상 죄의식에 사로잡혀 불안한 상태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중한 죄인일수록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를 꺼린다.
그것은 예수님 앞에서는 모든 죄악이 낱낱이 드러나게 됨을 알기 때문이다. 헤롯은 자신의 악행이 드러날까 두려운 나머지 주님의 탄생을 방해하였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지니고 있는 죄악들이 탄로날까 두려워 예수님과 교회, 그리고 성도를 배척한다.
(3) 종교 지도자들의 방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전혀 알지 못했던 이들은 후에 예수님을 잡아 처형할 정도로 하나님의 계시에 무지했다. 구약성경 전체에 걸쳐서 언급된 메시야 강림의 예언을 줄줄 외우고 다닐 정도로 메시야 대망을 기원했던 그들이 정작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했을 때 한 사람도 그가 메시야이심을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끝까지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부인하고 핍박하며 끝내 참람죄를 적용시켜 십자가에 달아 죽이고 말았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는 박사다. 남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사사건건 예수님을 비방하고 그의 사역을 방해하였다. 기독교는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믿음이야말로 기독교의 근간이며 핵심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주의 사자는 성도들을 지키신다.
동방박사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고 말했다.
요셉은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다.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호 11: 1)을 이루려 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옛 시대에 꿈을 사용하여 그의 뜻을 알리셨다. 요셉이 마리아와 조용히 절교하려고 생각하였을 때 주의 사자는 꿈에 나타나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 그를 데려오라고 말했었다(1: 20).
주의 사자는 꿈에 동방 박사들에게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지시했었다(2: 12). 그는 또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일어나 애굽으로 피난하라고 하였다(2: 13). 또 그는 헤롯이 죽은 후에 꿈에 나타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였고(2: 19), 또 꿈에 요셉 가족이 나사렛 동네에 거주하도록 지시하였다(2: 22).
하나님께서는 법적 부친인 요셉이 아기 예수님과 그의 모친을 위한 보호자의 역할을 하게 하셨다.
둘째,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헤롯과 같은 핍박을 자행할 것이다.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들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남자아이들을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다.
그래서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베들레헴에서 15㎞ 이상 떨어진 곳까지)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2: 8)고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유대인의 왕인 메시아가 자기 아들들의 왕위를 위태하게 한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박사들이 그에게 알려주지 않음으로 그의 은밀한 계획이 실패했을 때, 그는 베들레헴 부근의 2살 이하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큰 악을 노골적으로 저질렀다. 사람은 참으로 악하다. 그의 통치연대가 주전 4년에 끝나는 것을 보면, 헤롯은 이런 악을 행한 후에 죽은 것 같다.
셋째, 종말에도 이와 같은 핍박이 있다.
* 계 12: 1-6 –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사도 요한은 하늘의 한 큰 표적, 즉 해를 옷 입은 한 여자의 광경을 보았다. 이 여자는 종말교회를 가리켰다. 그가 해를 입은 것은 교회가 의의 해이신 그리스도로 옷 입음을 나타내며, 그의 발 아래 달이 있음은 교회가 온 세상을 복음 전파로 정복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 말 4: 2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그의 머리에 열두 별의 관을 쓴 것은 영적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나타내었다고 본다. 아이를 배어 해산하려 한 것은 종말교회가 메시아의 다시 오심을 증언할 두 증인을 나타낸다고 보인다.
여자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말세의 신령한 영적 교회를 의미한다.
* 갈 4: 22-31 = 두 언약. :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스마엘 이삭
어머니(두 언약.) 계집종(하갈) 자유하는 여자(사라)
출산 육체를 따라 하나님의 언약
출처 시내산 예루살렘
근거 땅 하늘
유업 얻지 못함 유업을 얻음
출생 먼저 태어남 나중 태어남
해를 옷 입은 여자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의 옷을 입은 사람을 해를 옷 입은 여자라 하였다. 계시록 7장에서 해 돋는 곳으로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온 다른 천사가 해를 옷 입은 여자요, 계시록 10장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다른 천사가 있는데 그 얼굴이 해와 같다고 했는데 그 천사가 해를 옷 입은 여자요, 계시록 11장에서 하늘을 닫아놓고 1260일 동안 예언하는 두 증인을 계시록 12장에서는 해를 옷 입은 여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자는 교회의 표상이다.
* 창 2: 21-23 –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구분 : 첫 째 아 담 : 마 지 막 아 담
시기 : 금요일(여섯째 날) 갈빗대에서 : 금요일 십자가에서 옆구리를 찔리사
호칭 : 하와 (여자라) : 교회 (신부라)
고백 :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 교회는 그의 몸이라. (엡 1: 23)
역할 : 산 영. : 살려주는 영
결과 : 아담 = 머리, 하와 = 지체. : 예수 = 교회의 머리, 성도 = 지체.
아담은 예수의 표상이다.
* 고전 15: 45 -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산 영은 살려주는 영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다.
왜 마지막 아담인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 행 4: 12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 요한은 하늘의 또 다른 하나의 표적, 즉 큰 붉은 용의 광경을 보았다. 그 용은 사탄을 가리킨다. 그것이 크고 붉은 것은 그의 세력이 크고 심히 잔인함을 나타내며, 그의 머리가 일곱인 것은 그의 지혜가 매우 큼을 보이며 적그리스도의 맥을 이어오는 세상 나라의 역사 곧 세계사를 상징한다.
그의 뿔이 열인 것은 그의 힘(세상 나라를 지배하는 능력, 세력을 말한다.)이 매우 큼을 암시한다. 사탄은 하늘의 별들 3분의 1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 그것은 사탄이 기독교를 선도하는 대표자로 그들의 3분의 1을 타락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배도 하도록 할 것 같다.
사탄과 더불어 타락한 그 천사들이 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귀신들 즉 악령들이다. 그 용은 그 여자가 낳을 아이를 삼키려 하였다. 그것은 사탄이 헤롯 왕을 통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한 일에 대한 그림자요 예표를 가리킬 것이다(마 2장).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때부터 그를 죽이려 하였고 마침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였다.
여자가 낳은 아들은 대 환란기에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할 두 증인이다. 그 아들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설명되었다.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성도뿐이다.
그는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리어 갔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같은 축복으로 대 환란기에 사역하는 주의 마지막 일꾼을 가리켰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교회가 1260일 동안 사탄의 핍박을 피하도록 광야에 하나님의 예비하신 피난처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인 것은 예표이다.
마지막 때에도 이와같이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1260일은 대 환난 기간 중의 한 부분을 가리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