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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큰 도시 바빌론이여(40)
말씀: 계 18:6-24 2025년 2월 23일 오후 2시
오늘 말씀은 “저 큰 도시 바빌론이여”(10)입니다. 성경전서에 큰 도시라 불리는 대표적인 도시는 예루살렘(렘22:8), 니느웨(욘1:2, 3:2,3), 바빌론(계16:9)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큰 도시라 기록된 도시는 예루살렘(계11:8)과 새 예루살렘(계21:10)과 바빌론입니다(계14:8, 16:9, 17:18, 18:10).
계시록 18장에서는 바빌론을 일컬어 반복해서 ‘큰 도시 바빌론’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큰 바빌론이라고 부릅니다. 큰 환란 때 지상에서 가장 큰 도시가 바빌론입니다.
오랫동안 로마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큰 환란 때는 로마가 아니라 ‘바빌론’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고대 바빌론 제국의 수도로서의 영광을 훨씬 능가하는 도시로서 정치, 경제, 상업, 무역의 도시로 우뚝 솟을 것입니다. 바빌론은 땅의 왕들 위에 군림하는 도시이며,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 위에 앉은 도시입니다(계17:15).
역사적으로 바빌론은 느부갓네살 시대에 이미 이런 도시의 지위와 영광을 얻은 적이 있습니다. 바빌론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세계 제국으로서 땅의 왕들 위에 군림했고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 위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제국의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곧 이어 메데-페르시아 제국이 바빌론을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큰 환란 때에 바빌론은 느부갓네살 시대의 영광을 훨씬 능가하는 힘과 지위와 부요함을 자랑할 것입니다. 17장이 바빌론의 영적, 종교적 역할에 대해 기록했다면 18장은 정치적, 상업적 도시로서의 바빌론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그녀가 너희에게 갚아 준 대로 그녀에게 갚아 주고 그녀의 행위에 따라 두 배를 그녀에게 두 배로 갚아 주며 그녀가 채운 잔에 두 배를 그녀에게 채워 주라.](계18:6).
하늘에서 내려온 또 다른 천사는 큰 바빌론에 대한 보복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큰 바빌론의 행위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신데 ‘그녀의 행위에 따라 두 배를 그녀에게 갚아 주고 채워 주라’고 합니다. [많은 민족들과 위대한 왕들이 또한 그들을 종으로 삼아 자기들을 섬기게 하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대로 또 그들의 손이 행한 일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리라. 하니라.](렘25:14). 이는 시편에서 보복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바빌론은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그들 역시 심판을 받습니다. 히브리인들은 바빌론에 대해 반복해서 원수 갚아 주실 것을 기도했고 주님은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 멸망받을 바빌론의 딸아, 네가 우리에게 베푼 대로 네게 갚는 자가 행복하리로다. 네 어린것들을 들어다가 돌에 메어치는 자가 행복하리로다.](시137:8,9). 시편의 이런 기도는 마치 컬트들이 행하는 저주의 주문처럼 들립니다. 시편에는 이런 저주의 기도, 원수 갚아 달라는 복수를 구하는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신다고 약속하셨기에 유대인들은 이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이런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마5:44)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눅6:28)고 하신대로 우리는 원수들까지 사랑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악하게 다루는 자들에 대한 복수, 원수 갚는 일은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히10:30). 주님은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마16:27).
오늘날 교회에서는 주로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강조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 소멸하시는 불, 분노하시는 하나님, 원수 갚으시는 보복의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은혜와 용서와 사랑만큼이나 거룩과 공의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원수 갚는 일과 보복하는 일은 내게 속하니 그들의 발이 정해진 때에 미끄러지리라. 그들의 재난의 날이 가까우므로 그들에게 닥칠 일들이 속히 일어나리라.](신32:35).
주님은 성도들에게 사적 보복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원수 갚는 일은 주님 자신에게 맡기라고 하십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사적 보복, 복수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법의 심판에 맡기라고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쥐고 내 원수들에게 보복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대갚음하리라.](신32:41).
주님은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원수들에게 보복하며 보응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인본주의 크리스천들은 애써 이 진리를 외면하며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만 외칩니다.
[이는 노략하는 자가 그녀에게 곧 바빌론에게 닥쳤기 때문이라. 그녀의 용사들이 붙잡혔고 그들의 활이 다 부러졌나니 이는 {주} 곧 대갚음하는 [하나님]이 반드시 보복할 것이기 때문이라.](렘51:56). 바빌론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은 구약에 계시되었고 계시록에서 집행됩니다.
사람들은 “악한 일에 대한 판결이 신속히 집행되지 아니하므로......”(전8:11) 주를 두려워할 줄 모르고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 건가 의심합니다. 더디게 보일지라도 주의 심판은 반드시 집행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며 {주}께서는 보복하시느니라. {주}께서는 보복하시고 격노하니시나니 {주}께서는 자신의 대적들에게 보복하시며 자신의 원수들을 위해 진노를 간직하시는도다.](나1:2). 성도들은 이런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인격적 성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누구인지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7절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이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호화로이 살았든지 그만큼 그녀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라. 그녀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아 있고 과부가 아니므로 결코 슬픔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나니](계18:7).
이 구절은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심든지, 무엇을 뿌리든지 각자 심고 뿌린대로 거둔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을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둡니다. 이는 심는 것의 종류에 대한 언급입니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두리라. 자기 육신에게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겠지만 성령에게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 우리가 잘 행하는 가운데 지치지 말지니 우리가 기진하지 아니하면 정하신 때에 거두리라.](갈6:7-9).
심는 것과 거두는 것의 법칙을 마음에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열매를 거두지 못해도 정하신 때에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다만 내가 말하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고후9:6). 뿌리는 마음 자세, 태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는 바빌론의 죄악을 지적합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이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호화로이 살았든지......”(계18:7). 이것이 심판받을 죄라는 생각을 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이들은 이것이 성공이고 복인 줄로 압니다. 죄의 핵심은 “자기”란 말에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호화로이 살았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신뢰하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의롭다하고 자기가 뭔가 된 줄로 아는 것 등 ‘자기’에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죄입니다. 성경은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해서는 아니 되느니라.”(롬15:1)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롬15:3)고 합니다. 자기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 자기를 낮추는 자, 자기를 부인하는 자, 자기를 죽은 자로 여기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크리스천입니다. “......사랑은 스스로 자랑하지 하지하며...”(고전13:4)란 말씀을 늘 기억하십시오.
큰 바빌론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호화로이 살았습니다. 그에 대해 주님은 “.....그만큼 그녀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라. ....”(7)고 하십니다. 주님은 계산이 정확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부자를 혐오하거나 죄악시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신 복으로 얻은 부요함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음행과 부정과 폭력으로 얻은 부(富)는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적게 가지고도 의가 있는 것이 많은 소득을 가지고도 올바름이 없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8).
큰 환란 때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진 자들은 결코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는 매매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왕으로 앉아 있고 과부가 아니므로 결코 슬픔을 보지 아니하리라.”(7). 음녀는 남편도 없지만 과부도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 성경의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 갈대아 사람들의 딸아, 너는 조용히 앉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왕국들의 귀부인이라 불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상속 백성을 더럽게 하고 그들을 네 손에 내주었는데 네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며 노인들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지워 주었도다. 또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영원히 귀부인이 되리라, 하고는 이 일들을 네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고 그것의 마지막 끝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쾌락에 빠져 염려 없이 거하며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는 다른 자가 없으며 나는 과부로 앉지도 아니하고 자식들을 잃는 일도 알지 아니하리라, 하는 자야, 너는 이제 이 말을 들으라.](사47:5-8).
이사야 47:8절은 본문 말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계시록의 구절들 마다 그 말씀이 구약 성경 속에 다 들어 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계시록의 말씀은 구약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8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받을 재앙들 곧 사망과 애곡과 기근이 한 날에 닥치리라. 그녀가 완전히 불에 타리니 이는 그녀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께서 강하시기 때문이라.](계18:8).
큰 바빌론의 심판은 어느 한 날에 임합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하룻만에 일어난 일이듯이 큰 바빌론 역시 ‘사망과 애곡과 기근이 한 날에’닥칩니다. 큰 바빌론은 완전히 불에 탑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와 심판의 수단입니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나는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출3:2).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자신들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불기둥을 보았습니다(출13:21).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은 주께서 불 가운데서 그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출19:18). 불이 주의 임재를 나타내는 구절들은 성경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불은 주님의 영광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는 {주}의 영광의 출현이 그 산의 꼭대기에 있는 삼키는 불처럼 보였더라.](출24:17). [불같은 시내가 그분 앞에서 분출하여 나오는데 천천이 그분을 섬기고 만만이 그분 앞에 서 있으며 심판이 준비되었고 책들이 펴져 있더라.](단7:10).
★불은 사악한 자들에 대한 주님의 심판의 수단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로 멸망했습니다(창19:24). 사탄의 군대들은 불에 삼킴을 당합니다(계20:10). 주님은 죄인들을 불타는 지옥에 던지십니다(계10:14). 우리 주님은 소멸하는 불이신데(히12:29) 이는 심판하시는 주님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불은 정화의 수단입니다. 주님은 제단 위에 드려진 제물들을 불로 태우십니다(레9:24). 주님은 불로 정련하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불은 시련의 도구이지만 이를 통해 믿음이 단련되고 성도들은 정금같이, 은같이 됩니다. 주님은 남은 자들을 불로 단련하시고(슥13:9) 신자들의 행위들을 불로 심판하십니다(고전3:13).
9,10절입니다. [그녀와 더불어 음행하며 호화로이 살던 땅의 왕들이 그녀가 탈 때에 나는 연기를 보고 그녀로 인해 슬피 탄식하며 그녀로 인해 애통할 것이요, 그녀가 받는 고통을 두려워하므로 멀리 서서 이르되, 가엾도다, 가엾도다, 저 큰 도시 바빌론이여, 저 강력한 도시여! 너에 대한 심판이 한 시간 내에 닥쳤도다, 하리라.](계18:9-10).
큰 바빌론의 멸망을 슬퍼하는 대상은 땅의 왕들입니다. 이 부분은 17장에서 여자를 불태우는 왕들과 분명히 구분됩니다. 17:16절과 비교해 보십시오. [네가 본 열 뿔 곧 짐승 위에 있는 이것들이 그 음녀를 미워하여 그녀를 황폐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며 그녀의 살을 먹고 그녀를 불로 태우리라.](계17:16).
열 뿔로 일컬어지는 열 왕은 그 음녀(큰 바빌론)를 미워합니다. 황폐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며 그녀의 살을 먹고 그녀를 불로 태웁니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열 왕은 큰 바빌론의 종교적 권세, 지위를 파괴하고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땅의 왕들은 바빌론이란 도시가 파괴되고 불에 탈 때는 슬피 탄식합니다. 예를 들어 로마 캐톨릭은 로마 제국의 일부분입니다.
로마 캐톨릭이 파괴된다고 해서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빌론의 종교 체계가 무너지고 불태워진다고 해서 바빌론이 멸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 세상의 모든 민족들 위에 군림하던 음녀인 바빌론은 땅의 왕들에게 미움을 받고 불태워집니다.
18장에서 큰 바빌론은 17장과 달리 도시 그 자체가 무너지고 불에 탑니다. 땅의 왕들은 그녀가 탈 때에 나는 연기를 보고 슬피 탄식하며 애통합니다. 큰 바빌론이 폐허가 되는 것을 보고 멀리 서서 이르되 “가엾도다, 가엾도다”라고 외칩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 같은 큰 도시, 막강한 도시에 대한 심판이 한 시간 내에 이르렀습니다. 갑작스런 멸망입니다.
“그녀와 더불어 음행하며 호화로이 살던 땅의 왕들이...”(9).
이 구절은 시편 2편의 성취입니다. [주를 대적하며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려고 땅의 왕들이 스스로 나서며 치리자들이 함께 의논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결박한 것을 우리가 끊고 그들이 묶은 줄을 우리에게서 내던지자, 하는도다.](시2:2-3)란 말씀대로 그들은 연합해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모두 죽임을 당하고 공중의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그분께서 통치자들의 영을 끊으시리니 그분은 땅의 왕들에게 두려운 분이시로다.](시76:12). 큰 바빌론의 멸망을 보며 슬피 우는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바빌론의 멸망을 볼 때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부담스런 존재요, 두려운 분이십니다.
[그 날에 {주}께서 높은 곳에 있는 높은 자들의 군대를 벌하시고 땅 위에 있는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죄수들이 구덩이에서 거두어진 것 같이 그들이 함께 거두어져서 감옥에 갇히며 여러 날 뒤에 징벌을 받으리라.](사24:21-22). 땅의 왕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녀와 음행하고 호화로이 살던 땅의 왕들 역시 바빌론이 멸망한 것처럼 멸망당합니다.
요즘 우리는 간혹 큰 지진이나 쓰나미 등으로 어떤 도시가 큰 재해를 입는 것을 봅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기고 수도와 가스, 전기 등이 단절되면 도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됩니다. 큰 바빌론은 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불에 타고 없어져 버렸습니다. “.......너에 대한 심판이 한 시간 내에 닥쳤도다.”(10)란 말은 너무나 갑작스런 멸망임을 보여 줍니다. 하루도 아니고 한 나절도 아닙니다. 한 시간 내에 저 큰 도시가 완전히 망해 버렸습니다.
11절입니다. [땅의 상인들도 그녀를 두고 슬피 울며 애곡하리니 이는 아무도 다시는 그들의 상품을 사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계18:11).
큰 바빌론의 멸망을 슬퍼하는 이들은 땅의 상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집트와 상거래(무역)를 금지하셨습니다. 말을 늘리거나 은금을 늘리기 위해 이집트로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신17:16-17).
오늘날 세계는 상인들로 가득합니다. 물품을 사고파는 무역은 어떤 산업보다 더 중요합니다. 큰 환란 때 큰 바빌론은 세계의 상업, 무역의 중심지가 되며 땅의 왕들이나 상인들은 바빌론과의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습니다. 실제 바빌론은 유럽, 아시아, 인도를 비롯한 세계의 전 대륙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큰 바빌론은 역사상 가장 큰 상업 도시로서 그 시장에는 없는 물품이 없습니다. 그들이 거래하던 상품들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성경에는 대표 상품으로 28가지가 나옵니다.
12,13절입니다.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고운 아마포와 자주색 옷감과 비단과 주홍색 옷감이고 모든 향목과 온갖 종류의 상아 그릇이며 매우 값진 나무와 놋과 쇠와 대리석으로 만든 온갖 그릇이고 시나몬과 향료와 향유와 유향과 포도즙과 기름과 고운 가루와 밀이며 짐승들과 양들과 말들과 병거들과 노예들과 사람들의 혼들이라.](계18:12-13).
28가지 상품 중 처음 나오는 것이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입니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노예들과 사람들의 혼들”입니다. 콤마(,)를 중심으로 네 개씩 일곱 묶음입니다. 28(4x7)은 땅 위의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모든 것은 때와 목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28가지를 제시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애곡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들을 버릴 때가 있고 돌들을 함께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금할 때가 있으며 얻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화평할 때가 있느니라.](전3:2-8).
“때(time)”란 말이 몇 번 나오는지 보십시오. 4x7=28의 구조입니다.
성경에서 4는 땅,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4계절, 4방향 등이 그렇습니다. 7은 하나님의 완전수입니다. 하나님은 주로 7진법을 사용하십니다.
자, 말씀을 봅시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들입니다.
첫째,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입니다. 이런 종류는 주로 투자용입니다. 로마 시대에 귀중품은 모두 부의 지표로 주로 창고에 쌓아 두었습니다.
둘째, 고운 아마포와 자주색 옷감과 비단과 주홍색 옷감입니다. 의류 산업으로 어느 시장에서나 가장 많이 팔리는 물품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장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것이 옷입니다. 고대로부터 바빌론에는 최상급 옷감, 직물 등이 유명했습니다.
셋째, 모든 향목과 온갖 종류의 상아 그릇이요, 매우 값진 나무와 놋과 쇠와 대리석으로 만든 온갖 그릇입니다. 바빌론에서 거래되는 그릇들은 질그릇과 같은 서민용 물품이 아닙니다. 최상급 그릇들입니다.
넷째, 육계와 향료와 향유와 유향입니다. 향료 산업입니다. 요즘 말로 아로마 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포도즙과 기름과 고운 가루와 밀입니다. 식료품 시장입니다. 바빌론의 곡물 시장에서는 다른 어떤 도시에 있는 것보다 더 풍부합니다.
여섯째, 짐승과 양인데 육류 시장입니다.
일곱째, 말과 병거인데 운송 시장입니다.
여덟째, 노예들과 사람들의 혼은 인력 시장입니다. 세계의 모든 물품이 바빌론에 다 있고 경제력은 집중되어 있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놀라운 물품을 봅니다. 시장에 노예들이 있습니다. 큰 환란 때 정치 체계는 왕정이며 노예 시장이 다시 열립니다. 마지막에는 사람들의 혼이 나오는데 시장에서 혼을 매매합니다. 이것은 큰 환란 때 이 땅에 타락한 마귀들, 천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영적 존재들 중에는 사람들의 몸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있고 혼을 사서 그 사람 안에 거주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몸은 때로 악한 영들의 집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에 있습니다. [부정한 영이 사람에게서 나와 마른 곳들을 지나가며 쉴 곳을 구하나 전혀 찾지 못하매 그때에 그가 이르되, 내가 내 집 곧 내가 나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하고는 와서 그 집이 비고 청소되어 꾸며져 있음을 보고 그때에 가서 자기보다 더 사악한 다른 영 일곱을 데려오므로 그 영들이 들어가 거기 거하니 그 사람의 마지막 형편이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되니라. 이 사악한 세대도 참으로 그렇게 되리라, 하시니라.](마12:43-45).
부정한 영이 어떤 사람을 일컬어 “내 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큰 바빌론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마귀들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혼을 일컬어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혹은 사람이 무엇을 주어 자기 혼을 대신하게 하겠느냐?](마16:26)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혼을 가장 귀히 여기십니다. 마귀가 통치하는 큰 환란 때 세상에서 사고파는 상품 중에 사람의 혼은 가장 쓸모없는 것으로 맨 나중에 나옵니다.
14절입니다. [네 혼이 탐하던 열매들이 네게서 떠났으며 우아하고 좋은 모든 것들이 네게서 떠났으니 네가 결코 다시는 그것들을 찾지 못하리라.](14).
상인들의 애곡을 보면 큰 바빌론에 있던 좋은 것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세상에서 우아하고 좋은 것들, 귀한 것들은 모두 거기에 있던 도시였는데 이제는 거기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금, 은, 보석, 진주는 물론이고 의류 시장, 그릇 시장, 식료품 시장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애써 모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주님이 흩어 버리시면 바람처럼 날아가고 없어집니다. 인생에서 이런 진리를 아는 이들이 극히 적습니다. 주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듯이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는 재물은 날개처럼 날아가 버립니다.
큰 바빌론의 부와 영광은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 인기, 명예, 돈, 건강, 가족이란 것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14절 말씀은 큰 바빌론에 대한 말씀이지만 한 개인에게 영적으로 적용하면 너무나 엄숙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15-18절입니다. [이것들을 팔던 상인들 곧 그녀로 인해 부자가 된 자들이 그녀가 받는 고통을 두려워하므로 멀리 서서 슬피 울고 통곡하며 이르되, 가엾도다, 가엾도다, 저 큰 도시여! 그녀가 고운 아마포와 자주색 옷감과 주홍색 옷감으로 옷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는데 그렇게 많던 재물이 한 시간 내에 없어지게 되었도다, 하리라. 또 모든 선장과 배에 있는 온 무리와 선원들과 바다에서 무역하는 자들도 다 멀리 서서 그녀가 탈 때에 나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어떤 도시가 이 큰 도시와 같은가! 하며](15-18).
바빌론과 거래하고 장사하며 부자가 된 상인들은 바빌론이 받는 고통을 두려워하므로 멀리 서서 슬피 울고 통곡했습니다. 이들은 큰 환란이란 재앙 속에서도 부자가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큰 환란 때 노예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혼들을 팔아서 치부한 자들입니다. 모든 선장과 배에 있는 온 무리와 선원과 바다에서 무역하는 자들은 다 멀리 서서 그녀가 탈 때에 나는 연기를 봅니다. 어떤 이들은 바빌론이 바닷가에 있는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선장과 선원들이 바빌론이 불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로마는 바닷가에 있는 도시이지만 바빌론은 내륙에 있는 도시란 것입니다. 바빌론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있고 근처에 낮은 바다로 불리는 페르시아 만이 있습니다. 선원들이 본 것은 불타는 도시가 아니라 도시가 탈 때에 나는 연기를 본 것입니다. 이런 연기는 지중해, 홍해, 카스피해, 아라비아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정확합니다. 바빌론과 같은 도시가 불타면 사방 2,000 마일 이상에서 그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불타는 도시를 보면서 선장들과 선원들은 “......어떤 도시가 이 큰 도시와 같은가!”(18) 하며 애통해 했습니다.
불타는 도시를 바라보며 그들은 “어떤 도시가 이 큰 도시와 같은가!”(18)라고 여전히 찬양을 합니다. 불신자들은 언제나 과거의 영화를 잊지 못하고 그것을 붙들고 자랑합니다. 옛날에는, 한 때는, 전에는...이것이 불신자들의 자랑입니다. 신자들은 지금과 다가올 미래를 자랑합니다. 성도들은 과거를 기뻐하지 않고 현재 우리가 받은 은혜, 미래에 우리에게 임할 영광을 소망하며 기뻐합니다.
19절입니다. [티끌을 자기 머리 위에 뿌리고 슬피 울며 통곡하고 외쳐 이르되, 가엾도다, 가엾도다, 저 큰 도시여! 바다에서 배들을 부리는 모든 자들이 그 도시 안에서 그녀의 값비싼 물품으로 인해 부유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한 시간 내에 황폐하게 되었도다, 하리라.](계18:19).
“티끌을 자기 머리 위에 뿌리고...”(19). 티끌을 머리 위에 뿌리는 행위는 극도의 슬픔과 애통함을 드러내는 현상입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죄와 불법을 회개할 때 티끌을 자기 머리 위에 뿌립니다. 이는 자신이 티끌과 재와 같은 존재요 죽음과 장사 지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바빌론과 무역하던 상인들, 뱃사람들은 바빌론의 멸망이 곧 자신들의 죽음과 같은 슬픔이었습니다. 바빌론이 멸망하는데 걸린 시각이 “한 시간”이란 사실은 이미 앞에서 왕들의 증언과 일치합니다. 큰 바빌론의 멸망이 주는 충격은 온 세상에 미쳤습니다.
상인들은 어느 집단보다 바빌론의 멸망을 슬퍼하는데 가장 큰 이익 관계가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배들을 부리는 모든 자들이 그녀의 값비싼 물품으로 인하여 치부하였다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어느 시대에나 바다를 장악하는 자들이 치부를 합니다. 내륙이 아니라 해상에서 배를 부리는 자들이 치부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바다에서 배들을 부리는 자들이 많은 나라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합니다.
20절입니다. [너 하늘아, 너희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아, 그녀로 인해 기뻐하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그녀에게 원수를 갚으셨느니라. 하더라.](20).
땅에서 슬피 우는 자들과 달리 큰 바빌론의 멸망을 기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너 하늘아, 너희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아, 그녀로 인해 기뻐하라.”(20)고 합니다.
큰 바빌론의 멸망은 성도들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사도들은 신약의 교회 즉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을 대표합니다. 대언자들은 구약의 율법 즉 이스라엘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을 대표합니다. 바빌론의 멸망은 신구약 모든 성도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그녀에게 원수를 갚으셨느니라.”(20)란 말씀은 바빌론의 멸망이 주님의 보복의 결과요, 원수 갚는 일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바빌론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그들을 죽였고 모든 재물을 빼앗고 포로로 사로 잡아갔습니다. 큰 환란 때 바빌론은 땅의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서 모든 민족들 위에 군림하며 음행과 사치로 자신을 치부했습니다. 주님은 그녀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되 두 배로 갚아 주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심판들이 참되고 의롭기 때문이니 그분께서 음행으로 땅을 부패시킨 그 큰 음녀를 심판하셨고 자신의 종들의 피의 원수를 그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계19:2).
21절입니다. [한 강력한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닷속으로 던지며 이르되, 저 큰 도시 바빌론이 이같이 세차게 던져져서 결코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계18:21).
힘센 천사는 5:2, 10:1에 나온 걍력한 천사와 같은 부류입니다. 강력한 천사는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면서 바빌론이 이와 같이 멸망하여 다시는 보이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대언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대언했습니다. [그때에 이르되, 오 {주}여, 주께서 이곳을 끊으시려고 이곳을 대적하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아무것도 그 안에 남지 아니하며 그곳이 영원토록 황폐하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라. 또 너는 이 책 읽기를 마친 뒤에 그 책에 돌을 매달아 유프라테스 한가운데로 그것을 던지며 말하기를, 이같이 바빌론이 가라앉고 내가 그녀에게 가져올 해악으로부터 벗어나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들이 힘을 잃고 지치리라, 하라, 하니라. 예레미야의 말들이 여기까지니라.](렘51:62-64).
예레미야는 책에 돌을 묶어 유프라테스 한 가운데로 던졌고 힘센 천사는 큰 맷돌 같은 돌을 바다에 던졌는데 바빌론이 이와 같이 땅에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또 하프 타는 자들과 음악 하는 자들과 피리 부는 자들과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떤 종류의 기술을 가진 기술자든지 그도 다시는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며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계18:22).
21-23절에서 “더 이상....아니하고”(No more at all)는 다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심판의 결과는 완전합니다. 바빌론 안에서는 뭔가가 더 이상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하고 비치지 아니합니다. 쾌락과 환락을 추구하는 도시에서 더 이상 음악이 없습니다. 하프 타는 자, 음악 하는 자, 피리 부는 자,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종류의 기술을 가진 기술자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맷돌 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습니다. 맷돌은 음식을 갈고 요리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이 도시에 거주민이 없다는 표현입니다.
23절입니다. [등잔불 빛이 결코 다시는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며 신랑과 신부의 음성도 결코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 상인들이 땅의 위대한 자들이었으며 네 마법에 모든 민족들이 속았고](계18:23).
등잔불 빛이 다시는 비치지 않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음성도 다시는 들리지 않습니다. 멸망한 도시의 상태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씀이 없습니다.
“네 상인들이 땅의 위대한 자들이었으며”(23). 큰 환란 때 바빌론과 거래하던 상인들은 모두 땅의 위대한 자들이었습니다. 바빌론과 거래하는 상인들은 세상에서는 권력자들이요, 호화롭게 사는 자들입니다.
“네 마법에 모든 민족들이 속았고”(23). 마귀는 속이는 자들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마술, 마법은 마치 눈 속이는 고도의 기술로 묘기라 부릅니다. 그냥 속임수 정도입니다. 실제로 마법, 마술은 마귀로부터 나온 실제적인 힘입니다. 이집트의 마술사들이 모세가 행하는 표적들을 비슷하게 행했습니다(출7:11,12). 얀네와 얌브레가 자기들의 마술로 이집트 땅에 개구리들을 내었습니다(출8:7). 티끌로 이를 만드는 일은 마술로 따라 하지 못했지만(출8:18) 많은 표적들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큰 환란 때 마술, 마법은 너무나 강력해서 선택 받은 자들도 속이려 합니다. 땅의 모든 민족들을 속이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표적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24절입니다. [대언자들과 성도들과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의 피가 그녀 안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라, 하더라.](계18:24).
큰 바빌론 안에서 대언자들과 성도들과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의 피가 발견되었습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며 처음부터 살인자임이 본문에서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시온에서 나왔고 복음은 교회에서 나오지만 사람들을 속이는 마술은 큰 바빌론에서 나옵니다.
바빌론 안에서 대언자들과 성도들과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의 피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살인자란 물증이 발견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세 가지 죄는 음행, 살인, 우상 숭배입니다. 큰 바빌론은 이 세 가지 죄를 모두 행하는 여자로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 교역자 친교모임에서 교제하던 한 목사님은 킹제임스 성경에 관한한 저보다 선배인 분이었는데 2013년 겨울 어느 날 자기 딸 결혼식이 있다며 청첩장을 주기에 축하하는 마음으로 인천에서 경기도 포천의 일동까지 먼 길을 찾아갔는데 주례도 없는 결혼식이 진행되더니 신랑 신부가 서로의 다짐 순서를 갖고 이어서 뜬금없이 마술사가 등장하더니 20여 분 간이나 마술을 하는 것을 보고 저와 동료들이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아직 젊은 신세대 결혼 당사자들은 생애 단 한 번의 이벤트라고 즐길지 모르지만 그것을 보는 많은 동료 목사들이나 저는 민망하기 그지없었는데 막상 부모 되시는 목사님 부부는 흐뭇한 모습으로 그것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저분은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교사가 아닌가? 성경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가르치는가? 어안이 벙벙했으며 기가 막혀 한 동안 교제를 끊고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은 시간들이 있었으며 그분이 공개적으로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결국은 모임에서 그분을 제명시켰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을 경배하고 복음으로 혼들을 살리고 음행을 삼가고 우상숭배로부터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참조;레20:27, 갈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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